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집주 (論語集注) - 1 - 학이(學而) - ② |
1 | 有子曰 其爲人也 孝第오 而好犯上者 鮮矣니 不好犯上이오 而好作亂者 未之有也니라. 유자가 말하되, "그 사람됨이 효도하고 공경하면서 웃사람에게 거역하기를 좋아하는 이가 적고, 웃사람에게 거역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난동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이가 있지 아니하니라.
○ 有子, 孔子弟子, 名若. 善事父母爲孝, 善事兄長爲弟. 犯上, 謂干犯在上之人. 鮮, 少也. 유자는 공자님의 제자로서 이름은 약이다. 부모를 잘 모시(섬기)는 것이 孝이고, 형과 어른을 잘 모시는 것이 弟이다. 犯上이란 윗자리에 있는 사람을 간섭하여 범한다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鮮은 적다는 말이다.
新安陳氏曰 深意在善字上 善事之中有無限 難能之事未易言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깊은 뜻이 善자 위에 있으니, 잘 섬기는 것 중에는 무한함이 있고, 해내기 어려운 일은 말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只少有拂戾 便是犯上 不必至陵犯 乃爲犯 如疾行先長 亦是犯上 주자가 말하길, “단지 조금이라도 거슬러서 어그러짐이 있다면 곧바로 犯上이니, 반드시 능멸하여 범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더라도 곧 범하는 것이 된다. 예컨대 빨리 걸어가서 어른보다 앞에 가게 되면 이 역시 윗사람을 범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干犯是小底亂 到得作亂 則爲悖逆爭鬪之事矣 問人子之諫父母 或貽父母之怒 此不爲干犯否 曰 此是孝裏面事 安得爲犯 然諫時又自下氣 怡色柔聲以諫 亦非陵犯也 干犯은 작은 亂이나, 그것이 난을 일으키는 지경에 이른다면, 곧 거슬러 반역하고 다투고 싸우는 일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 묻기를, “자식이 부모에게 간언할 적에, 혹시라도 부모께 노여움을 남긴다면, 이것은 干犯이 될까요?”라고 하였다. 대답하기를, “이것은 효도 안의 일이니, 어찌 범하는 것이 되겠는가? 그러나 간언할 때 또한 스스로 기운을 가라앉히고, 기쁜 얼굴빛과 부드러운 음성으로 간언한다면, 이 역시 능멸하며 범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不好犯上 而好作亂者 未之有也 윗사람을 범하기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난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자는 일찍이 있지 않았다.
作亂, 則爲悖逆爭鬪之事矣. 此言人能孝弟, 則其心和順, 少好犯上, 必不好作亂也. 作亂이란 곧 거스르고 반역하며 다투는 일이다. 이는 사람이 능히 부모에 효도하고 윗사람을 공경할 줄 알면 곧 그 마음이 화순하여 윗사람을 범하기 좋아하는 일이 적고, 반드시 난 일으키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군자는 근본에 힘써야하는데, 근본이 서면 도가 생겨난다. 효제라는 것, 그것은 인을 행하는 근본이리라!. |
2 | 君子는 務本이니 本立而道生하나니 孝弟也者는 基爲仁之本與인저. 군자는 근본에 힘쓰나니 근본이 서야 도가 생기는 것이다. 효도와 공경은 그 인을 이루는 근본인저."하니라.
○ 務, 專力也. 本, 猶根也. 仁者, 愛之理, 心之德也. 爲仁, 猶曰行仁. 與者, 疑辭, 謙退不敢質言也. 言君子凡事專用力於根本, 根本旣立, 則其道自生. 若上文所謂孝弟, 乃是爲仁之本, 學者務此, 則仁道自此而生也. 務라는 것은 오로지 힘쓴다는 말이다. 본은 뿌리와 같다. 仁이라는 것은 사랑의 이치이자 마음의 덕이다. 위인(爲仁)은 인을 행한다는 말이다. 與자는 의문사이니, 겸손하게 물러나서 감히 질언(단언, 斷言)할 수 없다는 뜻이다. 군자는 무릇 일에 있어서 오로지 근본에 힘 써야 하고, 근본이 이미 섰다면 즉 그 도가 스스로 생겨날 것이고, 윗글에서 말한 효제로 말하자면, 이는 곧 인을 행하는 근본이니, 배우는 사람이 여기에 힘쓴다면, 인도(仁道)가 저절로 여기에서 생겨날 것임을 말한 것이다.
慶源輔氏曰 專用其力而爲之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자기 힘을 오로지 사용하여 그것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仁者愛之理 是偏言則一事 心之德 是專言則包四者 故合而言之 則四者心之德而仁爲之主 分而言之 則仁是愛之理 義是宜之理 禮是恭敬辭讓之理 智是分別是非之理也 仁者愛之理 理是根 愛是苗 仁之愛猶糖之甛 醋之酸 愛是那滋味 愛雖是情 愛之理是仁也 仁者愛之理 愛者仁之事 仁者愛之體 愛者仁之用 愛之理自仁出也 然亦不可離了愛去說仁 昌黎博愛之謂仁 是指情爲性了 周子說 德愛曰仁 猶說惻隱之心 仁之端也 是就愛處指出仁 若博愛之謂仁之謂 便是把博愛做仁了 주자가 말하길, “仁은 사랑의 이치라고 하는 것은 치우쳐 말한 것이니, 곧 하나의 일이고, 仁이 마음의 덕이라고 하는 것은 오로지 말한 것이니, 곧 네 가지를 포함한 것이다. 그러므로 합해서 말한다면, 네 가지는 모두 마음의 덕이지만, 仁이 그 주인이 되는 것이고, 구분하여 말한다면, 仁은 사랑의 이치이고, 義는 마땅함의 이치이며, 禮는 공경하고 사양하는 이치이고, 智는 시비를 분별하는 이치인 것이다. 仁이란 사랑의 이치인데, 이치는 뿌리고, 사랑은 싹이다. 仁의 사랑에 대한 관계는 사탕의 단맛에 대한 관계나 식초의 신맛에 대한 관계와 같아서, 사랑은 仁의 맛이다. 사랑은 비록 情이기는 하지만, 사랑의 이치는 仁인 것이다. 仁이라는 것은 사랑의 이치이고, 사랑이라는 것은 仁의 일이며, 仁이라는 것은 사랑의 體이고, 사랑이라는 것은 仁의 用이니, 사랑의 이치는 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사랑에서 벗어나서는 가서 仁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昌黎(한유)는 博愛를 가리켜 仁이라 말했는데, 이는 情을 가리켜 性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周子(주돈이)는 德愛를 仁이라고 말했는데, 惻隱之心은 仁의 단서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는 사랑이라는 곳에 나아가 仁을 지적해낸 것으로서, 예컨대 博愛를 일컬어 仁이라고 말한다는 학설의 경우는 곧바로 박애를 仁이라고 간주해버린 것이다.”라고 하였다.
仁便是本 仁更無本了 若說孝弟是仁之本 則頭上安頭 伊川所以將爲字屬仁字讀 蓋孝弟是仁裏面發出來底 乃推行仁道之本 自此始爾 仁字則流通該貫 不專主於孝弟之一事也 仁就性上設 孝弟就事上設 仁如水之源 孝弟是水流底第一坎 仁民是第二坎 愛物是第三坎也 問爲仁只是推行仁愛以及物否 曰只是推仁愛以及物 不是就這上求仁 仁이 곧 근본이니, 仁에는 더이상 그 근본이 없다. 만약 孝悌가 仁의 근본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머리 위에 다시 머리를 얹는 격이다. 이 때문에 정이천 선생이 爲자를 仁에 이어 붙여서 읽었던 것이다. 대체로 孝悌는 仁의 내면에서 발현되어 나오는 것인데, 仁道를 미루어 행하는 근본이 이곳으로부터 시작될 따름이다. 仁자는 두루 갖추어 관통하는 것이라, 孝悌의 한 가지 일에만 오로지 주안점을 두지는 않는다. 仁은 性 위에 나아가 말한 것이고, 孝悌는 일 위에 나아가 말한 것이니, 仁이 물의 근원지와 같다면, 孝悌는 흐르는 물의 첫 번째 웅덩이고, 백성을 인애하는 것은 두 번째 웅덩이며, 외물을 사랑하는 것은 세 번째 웅덩이인 것이다. 누군가 묻기를, “仁은 그저 仁愛를 미루어 행함으로써 외물에 미치는 것인가요?”라고 하였다. 대답하기를, “그저 인애를 미루어 외물에 미치는 것일 뿐이지, 이러한 일 위로 나아가 仁을 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人之一心虛靈洞徹所具之理 乃所謂德也 於虛靈洞徹之中 有理存焉 此心之德也 乃所謂仁也 義禮智亦心之德而獨歸之仁 何也 義禮智者 德之一端 而仁者 德之全體 以仁能包四者 故心德之名 獨仁足以當之也 故仁之爲德 偏言之 則與義禮智相對而所主惟一事 專言之 則不及義禮智 而四者無不包也 면재황씨가 말하길, “사람이 일심으로 虛靈(텅 비었으나 신령스러움)하고 洞徹(두루 통함)함이 갖추고 있는 이치가 곧 이른바 덕이라는 것이다. 허령하고 통철함 중에 이치가 갖추어져 있으니, 이것이 바로 마음의 덕이자, 소위 仁이라고 하는 것이다. 義와 禮와 智도 역시 마음의 덕이지만, 유독 仁으로 귀결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義禮智라는 것은 덕의 한 단서이지만, 仁이라는 것은 덕의 全體로서, 仁으로써 네 가지를 포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덕이라는 명칭은 오직 仁만이 족히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仁이 德이라는 것에 관하여, 치우쳐서 말하자면, ‘義禮智’와 더불어 서로 대응하면서도 주인 노릇을 하는 유일한 일이고, 오로지 말하자면, 義禮智에 미치지 못하지만 네 가지를 포함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諸葛氏泰曰 泥愛字 則不知仁之體 捨愛字 則不知仁之用 故卽理以明體 于以見理具於愛之所未發 卽愛以明用 于以見愛本於仁之所發見 無體何以有用 無仁何以能愛 因愛心之形而指其在中之理 故曰 愛之理 集註於孟子首章又倒置其語曰 仁者心之德 愛之理 何也 論語言爲仁 是以偏言者言之 故以愛之理 在先 孟子兼言仁義 則以專言者言之 故以心之德在善 然亦互相發明而非有二也 제갈씨 태가 말하길, “愛자에 얽매이면 仁의 體를 알지 못하고, 愛자를 버리면 仁의 用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치에 나아가 體를 밝히니, 여기에서 사랑이 미처 피어나지 못한 바에 이치가 갖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고, 사랑에 나아가 用을 밝히니, 여기에서 仁이 발현된 바에 사랑이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體가 없이 어찌 用이 있을 수 있으며, 仁이 없이 어찌 사랑할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마음이 그 형체가 갖추어짐으로 인해 가운데에 있는 그 이치를 가리킬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의 이치라고 말한 것이다. 집주는 맹자의 첫 장에서 다시 그 말을 거꾸로 하여 말하길, ‘仁이라는 것은 마음의 덕이자 사랑의 이치’라고 하였는데, 무엇 때문인가? 논어에서는 仁을 행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였으니, 치우쳐서 말하는 것으로써 말한 것이기 때문에, 사랑의 이치를 앞에다 두었던 것이고, 맹자에서는 仁과 義를 겸하여 말하였으니, 곧 오로지 말하는 것으로써 말하였기 때문에, 마음의 덕을 앞에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 둘은 서로를 드러내어 밝혀주는 것이지, 서로 다른 둘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務本道生 是汎言以起下句之實 所以集註下一凡字 주자가 말하길, “근본에 힘쓰면 道가 생겨난다고 한 것은 널리 일반적으로 말함으로써 아래 구절을 일으킨 실질이니, 이 때문에, 집주에서는 하나의 凡자를 쓴 것이다.”라고 하였다.
本立則道隨事而生 如事親孝故忠可移於君 事兄弟故順可移於長 근본이 서면 곧 道가 일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니, 예컨대 양친 섬기기를 효로써 하기 때문에 忠이 임금에게 옮겨갈 수 있고, 형 섬기기를 공손함으로써 하기 때문에 순종이 어른에게 옮겨갈 수 있는 것이다.
朱子曰 其爲人也孝弟 此說資質好底人 其心和順柔遜 必不好犯上 仁便從此生 주자가 말하길, “그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공손하다는 이 말은, 자질이 좋은 사람은 그 마음이 화순하고 부드럽고 겸손하므로, 반드시 윗사람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니, 仁이 곧 이로부터 생겨날 것이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上文是汎言爲仁 此節則專言君子本立而道生 又是汎言君子之於凡事 皆用力於根本 孝弟爲爲仁之本 又言君子之行仁 孝弟爲之本 운봉호씨가 말하길, “윗 글은 仁을 행하는 것을 넓게 말한 것이고, 이 절에서는 군자는 근본이 서면 도가 생겨난다는 것을 오로지 말한 것이다. 또 군자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항상 근본에 힘쓴다는 것과 효제가 인을 행하는 근본이 된다는 것을 넓게 말한 것이다. 또한 군자가 인을 행함에 있어 효제가 근본이 됨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3 | ○ 程子曰: “孝弟, 順德也, 故不好犯上, 豈復有逆理亂常之事. 德有本, 本立則其道充大. 孝弟行於家, 而後仁愛及於物, 所謂親親而仁民也. 故爲仁以孝弟爲本. 論性, 則以仁爲孝弟之本.” 정자가 말하길, “효제는 덕을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윗사람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니, 어찌 이치를 거스르고 떳떳함을 어지럽히는 일이 다시 더 있겠는가? 덕에는 근본이 있는데, 근본이 서면 곧 그 도가 확충되고 커진다. 효제를 집안에서 행한 후에 인애가 외부 사물(다른 사람)에 미치는데, 이른바 친할 사람을 친애하고 백성을 인애(어질게 대함)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인을 행함에 있어 효제를 그 근본을 삼는다. 본성을 논하자면, 인으로써 효제의 근본을 삼는다.”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孝弟順德也 犯上是小不順底事 作亂是大不順底事 쌍봉요씨가 말하길, “孝悌는 덕을 따르는 것이다. 윗사람을 범하는 것은 작게 순종하지 않는 일이고, 난을 일으키는 것은 크게 순종하지 않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以上解此章正意 下句別是一意 又推本言之 신안진씨가 말하길, “이상은 이 장의 올바른 뜻을 풀이한 것이고, 아래 구절은 이와 별도인 하나의 뜻인데, 또 다시 근본을 미루어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4 | 或問: “孝弟爲仁之本, 此是由孝弟可以至仁否?” 曰: “非也. 謂行仁自孝弟始, 孝弟是仁之一事. 謂之行仁之本則可, 謂是仁之本則不可. 蓋仁是性也, 孝弟是用也, 性中只有箇仁ㆍ義ㆍ禮ㆍ智四者而已, 曷嘗有孝弟來. 然仁主於愛, 愛莫大於愛親, 故曰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혹자가 물었다. “효제가 인을 행하는 근본이라 하시는데, 이것은 효제로 말미암아 인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까?” 말하길, “아니다. 인을 행하는 것은 효제로부터 시작하니(비롯되니), 효제는 인의 한 가지 일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것을 일컬어 인을 행하는 근본이라고 말한다면 괜찮으나, 그것을 일컬어 인의 근본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대개 仁은 性(본성)이고 효제는 用(그 작용)이기 때문이다. 性 안에는 오직 인의예지 이 네 가지만 있을 따름이다. 어찌 일찍이 효제가 있어 왔겠는가? 그러나 仁은 사랑을 위주로 하고(사랑에 주안점을 두고 있고), 사랑에는 부모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다. 고로 효제라는 것이 인을 행하는 근본이라고 말하는 것이리라!”라고 하였다.
朱子曰 仁不可言至 仁是義理 不是地位 地位可言至 주자가 말하길, “仁에 있어서는 이른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仁은 義理이지 경지가 아니다. 경지라면 이른다고 말해도 된다.”라고 하였다.
程子曰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非謂孝弟卽是仁之本 蓋謂爲仁之本 當以孝弟猶忠恕之爲道也 정자가 말하길, “孝悌라고 하는 것은 仁을 행하는 근본일 터이겠지만, 효제가 곧바로 仁의 근본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仁을 행하는 근본이라고 말한 것은, 孝悌가 道를 행함에 있어서의 忠恕와 같다고 비긴(當)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爲仁以孝弟爲本 事之本守之本之類 是也 論性則以仁爲孝弟之本 天下之大本之類 是也 爲仁以孝弟爲本 仁字是指其周徧及物者言之 以仁爲孝弟之本 仁字是指其本體發用處言之 二程子 釋經非諸儒所能及 伯子曰 孝弟本其所以生 乃爲仁之本 此語最深切 蓋推原 孝弟之理 本於父母之所以生 所以爲行仁之本也 叔子曰 孝弟順德也 順德一字足以盡孝弟之義 而不好犯上作亂之意 已具乎其中矣 讀者不可以不深思也 性中只有仁義禮智四者 曷嘗有孝弟來 此語亦要體會得是 蓋天下無性外之物 豈性外別有一物名孝弟乎 但方在性中 則但見仁義禮智四者而已 仁便包攝了孝弟 凡慈愛惻隱皆在所包 固不止孝弟也 猶天地一元之氣 只有水火木金土 言水而不曰 江淮河濟 言木而不曰 梧檟樲棘 非有彼而無此也 주자가 말하길, “仁을 행함에 있어 孝悌를 근본으로 삼는다는 것은, 일의 근본을 지킨다는 것의 근본과 같은 부류가 바로 이런 것이다. 性을 논하자면, 仁을 孝悌의 근본으로 삼는다는 것은 천하의 大本과 같은 부류가 바로 이런 것이다. 仁을 행함에 있어 孝悌를 근본으로 삼는다고 한 것에서, 仁자는 그것이 널리 외물에 미치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仁을 孝悌의 근본으로 삼는다고 한 것에 있어서는, 仁자는 그 本體가 피어나서 작용하는 곳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두 분의 정자께서 경전을 풀이한 것은 여러 유생들이 능히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큰 정자(程顥, 명도선생)께서 말하길, 孝悌는 자신이 생겨난 바에 뿌리를 두는 것으로서 바로 仁을 행하는 근본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제일 깊고 적절한 말이다. 대체로 근원을 미루어보면, 孝悌의 이치는 부모께서 낳아주신 바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니, 이 때문에 인을 행하는 근본이 된다는 것이다. 작은 정자(程頤, 정이천)가 말하길, 孝悌는 덕을 따르는 것이니, 덕을 따른다는 한 글자로 孝悌의 義(뜻)를 다 말하였으면서도, 윗사람을 범하거나 난을 일으키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 이미 그 안에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독자들이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性 안에는 오직 仁義禮智 네 가지만 있을 뿐이니, 어찌 일찍이 효제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 말도 역시 체득하여 그것이 옳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대체로 천하에 천성 밖의 사물이 없으니, 어찌 천성 밖에 별도로 효제라고 이름 붙인 하나의 사물이 있겠는가? 다만 바야흐로 性 안에 있는 것이라면, 단지 仁義禮智 4가지만 볼 수 있을 따름이다. 仁은 곧 孝悌를 포섭하는 것이니, 무릇 慈愛와 惻隱도 모두 포함되어 있으므로, 본래 孝悌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마치 천지가 하나의 근원인 氣로서 그저 水火木金土만 있을 뿐이어서, 물이라고 말할 뿐 長江, 淮水, 黃河, 濟水를 말하지 않고, 나무라고 말할 뿐 오동나무, 가래나무, 대추나무, 가시나무를 말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 저것이 있으면 이것이 없는 그런 형세는 아니다.”라고 하였다.
問孝弟是爲仁之本 義禮智之本 如何 曰 義禮智之本 皆在此 使事親從兄得宜者 行義之本也 事親從兄有節文者 行禮之本也 知事親從兄所以然者 智之本也 누군가 묻기를, “효제가 인을 행하는 근본이라면, 義禮智의 근본은 무엇입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말하길, “義禮智의 근본도 모두 여기에 있는 것이다. 부모 섬기기와 형 따르기를 합당하게 하는 것은 義를 행하는 근본이고, 부모 섬기기와 형 따르기에 節文이 있는 것은 禮를 행하는 근본이며, 부모 섬기기와 형 따르기를 왜 그렇게 하는지 그 이유를 아는 것은 智의 근본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孝弟固具於仁 以其先發 故是行仁之本 효제는 본래 仁에 갖추어져 있어서 그것이 먼저 발현하기 때문에, 이것이 仁을 행하는 근본인 것이다.
仁是理之在心 孝弟是心之見於事 性中只有箇仁義禮智 曷嘗有孝弟 見於愛親便喚做孝 見於事兄便喚做弟 如親親而仁民 仁民而愛物 都是仁 性中何嘗有許多般 只有箇仁 自親親至於愛物 乃是行仁之事 非是仁之本也 故仁是孝弟之本 推之則義是羞惡之本 禮爲恭敬之本 智爲是非之本 自古聖賢相傳 只是理會一箇心 心是一箇性 性只有箇仁義禮智 都無許多般樣 見於事 自有許多般樣 仁은 이치가 마음에 있는 것이고, 孝悌는 마음이 일에 드러난 것이다. 본성 안에는 그저 仁義禮智가 있을 뿐이니, 어찌 일찍이 효제가 있었겠는가?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에서 보이는 것을 곧 孝라고 부르고, 형을 섬기는 것에 드러난 것을 곧 弟라고 부르는 것이다. 예컨대 부모님을 친애하면서 백성을 인애하는 것이나 백성을 인애하면서 외물을 사랑하는 것도 모두 다 仁이다. 본성 안에 어찌 일찍이 수많은 것들이 있었겠는가? 그저 仁이 있을 따름이다. 親親(부모님을 친애함)부터 愛物(외물을 사랑함)에 이르기까지 모두 도리어 仁을 행하는 일이지, 仁의 근본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仁은 효제의 근본이니, 이를 미루어나간다면, 義는 羞惡의 근본이고, 禮는 공경의 근본이 되며, 智는 시비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자고로 성현들께서 서로 전하신 것은 그저 하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일 뿐이다. 즉, 마음은 하나의 본성이고, 본성에는 그저 인의예지만 있으니, 모두 수많은 모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에 드러나게 되면 저절로 수많은 모습이 갖게 된다는 것이다.
性中只有仁義禮智而孝弟本出於仁 論爲仁之工夫 則孝弟是仁中之最切緊處 當務此以立本而仁道生也 본성 안에는 그저 仁義禮智만 있을 뿐이고 孝悌는 본래 仁에서 나오는 것이다. 仁을 행하는 공부를 논하자면, 孝悌가 仁 안에서 제일 절실하고 긴요한 곳이니, 마땅히 이곳에 힘씀으로써 근본을 세운다면 仁道가 생겨나는 것이다.
孝弟是合當底事 不是要仁民愛物 方從孝弟做去 或問如草木之有根 方始枝葉繁茂 曰 固是 但有根本 則枝葉自然繁茂 不是要得枝葉繁茂 方始去培植根本 孝悌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 백성을 인애하고 외물을 사랑하려고 바야흐로 孝悌를 따라 행해 나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묻기를, “예컨대 초목에 뿌리가 있어야만, 비로소 가지와 이파리가 무성하게 번성하는 것과 같습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말하길, “진실로 그러하다. 다만 근본이 있으면, 가지와 이파리는 자연히 무성하게 번성하는 것이지, 가지와 이파리가 무성하게 번성하도록 하려고, 비로소 가서 근본을 배양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問爲仁以孝弟爲本 卽所謂親親而仁民 仁民而愛物 孩提之童 無不知愛其親 及其長也 無不知敬其兄 是皆發於心德之自然 故論性以仁爲孝弟之本 爲仁以孝弟爲本 曰 是 道理都自仁裏發出 首先是發出爲愛 愛莫切於愛親 其次便到弟其兄 又其次便到事君以及於他 皆從這裏出 如水相似愛 是箇源頭漸漸流出 누군가 묻기를, “仁을 행함에 있어 孝悌를 근본으로 삼는다는 것은 즉, 이른바 부모님을 친애하면서 백성을 인애하고, 백성을 인애하면서 외물을 사랑하는 것이니, 孩提之童(어린아이, 천진난만하게 웃고 손잡아 끌어주어야 하는 아이)이라 할지라도, 자기 부모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없고, 그가 장성함에 이르면, 자기 형을 공경할 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는 모두 心德의 자연스러움에서 발로한 것이기 때문에, 본성을 논함에 있어 仁을 효제의 근본으로 삼고, 仁을 행함에 있어 孝悌를 근본으로 삼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말하길, “옳다. 道理는 모두 仁으로부터 발현되어 나온 것인데, 우선은 사랑으로 발현되어 나온다. 사랑에는 부모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간절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다음으로는 곧 자기 형을 공경함에 이르고, 다시 그다음에는 곧 임금을 섬기는 것 내지 그 밖의 다른 것에 이르니, 모두 이 안에서 나온 것이다. 예컨대 물이 사랑과 흡사하게 수원지에서 점점 흘러나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仁是性 發出來是情 便是孝弟 孝弟仁之用 以至仁民愛物 只是這箇仁 行仁自孝弟始 便是從裏面行將去 這只是一箇物事 仁은 性이고, 발현되어 나오면 情이니, 이는 곧 孝悌다. 孝悌는 仁의 用(작용)인데, 백성을 인애하고 외물을 사랑함에 이르러도 그저 이 仁일 뿐이다. 仁을 행하는 것은 孝悌로부터 시작하는데, 이는 곧 내면을 따라서 장차 행하여 갈 따름이니, 이는 그저 하나의 사물일 뿐이다.
仁是性 孝弟是用 譬如一粒粟生出爲苗 仁是粟 孝弟是苗 便是仁爲孝弟之本 又如木有根有幹有枝葉 親親是根 仁民是幹 愛物是枝葉 便是行仁以孝弟爲本 仁은 본성이고, 효제는 그 作用이다. 비유하자면, 한 톨의 좁쌀이 싹터서 모가 되면, 仁은 좁쌀이고, 효제는 모인 것과 같으니, 이는 곧 仁이 孝悌의 근본이 된다는 것이다. 또 나무에는 뿌리가 있고 줄기가 있고 가지와 이파리가 있는데, 親親(어버이를 친애함)은 뿌리이고, 仁民(백성을 인애함)은 줄기이며, 愛物(외물을 사랑함)은 가지와 이파리인 것과 같으니, 이것이 곧 仁을 행함에 있어 孝悌를 근본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問子於有子孝弟之章 旣以仁爲愛之理矣 於巧言令色鮮矣仁之章 又以爲心之德 何哉 曰 仁者五常之首也而包四者 惻隱仁之緖也 而貫四端 故仁之爲義 偏言之 則曰愛之理 此章所言之類 是也 專言之 則曰心之德 後章所言之類 是也 其實 愛之理所以爲心之德 누군가 묻기를, “선생님께서는 有子의 孝悌 장에 있어서, 이미 仁을 사랑의 이치라고 말씀하셨으면서도, 巧言令色이면 仁한 자가 드물다는 장에 있어서는, 또다시 仁을 마음의 덕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말하길, “仁이라고 하는 것은 五常(仁義禮智信) 중의 으뜸이면서도 4가지를 다 포함하는 것이다. 惻隱은 仁의 단서이지만, 四端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仁의 뜻 됨은 치우쳐서(좁게) 말하자면, 사랑의 이치라고 말하는 것이니, 이 장에서 말한 부류가 바로 이것이다. 오로지 말하자면, 마음의 덕이라고 말하는 것이니, 뒷장에서 말한 부류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사랑의 이치가 이 때문에 마음의 덕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旣曰本猶根也 然則孝弟爲仁之本 仁爲孝弟之本 同乎否乎 慶源輔氏曰 本之爲根 則同 而其所以爲根 則異 行仁以孝弟爲根 以其施於外者言也 論性以仁爲孝弟之根 以其發於內者言也 行仁不以孝弟爲根 則其施無序而無以極夫仁民愛物之致 論性而不以仁爲孝弟之根 則其發無所而無以充乎孝親弟長之實 누군가 묻기를, “이미 근본은 뿌리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였으니, 그렇다면 孝悌는 仁을 행하는 근본이라는 말과 仁은 효제의 근본이 된다는 말은 같은 것입니까?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경원보씨가 말하길, “근본이 뿌리가 된다는 것은 같지만, 그것들이 뿌리가 되는 까닭은 다른 것이다. 仁을 행함에 있어 효제를 뿌리로 삼는다는 것은 그것이 밖에 베푸는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본성을 논함에 있어 仁을 孝悌의 뿌리로 삼는다는 것은 그것이 내면에서 발현되는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仁을 행하면서 孝悌를 뿌리로 삼지 않는다면, 그 베풀음에 차례가 없으면서, 저 백성을 인애하고 외물을 사랑하는 지극한 경지에 이를 수가 없는 것이다. 본성을 논하면서 仁을 孝悌의 뿌리로 삼지 않는다면, 그것이 발현될 곳이 없으면서 어버이를 친애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실질을 채울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或問其爲人也孝弟而好犯上者鮮矣 晦翁謂鮮是少 若說鮮矣 則未以爲絶無 孝弟之人 猶有犯上之意耶 潛室陳氏曰 孝弟之人 資質粹美 雖未嘗學問 自是無世俗一等麤暴氣象 縱是有之 終是罕見到得麤惡大過 可保其決無 言孝弟之人 占得好處多 不好處少 혹자가 묻기를, “그 사람됨이 孝悌하면서도 윗사람을 범하기 좋아하는 자는 드물다는 것에 대하여, 회옹(주자)이 말하길, 鮮은 적다는 것인데, 만약 드물다고 말한다면, 아직은 절대로 없다고 여길 수 없다고 하였으니, 孝悌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윗사람을 범하는 뜻이 있다는 말인가요?”라고 하였다. 잠실진씨가 말하길, “孝悌하는 사람은 자질이 순수하고 아름답기에, 비록 아직 일찍이 학문을 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저절로 세속의 거칠고 난폭한 하나의 기상만큼은 없을 것이다. 설령 있다고 할지라도, 끝내 거친 죄악과 큰 잘못은 거의 볼 수가 없으니, 그것이 결단코 없음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孝悌하는 사람은 좋은 점은 많이 가지고 있고 안 좋은 점은 적게 가지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有子以孝弟爲行仁之本 而程子以仁爲孝弟之本 譬之木焉 有子就枝葉發端處說 程子就根本上說 程子之言 所以補有子之所不及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유자는 孝悌를 仁을 행하는 근본으로 삼았지만, 정자는 仁을 孝悌의 근본으로 삼았다. 이를 나무에 비유하자면, 유자는 가지와 이파리가 단서를 발현한 곳에 나아가 말한 것이고, 정자는 근본 위로 나아가 말한 것이다. 정자의 말은 유자가 미치지 못한 바를 보충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言仁爲論語一書之大綱領 南軒張氏嘗類聚論語中言仁處 爲一篇 名曰洙泗言仁錄 此其首章云 신안진씨가 말하길, “仁은 논어라는 책 한 권의 대강령이 된다고 말한 것이다. 남헌장씨가 일찍이 논어 안에서 仁을 말한 부분을 함께 모아서 책 한 편을 만들었으니, 사수언인록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위 말은 그 첫 장에서 한 말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