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와 후크 선장의 서로 닮은 용기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는 대자연의 힘이 등장합니다.
이는 자연을 다스리는 주님과 인간의 나약함, 현실 풍파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아갈 용기,
그리고 각자 상황 속에서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기서 후크 선장과 베드로의 모습이 마치 좌우 대칭 데칼코마니처럼 떠오릅니다.
특히 베드로의 현실적인 모습은 조직의 리더와 부모님들 모습과 같습니다.
베드로는 현실의 풍랑 속에서 예수님을 만난 뒤,
지난주 복음대로 오병이어에 대한 믿음과 기억을 간직하고 초인적인 힘으로 물 위를 걷습니다.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다른 법!
그는 세찬 풍랑과 자신이 물 위를 걷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워하며 그만 물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를 구하며 말씀하십니다.
“이 어리석은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이는 현실이라는 풍랑에서 예수님께로 향한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의심하면서
한 순간의 실수로 물에 빠질 수 있다는 일종의 회의감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사실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살얼음 위를 걷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짧고도 단호하게 ‘왜 의심하 였느냐?’라고 물으신 뒤
그들의 연약함과 시행착오마저 품어주십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마치 거친 후크선장의 마음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팩트체크를 통한 이야기를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입니다.
‘리더라면 완벽해야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완벽을 추구하는 콤플렉스를 지닌 모순투성이의 어른들은
본인 스스로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완벽하지 않으니까 타인에게 나의 부족한 완벽함을 강요하며 덮어씌우는 것입니다.
후크 선장! 그도 과거에 피터팬의 동료였지만,
그 조직에서 나와 늙음을 선택했고,
부적응자와 부족한 이들을 데리고 나와 스스로 총대를 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실 사회에서는 이를 용인하지 않았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나이만 먹은 이들이 어르신 대접을 해 달라는 피터팬 콤플렉스에 찌들어
후크 선장과 베드로를 비난하는 형태가 되어버립니다.
마치 애꾸눈(피터팬)이 정상인 나라에서 눈 2개(후크 선장)를 가진 사람이 비난받는 형태와 같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크게 몇 가지를 기억하며 살펴봅니다.
이론과 현실이 다름을 인정하기.
질책은 짧고 굵게.
시행착오의 기회.
넘어지고 물에 빠지는 기회를 통해 일어남을 배우게 하기.
완벽이 아닌 완성을 추구하기.
늙은이(피 터팬)가 아닌 어르신(후크 선장, 베드로)이 되기.
일상의 삶 속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새겨듣기.
나와 다름은 잘못된 것, 틀린 것이라는
사고방식(피터팬)에서 벗어나 타인의 다름을 받아 들이기(후크 선장).
바르고 착한 마음을 바탕으로 비난받더라도 상처 받지 말기.
그리하여 영적인 환골탈태! 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로 거듭납시다.
강성욱 스테파노 신부 | 내가 본당 주임
가해 2026년 8월 9일 연중 제19주일 주보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