<예수님께서는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다.>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참 예언자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으로 가시어 회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루카 4,24ㄴ-30
2026년 3월 9일 사순 제3주간 월요일
믿는다는 것은 과연 쉬운 일일까요, 아니면 어려운 일일까요?
쉽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쉽고, 어렵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운 것이 믿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요구했던 것이 바로 그런 믿음이었겠지요. 엘리사는 그에게,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지시합니다. 나아만의 부하들이 말하듯이 이것은 아주 쉽고 단순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쉽게 그 말을 따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나라에 더 크고 훌륭한 강이 있는데, 평범해 보이는 요르단 강에 들어가라는 지시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믿음이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는 것이라면, 연구를 해야 하고 고민을 해야 하겠지요. 그리고 그 명백함을 보고 나면 흔들림 없이 믿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믿음은, 나아만이 엘리사의 지시에 따라 강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단순한 받아들임을 요구합니다. 신앙의 이치와 논거를 아무리 설명해 준다 해도, 최종적으로 마지막 한 걸음은 결국 개인의 결단입니다. 이미 믿음을 받아들인 사람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도 믿음은, 자연 과학의 이론처럼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자렛 사람들에게도 그 결단은 참으로 어려웠을 것입니다. 믿지 않을 합리적 근거들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지요. 그런 이들에게 기적이 믿음을 갖게 할 수 있을까요? 나자렛 사람들이 믿지 않으므로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기적이 믿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기적을 가져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단순하면서도 아주 강력하게 보여 줍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적을 보여 주시기를 청할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믿음을 더해 주시기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매일 미사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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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신부님 글 드립니다~~~
「기도는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톨스토이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깊은 광산에 파묻힌 사람, 빙하에 갇혀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 바다 한가운데 홀로 굶어 죽어가고 있는 사람, 독방에 갇혀 고독 속에 쇠약해진 사람, 집에서 죽어가는 사람,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기도가 없다면 이런 남은 생을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기도는 우리에게 많은 위로와 힘을 줍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기도하기 보다는 포기하는 길을 선택할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지요. 아무리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솔직히 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보면 머릿속에 있는 것을 되뇔 때가 많습니다. 즉, 그냥 생각나는 대로만 기도합니다. 아니면 기도서에 있는 글을 읽음으로 그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정말로 내게 필요한 기도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기도가 정리되지도 않고 구체화되지도 않기 때문이지요.
한 아이가 떼를 쓰면서 울고 있습니다. 엄마는 “왜 우니? 뭐가 문제인데?”라고 묻습니다. 그때 아이가 “몰라요. 그냥 알아서 해주세요.”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엄마는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자신의 필요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이것을 도와주는 것이 아이에게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엄마는 적극적인 행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것이 필요한 지 다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내게 필요한 것이 정확하게 알고 있고 이를 기도한다면 주님께서는 100%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기도는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분명합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을 권력 속에서 찾고, 어떤 사람은 학문에서 찾고, 또 어떤 사람은 유흥에서 찾는다. 정말로 행복 가까기에 있는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이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고, 나눌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블레즈 파스칼).>
2026년 3월 9일 사순 제3주간 월요일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루가 4,24ㄴ-30)
預言者は、
自分の故郷では歓迎されないものだ。
(ルカ4・24-30)
No prophet is accepted
in his own native place.
(Luke 4:24-30)
四旬節第3月曜日
어떤 예언자도
オットン イェオンザド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ザギ コヒャンエソヌン ファニョンウル バッジ モッタンダ。
(루가 4,24ㄴ-30)
預言者は、
요겐샤와
自分の故郷では歓迎されないものだ。
지분노 코쿄오데와 칸게에사레나이 모노다
(ルカ4・24-30)
No prophet is accepted
in his own native place.
(Luke 4:24-30)
Monday of the Third Week of Lent]
Luke 4:24-30
Jesus said to the people in the synagogue at Nazareth:
“Amen, I say to you,
no prophet is accepted in his own native place.
Indeed, I tell you, there were many widows in Israel
in the days of Elijah
when the sky was closed for three and a half years
and a severe famine spread over the entire land.
It was to none of these that Elijah was sent,
but only to a widow in Zarephath in the land of Sidon.
Again, there were many lepers in Israel
during the time of Elisha the prophet;
yet not one of them was cleansed, but only Naaman the Syrian.”
When the people in the synagogue heard this,
they were all filled with fury.
They rose up, drove him out of the town,
and led him to the brow of the hill
on which their town had been built,
to hurl him down headlong.
But he passed through the midst of them and went away.
2026-03-09「イエス様は、エリヤやエリシャのように、ユダヤ人だけに遣わされたのではありません。」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四旬節第3月曜日です。
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と神の母の聖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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ルカによる福音
<イエス様は、エリヤやエリシャのように、ユダヤ人だけに遣わされたのではありません。>
そのとき、イエスは、ナザレの会堂で人々に言われた。4・24「はっきり言っておく。預言者は、自分の故郷では歓迎されないものだ。25確かに言っておく。エリヤの時代に三年六か月の間、雨が降らず、その地方一帯に大飢饉が起こったとき、イスラエルには多くのやもめがいたが、26エリヤはその中のだれのもとにも遣わされないで、シドン地方のサレプタのやもめのもとにだけ遣わされた。27また、預言者エリシャの時代に、イスラエルには重い皮膚病を患っている人が多くいたが、シリア人ナアマンのほかはだれも清くされなかった。」28これを聞いた会堂内の人々は皆憤慨し、29総立ちになって、イエスを町の外へ追い出し、町が建っている山の崖まで連れて行き、突き落とそうとした。30しかし、イエスは人々の間を通り抜けて立ち去られた。(ルカ4・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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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じるということは、果たして簡単なことでしょうか。それとも難しいことでしょうか。
簡単だと思えばどこまでも簡単であり、難しいと思えばどこまでも難しいもの、それが信仰ではないでしょうか。エリシャがナアマンに求めたのも、まさにそのような信仰でした。エリシャは彼に、ヨルダン川に行って七度身を洗うように命じます。家来たちが言ったように、それは実に簡単で単純なことでした。しかしナアマンは、その言葉にすぐには従おうとしませんでした。自分の国にはもっと大きく立派な川があるのに、見たところ平凡に思えるヨルダン川に入れと言われることが、受け入れがたかったのです。
もし信仰が論理的に説明し証明できるものであるなら、研究し、熟考すればよいでしょう。そしてその明白さを確認すれば、揺らぐことなく信じられるかもしれません。しかし信仰は、ナアマンがエリシャの言葉に従って川の水に入ったような、単純な受け入れを求めます。信仰の道理や根拠をどれほど説明されたとしても、最後の一歩は結局、個人の決断にかかっています。すでに信仰を受け入れた人にとっても、それは同じです。私たちにとって信仰は、自然科学の理論のように証明され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
ナザレの人々にとっても、その決断は実に難しかったことでしょう。信じないための合理的な理由が目に見えていたからです。そのような人々に、奇跡は信仰をもたらすのでしょうか。ナザレの人々が信じなかったために、イエス様が奇跡を行われなかったという事実は、奇跡が信仰を生むのではなく、信仰が奇跡を生むのだということを、単純でありながら非常に力強く示しています。ですから今日、私たちが願うべきことは、奇跡を見せてくださいと願うことではなく、何よりも信仰を増し加えてくださいと願うことな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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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の福音を読み、信仰を深め、日常の中で主の奇跡をより多く感じることができますように。聖霊、来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