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좋으면 두어 시간
권상진
시인입니까
공돌이입니다 여섯 시간 자고 한 시간 먹고 열 시간 일을 합니다
시인입니까
가장입니다 맞벌이에 아이가 둘입니다 밤이 되어서야 첫인사를 나누는 우리는 TV를 켜놓은 채 잠시 서로를 묻고 또 답을 합니다
시인입니까
반대쪽입니다 시와 나의 한가운데에 밥이 있습니다
매일 길을 나서지만 시는 너무 멀어서 밥까지만 다녀오는 날이 태반입니다
밥을 지나 더 깊은 허기 쪽으로 나서는 날이 있습니다
뛰어야만 겨우 닿을 듯 말 듯합니다
야근이 있는 날은 종일 공돌이고 운 좋은 날은 두어 시간 시인입니다
- 반년간 <두례문학> 2024년 하반기호
첫댓글 시인에 관한 많은 메타시가 있다.
시와 시인의 관계, 시인에 대한 정의, 시인의 역할과 현주소 등.
시인이라면 한두 번은 써 보았을 자화상이다.
시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 그 정체성에 대한 의심, 세계 속의 존재성 등.
한편으로 시인은 생활인이다.
시인과 공돌이.
밤이 되어서야 첫인사를 나누는 우리.
시와 나의 한가운데에 있는 밥. 시는 너무 멀어서 밥까지만 다녀오는 날이 태반인 나날들.
밥을 지나 더 깊은 허기 쪽으로 나서는 날에더 뛰어야만 겨우 닿을 듯 말 듯한 시.
야근이 있는 날은 종일 공돌이고 운 좋은 날은 두어 시간이 시인인...
다시 시를 복기해도 그 행간의 여운을 다 받아 안기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