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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는 저마다 다른 표현 방식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때 보다 편하게 느끼는 방법들이 있는 듯하다. 말이 편한 사람도 있고, 글이 편한 사람도 있고, 사진이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게 편한 사람들도 있고 등등등.
나는 평생 글자만 주무르며 살아왔다. 그 외에는 다룰 줄 아는 게 전혀 없다. 9년이나 배운 악기는 ‘취미로도 안 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그만뒀고, 미술학원에서는 일찌감치 ‘색에 능동적이지 못하다’고 집으로 전화가 걸려와 그만뒀다. 부모님은 내게 다양한 취미생활을 가르치고 싶으셨던 것 같지만, 그때는 아이에게 ‘취미반’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재능이 없으니 일찌감치 그만두세요, 하는 식이었으니까. 다행히 나는 글자가 편했고, 그걸 갖고 노는 쪽에는 약간 재능이 있어 보이기도 했다.
타고나기를 활자에 가깝게 타고난 건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가 공부보단 독서를 권장하셔서 책을 웬만큼 읽기는 했지만 나도 그냥 어린애였다. 글자가 많은 것보단 그림이 많은 게 좋았고, 글자가 작은 것보단 큰 게 좋았고, 사실은 책보다 만화가 더 좋았다. 글은 우연한 계기로 쓰게 됐던 것 같다. 그러니까 뻔하게도, 백일장 같은 것들 때문에. 도무지 ‘순결’과 관련된 무슨 글을 써서 내가 상을 받았는지 지금은 상상도 가지 않지만 지금도 본가에는 내가 타 온 상장과 메달들이 남아있다. 뭐, 그렇지. 계기는 누구에게나 의외로 백일장이나 사생대회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사생대회에서 상을 타오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림 쪽으로 진로를 정하게 되거나 하는 식으로.
그때까지도 내게 글이란 별로 의미가 없었다. 글 자체를 잘 쓴다기보다는 특유의 친화력이 글에 묻어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내 장점은 의외로 글이나 말이 아니라, 내가 가진 어떤 친화력이었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지 않고 적으로 돌리지 않으면서 눈에는 띄었던. 내 유년기가 부드럽게 지나갔던 건 내가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던 그런 것들 때문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때만 하더라도 구김살이 없고 잘 웃는다고 했던가, 그런 것들. 그리고 나는 꽤 오래 그렇게 순수하고 순진하게 지낼 수가 있었다.
글을 그만뒀던 계기도 별 것 아니었다. 또 또 백일장. 대필 의혹 때문에 협회에서 학교로 연락이 왔다고 했다. 교무실에 불려갔고, ‘어린 애가 썼다고 하기엔 표현이 너무 공격적이다’ 같은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 후로는 백일장 같은 데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의 내게 글을 쓴다는 게 별로 큰 의미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럼 앞으로는 백일장에 나가지 않을래요, 하고 간단히 그만둬버렸다. 그때쯤에는 이제 독서보다 공부가 중요해지기 시작할 때여서 엄마도 별 말씀이 없으셨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책도 글도 멀어졌다. 아니 애초에 가깝다고 느끼질 않았다니까.
그런 내가 내게 편한 표현 방식을 글로 굳혀버린 건 백일장에 나가지 않을래요, 말하고 고작 1년 정도가 지나서였다. 내내 반목하던 아이에게 신학기를 기점으로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가. 그 복도에서 내가 한 말은 고작 ‘이제 싸우지 말고 잘 지내자’ 정도였던 것 같은데 거기에 살이 붙고 뼈가 굳어 거대해져버렸다. 나는 또래들에게서 바로 퇴출당했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더 그랬겠지만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 했고, 그 사이에서 전처럼 잘 지낼 자신이 없었다. 전학 가고 싶다고 울며 매달리는 나를 엄마는 한 달 만에 그곳에서 탈출시켜줬다. 마침 교육 때문에 이사를 고려하고 있던 시기와 맞물려서. 그 사건이 나로 하여금 책과 글을 탐독하게 했다. 사람이 무서워졌고 말이 무서워졌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랑 말을 할 수가 있었겠어.
나는 점차 숫기 없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단 도서관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더 편했고, 대여점에서 도서관에서 만화든 소설이든 닥치는 대로 빌려다 읽었다. 조금이라도 책에서 눈을 떼면 어김없이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무서워서 정말 쉬지 않고 뭔가를 읽었다. 내 인생의 독서량 절반은 그때 읽은 것들이다.
지난 친구들의 부당한 처사에 억울하고 화가 나고 답답할 때면 글을 썼다. 처음에는 내 맘대로 쓰는 내 글 속에서라도 그들을 쥐어 터트리고 싶어서, 그 다음에는 약간이라도 그들을 이해해보고 싶어서. 그리고 그런 채로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됐다. 내 글은 어디 내보일 것들도 아니었고, 미친 듯이 책을 읽을 때처럼 눈에 보이는 아무 종이에나 휘갈겨 쓰다가 청소할 때마다 내버리곤 해서 지금은 남은 것도 없다. 정말 미친 듯이 읽고 쓰기만 했다. 나는 사람에게 갈수록 날카로운 사람이 되어 갔고 관계 맺는 걸 꺼려했다. 그럼에도 연애는 계속 했으니까 남들 눈에 내가 얼마나 이상해 보였을까. 그런 와중에도 계속 사람의 뭔가를 믿고 싶어 했으니까.
첫 직장을 영업직으로 지원했던 건 그렇게 도망치는 게 지긋지긋해서였다. 그때 만약 내가 도망치지 않고 그 속에서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다면. 아니 제대로 된 변명이라도 한 번 해봤다면. 내가 한 말은 한 마디인데 거기에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소설이었다면, 원작자인 내가 한두 마디 정도는 해봐도 되는 게 아니었을까. 사람이 무서워서 피하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면 그때의 경험이 조금은 가벼워지지는 않았을까.
감정을 소설에 숨기는 짓 같은 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했다. 언제까지 피할 수만은 없으니까 이제는 부딪혀봐야 한다. 그건 내가 못하는 거라고 단정 짓지 말고 한 번 배워보자. 그럼 조금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믿는 것들을 부정하지 않고, 실패하는 것을 너무 두려워만 하지 말고. 이제는 믿고 싶은 것들을 믿어 볼 수 있게 나를 단련하고 싶다, 고.
내용이 구구절절해졌지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지금에 와서는 말이 편한 사람이 됐다. 예전에는 글을 보고 읽는 게 아니면 말을 잘 하지 못했다. 지금은 말의 즉흥적인 면이나,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유동적으로 흐른다는 점, 정보 과잉이 힘든 나에게 약간씩의 망각을 선물해준다는 점, 함께 호흡하는 친밀성 같은 것들이 매력적이다. 글은 전반적으로 생각이 정리가 되어 있어야 시작을 하고 끝을 맺을 수 있는 반면에, 말은 대화를 하면서 계속해서 수정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도대체 편지와 무슨 관련이 있는 글인지 의아하게 되어버렸지만, 나조차도 내가 편한 표현의 방식들을 찾아오는 과정이 있었기에 누군가에게 어떤 방식을 강요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하고 싶었다. 왜 나처럼 말하지 못하냐고, 혹은 왜 나처럼 감정을 읽어내고 말하고, 대화할 수 없느냐고. 내게 글이 편했을 때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면 나도 무척 당혹스러웠을 것 같다. 그런 건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
내가 캐나다에 가 있게 되어 애인과 두 달 정도 떨어져 지낸 적이 있다. 애인은 그때 작은 노트 한 권에 빼곡하게, 본인의 하루 일과가 어땠는지, 나와 무슨 얘기를 했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내게 어떤 사람이 되어주고 싶은지, 나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에 대해 가득 써서 내게 선물해줬다. 떨어져 있는 두 달 동안 애인은 그 노트를 내내 들고 다니며 어떤 생각이 들 때마다 노트에 적었다고 했다. 그 속에는 나를 위해 만든 동화도 있고, 나를 위해 그린 그림도 있고, 돌아오면 첫 데이트는 어떻게 할 건지 일정 계획도 들어 있다. 애인이 혼자 보낸 두 달 동안의 시간을 선물 받은 느낌이었다. 받은 지 1년이 다 됐지만 아까워서 아직도 다 읽지 못한.
기분이 어떠냐고, 뭐가 하고 싶으냐고, 어떤 게 좋은지 싫은지, 이렇게 하면 무슨 감정이 드는지 물어도 항상 어쩔 줄 몰라 하며 웃기만 하던 애인의, ‘난 당신 얘기 듣는 게 좋아. 자긴 재미있게 이야기하니까.’ 하면서 웃던 애인의 두 달이 담긴 그 노트에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적혀 있었다. 당신과 이런 게 하고 싶다고, 나 없이 어떤 거리를 걸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나 없이도 당신이 잘 잤으면 좋겠으니까 오늘은 이 동화를 써놨다가 읽어줘야지, 하는 것들이.
그러니까 요컨대, 애인과 만나는 10개월 정도 되는 시간동안 들었던 말들보다 애인이 써주는 편지 한 장에 더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었단 소리다. 나와 달라서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 답답했던 것들, 보조를 맞추지 못해 애인도 나도 어쩔 줄 몰라 했던 시간들이 결국 누군가에게는 ‘내게 편한 표현 방식’을 찾아나가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은 저마다 다르고,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하고 싶으니까. 다른 방식에도 불구하고 우린 서로 얘기하고 싶으니까, 그리고 얘기할 수 있을 테니까.
내가 처음 상담을 받았을 때, 지금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이 뭐냐고 물으시기에 “전 공감능력이 없는 것 같아요.” 하고 대답했었다. 나는 지금도 내가 공감능력이 좋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나는 공감을 학습한 편이다. 내가 내 감정을 부정하면서는 다른 사람의 (나와 다른) 감정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내게 어떤 감정이 들 때 어떤 일 때문에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그게 정확히 어떤 감정이었는지 기억하려고 한다.
내 감정이 남에게 부정당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으니까, 그럴 때 나만은 내 감정을 이해해주려고 한다.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사람은 참 다 다르구나, 하면서 알게 된다. 저 사람에겐 저런 상황에서 (나와는 다른) 저런 감정이 들 수도 있구나, 하는 인정은 결국 내가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무시당했거나 인정받은 모든 상황에서 오는 것 같단 생각을 한다. 무시당해봤으니까 저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끼든 이해해보려고 하고, 인정받은 경험으로 나 또한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 어쨌든 한 사람의 안에는 커다란 세계가 있는 거니까, 나는 그게 궁금하고 또 알고 싶으니까. 전하는 진심에는 언제나 진한 감정의 색이 남기 마련이니 언제고 전화 한 통, 편지 한 장 쓰며 살아가면 좋겠다고 말이다.
이야기가 많이 길어졌네요.
이번 기수 활동하는 동안의 나름대로 작은 목표가, 저에 대해 쓰는 것이니만큼
저라는 사람의 이런저런 넓고도 좁은 스펙트럼을 다 담아보고 싶다는 거였어요.
작별 인사를 드리기 전 마지막 에세이라 그런지
내용이 무겁게 많이 담긴 것 같습니다.
마지막을 남겨둔 열 여덟번째 인사를 드리자니
왠지 서운한 느낌이 드네요.
지금까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인사로 뵙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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