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길은? (요한복음 5:24-25)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병을 무서워하고 사고를 무서워하고 늙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잘못되면 죽기 때문입니다. 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홍천출신 가수가 부른 노래 백세인생 가사에 보면 어떻게 하던지 간에 저 세상에 가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실리야 라는 큰 배를 타 본적이 있습니다. 노르웨이에서 스웨덴으로 가는 배입니다. 배가 엄청나게 큽니다. 배 안의 객실은 호텔과 같습니다. 이건 배가 아니라 바다에 떠 다니는 성, 섬과 같습니다. 1994년 가을 초 호화유람선 에스토니아 호가 1019명의 승객을 태우고 스톡홀름을 출발했습니다. 승객들이 갑판에서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바라보았고 행복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저녁이 되어 아름다운 음악과 춤으로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기상청에서는 스칸디나비아 연안에 태풍이 상륙하므로 운행하는 선박은 운항을 중지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선장은 이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배가 워낙 크고 견고하게 지어졌기 때문에 배를 믿고 출발했던 것입니다. 밤 12시 사람들이 흥겹게 춤추고 있을 때, 배에 약간의 충격을 느꼈습니다. 탁자위의 맥주잔이 조금 흔들렸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의 시작인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이 충격으로 배의 선수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배는 조용했지만 부서진 뱃머리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고 삽시간에 배는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차디찬 북극해의 바다에 300명이 구명보트에 올랐지만 126명만 살아남았고 913명이 죽었습니다. 타이타닉 사고이후 최대의 해양 참사였습니다. 기상청의 태풍경고를 듣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기상청이 태풍을 경고했으나 그것을 무시한 결과 많은 사람이 죽었던 것입니다. 우리인생이라는 것은 차안에서 피안으로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길도 있고 멸망의 길도 있습니다. 오늘은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는지, 사는 길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살 길이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첫째,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살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언제나 들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기도원에서 기도하러 갔습니다. 그때는 너무 어렵고 힘들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었습니다. 소위 직통계시라는 것을 받고 싶었습니다. 저녁에 설교하시는 분이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 듣고 싶으시죠? 그래서 귀가 번쩍 했습니다. 내 마음을 어떻게 알고?... ‘그 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하지 마세요’ 했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 우리 귀에 음성으로 말씀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성자 어거스틴이 있습니다. 그분은 평생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일이 없습니다. 어거스틴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것은 로마서 13장11-14절 말씀입니다.‘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어거스틴은 성경말씀을 읽고 그것이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2000년 교회 역사에서 가장 예수님을 닮았다고 하는 아씨시의 성자 성 프란치스코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일이 없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도, 요한 웨슬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일이 없습니다. 슈바이쳐도, 데레사 수녀도 마틴 루터 킹도 본헤퍼도, 빌리 그래함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들으려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방법으로 전달되는가의 문제입니다. 히브리서 1:1-2에 보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아들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자는 살아나리라’ 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모세와 선지자를 통해 오늘도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현재에도 당신이 세운 일꾼들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닫혀 있어 하나님이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누가 16:19-31에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부자는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전하면 그 말을 믿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이라 했습니다. ....모세와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 돌아온 사람의 말도 듣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
모세와 선지자가 누구입니까? 모세와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목사와 전도사, 주의 종들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죽어서 천국을 보고 돌아온 사람이 천국과 지옥에 대해 이야기해도 듣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넬료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넬료의 초대를 받고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왔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고넬료라는 로마의 백부장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10장 1-8절에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마침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그가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고넬료가 환상 중에 천사를 보았습니다. 그 천사가 고넬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고넬료야,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 너는 사람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를 청하라....’ 베드로를 청하여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왔을 때, 고넬료는 일가친척을 다 모아놓고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고넬료는 베드로라는 사도를 모셔놓고 그를 통하여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바른 모습을 고넬료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하는 말이지만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살길이 열립니다.
말씀이 들리면 살길이 있습니다. 욥이 큰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가 고난 중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고통의 심연에서, 지옥의 밑바닥에서 욥이 간절히 원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였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욥기23:8-10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했습니다. 그렇게 힘들었던 욥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폭풍 속에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욥기 38장에 보면 하나님이 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욥은 욥기 42:5-6에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더니 이제 내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욥은 자신의 어리석고 초라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였습니다. 이 욥을 하나님은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살길이 열립니다.
대부도의 한 어촌, 가장이 날마다 술을 마시고, 술독에 빠져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이 열세살에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가문에서 모진 핍박을 받으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임금이요 주인으로 섬겼습니다. 임금이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했습니다.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했습니다. 예배마다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70년이 지났습니다. 그의 두 아들은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아들들이 우리 교회에 부흥회를 한 장학일 목사님과 장학봉 목사님입니다. 그의 딸들은 목사님의 사모가 되었습니다. 그 분은 장로님인데 그의 아내 권사님이 아들처럼 기른 분이 감독회장이요 유명한 부흥사였던 장광영 목사님입니다.
한 어린 소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가난에 찌들고 술로 망해가던 집안이 영광스런 가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살길이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