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에서는 할 일이 없어서 남의 카페에 들어와서 글이나 읽는다.
회원 4만 명에 가까운 어떤 중노년 카페에 지방 도의원 뭐라고 하는 분이 정치성향 글을 올렸다.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은 sky 위주로 하지 말고 지방대 출신도 등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견 맞으면서도 다른 한편에는 오류이기에 내가 댓글 달았다. 제목만 보고 그 긴 내용은 1분도 안 되어 읽었다. 이미 요지는 깨달았기에 내가 댓글을 달았다. '제목만 보고 댓글 답니다'라는 문구도 넣고는 300자 가량의 댓글을 빠르게 쳤다. 능력만 있으면 지역, 특정대학교 등을 가르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게 미운 털이다. 지방 도의회 뭐쯤 되는 의장의 눈에는 특정 지역대 출신을 위해서 굉장한 정책안을 내놓은 양 해야 하는데도 건방진 댓글이 올랐으니. 그것도 '제목만 보고 댓글 답니다'라는 문구까지 들었으니.
그는 발딱해서 즉각 덧글을 붙였다.
나도 발딱해서 즉각 재댓글 달았다가 곧 지웠다.
내가 아랫녘 지역 사람도 아니고, 나하고는 하등의 이익도 없는 짓거리에 구설수에 오르내리기 싫었다. 나는 개인 카페에 가입할 때에는 그 카페에 하등의 문제를 야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기에, 정치성 글에 찬반의견으로 분란을 일으키 싫었다. 그는 아마도 자기가 굉장한 정치인이라서 이겼다고 자부할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말이다. 정치 운운한다면? 나도 할 말은 무지하게 많을 것 같다. 그 사람이 초중고에 다닐 때에 나는 이미 정치학원론 책을 겨드랑이게 끼고 살았을 게다. 그가 아는 공무원법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들은 나는 그냥 빙그레 웃을 게다. 그런데도 나는 아뭇 말도 않고 내 글을 자진삭제했다. 분명히 내가 잘못한 것이 있기에. 제목만 보고, 1분 정도로만 후루륵 읽고는 즉시 댓글을 달았다. 더군다나 댓글에 '제목만 읽고도 댓글 답니다'라는 문구까지도 넣었으니 장시간 글을 써서 올린 그로서는 불쾌했을 게다.
그러나 어쩌랴 싶다.
나는 음식점에서 밥을 사 먹을 때 젓가락질 한 번, 수저로 한 번 떠서 먹으면 그 음식맛을 순식간에 분별한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 매운지 짠지를 몇 초 안에 식별한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은 제목만 보아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고, 내용도 1분이면 거의 다 파악할 수 있다. 글이 길어 봤자다. 불과 2 ~3분이면 상황판단이 끝난다.
글 쓴 이야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서 썼지만 글 읽는 사람은 수준에 따라서 순식간에 판독할 수 있다. 글 올린다는 것은 남한테 비평도 받아들이겠다는 뜻도 들어 있다. 오로지 '잘 썼네요' 이런 수준의 댓글만을 원한다면 처음서부터 글을 올리지 말아야 한다. 그것도 정치성향의 글이라면.
중년 초로의 카페에서 다툴 사안이 아니기에 내가 얼른 댓글을 삭제했으나 마음은 밝지 못했다.
글 같지도 않는 아랫지역 특정지방인이 쓴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오늘도 어제에 이어 서점에 나갔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고르려고. 내가 고르는 글쓰기 책이란 산문 잘 쓰자는 책 위주이다. 귀농귀촌과 관련되고, 야생화를 키우고, 들풀 산꽃을 활용하는 방안을 산문과 연계한 그런 글이다. 때로는 여행기도 되겠고 조금은 생태문학일 수도 있겠다.
수필코너에에서 수필책을 골라서 빠르게 읽었다. 책 한 쪽 읽는데는 1분도 안 되어 책장을 후르륵 넘기는 속독이기에 한 제목 읽는 거야 2 ~3분도 안 된다.
정말로 잘들 썼다.
월간지 문학 코네에 들렀다. 200여 종류의 시, 수필 등의 문예지 가운데 '한국 국보문학'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국보문학 회원이기에 더욱 반가워 했다. 교보문고 잠실지점에 진열된 월간문학지 각 권마다 회원 100명 정도가 글 올린다면? 엄청나게 많은 문인들이 활동한다는 뜻이다. 교보문고에 진열되지 않는 문학지도 전국적으로는 엄청나게 많을 게다. 또 활동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욱더 많을 게다.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많은 문학인이 있는데도 어떤 카페에서 어떤 문인은 자기가 굉장한 수필가인 양 자랑하고 있다. 무척이나 부럽기도 했다.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어서 매번 비실거리기만 하는 나한테는 그런 자랑를 하는 사람이 우러러 보일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고개를 흔들 게다. 나도 무엇인가 꼬집고 싶은 말이 숱하게 많을 것 같기에.
호랑이 없는 산에 고양이가 설치려나?
아마도 그쯤 될 게다.
대한민국 남한에 음식점은 몇 개나 될까? 어림잡아 20만 개도 훨씬 넘을 게다.
이렇게 많은 음식집마다 독특한 맛을 내어서 자랑하는 음식 가지 수도 엄청나게 많을 게다.
그런데도 자기네 어떤 음식이 최고다, 으뜸이다라고 자랑질을 하는 경우도 숱할 게다. 그런데 말이다. 음식맛이란 그 사람의 취향이고, 내 취향은 전혀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지독히도 생선비린내를 싫어 한다. 이런 나한테 어떤 바닷가 생선으로 요리해서 내놓아도 나한테는 별로일 게다. 자랑질하는 것과 내가 느끼는 맛은 전혀상관이 없다. 나는 술맛을 모른다. 알코홀 해독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나는 술 마시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며 기피한다. 이런 나에게 고급술 자랑을 해 봤자이다. 하등의 가치도 없이 그냥 쏟아서 내버릴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음식맛 최고다, 자기네 음식만이 으뜸이다라고 남한테 자랑하거나 강요할 이유는하나도 없다.
그렇게 글 잘 쓰면 왜 이적껏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할 것 같다.
오늘은 무척이나 그렇다.
아내가 서울 송파구 잠실 새마을 부근에 있는 성당에 다녀오다가 새마을시장에 들렀나 보다.
무 한 단을 사서 베란다에 놔 두었다. '다듬어 주세요'라고 말했기에 나는 주방에서 과도를 찿아내고는 무를 다듬었다. 나는 건달농사꾼이기에 이런 채소류 다듬는 거야 아무 것도 아니다. 칼날을 아주 날카롭게 갈 줄 알고, 칼을 휘둘 줄도 안다.
예전 나는 시골에서 검도를 익히려고 왕대나무를 잘라서 숱하게 검도 자체를 익혔다. 도청 옆에 있는 경찰서 검도장에서도 검도를 익혔던 가락이 있어서 칼을 무척이나 두려워 하면서 칼날을 날카롭게 갈고 다뤘다. 이런 이유로 무 다듬는 거야 그냥 식은 죽 먹기이다.
무청을 수돗가에서 씻은 뒤에 물에 담궜다. 혹시나 잎사귀에 남아 있을 농약의 흔적을 녹이려고.
어쩌면 내 성격 탓일까? 농약을 전혀 치지 않고 농사를 짓는 나로서는 크고 잘난 농작물을 보면 의심부터 한다. 믿을 수 없는 농산물이기에 더욱 그렇다.
아내가 나한테 부탁한 이유는 뻔할 게다.
손이 마디고 무딘 자기보다는 촌놈출신인 남편이 무척이나 성깔이 급해서 일도 순식간에 해치운다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일거리를 맡겼을 게다.
이렇게 성격이 급한 내가 남의 글을 읽는데 때로는 1분도 채 안 되어 읽는 글은 없을까?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도 때로는 어떤 글을 읽고 읽고를 몇 차례나 거듭할 때가 있다.
정성들여서 쓴 글이다. 글자가 틀리고 어색한 문장일지라도 나는 본질적인 내용에만 정성 들여서 읽는다.
때로는 잘 쓴 글이 있다. 성질 급한 나도 불같은 성질을 죽이고는 글 쓴 이와 같이 호흡을 맞추기도 한다.
오늘은 회원 수가 엄청나게 많은 중년노년 카페에서 댓글 한번 달았다가 자진삭제한 내가 싫다.
하찮은 정치성향의 글에 내가 수십 년 전 과거로 돌아가서 정치학 원론, 공직사회에 대한 기억을 더듬기가 싫었다.
나는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로 주소지를 옮긴 농사꾼이다. 농업경영인이다. 잘난 세상과는 전혀 무관하게 살고 싶은 늙은이다. 나이도 일흔 살이나 먹었기에 하찮은 일로 다툼하기는 정말로 지겹다. 싫다. 내 밥벌이와는 하등 관계가 없는 내용이기에. 남녘지방에서나 우쭐거리는 작태가 별로이다.
내일은 월요일.
오전 중에 내과병원에 들러서 혈당을 체크해야 할 터.
자꾸만 몸이 부실해진다. 눈도 어지럽고, 귀에서는 이명이 더 크게 자주 들리고.
날은 추워지는데 마음부터 기운이 빠진다.
어제는 중고서점 알라딘에 들렀다. 야생화 원본 사진이 든 책이 무척이나 두껍다.
3권 정가는 800,000원. 중고가격이라도 400,000원.
예전 직장 다닐 때라면 서슴치않고 현금 결재를 했을 게다. 그런데 직장 벗어난 지가 10년째인 나로서는 주머니 사정이 나를 위축시켰다. 아쉬움을 접었다. 그런 식물도감 보지 않아도 텃밭 농사 충분히 지을 수 있고, 들풀 산꽃 이름을 다 알지 못해도 아무 풀이나 나무라도 뜯어서 발효시켜서 먹을 수 있다. 어떤 원리만 알면 모든 것을 응용할 수 있다면서 나를 달래고 위로했다.
결언한다.
자랑질 하는 글은 나한테는 1분 짜리이다. 1분이면 다 읽는다. 더 이상 읽을 가치도 없다는 뜻이다.
글도 하나의 품격을 지닌다.
2.
교문문고 잠실지점 그 큰 서점에도 내가 찾고자하는 황대권 수필가의 책이 보이지 않았다. 몇 차례나 도서검색해도 보이지 않았다.
내일 내과병원 들린 뒤에 인근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사야겠다. 일전 들른 그곳에는 있었기에.
'고맙다 잡초야'.
13년 넘게 정치사상범으로 몰려서 징역살이 했던 분이다. 그의 초기 수필인 '야생초 편지'는 많은 사람한테 감동을 주었다. 후작일 수도 있는 '고맙다 잡초'는 어떤 내용일까 궁금하다.
내 삶도 잡초에 불과하기에 이런 책 제목에 정이 더 간다.
2107. 11. 12.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