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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심전개발과 전미개오(轉迷開悟)(1937년 2월 28일, 양구읍내에서)
(상략) 우스운 이야기입니다마는 어떤 항해 중에 사십 여 명이 한 배에 타고 가다가 별안간 폭풍을 만나 제각기 신심 있는 대로 용왕님, 물각시, 하나님, 천신님, 지신(地神)님 찾는데 한 사람은 어서 이 배가 엎어지소서, 어서 이 배가 복선(覆船)이 되소서! 하고 부르짖고 있으매 천행만고 겨우 목적지에배를 대고, 여러 사람이 일제히 먼저 그 사람을 보고 그런 도척(盜拓)같은 심사가 어디에 있느냐고 책(責)한즉 그는 이 세상 일이 되라고 해서는 되는 일이 없으니 반대로 빌었기에 무사했다는 우스운 삽화(揷話)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 괴로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 대하여 석가세존께서는 말씀하시길 “성체(聖諦: 苦·集滅·道諦)를 밟아서 불생불멸의 진리, 곧 영원한 생명을 깨달으셨는데 팔정도(八正道)는 정견(正見)·정사(正思)·정증(正證)·정업(正業)·정명(正命)·정진(正進)·정념(正念)·정정(正定)이올시다.
어떤 때 세존께서는 이 진리를 널리 전파하실 때 넓은 광야에서 일군들을 부쳐 일하는 들에 당(當)하셨습니다.
마침 이때는 점심때라 이 귀퉁이, 저 귀퉁이에서 모두 다 점심을 차려 놓고 먹으니 요 벌은 마치 밥 벌판이 되었습니다. 이때 세존께서는 아난(阿難)이라는 제자를 데리고 가셨다가 한 곳에 한 삼십 명 가량 모이 곳으로 가셔서 주종(主從) 두 사람의 점심을 구하니 그 가운데 청년은 ‘이 밥은 일하고 농사짓는 이가 먹을 것이며 도(道)고 무엇이고 떠드는 이는 줄밥이 없다’하며 거절하므로 세존께서는 나 역시 농사짓는 사람이라 한즉, 그 청년은 석가세존을 손과 발과 손바닥 모두 뒤지며 보고는 농사짓는 이가 이와 같이 분결같이 흴 수 있느냐고 도리어 무수한 욕설을 가했습니다.
설왕설래하여 왁자하고 떠들게 되니 이곳저곳에서는 수백 명의 농부가 모였습니다.
이때 세존께서는 높은 둔덕에 올라서시고 세존의 농사지으시는 사실을 변명코자 하여 사람이라는 것은 육체만 있고 정
신이 없다면 큰 혹 덩어리나 태가 자라서 다니는 것에 지나지 않고 옷 입혀 놓은 허수아비와 다를 것이없다.
그와 반대로 혼(魂)만 있다면 육체가 없음에 유령이나 도깨비에 지나지 않을 터인즉 사람은 혼과 육체가 완전히 병행하여야 비로소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몸을 먹여 살찌는 것이 흙에 곡식을 심는 목적이지만 옷 입겠다고 옷 입히고, 먹고 싶다고 먹이는 이것은 마음이라, 마음들이 너무도 배고프매 나는 심전(心田)의 경작을 하는 농부가 아니냐고 말씀하셨다 합니다.
마음에는 의(意)·정(情)·의(意)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어려서부터 무엇을 알려고 하는 것, 육신으로는 배부르나 마음이 배고프매 자꾸 묻는 것인데 나중에는 어른 모르는 것까지 물으니 어린 아이는 장래 잘 되려고 현인·철인 되려고 묻는데 어른으로서는 모르니까 갑갑하다고, 따귀를 때리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들 세계에 마음 배를 불리려면 신화(神話)·동설(童說)이 필요한 것이올시다.
그 다음 정이라는 것은 어린아이가 의복도 색옷, 떡 같은 것도 길기도 하고 동그랗기도 하고 모도 나고 하게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모두 그 세계에는 좋아하는 것이올시다. 어린아이가 곧 노래를 한다, 벽에 그림
을 찍찍 그린다, 벽을 두드린다 하는 것이 어른 보기에는 귀 아프고, 지저분하다고 차라리 그 방법을 선도하여 예술을 향상시키지는 않고 도리어 뚜드려주는 것입니다.
지금의 조선백성들은 너무도 마음이 배고픈 것이올시다. 그 고픈 것을 채워줄 농사짓는 사람이 많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앎에서 배고파서 자녀학교 입학에 머리를 싸매고 달려드는 것을 보아도 얼마나 배고픈 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농사짓는 이, 열 식구를 먹이려 다섯 마지기 열 마지기 농사를 짓지만 부처님은 밤낮으로 못 쉬고 봄에도 여름·겨울에도 심지어 꿈까지도 그 꿈으로 심전농사를 지으려 하니 여러 농부들 가운데 나보다 더 큰 농사를 짓고 수천수만 명 식솔을 먹이는 이가 있거든 손을 들고 나오라 하니 그 많은 군중이모두 법열(法悅)이 되어 귀도(歸道)하였다 합니다.
그리하여 심전개발은여기서 난 것인바. 부처님 농사짓는 방법가운데는 ‘신심위종자(信心爲種子), 고행위시우(苦行爲時雨), 지혜위리액(智慧爲犁軛), 참괴심위원(慚愧心爲轅)’10)으로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으니 신은 신념으로서 ‘약인무신심(若人無信心)이면 여승무주선(如乘無主船), 역여무어마(亦如無馭馬), 장야시갱참(長夜是坑塹)’11)이라.
이 세상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모두가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머리 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든든히 믿는 사람이 없다, 신념을 가진 사람이 없기에 관청에, 사회에, 종교계에 모두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윗감이 없고 며느리감이 없다는 것, 왜 없는 것이 아니라 꼭 믿고 맡길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신앙심의 부활을 하자는 것, 곧 이것이 심전개발의 목적일 것입니다. ‘정고어소수(井枯魚少水), 상핍서침등(象逼鼠浸藤), 념념수감(念念隨減), 비흡안용보(嚊吸安龍保)’여기서 ‘상핍서침등(象逼鼠浸藤)’에 대하여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래(古來), 인도의 어떤 지방에서는 사형죄인에게는 코끼리(象)로 하여금 독주를 잔뜩 먹인 다음에 코끼리로 하여금 죄인을 짓밟아 죽이게 하였습니다. 그때 한 죄인은 요행(僥倖)히 사형장을 탈출하여 도망하게 되었는데 술 취한 코끼리는 자꾸 따라오므로 죽을힘을 다해 광원평야로 달아나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깊은 우물이 있음을 보고 뛰어 들어가니 우물 속에는 마침 큰 등칡(藤)이 있으므로 매달려 얼마만큼 내려가 있으니 취한코끼리가 위에와 내려다보고 있으며 우물 밑에는 독룡(毒龍) 큰 구렁이가 있고, 머리위에는 봉소(蜂巢)12)가 있어 수많은 벌떼가 날고 있고, 네 귀퉁이에는 독사가 있어 곧, 독설(毒舌)을 내밀고자 하며 설상가상으로 명맥을 걸고 있는 등칡줄을 흰쥐 검은 쥐가 나와서 각작각작 쏠고 있으니 죽을 수밖에 없어 맥이 탁 풀리고 기진맥진하여 입을 딱 벌리고 있노라니 벌이 꿀을 한 방울, 두 방울, 다섯 방울을
10) 심전을 경작하는 데는 신심으로 종자를 심고 고행으로 비를 삼고 지혜로 버섯과 멍에를 삼고 참괴심으로수레채를 삼는다는 뜻.
11) 사람으로서 신심이 없으면 사공 없는 배를 탄 것과 같고 마부 없는 말을 탄 것과 같고 어두운 구렁에 빠진사람 같다는 뜻.
12) 벌집.
떨어뜨림으로 무서움 두려움 모두 다 잊고 저 꿀만 빨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비유한 것인데 넓은 벌판은 세상을 비한 것이고, 취한 코끼리는 무상(無常)을 말한 것이고, 우물은 집이며 독사는 땅·물·불·바람이고 독룡은 죽음이며 등칡줄은 목숨인데 흰쥐 검은 쥐는일월주야(日月晝夜)를 말한 것이고 봉(蜂)은 사념(邪念)을 비유한 것이며, 벌의 꿀 다섯 방울은 오욕락(五欲樂)인데, 재(財)·색(色)·식(食)·수면(睡眠)·명리(名利) 이것을 초월하여 진리를 구득(求得)하여알 것입니다.
그러하며 ‘이욕염왕인옥쇄(利慾閻王引獄鎖), 정행타불접봉대(淨行陀佛接逢坮), 쇄구입옥고천종(鎖拘入獄苦千種), 선상생연락만반(船上生蓮樂萬般),13) 선악지간(善惡之艱), 여영수형(如影隨形), 삼세인과(三世因果), 순환불실(循環不失), 선인선과(善因善果)는 악인악과(惡因惡果)’로서 부모의 책벌(責罰)을 자식이 받을 수 없고, 자식의 책벌을 부모가 대신 받을 수 없는 것이매 우리는 모름지기 여기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아귀반타전신골(餓鬼反打前身骨)이요, 천신(天神) 헌화구세신(献花舊歲身)이라’ 어떤 사람이 길을 가는데 별안간 벼락 치는 소리가 나는데, 가만히 그 소리 나는 곳을 보니 키가 십척(尺)이요 손가락이 팔뚝 같은데 그 물건은 사람 죽은 송장을 가지고 치고 때리고 이를 악물고, 발기 뜯으니 무서운 가운데도 이 사람은 의심스럽게 생각 되는데 그 물건은 이 사람보고 말하기를 “너는 무엇이냐?”, “나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그를 대하여 묻기를 “대체 무슨 관계로 그 사람을 그렇게 몹시 때리느냐? 배고프면 잡아먹고 원수가 졌으면 죽일 뿐이지, 왜 그리 몹시 구느냐?”하니 그는 대답하기를 “나는 아귀인데 저송장은 나 살았을 때 전신(前身)인바, 나는 전생의 죄로 말미암아 이 모양이니 부디 인간에 가서는 여기서 보고 들은 대로 세상에 널리 펴서 이 모양을 다시 밟는 자 없도록 하라”고 하며 그 송장이 평소에 원한을 펼 길이 없어서 생전에 전신을 두드리나,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듣고 보면서 얼마를 가다가 몇 고개 넘어가니 넓은 반석(盤石)에 금관(金棺)이 놓였고, 그 옆에 화려한 의복을 입은 사람이 즐비한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보고, 그 시체가 누구냐고 물은 즉, 나의 전신인데 그 몸이 살아생전에 적덕활인(積德活人)을 하여 이곳에 와서 천상에 옥황(玉皇)이 되어 전생의 그 고맙게 해준 혜택을 나는 수천 년 빌고 감사해도 그 은혜를 못다 갚겠기에 이렇게 비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여하튼 우리는 여기서 배울 것이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은 그렇게 몹시 하대하던 사람값으로도 치지 않던 중에게 이야기를 듣게 되시고 뿐만 아니라 모두 어느 겨를에 되었는지도 모르고 중이 되셨으니 단발여행(斷髮勵行)이라 하여 머리를자르셨고, 뿐만 아니라 색의장려(色衣獎勵)라 하여 모두 검은 옷을 입으셨으니 불교에서 중을 치문(緇門)이라 하는바 ‘삭발염의왈(削髮染依曰) 치(緇)요. 입산수도왈(入山修道曰) 문(門)’인데 여러분이 모두 중이 아니라고 변명하시겠지만 모두 중이 되셨습니다. 삭발염의를 하셨으니 치는 되었는데 조금 못 다된 것은 입산수도를 하여 문(門)이 되어야 할 터인데 입산수도라니 구태여 심산유곡(深山幽谷)으로 깊이 들어갈 필요는 없는 줄 압니다. 양구(楊口) 여기가 벌써 산중인데 이 산중에 들어와서 무엇 더 깊은
13) 선(船)=般若船.
산을 들어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중이라는 말은 중(衆)자인데 ‘불교중유교중(佛敎衆儒敎衆)’한대도 무방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대로 집에서 어떻게 부처를 위하고 믿느냐. 내지인(內地人)14) 모양으로 집에 신단(神壇)을 모시고 사배(祀拜)를 할 수도 있거니와 여러분 각기 댁마다 노래(老來)하신 부모가 계시니 곧 불(佛)이요, 유약한 자녀가 불(佛)아니고 무엇입니까? 노인 말씀 틀린 것 없고 어린 아이들 거짓말 안하매 그들이 곧 불의 가르침이니 이대로 댁에서 위하고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심전개발도이것입니다.
일본제국의 주의(主義)가 개승주의(皆僧主義)요, 개병주의(皆兵主義)라고 할 수 있으니 국가 국방상으로 모두 병역의 의무를 다하여야 할 것이며 국민전체가 정심수도(正心修道)하여 설법의 경(境)에 나가야 할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시간이 다 되었기에 끝으로 먼저 말씀한 글 일수(一首)를 읊고 그만두겠습니다.
이욕염왕인옥쇄(利慾閻王引獄鎖)
정행타불접봉대(淨行陀佛接逢坮)
쇄구입옥고천종(鎖拘入獄苦千種)
선상생연락만반(船上生蓮樂萬般)
(박수)
오후 10시 30분 폐회 (文責在記者)
양구면(楊口面) 이운룡(李雲龍) 속기(速記)
◎ 강사소개
김태흡 선생님은 현재 경성 중앙 불교전문학교 강사이며 본부사회교화 촉탁으로 대본산(大本山) 봉은사(奉恩寺) 포교사인 동시에 불교소 시보사 주간(主幹)이신 바 사택은 경성부 관동정입니다.
4. 종교신앙과 인류의 행복(1937년 6월 11일, 평창읍내에서)
1932년 반도총력원으로 제창된 농촌진흥운동으로 잠들었던 이 강산에도 갱생의 기운이 팽배하여지고, 농촌민의 생활은 바야흐로 윤택의 일로를 밟아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운동의 목표는여러분들도 다 아시는 바와 같이 피폐곤비(疲弊困憊)한 조선농촌으로 하여금 물신양방면의 생활안정을도모하는데 있습니다.
환언(換言)하면 물질적으로는 소위 경제갱생운동으로서 생활의 안정을 얻으려는것이요. 또 한 가지는 정신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좀 더 윤택을 주고 농민으로 하여금 전도(前途)에 적확한 인생관을 가지고 항상 신념에 불타서 생활의 안도를 시키는 것입니다.
이 후자인 정신적 갱생을 도모하려고 실시된 것이 즉 심전개발(心田開發)이올시다.
그럼 지금부터 심전개발에 대하여 잠깐 이야기를 드리고자 합니다.
인류 즉 이 세상 사람들이 행복을 요구하는 골자(骨子)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것을 한 번 생각하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묻지않아도 보통 사람들이 다 명예와 재산지위를 얻음으로서 유일한 행복으로 삼을 것입니다.
물론 명예라
14) 일본인.
든가 혹은 재산지위 같은 것을 얻으면 누구나 만족을 느끼고 유일한 행복감을 가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명예 재산지위라는 , 것은 누구나 다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유한이 있는 것이므로 이를획득함에 성공한 자가 과연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범부는 다 명리(名利)에만 허덕거리다가 필생(畢生)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인류의 행복은 결코 재산, 명예지위에 부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우리 인생을 정관(靜觀)하여 보십시오. 대하고루(大廈高樓)에서 진수성찬을 마음대로 취하는 자이요, 오직 불만을 느끼는 이가 있을 것이요.
그와 반면에 초려(草廬)15)에서 온의(褞衣)16)를 걸고있는 빈자(貧者)에게도 행복을 느끼는 이가 허다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떠한 계급(階級)을 막론하고 사람은 반드시 신앙심을 가져야만 참된 인생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예전 당나라 휘종(徽宗) 황제께서 금산사(金山寺)라는 절에서 행복하셨습니다.
그 절 앞에는 양자강이 유유히 흘러내리고 그 강중에는 무수한 선박이 상하(上下)하고 있었습니다.
황제께서는 이것을 바라보시고 “자백선사(煮伯禪師)여 대사는 저 강을 상하하는 배가 몇 척인지 알 수 있는가”하고 물으셨습니다.
대사는 조금도 서슴지 않고 “배는 많으나 두 척뿐이올시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황제께서는 이상히 여기시고 “두 척이라니 무슨 뜻인가”하니 “두 척 중 한 척은 명문지선(名聞之船)이요, 한 척은 이양지선(利養之船) 이온데 배는 무수(無數)하나 그것은 다 이상의 두 목적 이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네들이이 목적을 달성치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 세상 사람들이 너무나 물질에만 편중하여 있는것을 심히 슬퍼하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우리 인간의 행복은 물질에 있지 않고 신앙생활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종교를 믿는데 있습니다.
대개 종교의 목적은 내성(內省)과 반조(反照)에 있는 것입니다. 즉, 안으로 살피고 반성하기를 게으르지 않음이 곧 신앙의 생활이니, 이것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신앙 일보(一步)올시다.
우리가 항상 신앙심을 가지고 심전개발을 하면 무한한 무형의 보배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이것이 없으면 밖의 보물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전에 이집트 나일강 가에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한 친구의 권유를 받아 이탈리아의 알프스 산중(山中)에 황금굴이 있다는 말을 듣고 생업을 저버리고 이것을 채굴하러 불문천리하고 그곳을 찾아 갔더니 그것은 전연 무근의 사실이었고 그는 환멸의 공애(恐哀)를 느끼어 목적을 달성치 못하고 이에 패가망신 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일상생활에 반조하여 크게 참고할 만한 것이올시다. 즉, 우리가 맡은 바 일에 충실하여 힘써 일하면 우리가 사는데도 무한한 보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심전개발의 출처는 어디서, 방법은 무엇인가. 즉 심전개발이라는 것은 불경에서 나온 문제올시다.
「불경(佛經) 잡아함경(雜阿含經)」제4권에 심전경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석가께서 천하를 돌아다니며 포교를 하실 때에 하루는 야간(野間) 촌락을 지나게 되었습니
15) 초가집을 뜻함.
16) 무명 옷, 허술한 옷을 뜻함.
다.
벌써 오시(午時)가 지나가서 농부들에게 점심을 먹고 있으므로 석가께서는 그들에게 밥을 좀 주기를 청하였습니다.
그 농부들은 당신은 “농부가 아니므로 이 밥을 줄 수 없다, 이 밥은 농부가 아니면 먹을 수 없습니다.”하고 도무지 주지를 않았습니다. 석가께서는 “아니다 나도 농사짓는 사람이다”고 하였더니 거짓말쟁이라고 울근불근하며 소동을 쳤으므로 잠깐 동안 사람들이 운집하여 왔습니다.
그때 석가께서는 조금 높은 곳에 올라서서 여러 사람을 향하여 “여러분들이 나를 농부가 아니라니 내가 농부라는 이유를 설명하겠소. 대체 사람은 육체와 정신의 양자의 합(合)이올시다.
그러므로 사람은 육체적 양식을 취하는 동시에 반드시 정신적 양식을 취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이 육체적 양식은 토지를 경작하여 작물을 심으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반면에 만일 정신적 양식의 섭취를 몰각(沒却)하면 금수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또 육체적 양식의 형태가 있고 이를 가는 전지(田地)도 유형물이올시다.
그러나 정신적 양식은 무형적이므로 그 말도 무형한 것이니 이것이 즉 심전이올시다.
여러분은 토전(土田)을 경작하는 농부요, 나는 심전을 경작하는 농부올시다. 그런데 토전은 그 양에 있어서 유한하므로서 근로(勤勞)도 또한 유한하니 심전은 무한한 것이므로 나의 근로도 또한 무한한 것입니다.
즉 주야로 사시(四時)를 불문하고 이 세상 중생의 심전을 경작 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심전은 수천 년 이래로 거의 돌아봄이 없어서 대단히 황폐하여 잡초가 무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내심 반성을 하여 보십시오. 사람이 모든 죄악을 감행하는 것이 이곳 심전의 황폐화된 까닭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나는 이것을 개척하여 중인으로 하여금 안정한 생활을 하도록 애쓰고 있습니다.”하고 열변을 토하니 군중이 모두 고두(叩頭)17) 사례하고 칭송을 마지않았다고 합니다.
‘신심위종자(信心爲種子), 고행위시우(苦行爲時雨), 지혜위리액(智慧爲犂軛), 참괴심위원(慚愧心爲轅)’이 이것이올시다. 즉 마음의 시를 고행으로써 씨를 심고 지혜로 서 경작하여 참괴심으로 고삐를 바로 잡으라는 뜻이올시다.
‘약인무신심(若人無信心)이면 여승무주선(如乘無主船), 역여무어마(亦如無馭馬),장야시갱참(長夜是坑塹)’이라 하셨으니, 신앙심이 없는 인간사회가 이 얼마나 암흑하고 적막함을 말한것이 아닙니까?
신앙이 있는 사람은 항상 긴장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항상내성반조를 하여 참된 신앙심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므로 고현(古賢)은 심(心)이라는 것을 가만히 주장하여 왔습니다.
즉, 위인두요존호심(偉人頭要存好心), 상재호심만복(常在好心萬福), 세상전재무정주(世上錢財無定主)종귀행선적덕지(終歸行善積德人).또 말하길, “심선백사길(心善百事吉), 심악백사흉(心惡百事凶), 선위무가보(善爲無價寶) 인시호신부
(忍是護身符)”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부방심(浮放心)’을 하고 행선적덕(行善積德)하여 무가보(無價寶)를 쌓으며 결코 목전의 이익을 취하려 하지 말고 원대한 포부를 가지며 장래를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 말하길, “침입전토편인전(侵入田土騙人錢) 단화부귀무다년(單華富貴無多年) 막도면전무현보(莫道眠前無顯報) 분명절재자손변(分明折在子孫邊)”라 하였으니 이것은 마땅히 우리 인생의 처세훈(處世訓)이올시다.
17) 머리를 조아려 사죄함을 뜻함.
석가가 말씀하시길 “명경상수이심심(明鏡上水以沈心) 태산교악이입신(泰山喬岳以立身) 청천백일이응사(靑天白日以應事) 소월광풍이대인(宵月光風以待人)”이라 하였으니, 우리가 이만한 금도(襟度)18)를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다 의인군자가 될 것입니다. 인생 50년 짧은 생애에 무엇 때문에 악사(惡事)를 하는가.
돈도 귀중(貴重)하지만 우리는 절대로 악사를 하지 말고 정정당당히 나아가야 됩니다.
예전 어느 시장에 인마(人馬)의 내왕이 치주(輜湊)한데 별안간 뇌성벽력을 하더니 혹인(惑人)이 벼락을 맞아 죽어 넘어졌습니다.
군중이 몰려 가보니 시체에 ‘역구월팔삼(力口月八三)’이라 쓰여 있었으므로 다 괴상히 여겨 그 뜻을 해석하지 못하더니 마침 도승이 지나다가 지팡이로 그 글자 복판을 꿰어, ‘시중용소두(市中用小斗)’라는 어구(語句)를 만들어 그 뜻을 말하여 주었습니다.
즉, 그 자는 시중에 항상 소두(小斗)로써 민중을 속여 곡물을 팔았음으로 그 죄로 벼락을 맞았다는 것입니다.
또 예전 중국 어느 곳에서 소가 난데없는 벼락을 맞아 죽어 넘어졌습니다.
군중들이 모여서 하늘의 요망함을 원망하며 무고한 동물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겼더니 조금 있다 그 옆 뽕나무에 큰 글자가 나타나되 “불문인간오역자(不問人間五逆子) 여하장상타경우(如何障上打耕牛) 차시당시이임보(此是唐時李林甫) 구생천기십생우(九生賤妓十生牛)”라고 나타났습니다.
즉 그 소는 당(唐)의 이임보(李林甫)의 화신(化身)인데 이임보는 당의 중신(重臣)으로 왕의 총애를 함부로 하여 무수한 현관(顯官)을 모함하여 죽이고 무고한 창생(蒼生)을 가렴주구한 간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죄상을 미워하여 구생천기(九生賤妓)하고 십생우(十生牛)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수심(修心)하여 영생의 길을 구하는 것이 제일이니 털끝 만큼이라도 지위·부귀를 이용하여 악사(惡事)를 하는 것은 절대 불가한 것입니다.
저 나파옹(那破翁)19) 1세를 보십시오. 그는 절세의 영웅으로 당시 전 유럽을 유린(蹂躪)진감(震撼)하였고 또 공명(功名)의 노예(奴隸)라고 할 만큼 공명심이 많았으나 그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 하였습니까.
그는 유럽의 평화를 각란한 죄로서 전 유럽에서 축출을 당하여 필경(畢竟)은 세인트 헬레나 고도(孤島)에서 비운을 저주하며 이 세상을 마친 겁니다.
러시아(露西亞)의 문호 톨스토이는 “내가 비록 귀족의자식일지라도 죽음에 직면할 때 수억의 부귀가 무슨 효과가 있으랴, 사람은 마땅히 종교에 귀의해야 영생의 도구를 할 것이다.”라고 갈파하였습니다.
불경에 수심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니 “한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일생에 4명의 처를 얻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처는 초야에 소박을 맞아버렸으니 일평생 돌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두 번째 처는 혼인한지 수일 만에 권태를 느끼고 차버렸으니 이는 유용한 때만 이용하였습니다. 세 번째 처는 절세가인으로 이를 구하기에 대단히 애를 썼습니다.
그러므로 대단히 귀중히 여기고 항상 벽장에 넣어두고 다녔습니다.
그다음 네 번째 처는 더 한층 미인(美人)으로 그의 총애는 더욱 두터워서 잠시를 놓지 않고 받들었습니다.
이리하다가 그 노인이 별안간 병이 들어 위독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자기 생을 회고하여 너무나 죄악을 지은 것을 깊이 참회(懺悔)하니 “이제는 지옥 밖에 갈 곳이 없으나 나 혼자 가기는 너무나 쓸쓸하니 처를 데리고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제일 먼저 네 번째 부인을 방문하여 같이 지옥 가기를 간청하였으나 그는 단번에 거절하였습니다.
다음 세 번째 처를 찾아갔더니 그도 역시 불응하였으므로
18) 남을 용납할 만한 도량을 뜻함.
19) 나폴레옹
낙심천만하여 제 두 번째 부인에게 갔습니다.
그도 또한 냉정한 태도로 묘지까지는 따라 가 보겠으나 땅 속에는 들어갈 수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마지막으로 첫 번째 부인을 찾아가서 사유를 말하니 그는 조금도 서슴지 않고 “예로부터 여필종부(女必從夫)라 하였으니 어찌 그대의 말을어기리오. 그러나 영양부족으로 걸어 갈 수 없소이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불(佛)의 인생씨유량(人生氏(喻諒)이올시다.
즉 네 번째 부인은 신체(身體), 세 번째 부인은 금전(金錢), 두 번째 부인은 부모, 첫 번째 부인은 마음을 비유한 것이올시다.
즉 우리는 네 번째 부인과 같이 제일 첫 번째로 신체를 위하는 것이니 몸뚱이에 종노릇 하는 것이 이 세상 사람이올시다.
공수래공수거가 인생의 사실이 만큼사람이 죽으면 시체는 일고의 토괴(土塊)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니 이와 같이 신체는 네 번째 부인과 같은 지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금전을 귀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마치 세 번째 부인을 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돈은 항상 벽장에 간직하고 받드는 것이니 한 번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입니까? 사람이 죽으면 돈은 결코 같이 따라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은 부모형제올시다. 부모형제는 죽으면 무덤까지는 견송을 하나같이 땅 속까지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부모형제도 죽으면 다 허위(虛爲)한 것이니 두 번째 부인과 같습니다.
그 다음 마음은 사후에도 가져가는 것입니다.
마음은 영생불멸한 것이요 잠깐 신체를 가장하여 이 세상에 나와서 쉬였다가 가는 것이니, 즉 마음은 과거로부터 와서 현세를 거쳐 미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첫 번째 부인이 죽음을 같이하여 미래에 동행하는 것과 같은 지위에 있는 것입니다.
이상 비유와 같이 사람은 출생 때부터 도무지 마음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학대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첫 번째 처가 영양부족으로 걸을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도 닦지 않아서 거의 갈 바를모르고 영양부족에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도 게으르지 말고 항상 마음을 닦아서 물심의 겸전(兼全)하여야 됩니다.
부처님께서 ‘지족제일부(知足第一富) 부지족제일빈(不知足第一貧)’이라 하였으니 이것은 농촌생활에 있어서 제일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농촌의 지도자로서 항상 농촌의 경제갱생을 도모하는 한편 그들에 황폐한 심전을 개발하여서 물심 양방면의 생활 안정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장시간 정청을 감사하고 이만 그칩니다.)
5. 심전개발과 생업보국(生業報國)(1937년 10월 4일, 통천군 흡곡에서)
지금부터 각위에게 심전개발과 생업보국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승려의 몸이므로각위에게 말씀드리기 전에 부처님께 국운융성과 무운장구를 빌고자 합니다.
각위도 저와 함께 축원합시다.(일제히 묵도)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강연 주제는 주로 심전개발과 생업보국이외다. 각위는 이번 지나사변(支那事變)20)을 관공서 또는 신문 등을 통하여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이 시국에
20) 1937년 중일전쟁을 일컬음.
대한 인식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농사하는 사람은 농사,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 관공서에서는 관공서로서, 모두 때와 곳을 따라 달리하는 데조차 인식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때를 당하여 정신을 바르게 하여 시국에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데 여기에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심전개발(心田開發)이외다.
지금으로 5, 6년 전부터 일반 농촌을 고찰하고 진흥에 힘써 오던 바 3년 전부터 심전개발도 이에 부수(副隨)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오늘날까지 부르짖어 왔고 강행하여왔습니다.
지금 시국에 대하여도 특히 심전개발을 힘쓰지 않고서는 안 됩니다.
불교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비여암중보(比如暗中寶)무등불가견(無燈不可見) 불법무인설(佛法無人說) 수혜막능지(雖慧莫能知)」라. 즉 비유컨대 어두운 가운데 보배와 같이 등불이 없이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국가사회에 있어서는 지혜가 없으면 모두가 안 될 것이외다. 즉 종교가 없고 신앙이 없이는 국가사회를 지지하여 나갈 수 없습니다.
불법은 지혜요 깨달음이올시다. 이번 사변에 대하여서도 경성방면 철도연변에서 군대수송 등을 늘 보고 있는 관계로 더욱이 타 방면에 대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이런 데는 우리가 이와 같이 얘기하는 것을 들으시고 비로소 어떻다 하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심전개발이란 것은 불교에서 나온 말인데 불경(佛經) 잡아함경(雜阿含經) 제4권에 심전경작이라는말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900여 년 전에 부처님이 계셨는데 이 부처님은 여러분께서 절에 가시면 보시는 돌이나 금칠을 하여 만든 부처가 아니고 우리와 같이 말을 하고 옷을 입는 실로 대성인이었습니다.
이 부처님 석가여래께옵서 아난(阿難)이란 제자를 데리고 곳곳마다 세상에 전도를 하시러 다녔습니다.
어느, 늦은 봄 이른 여름인 농번기였습니다. 제자와 같이 어느 넓고 너른 전답이 모두 있는큰 평야에 당도하셨습니다.
이 넓은 평야에 수백수천의 많은 농부들이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마침 점심 때가 되어서 농부들은 모두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석가여래께서는 배가 너무 고프고 기운도 없고 하여 그 농부들이 점심 먹는 데 가서 ‘여러분 제가 매우 시장하니 한 분이 한 술씩 밥을 모아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때 농부 한사람이 반대를 하며 주지 못하겠다고 하기에 석가여래께선 ‘그러면 반 술씩이라도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모아 달라’고 하니 농부 또한 반대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땀을 흘리고 힘을 들여 농사를 지어 먹는데 당신은 놀면서 우리들이 애써 지은 이 밥을 거저먹겠다고 하오’ 하였습니다.
이때 석가여래께서는 ‘그럼 이 밥은 농부가 아니면 못 먹느냐’고 물었습니다.
농부는 그러하다고 하기에 석가여래께서 말씀하시되 ‘혹 밥이 부족하여 못 준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이유로 안 준다든지 하면 모르거니와 농부래야 먹을 수 있다 하니 나도 역시 농부이니까 먹을 수 있습니다’고 하였습니
다.
그랬더니 여러 농부는 ‘우리의 손은 이렇게 험하고 손톱은 다 달아 없어졌으나 당신의 손은 고운선비의 손이요 일로 보아도 당신이 농부라는 것은 전연 거짓말이요 농부란 것은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가을에 거둬들이는 것이 농부요’ 하고 반대하니 석가여래께서는 역시 농부라고 하여 서로 언쟁을 하는 즈음에 여기저기서 모여와서 수천 명이나 되었더랍니다.
이때에 석가께서 좀 높은 곳을 찾아 올라가 설교를 시작하였습니다.
“내가 농부라는 것은 여러분들과 같이 논밭을 매달리는 즉 먹을것을 만드는 농부가 아니다.
그보다 더 중한 세상 사람의 마음의 밭[심전(心田)]을 경작하는 농부입니다.
세상 사람의 구조란 것은 이중으로 되어있습니다. 그 하나는 이 몸뚱이 육체요 또 하나는 마음 즉 정신 희로애락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 정신만 없다고 해 보십시오. 사람도 아니요 태도도 아니요 또 출령(出靈)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이 육체란 것이 나서 처음부터 어머니의 젖을 먹습니다.
나서 처음부터 벌써 오곡을 먹는 것입니다.
육체는 이와 같이 생리적으로 오곡을 안 먹으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육체를 살려가기 위해서 오곡을 먹기 위해서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란 다른 동물과 달라서 먹고입고 사는 것으로만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정신의 요구가 있는 것입니다.
우선 아동을 학교에 보내는 것도 먹기 위하여 하는 것은 아니요, 정신의 요구입니다. 지혜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모든 백반사정(百般事情)에 통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지식이 없으면 금수(禽獸)에 가깝다는 공자님 말씀도 안 있습니까.
세상 사람은 모두 정신의 굶주림을 받고 있습니다. 누구나 정신적 요구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가 무슨 옛날이야기 같은 것을 하여도 밤이 새도록 재미있게 듣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모두 마음의 요구입니다.
나는 이 마음의 밭을 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산천초목(山川草木)이라든지 일월성신(日月星辰)이라든지 이런 것이 모두 정신에서 나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이 즉 여러분이 여기서 농사짓는 것과 같이 천하 모든 사람의 마음의 밭을 간다는 것입니다.
모두 마음은 황무지가 되어 있는데, 차마 볼 수 없이 황폐하여 있습니다.
가장 심전으로부터 훌륭한 곡식이 나는 것을 모르고 여러분은 임시 목전에 농사만을 힘쓰고 있으니 세상 사람의 심전은 황폐하여 갈 뿐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때문에 세상사람 사이엔 물론이요 골육지간에도 서로 반목질시를 가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심전을 개발하여 서로서로 융합하여 갈 수가 있습니다.
내가 농사짓는 것은 논이나 밭을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
의 밭을 가는 농부입니다. 마음의 밭을 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러분은 의심이 생길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저기 논이나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하지만 내가 가는 밭은, 마음의 밭은 세상사람 동서남북 수만리나 되는 데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의 밭을 맡아 가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야 좋을지 향방이 없는 형편입니다.
주야겸행(晝夜兼行)으로 이야기를 하고 다닙니다. 춘하추동 어느 때를 불구하고 마음의 밭을 갈고 있습니다. 자, 여러분 어느 편이 더 힘들고 땀나겠습니까.
여러분 중에 누가 심전경작을 한 사람이 있습니까.
세상 사람은 모두 정신은 내버리고 다만 물질에만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여기 모이신 여러분도 역시 물질에만, 먹을 것, 입을 것에만 끌리어 있을 줄 압니다.”
이 이야기를들은 농부들은 과연 옳은 말씀이라고 그럴듯하다고 석가여래가 정말 농부라고 탄복하고 이 설교에 순종하여 옳은 길을 밟아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심전개발이란 말이 생긴 유래올시다.
이 심전개발은 어떻게 할 것이냐 그 농작방법을 불교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신심위종자(信心爲種字), 고행행위시우(苦行爲時雨), 지혜위리액(智慧爲犂軛), 참괴심위원(慚愧心爲轅)」즉 심신으로
써 종자를 삼고 고행으로써 비를 삼아가지고 심신의 종자를 잘 배양케 하고 지혜로써 쟁기와 멍에를 삼아 잘 매달게 하고 참(남에 대하여 참)괴(자기양심상 부끄러운 것)심으로는 수레를 삼으라 이렇게 있고, 마음엔 「약인무심신(若人無信心) 여승무주선(如乘無主船) 역여무어마(亦如無馭馬) 장야시갱참(長夜是坑塹)」이라고 이것은 신심이 만일 없으면 어떠냐 하며 사공 없는 배를 탄 것과 같고 또한 마부가 없는 말과 밤중에 도랑에 빠진 것과도 같다 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은 신앙심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주 노랑(盧浪)하게 아무 의미없이 일생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으로서는 충군애국의 신념이 없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 신앙심을 배양하여 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고 자기일신은 물론 국가사회의 안정을 하도록 가르쳐 오는 것이 즉 심전개발이올시다.
현대 세상 사람은 너무 물질에만 편중이 되어 가지고 정신 쪽을 조금도 돌보지 않는 형편입니다.
그저 돈이면 그만인 줄만 알고 있습니다.
이런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곳에 정신없는 사람들이 한 부락에 있었습니다.
아무정신 없이 미친 사람 모양이더랍니다. 동내에서 너무 민망스러워서 땅굴을 파고 두 사람을 잡아다 놓고 주먹밥 같은 것을 들여보내 먹였습니다. 그 후 어느 날 한 사람이 굴밖에 나와서 동리를 정신없이 돌아다니노라니 한 역(驛)에 사람이 많이 모여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가서보니 어떤 동사한 송장을 하나 놓고 여러 사람이 모두 그 처분할 방법을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누구인지 어디 사람인지 하고 야단이더랍니다. 이 사람이 한참 보다가 암만하여도 자기와 함께 굴속에 있는 정신병자 그 덕이 놈이 자기 송장을 내버려 두고 가라고 해도 안 가는구나 하고 척 나서서 이 송장을 처분할 사람이 있으니 내가 데려오마 하고 그 굴에 가서 같은 정신병자를 보고 그 이야기를 하고 나도 정신없지만 자기 송장을 길가에 버리고 다니느냐고 곧 데리고 와서 자 이 사람이 이 송장임자이니 내주라고 하여습니다.
수많은 사람은 모두 앙천대소를 하였습니다. 결국 송장임자란 자가 그 동사한 송장을 가지고 갔습니다. 가다 생각하길 만일 이 송장이 내 것이라면 이 송장을 안고 가는 나는 또 누군가(일동 웃음소리) 나는 과연 없어졌나 하였답니다.
우리들의 이 육체란 정신이 지배하는 것이 승(勝)하여있습니다.
정신이 없으면 육체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송장도 이목구비가 정연히 있습지요.
그러나 감각이 없는 것은 정신이 없는 까닭입니다.
즉 이것을 정신이니 마음이니 하는 것인데 세상 사람은 이 정신을 존중히 하지 않고 육체만을 위하여 길지도 못한 오륙십년을 공연히 지내고 있는 것은 아까 이야기 한 송장을 들고 가던 정신없는 사람과 같습니다.
세상 사람은 모두 육체를 위하여 물질에만 끌리지 말고 좀 더 정신적 생활을 하여 국론일치 일심단결로써 이 시국에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번 일지사변(日支事變) 즉 지나사변이 일어난 것은 일본과 중국 사이면 절대로 싸워선 안 될 사이인데 같은 인종이요 글도 같고 서로 인접하여 이웃집 같은 사정인데 이번에는 중국 국민을 생각하는 까닭에 부득이 간벌(干伐)을 든 것입니다.
한 집안에서도 부형이 자제를 꾸지람하듯이 참으로 응징하기위하여 하는 정의로서 하는 쌈이올시다. 동양에 있어서 일본과 중국은 서로 제휴하여 나아가지 않으면 참으로 안될 것인데 중국은 이것을 반대로 나가 도리어 일본을 미워하여 온갖 배일(排日)모일(侮日)의 행동을 취하고 있으니 이것을 응징치 않으면 안 될 일이 아닙니까.
서양사람 저 백인의 세력을 점점 동양으로 뻗치고 있습니다.
서세동점을 방비할 만한 동양의 맹주는 일본이 아니고는 없습니다.
이 서양 사람의 세력을 물리치고 실로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 가장 중대한 원인입니다.
서세동점은 이제 비로서가 아니라 2백여 년 전부터였습니다.
서양은 벌써부터 물질문명이 발달되어 각색 문명의이기(利器)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자기세력을 뻗치고자 하였습니다. 저 아프리카를 뺏어 차고 영국은 동양에서도 큰 인도를, 또 티벳(西藏)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다음에 중국 본토에까지 침범하여왔습니다.
아편전쟁을 일으켜 중국을 아편으로 순종시키려고까지 하였습니다.
우리 조선에서도 인천충해의 습격 등이 있었습니다. 지금에도 역시 중국에 여러 가지로 손을 뻗치고 있습니다.
그때에 동양사람은 모두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오로지 일본만이 개화를 하여 저 명치유신(明治維新)이란 것도 있었습니다.
일본은 동양에 있어서 물질문명은 물론 정신문명에 있어서도 상당히 발달되어 있습니다.
일본과 만주 사이는 순치(脣齒)의 사이와 같아서 입속에 불이 붙었는데 이가 어떻게 평안하겠습니까.
그때에 청국(淸國)에 원세개(遠世凱)는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선에선 임오군란(壬午軍亂)이라,무슨 갑신정변(甲申政變)이라 하고 국내가 대단히 사변이 많았으니 자기나라도 잘 못 지키면서 조선에 출병을 하게 되니 드디어 일본과 청국 사이에 교전을 하게 되었는데 원세개는 가지 않고 쓸 데 없이 내정 외정에 간섭을 하고 있기에 다음에는 동학란(東學亂)이 일어나자 드디어 청일전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본은 이 전쟁에 이기어 배상금과 요동반도와 대만을 차지하였는데 청국은 여기에 불쾌감을 가지고 서양사람들에게 가서 자꾸 사정하여 삼국간섭이란 즉 요동반도를 환부(還付)하고 말았습니다.
그다음 청국은 위해위(威海衛)를 영국에 주고 프랑스에는 광동을 내놓고 요동은 러시아를 주고 독일도 청도(靑島)를 차지하였습니다.
이 모양으로 서로 쪼개 나눠 갖은 상태를 본 일본은 이래선 도저히 동아(東亞)의 안정을 보존할 수가 없겠다고 러일전쟁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슨 영토적 야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동아의 안정을 위해서였습니다.
만주를 회복하여 당시 마적의 두령인가로 있던 장작림(張作霖)에게 위임시켰는데 점점 권세가 좋아짐에 따라 일본을 도리어 미워하고 배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장작림이 죽고 그 아들 학량(學良)도 역시 그 모양으로 잔학무도한 짓을 많이 하여 백여만이 나가 있는 조선동포를 무수히 학대를 해서 만보산사건과 같은 일을 일으키며 지금부터 6년 전 이 동포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주사변(滿洲事變)이 일어났는데 오늘날 와선 만주국을 새로 건국하고 선통(宣統) 황제를 추대하여 일만국(日滿國) 서로 우의의 나라로 되어 지금은 아주 생활낙토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선만일체(日鮮滿一體)라던지 선만일여(鮮滿一如)라고 하여 관리를 서로 보낸다 이민을 한다하는 것이 일본의 덕택인 줄을 알고 보면 청국은 서양 백인을 쫓아 버리고 일본과 서로 손을 맞잡아야 할 것인데 이것을 모르고 자기 나라가 서양사람 때문에 어떻게 되어 가는지 일본만을 밉게 생각하고 화약을 메고 불속으로 들어가는 계교를 하는 것입니다. 일본을 항상 어떻게 하려고 다른 나라 힘을 빌려서라도 즉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수단을 쓰며 일본을 제거하고자 합니다. 그러느라고 철도를 부설하는 것도 타국 사람에게 맡기고, 저 해국세(海國稅)21)를 받는 것도 타국 사람, 체신 같은 것도 모두 타국 사람의 손에 넘겨 가지고 한집안 사람을 억제해 다라고 일본을 처치해 달라고 합니다.
중국은 이전 각지에 군웅이할거 하여 서로서로 차지하고 있었는데 근래 장개석(蔣介石)이란 사람에 의해 국내가 통일되었답니다.
그러나 요전 서안사건(西漢事件)22) 같은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배일항일하고 이 사상을 학교에도 군인에게 항상 선전하고 함양하여 29군이라고 송철원(宋哲元)이 인솔하고 있는 군인들도 도학무도한 행위가 여간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 동포들 축인(畜人)에게라든지 좋지 못한 행위를 하였습니다.
지난 7월 7일 밤에 우리 주둔군이 노구교(蘆溝橋)라는 데 북평(北平)서 한 30리 되는 데서 야간 연습을 하고있는 중에 밤 10시경에 송철원군이 무법하게도 기관총으로 대고 발사한 까닭에 용치한(慂治漢), 송철원이란 사람에게 교섭을 하여 다음 날 실지검사를 하려는데 우리들은 안 그랬노라고 마적이 그런가보라고 하기에, 그럼 우리는 마적을 쫓겠다고 강을 건너 물리쳐 나갔습니다. 다시 또 송철원군과 충돌이 되
21) 해관세를 뜻함.
22) 원문에는 서한사건으로 되어 있다. 서안사건의 오기로 보아 수정했다. 1936년 장학량이 장개석을 감금하고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 정지와 거국일치에 의한 항일을 요구한 사건. 이후 장개석과 공산당 주은래와 협상을 벌여 두 번째 국공합작이 이루어졌다.
어서 일반 진섭 을 받았습니다 (陳涉) .
그러므로 사건을 확대시키지 않고 국부적 해결을 지으려고 매진하응흠교섭(梅津何應欽交涉)23)이라든지 기타 각 조약에 의하여 곧 철병을 하도록 교섭하였는데 저 쪽은 더 뻗치며 일편 항복하였다 또 충돌하였다 종시 말을 안 듣기에 드디어 북지사변(北支事變)을 일으키고만 것입니다.
일본은 이것을 북지에서만으로 그치려고 여러 가지로 애를 썼습니다만 장개석은 잘 듣지않고 드디어 장기전을 기도하고 있는 까닭에 벌써 3개월이나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럭저럭 지나사변에대하여 원인 근인을 말씀 올린 것입니다.
전황에 대하여 여러분 다들 아실 것입니다. 벌써 육해군으로한 사분의 삼은 이기고 있습니다.
남경이나 상해 방면에 있어서 공군은 비행기로 공격을 하여 지금 중국병사(支那兵)들은 오지에 모두 쫓겨가 있습니다. 이 전황을 들으면 참으로 감개무량한 바가 많습니다.
지난 여름 그 더위에 어떤 부대는 8일간이나 밥을 못 먹었다고 합니다. 「가다빵」24) 같은 것을 겨우먹고 싸웠답니다.
우리 총후(銃後)25)의 국민은 각성하여 함께 긴장하여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옛날전쟁과는 달라서 어디든지 전쟁터입니다. 공군은 어디든지 가고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일선에 나선 장병과 같이 긴장하여 있어 가지고 황군을 지원치 않으면 안 됩니다. 응원하고 지원하고 진심 성의로 황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모든 점에 대하여 정신적 일뿐 아니라 국방비라던지 위문 애국비 등을 지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것을 위하여 즉 우리는 생업보국이란 의미에서 각각 무기의 공급 같은 것도안하면 안 될 것입니다.
또 가정으로 보아 늙은 부모와 어린 처자를 두고 나가는 장병을 위하여 조금도뒤돌아 봄이 없이 하도록 절대로 후원치 않으면 안 됩니다.
출병한 가족에 대하여는 여간히 친절을 보아드려야 할 것이며 요즘 수확(收穫) 같은 것도 서로 하여주고 있는 형편입니다.
경성방면으로 말하면대단히 모두 긴장들 하여가지고 매일 전송(錢送)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부인 한분은 어린 아이를 업고전송을 나갔습니다.
일본국민이 되어 가지고 우리는 집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있겠느냐고 매일 나갔는데 한번은 업은 아이가 흘러내려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그저 일본군인 만세를 부르고 있었는데 군인이 차창으로 내다보니 어린 아이도 땅에 떨어진 채로 고사리 같은 손을 들고 좋아하였다고 군인들은매우 즐거워하며 일층 조선 동포의 환송에 즐거워하였답니다.
모두 총후의 미담으로 많이 선전되고 있습니다만 한 소경 부인이 또 기차 소리만 나면 나와 손을 들고 만세를 부르기에 옆에 사람이 당신은무엇이 보이지도 않는데 그러느냐고 한즉 나는 못 보아도 그 이들은 나를 보고 얼마나 좋아할 것이냐
고 하였답니다.
각 학교의 학생들도 역시 그 모양으로 전송을 합니다. 일본으로부터 나오는 군인은 조선동포가 이렇게까지 성의 있게 하여줄 줄은 몰랐답니다.
과연 감격하는 것입니다. 한 군인은 황주(黃州)인가에 와서 보통학교 아동이 나온 것을 보고 대단 감사하다고 사례를 한 아동에게 종이 꾸러미를내보내주며 칭찬하였습니다.
후에 그 꾸러미를 펼친 즉 속에 돈 5원과 편지가 들어있었는데 ‘조선 소년들 대단히 고맙소. 부산에서 여기까지 내선일체의 실황을 잘 알았소. 군들도 장차 훌륭한 사람이 되어충군애국하여 주오. 돈은 군인에게 아무 필요가 없으니 나눠 학용품이라도 사서 쓰오’ 하였더랍니다.
그리고 사변 이래 국방비 위문비 등 모인 것이 5백여 만 원이나 모였는데 그중에 부인들의 적미(積米)를 절약하여 모은 돈 20원씩 30원, 어떤 부인은 점심을 굶어가며 모아서까지 냈다고 하며 경성맹아학교
23) 허잉친-우메즈 협정. 만주사변 후 1935년 중국과 일본 사이에 맺은 협정.
24) 일본어 가타(견(堅)’의 일본어 발음)에서 온 말. 둥굴넓적하게 구운 작고 단단한 빵을 뜻함.
25) 전장에서 총 뒤에, 즉 전선에서 직접 전장이 아닌 후방이라는 뜻이다.
학생들은 몇 달 전차요금을 절약하여 국방헌금을 하느라고 그 부자유로운 몸으로 학교에 걸어 다녔다,
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조선청년 중에도 많이 혈서까지 써서 지원병을 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리도 같은 일본국민이니 만큼 황국을 위하여 진력하겠노라고 하여간 총후국민이 된 사람으로 응선(應先)하여야 할 사실입니다.
금차회(金釵會)라고 서울에 귀족부인들의 모임이올시다. 여기선 금반지, 금비녀 등을 뽑아 팔아가지고 헌납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앞에도 축원하되 반드시 승전을 하도록 하여 주십소사 늘 축원을 한답니다.
이때를 당하여 국론일치, 민심통일이 절대 필요합니다.
총독각하께서도 일본은 동양안정을 위하여 정의의 전쟁을 한다는 것 지금 중국의 모든 현상과 시국에 대한 인식을바르게 할 것이 이번 사변은 상당히 장기전이 될 터이니 국민은 일대 각오를 할 것 등 지금에 중국을응징치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여기에 대한 일속(一束)으로 생산과 방공농산어촌 총동원하여 일대 결심하에 생업보국의 정신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최후에 일치단회하여 경제문제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전쟁 전에도 항상 수지가 균형치 못하였던 것이 전쟁이라고 보면 군량(軍糧)이라든지 마량(馬糧)이라든지 모든 방면에 소비가 증가되고 맙니다.
그러므로철저하게 각오를 하여야 합니다. 전쟁이 될수록 우리가 근검저축을 하여 각종세금이라든지 국방헌금애국금 같은 것을 많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살림을 좀 개선하여야 되겠는데 이것은 농촌진흥 자력갱생운동이 일어난 때부터 늘 이렇게 하라고 지도장려하여 온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지금부터 의복을 새로만들지 않기로 합시다.
옷을 짓는 돈이면 국방헌금으로 들여놓습니다. 부인들은 공연히 옷을 새로 지으며 궤 안에 넣어 두는 습관이 있는데 금년은 풍년도 들고 한 바람에 이런 낭비를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런 것이 국민성을 이해하게 하는 것입니다. 음식은 되도록 좋은 음식을 삼가십시오.
전장을 생각하면감히 편안히 살며 좋은 음식만 먹을 수가 있겠습니까.
8일간이나 굶어가며 적군을 물리쳤다니 신령의도움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국민의 행복을 위한 신령의 도움입니다.
경기도에선 부인단체를 상대로 많이 다녔습니다만 가정부인은 국가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고로 생업보국이란 것도 부인들 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유를 내지 않고 자꾸 쓰기만 하면 어떡합니까.
어린아이 첫돌잔치 같은 것 절대 폐지하십시오.
혼인잔치도 그전에 100원 50원 들인 것이면 20원 10원씩으로 줄이십시다.
생업으로써 보국하는 것이 장병으로 전장에 나간 것과 같이 철저한 각오를 바랍니다.
우리는 허영을 삼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허영이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옛적 어떤 사람이 자기부인이 다 잘 생겼는데 코가 납작코가 되어서 퍽 유감으로 생각하였는데 하루는 장에 갔다가 코 잘생긴 부인을 보고 칼을 꺼내어 그 부인의 코를 베어 가지고 와 자기 부인코를 또 베고 부쳤답니다.
붙어있습니까. 납작코마저 잃었습지요. 지금 세상 사람의 허영이란 것은 절대로 폐지시켜버려야 할 것입니다.
옛적 운문대사(雲文大師)란 도승이 있었는데, 갯물에 나가 무청을 씻다가 무청 하나가 물에 흘러내려가기에 대사가 건지려다 못 건지고 무청을 따라 함께 흘러 내려가 주어왔습니다.
대사에게 항상놀러 오는 공경대신들이 이것을 띄어 보고 비웃는 말이 중은 본래 청정청백함으로써 위주로 하거늘 무청 한 개에 그리 욕심을 내느냐고 말했습니다. 대사는 ‘이 무청이 한 개일지라도 천지우주의 소유인데우리에게 맡긴 것이요 천만도 하나, 둘에서부터 생긴 것이요 티끌도 모여 태산이 된다니 어찌 무청 하나라고 소홀히 할 것이 있겠소.
불도에선 땅에 쌀 한 알이 떨어져도 쌀이 썩으면 지신이 아까워한다’고하였습니다.
우리는 전시상태에 있어 운문대사의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번 사변에 당하여 정신을 통일하고 국론일치, 일치단결하며 경신숭조(敬神崇祖), 신궁참배, 숭교(崇敎)를 신앙하고 생업보국을 철저히 하여 주심을 바랍니다.
6. 심전개척(心田開拓)과 용무봉공(勇務奉公)(1937년 10월 5일, 통천읍내에서)
여러분께 시국과 심전개발에 대하여 몇 마디 말씀하고자 합니다. 말씀하기 전에 기도를 드리고자 하오니 대단 미안합니다만 기립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일동 기립)
다행히 회장 내에 신단이 있으니 그곳을 향하시고 합장을 하여주시오(강사로부터 염불을 외우며 일동이 신단에 향하여 합장 삼배하고 정좌하다) 제목은 ‘심지개척(心地開拓)과 의용봉공(義勇奉公)’이라 하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도(道)의 촉탁으로 심전개발과 시국에 대한 강연을 하게 되었는데 통천읍과 같은 도회에서는 시국에 관한 말씀을 이미 알고 있을 줄로 생각하오니 심전개발에 대하여 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즉 심지(心地)라는 것은 심전(心田)이란 말과 동일하고 개척이란 말도 개발이란 말과 같으므로 심전개발이나 심지개척
이 동일한 의미이겠습니다.
우리가 실생활을 영위함에는 필히 어떤 목표가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즉 이상이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의식으로만 하는 생활은 생활이라 할 수 없으니 여기에는 반드시 신앙생활이 있어야만 가치 있는생활이다 하겠습니다. 신앙생활과 실제생활과는 반드시 병행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불경(佛經) 대지도론(大智度論)26)에 동굴소암(洞窟掃暗)이란 말이 있는데 옛날에 어떤 사람이 빈한하여 나무 장사를 하며 그날그날을 생활하여 가나 식구가 십여 인이나 되어 자기 집이 없이 남에 집을차가(借家)하고 있는 관계상 항상 불편을 느끼어 가옥을 건축하기를 원하였습니다. 하루는 나무하려 산중에 들어갔다가 공연히 소나기를 만나 은신할 곳을 찾다가 동굴을 발견하여 그 곳에 비를 피하였습니다.
날은 개이었으므로 그 동굴로부터 나오려고 하다가 굴 내를 자세히 살펴보니 넓기가 십여 칸이나되고 바닥은 낙엽이 쌓여 있어서 자리를 깔지 않아도 좋게 되어 굴 내에서 생활하기 대단히 좋아 보였습니다.
항상 집이 없이 근심하는 중이라 곧 집안 식구를 전부 데리고 오고 싶었으나 한갓 굴 내가 어두운 것이 걱정이었습니다. 무슨 이유도 굴 안이 이와 같이 어두울까 생각한 나머지 연기나 구름이 끼여 있어서 이러리라, 이 연기와 구름만 제거하면 되리라고 생각하고 곧 커다랗게 비를 만들어 쓸어내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삥삥 돌아가면서 비로 쓸어내도 역시 캄캄함은 여전하였습니다.
이 동굴 부근에 산사가 있는데 중 한 사람이 이 동굴 부근으로 내려오다가 이 모양을 보고 이상히 생각하고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중이 묻기를 당신은 무슨 사람인데 무엇을 하느냐고 하니 지금 굴집을 발견하였는데 굴내가 어두워 이것을 밝게 하는 중인데 아무리 비로 이 어두운 것을 쓸어버리고자 하나 되지 아니하니당신은 산중 도승이니 이 굴 안을 밝게 하는 방법을 아실 터이니 하교하여 주십시오 하고 애걸하였습니다.
승이 말하기를 굴 내를 밝게 하자면 송명(松明)27)을 켜 가지고 들어가라고 하므로 곧 그와 같이하여 본 즉 과연 굴 내가 밝았습니다. 송명에 불을 밝히어보니 굴 내에는 약수도 있고 기타 모든 것이
26) 산스크리트 원전의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에 대한 주석서. 대승불교의 백과사전적 저작임.
27) 관솔, 관솔불.
있어 참 살기가 좋았습니다.
이 말은 세상에 비유한 말인데 이 세상은 동굴이 어두운 것을 비로 쓸어버리고자 함과 한가지 입니다.
이것은 지혜와 신앙과 도덕을 벗어나고 물질에만 편중함이올시다.
인생은 만물의 영장이라 하였으나 무엇으로서 만물의 영장이 되겠습니까. 제일 근본이 마음을 밝게 하여야만 되겠습니다.
즉 심등점화(心燈點火)라는 말이 있는데 마음 등잔에 불을 밝히지 아니하면 동쪽으로 가는 길이 서행이 되고 밥을짓는 것이 모래를 쪄서 밥을 짓는 것과 한 가지가 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훌륭한 생활, 가치 있는생활을 하려면 심등점화를 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학교를 세우고 국민을 교육함이 즉 심등에 점화시키고자 함에 있는 것이올시다. 심전 즉 심지를 개발시키려고 함도 역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본부로부터 농촌진흥자력갱생운동이 제창되어 색복착용이니 생활개선이니 소비절약이니 함도우리 농민자신이 먼저 각성하여야만 될 것입니다.
즉 심등점화를 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갱생계획의 삼대목표로 되어있는 식량충실, 부채정리, 현금수지 균형도 심등에 점화하여 심전을 개발함이 제일근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인은 이것에 힘쓰지 아니함이 유감입니다.
심전을 개발함에는 심등에 점화하고 경신숭조(敬神崇祖)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신사참배나 불전참배를 하여 신앙심을 배양함이 필요한데 신앙에는 합장이 필요한 것입니다. 무릇 예법이 여러 가지가있는데 서양인은 악수함을 예로 하니 옛날 사람은 무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손과 손을 이렇게(악수하는 형용을 하면서) 박수로 서로 손을 잡고, 조선인의 인사법은 이렇게(양손을 꾸부려 손끝을 서로 대고 이마에 대일 듯이 하고 머리를 꾸부리며) 하며, 군인들의 예는 바른 손을 들어 귀에 대는 것으로 되었으니 이것이 모두 무기를 갖지 아니하였다는 표시로 서로 손끼리 쥐며 혹은 손을 들며 하는 것입니다.
불교에도 예법이 여러 가지 있으니 합장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합장하는 법은 고려 때 불교가 성할 때에 성행하였는데 그 후 이조에 와서는 성하지 못한 것입니다.
합장이란 것은 흐트러진 황무(荒蕪)한 마음을 합한다는 의미인데 아무리 산중에 있는 중이 사납게 생겼더라도 합장을 하면 정직하고 온순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합장은 평화의 상징이요, 일치화합이요, 불전에선 불아일체, 부모의 앞에선 친자일체, 장유(長幼)간이면 상하일체, 처(妻)에 대하면 부부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통례를 보면 처에 대하여 합장하고 예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지나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처에 대하여 합장하고 예를 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집안에 있어서 아무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지만 집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하루에 50리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요리집 보이가 하루에 130리를 걷는 것입니다. 부인은 남편이 벌어들인 것을 소비만 하는 것 같으나 부인이 친정에 나가고 아이들은 울고 집안이 씨렁씨렁28) 하면 남편은그만 화가 나서 이놈의 집을 부숴놓을까 하게 됩니다.(일동 웃음) 그러므로 남편 된 사람은 처에 대하여 머리를 꾸부리고 인사는 하지 아니하지만 마음으로는 합장하고 예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부부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심전개발은 합장을 하여야만 되는 것입니다.
불경에 세인거가(世人居家)는 여포웅족(如捕熊足)이란 말이 있습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산중에 들어갔다가 곰을 만나 위태로운 지경을 당하였습니다.
나무 위에 올라갈까 해도 나무 잘 타는 곰이요 바위틈에 숨자 해도 힘센 곰이라 바위를 굴려가지고 하여 피신할 곳을
28) (북한어) 사귀는 정이 버성기어 서로의 사이가 꽤 썰렁한 모양을 뜻함.
생각하는 중 문득 곰아 들어가거라 ‘ ’ 외치니 앞발을 들고 덤벼들어 해하고자 하므로 급히 큰 나무 뒤로 돌아서니 미련하기 짝이 없는 곰은 나무와 함께 사람까지 끌어안았습니다.
사람은 곧 곰이 끌어안은발을 꽉 붙들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곰의 발만 놓으면 위태하니까 장시간을 곰의 발을 꽉 붙들고 있었습니다.
곰도 맥이 빠졌습니다만은 사람은 더욱 힘이 없어 기진맥진하였습니다.
이에 사람의 발자취 소리가 나더니 나무꾼 하나가 그 곳을 향하여 오므로 곧 나무꾼에게 말하였습니다.
지금 나 혼자 곰을잡는 중인데 혼자서는 잡기가 어려우니 같이 곰을 잡읍시다.
이 곰만 잡으면 웅담이니 고기니 하여 상당히 값이 나가는 것이니 같이 잡읍시다.
당신이 도끼가 있으니 그 도끼로 곰의 머리를 때리든지 이발을 붙들든지 하시오. 그러나 당신이 도끼질이 서툴러 대번에 잡지를 못하면 큰일입니다 하니 그 나무꾼이 자기가 그 발을 붙들겠노라고 하여 곰의 발을 붙들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나무꾼에게 곰의 발을 옮기어 쥐게 하고 나와서 곰을 잡으려 하였으나 잡을 용기가 없었으므로 한숨을 휘 쉬면서 나는 곰을 잡기가 싫어서 그만두겠노라 오늘 신수가 사나와서 흉한 곰을 만나 한참 고생하였네 하면서 그만 가버렸습니다. (일동 웃음)
그때에 또한 사람이 그곳을 당도하여 전과 같이 곰의 발을 옮기어 주고 또 딴 사람에게 옮기어 주고 하여 몇 백 년 몇 천 년이 지나 오늘까지 이르렀습니다.
주인의 가정이란 것은 곰발을 붙들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즉 세인거가는 여포웅족이올시다. 실로 가정이란 것은 곰의 발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은 자꾸 자손에게로 전하여 줍니다. 부모가 곰의 발을 버리고 가면 자손이 그 곰발을 붙들고 근심하는 것입니다.
세인은 이 곰발 때문에 신앙생활 도덕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금강산이 천하명산으로 불과 몇십리 안에 있지만 가정이란 곰발 때문에 구경하지 못한 사람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곰발 때문에 강연을 들으러 오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에 포족(捕足)되어 있을지라도 경신숭조의 신앙심으로 배양하여야 할 것입니다. ‘동굴소암(洞窟掃暗)’이나 ‘세인거가 여포웅족’이란 것이 모두 심전개발에 관계가 있는 것이니 대체 심전이란무엇일까.
밖에는 수전, 화전, 사전, 산전 등의 말이 있지만 심전이란 무엇일까 반드시 출처가 있을 터인데 사서 삼경일까 예수교일까, 불경(佛經) 잡아함경(雜阿含經) 제4권에 심전경작이란 문구가 있으니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전 우가키(宇垣) 총독이 심전개발에 대한 운동을 제창하였으니 불교에도 많이 유의하신 모양입니다.
심전경작에 대하여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으니 석가여래는 지금으로부터 2900년 전 인도에서 탄생하시었는데 인생의 진리를 깨달아 즉 도통이 되어이를 방방곡곡으로 철환천하(轍環天下)하면서 포교를 하던 중 어느 해 늦은 봄 농부들이 밭 갈고 씨뿌리는 벌판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때는 점심 먹을 때이므로 5인씩 10인씩 혹은 20인 씩 모여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한 곳 20명가량 모여 있는 곳을 찾아가서 배가 고프니 밥을 주시오 하니 어떤 젊은 농부가 말하기를 ‘농사짓지 않는 사람에게는 밥을 줄 수 없다. 우리가 농사지을 적에 무슨 일을 하여 준일이 있느냐’ 하며 거절해 버렸습니다. 석가여래는 ‘나를 농사짓지 않는 사람이라 하여도 나도 역시 농사짓는 농부이다’ 하니 일반농부들은 ‘그러면 농사농부라면 그 표를 내놓으라. 당신은 종교가로 포교하려 다니는 사람이 그런 거짓말을 하느냐’ 하며 언쟁이 나서 수십 명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석가여래는‘나를 농부가 아니라고 하나 내가 농부인 것을 설명할 터이니 들어 보아라’ 하고 인생이란 것은 육체와 정신 두 가지로 구조되어있어 육체 뿐으로는 인생이라 말하지 못하고 정신만 가지고도 인생이라 말하지 못하는 것이라. 육체와 정신이 구비하여만 비로소 인생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신 농부들이 화전, 수전 혹은 사전에 파경경예(播傾耕藝)하여 생긴 곡식으로 육체를 기르는 외에 정신이 배고플 때에도 심전을 경작하여 마음을 길러야 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심에는 지(知),정(情), 의(意)가 있으니 지는 모든 것을 알고자 함이요, 정은 미술예술이 되고 의도 선악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점점 크고 말을 배울 때 ‘이것은 무엇이고 저것은 무엇이냐’고 어른들도 모를 말을 묻는 때가 많습니다.
아버지는 누가 낳고 할아버지는 누가 낳고 고조부는 누가 낳았느냐고 자꾸 물으면 나중에는 어른들도 대답할 수 없이 그만 아이를 욕하고 마는 것이 보통입니다.
신화동화는 이와 같이 아이들의 지적 욕구에 응답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것입니다.
학교에서 창가 체조를 가르침도 정(情)적 충동을 주기 위하여 교수하는 것입니다.
의(意)적으로 보더라도 아이들은 선과 악을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는 철학 과학이 되고 정은 예술 미술 종교요, 의는 윤리 도덕이 되는 것입니다.
불교는 지적으로는 전미개오(轉迷開悟)하고 정으로는 이고득락(離苦得樂)하고 의로는 지악작선(止惡作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심전의 욕구에 양식을 주는 것입니다. 전(田)이란 것은 지(地)인데 이 땅에서 모든 만물이 생겨나는 것과 한가지로 사람의 마음에도 모든 언어동작이 생기어 나니 곡식심에 싹트는 것만 전이 아니요 희로애락이 싹트는 마음도 전이라 금세에 갖가지 살인 강간 강도 등의 무인도적 범행이 있으나 이것은 심전이 황무한 까닭이외다.
나는 세인의 황무한 심전을 개척하는 농부이라 당신네들 농부의 경작하는 전은 한계가 있지만 나의 경작하는 심전은 무한이다. 천하가 전부 나의 경작하는 심전이다.
춘하추동 사시에 주야를 불구하고 하루도 놀 사이가 없이 심전을 경작하는 것입니다.
당신네들의 말과 같이 종자를 파종치 않으면 싹이 트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심전도 경작을 하지 않으면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석가여래가 말하니 농부일동이 깊이 감격되어 사방에서부터 밥을 가지고 왔습니다.
농부는석가여래가 참된 농부요 자기들은 가짜 농부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경문에 신심위종자(信心爲種子)요 고행위시우(苦行爲時雨)라 지혜위리액(知慧爲犁軛)이요참괴심위원(慚愧心爲轅)이라하여 있습니다. 더욱 고인무신심(苦人無信心)이면 여승무주선(如乘無主船)이요 역여무어마(亦如無馭馬) 장야시갱참(長夜是抗塹)이라 하였습니다. (이때에 청강자 중 어린 학생들이 지껄이고 있었다)
어린 사람들은 어려운 이야기를 하니까 재미가 없는 모양이니 슬픈 이야기 한마디 하겠습니다.
함경북도 무산에 11, 12세 된 소년이 있는데 부모 양친은 일찍 사별하고 삼촌숙부의 집에 의탁하여겨우 보통학교는 일호로 졸업하였으나 상급학교는 가지 못할 형편이어서 어찌하면 더 공부를 할 수 있을까 하고 늘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고학이라도 하리라고 경성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집집으로 돌아다니며 자기를 써달라고 하는 중 부친의 제일(祭日)을 당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유언에도 어머니의 사후에는 조선(祖先)의 봉제사는 네가 맡으라고 하였으므로 이 제일을 당하여 제사 지낼 생각을이리저리 한 나머지 파고다공원에 가서 유지 신사들의 동정금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1전 2전씩 동정을 받아 여 전을 20 만들어 향도 준비하고 제물도 좀 준비하였으나 어디서 제사를 드리겠습니까.
왕십리에서 정미업을 경영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밤중에 자기 정미소 창고를 순회하다가 이상한 불을 발견하고 놀라 그곳으로 가까이 들어가 본 즉 어떤 소년이 향불을 피우고 사배를 드리며 울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인은 더욱 이상히 생각하고 물어 본 즉 금일이 자기 부친의 제일인데 공원에서1전 2전씩 신사들에게 동정을 받아 향도 사고 제물로 설렁탕도 샀으나 뜰에서 제사 지낼 수도 없고 하여 마침 이 창고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제사지내는 것이 죄라면 곧 부친의 죄이겠습니다.
아무쪼록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인이 생각하기를 금세에도 저와 같이 훌륭한 소년이 있나 하고 퍽 칭찬하고 그 소년을 집으로 데려다가 양자로 삼었습니다. 온 집안이 모두 반기며 신명의 도움으로 복동이나 아닐까 환영하여 중학교에 입학시켜 전문대학까지 졸업시켜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즉 신(信)에서 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신심이 없어서는 어찌 만물의 영장이 되겠습니까.
신심이 없어서는 동물과 조금도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돼지가 자기 먹는 밥통을 뒤집어 놓는 것은 신심이 없는 까닭입니다. 맹자님도 무항심자(無恒心者)는 무항산(無恒産)이라 하였으니 신심이 없어서는 항산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신심이 있고 신앙심을 배양한다면 자가의 생활향상을 도모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국가사회를 위하는 마음도 나오는 것입니다. 이번 지나사변(支那事變)29)이 발발한 이때 일조유사지추(一朝有事之秋)를 당하여 의용봉공함도 또한 신심에서 나오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번 사변에 일본군의 연전연승함도 민심이 통일이 되어 일치합심 국민의 신념이 한 뭉치가 된 까닭입니다.
일본을 가보면 도처에 신사불각이 많이 있는데 신불을 신앙함으로써 가정의 융화도 되고 국가의용봉공의 마음도 배양되는 것입니다. 국방애국운동도 신념을 가진 종교의 훈련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총후로 급선무는 신사참배와 국위선양 무운장구 기원제를 올리며 절에 들어가 마음을 배양함이라 하겠으며 생활의 경제를 절약하여 국방에 헌금하고 적성을 피력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오니 아무쪼록유종의 미가 있도록 힘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장시간 동안 정숙히 들어주시어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나의 말씀은 이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7. 희생봉공과 안심입명(1937년 10월 24일, 횡성읍내에서)
작년에 여러분과 면담을 하였고 본일 다시 귀지(貴地)에 와서 여러분께 말씀을 드릴 기회를 얻은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하는 바이올시다. 지금 여러분께 말씀드릴 제목은 희생봉공과 안심입명이라는문제하에서 간단히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현재는 비상시가 시국중대로 변하여 거국일치 전부가 이에 관심을두게 된 것이올시다.
7월 7일에 북지사변(北支事變)이 돌발하여 이래 우리나라는 사건 불확대주의를 위하였으나 불가피하게도 중국 전면적으로 걸쳐서 드디어 북지사변은 일지사변(日支事變)으로 전개되어 일지 교전 3개월여
29) 1937년 발발한 중일전쟁을 뜻함.
에 이른 것이올시다. 현재에 우리나라의 입장은 큰 배가 항해를 할 때에 태풍이 일어나서 파도가 일어나고 그 곳을 암초가 많고 더욱이 해적이 산재해 있어 위험 무비한 경우에 있는 배와 같은 형편인 대일본제국이외다.
이러한 경우에 이른 선원은 물론 일심명력(一心明力)하여 각 방면으로 풍파와 암초 해적을 피하려고 고심할 것이올시다. 즉 우리 일본제국이 이 배와 같은 형편인 고로 선원의 활약과 같이내선일체 상하일치 단결하여 중대시국을 타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외다.
이 중대시국을 타개함에는무력전, 경제전, 사상전이올시다. 일지(日支)에 관계를 말씀하면 원래부터 지역상 또는 동양에 갇혀 있어서 옛날에는 중국의 문명이 발달되어서 이것을 일본에 수입하였었고 일본의 명치유신(明治維新) 이후에는 문명이 더욱 발달되어 중국에 수출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지역상이나 동양에 갇혀있는 절대 서로 협조하여 나아갈 형편이올시다.
그리하여 일본은 동양평화와 지도적 입장에서 영원히 평화한 동양국가를 건설하려고 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실력도 없이 일본을 배반하여 항일 반일 모일(侮日)등 운동을 일으키어 이번의 사변을 초래하고 이권 기타 조약을무시하는 행위를 취함은 전부가 책임이 중국에 있는 것은 사실이고 우리나라는 은인자중 불확대주의를위하였으나 이 불법 무도한 행위는 응징치 않을 수 없어 무력을 발휘하여 제일선 장병을 파견하여 육해공전이 전개케 되어 이미 북지는 삼분의 이 이상을 점령하여 거의 승전을 한 형편이나 중국은 본래지대가 광활하고 민족이 다수하므로 아무리 점령을 하였다 할지라도 방심할 수 없는 것이라.
그래서 조선총독께서는 이번 사변이 중대할 뿐 아니라 장기에 걸친 지구성이 있는 것을 일반 민중에게 인식케하는 동시에 무력전은 뒤이어 경제전으로 화할 것을 언명하고 총후(銃後) 관민은 제일선에서 활약하는장병과 같이 총후에서 생업보국 정신하에 일층 농산어촌의 경제향상을 강조함인 즉 우리는 생산을 증가시키는 반면에 소비를 절감하여 경제의 배양을 도모할 것이올시다. 옛날에는 문화사상으로 일어난 단순한 무력전으로 되었다 할지라도 현대에는 전술한 바와 같이 일에 무력전, 이에 경제전, 삼에 사상전의 삼요소가 겸비하여야 완전히 승리를 할 것이올시다.
이 문제를 타개함에는 희생봉공의 정신하에서 제일선에서 활약하는 장병이 총후 후원의 적성(赤誠)과 희생사상을 배양하여야 할 것이외다.
이 사상을 배양함에는 첫째로 신앙봉사가 필요한데 이는 신사참배, 불상에게 기도 등 신앙을 중심으로 전국민이 일치하여 매진할 것이며 민심이 일치되면 무서운 것이 없이 강하게 될 것이올시다.
단결력의 위대한 것은 모발이라도 합하면 강하고 흩어지면 약한 것이다.
일청전쟁(日淸戰爭) 시에도 이등공(伊藤公)은 비록 중국은 광대한 영역과 4억의 인구를 가졌지만 4억 인구는 4억 사상으로 애국심이 결핍하고 단합력이 없는데 반대로 우리나라는 소지역에 4천만 약 10분의 1에 인구지만 일심으로 천황폐하에 충성과 일사보국 정신하에 4천만 인구가 단결되어있는 관계상 조금도 두렵지 않다고 언명하셨습니다.
과연일청전쟁은 우리나라가 승리한 것이고 그 다음 일러전쟁(日露戰爭)을 보더라도 전쟁 당초에 세계열국은 일본이 패하리라고 추상한 것이 결국은 일본이 승전을 한 것이다. 이것은 곳곳에 산재한 신사불당에서 조만(朝晩)을 불구하고 매일 참배기도를 행하며 민심을 단결케 하는 한편 출정 군인의 위로를 함에있는 것으로 믿는다.
이 신앙봉사의 단련은 비록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대전에 독일이 열국을 대항할때에 국민전부가 예배당의 기도와 무운장구를 기원하며 한편 출정 장병에 대한 총후봉공을 극진(極盡)히 하는 등으로 민심을 단결케 하고 출정군인은 선망(先亡)한 부모의 사진 혹은 수부(守符)를 품에 품고 항상 자신을 축원하였는데 이상하게도 사진만이 적탄에게 명중되고 다행히 자신은 무사하였다는 일도 적지 않았다.
일청전쟁과 일러전쟁 시에도 우리나라 출정군이게는 수부 혹은 천인침(千人針)을 증정하여 그들로하여금 신앙을 굳게 하였으므로 적탄이 비 오듯 하는 전지에서 신명의 수호로 안심입명 하여 대포의 탄환도 겁이 없이 돌진한 것이다.
세계대전 시 프랑스 연합군 보충병을 징모할 때에 한 미모 소년이 지원병으로 입영되었는데 그 소년은 주야의 분별이 없이 전심전력으로 노력을 하는데 부상병에 간호와 여병(女兵)의 수직(守直)30)을 할때에 자기도 역시 수직을 하는 등 만반 사위에 그 기민하고 용감한 것이 실로 타에 보지 못할 모범병이었다.
드디어 그 소년 ‘수자경’은 모범병으로 표창을 받기까지 이르렀다. 어느 때 적과 돌격 중에 소년병은 제일선에 전진 중 적탄이 복부를 관통하여 즉시 군부병원으로 이송하여 상처를 검진 중 물경 한소녀로 판명되었다.
그 소녀에게 출정이유를 물은 즉 다른 의무병과는 절대로 다릅니다.
프랑스 한 촌락 농부(農婦)로서 결혼 3개월에 남편이 소집되어 출정한 뒤로 나는 그 후로 매일 같이 예배당에 가서기도를 하기를 하루바삐 승전을 하거나 남편이 전사를 하더라도 명예스러운 전사를 하라고 축원을 하였습니다.
그 후 불과 수개월에 남편은 전사하였으므로 나는 분연히 조국을 위하여 남편을 위하여 희생하겠다는 결심하에 보충병으로 지원 입영하여 조국을 위하여 남편 대신하여 성심으로 노력한 것이올시다라고 말하고 필경은 자기는 희생봉공을 하였다.
이 경탄할 정보는 연합군 전반에 자극을 주어 장병은 일개 여자의 활약을 근본으로 일치단결하여 결국은 승리를 하였다 합니다.
또 한 가지 부인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세계를 상대로 4년 반에 장구한 전쟁을 하다가 결국 패전을 한 독일을 보건대 남자는 전부가 출정에 당하고 여자는 국내에서 행정 경찰 제반 국무와 철도기관 등 기타 농장 어장 전부를 여자가 분거 집행하였으나 본래 여자는 인내력이 약한 관계상 먼저 머리를 숙이고 평전(平戰)을주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군수품을 공급치 않고 또는 자기 남편이 일시 귀가하면 다시 전지에 출정치 못하게 하고 혹은 출정한 남편에게 귀환을 애원하는 등 실로 출정군인으로 하여금 후회하지 않을 수 없도록 수단을 취하여 필경은 강국인 독일도 전패를 한 것이다.
그러나 그 부인들은 독일이 패전한 것이 자기들로 인함인 것을 각성하고 속히 복수를 주장하였다. 복국(復國)을 함에는 소비를 절약하여 경제의 윤택화가 제일이므로 근검저축의 노력을 해서 현재에 이르러서는 부인의 힘으로 다시 세계의 강국이 된 것이올시다.
우리나라 부인은 독일 부인을 견본삼아 근검저축에 노력하는 동시에 일치단결하여 난관을 돌파할 각오하에서 희생봉공할 신념을 굳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옛날 불광국사(佛光國師)라 하시는 도승은 원구전란(元寇戰亂)시에 「건곤무지탁고공(乾坤無地卓孤笻), 희득인공법역공(喜得人空法亦空), 진중대원삼척일(珍重大元三尺釼), 전광영례참춘풍(電光影禮斬春風)」이라고 영시(詠詩)하여 장사(將士)에게 보내어 주었다 합니다.
이 글은 대자연을 말하여 신앙심이 있으면 안심입명한다는 것이올시다.
전시일수록 신앙심이 필요하게 됩니다.
심야한 때 무인지경으로 통과할 때에 공포심을 가지면 필히 그 곳을 통과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신앙심이 강한 자는 무난히 통과합니다.
이런 것은 국가이나 다같이 큰 일이 있을수록 안심입명하고 신중 조심하여 방비의 방도를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올시다.
이 신앙심에 대하여 또 하나 예를 들어 여쭈면 일본에 어느 외국에 유학하여 의학박사의 지위를
30) 건물이나 물건 등을 맡아서 지키는 것을 뜻함.
얻고 계속하여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로서 중요한 지위에서 활약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부친이 어느 절에서 사거한 후 그 절에 가서 참배하고자 백 여리나 떨어져 있는 그 절을 찾아서 모친과 동행하여 떠났습니다. 그런데 바다를 건너게 되어 항해하는데 중간에 풍파가 일어 대단히 위급한 경우를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학자는 과학에 통달한 자이지만 황황망급하여 겁을 먹고 어찌할 줄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모친은 책(責)하여 말하되 사람은 ‘생이유사(生而有死)’이니 죽음은 당연한 것이다, 조난할수록 안심하고 일념으로 기도하고 염불하여 침착성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고 말씀하시면서도염불을하십니다.
그러자얼마안되어풍파가그치고일행은무사히목적지까지갔다고합니다.
이것도 그 아들은 아무리 과학에 능통할지나 신앙심이 없는 관계로 조난하면 어찌할 줄을 모르고 겁을내어 초조하게 되며 그 어머니는 신앙심이 강하므로 이러한 난관을 조우하였을지라도 조금도 겁이 없이 안심하고 기도만 하여 끝에는 무사히 된 것이올시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과학자는 그 어머니에게 머리를 굽히고 같이 불교를 믿어 신앙심을 양성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공군이 비행기로 적군을 습격할 때에 내릴 때나 날 때나 이때에 대하여 2, 3분에 묵도를 하는 것도 즉 신앙을 굳게 함이올시다.
전회(前回) 세계 미증유사에 하나인 공중육박전에 탄환이 결핍되어 우리나라 비행기는 비행기 미부(尾部)로 적기의 프로펠러를 쳐서 추락시킨 사실도 안심입명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믿습니다.
공군이 비행기에 예(禮)함과 같이 농자는 농구를 위하고 상인은 주반(珠盤)을 위하고 관공리는 각 분담 기구를 위하여
신앙을 향상하여야 할 것이고 애국사상과 거국일치 단결하여 경제에 굴함이 없이 시국을 타개하여 철두철미하게 중국 4억을 선도(善道)로 인도하여 영원히 동양평화를 확보하기를 바라고 약술하나이다.
8. 총후부인의 책임(1937년 1월 26일, 평강군 문산리 부인회에서)
이 사람은 중이올시다. 여러분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 시국은 대단히 비상한 시기에 누구를 막론하고 시국에 대한 인식을 가져야만 되는 고로 우리 중으로서도 이 시국에 노력치 않으면 안 될 것이올시다.
그리하여 나도 시국에 노력하여야 하겠기에 귀 면에 오게 되어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지금말씀할 것은시국에 대한말씀이올시다. 중국과전쟁을 하는우리 일본은전쟁하기 좋아서하는것이 아니라 사세(事勢) 부득이 하여 싸우게 된 것입니다. 동양에 있는 일본, 중국, 만주국은 새로 휴수(攜手)31)하여 평화를 지켜야할 터인데 중국은 이것을 생각지 않고 일본을 배척하려고 여러 가지 불법행사를 하여 동양평화를 침해하는 고로 일본은 도저히 방치할 수 없어서 이제는 초달(草撻)로서 철저히 응징코자 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 오신 여러 부인회원은 남녀동등으로 시국에 인식을 지각하여 일치 협력하여 노력하여야만 됩니다. 옛적에 부인은 가정 심규(深閨)에 있어서 세상사를 알지 못하고 세월을 보냈으나 지금은 정반대로 남자와 일치 협력하여 내외사를 합리적으로 노력하여야만 됩니다.
우리 조선이 일본과 합병한 지 27년이올시다. 그런데 예를 들어 말하면 조선여자가 일본으로 시집간지 27년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일본으로 출가한지 27년간에 무엇을 하여 놓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으로부터 여자로 노력해서 보국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옛적 구주대전32) 시에 독일에서 여자는 전부 출동하여 출정하는 남자들을 위하여 국가를 위하여 4,
31) 손을 마주 잡는다는 뜻으로 함께 감을 이르는 말.
년간을 일반 국가사무를 집무하여오다가 5 전쟁은 계속하여 4년간이나 장기항전이 되는 관계로 물품이 절핍되는 고로 경제타박을 받아 생활에 지장이 적지 않자 곤란 막심을 불선(不尠)33)할 때에 이르러 여자들은 혁명을 일으켜 이와 같은 곤란을 견딜 수 없으니 전쟁을 중지하자는 결의로서 관청에 다수 출원하여 국내에서 요란을 발생하여 결국은 독일은 실패전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 각기 농가는 전쟁시 다수 비용을 지출한 관계로 불경제와 부채 증대로 생활이 불능상태에 빠진지라 곤궁함에 이르러 비로소 비상시국일수록 국민은 남녀 불구하고 끝까지 활동하여야만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부녀자는 또다시 남자와 같이 활동할 것을 굳게 맹서하고 근검저축으로써 노력을 시작할 때 노력 중 일례를 열거하면 여자들은 성냥을 사용할 때 신속히 사용할 목적을 이루고 즉시 소화하여 남은 여목(餘木)을 집취(集取)하였다가 그것을 가지고 제작공장에 가서 다시 화약을 붙여달라고 해서 다시 사용하여 왔습니다.
혹 이와 같이 노력한 결과 불과 수년 독일은 회복하였으니 여자의 힘이 얼마나 중대하며 위대한것을 알게 되니 옛날 여자로만 생각지 마시고 힘껏 분투노력할 것입니다.
또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여러분에게 한 선물을 드리고자 합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다리미와 인두를 드리고 또다시 거울을 드리겠습니다. 거울을 드리는 것은 얼굴이 어떠한 흑색이 있다
든지 기타 오점이 있을 때에나 화장할 때에 반드시 사용하여 화려하게 하고 좋지 못하던 얼굴이 남 보기에 좋아지는 것과 같이 내 허물이 있거든 아는 즉시 개과하여야 될 것입니다.
다리미는 구긴 옷을 잘 펴는 것인데 구긴 옷을 펴서 입고 나가면 타인이 볼 때 마음에도 구김이 없이 좋게 보입니다.
인생 또한 하등 과실이 없이 생활하는 것이 이 옷에 구김살이 없이 보기 좋은 것과 같습니다.
이 주름살이라는 것은 우리 인민이 공연이 슬퍼하여 운다든지 노(怒)하여 질훤(叱喧)한다든지하는 것이 구김살인데 이 구김살을 펴려면 인두보다 더한 성인의 말씀, 불인의 말씀을 잘 들어 좋지못한 구김이 있는 것을 전부 펴야 합니다.
여기 오신 여러분은 구김살이 있거든 다 내어던지고 다 곱게 펴기를 바랍니다. 부녀자로서 착하고 똑똑한 이로 구김살이 없이 안락한 생활을 하려면 먼저 한 가정을 화목하게 하여야 합니다.
친모로 자기 친녀를 볼 때 모두가 다 잘났고 어떤 일이든지 다 잘한다고 사랑을 하지만 시어머니로 며느리를 볼때 여러 가지 별별 흉을 봅니다. 옛적에 며느리 흉을 하도 볼 데가 없어서 하는 말이 우리 며느리는발꿈치가 달걀과 같이 둥그래서 볼 수 없다고 흉을 보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어머니 되시는 여러분은 곧 이러한 마음은 고치기를 바랍니다.
시어머니로 며느리를 잘 사랑해야 집안이 화평해 지고 남편이라든지 시아버지라든지 다 즐거워하여 화순한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이 반대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염증(厭憎)하여 불화를 초래하면 남편은 들어와서 이 모양을 보고 화가 나서 다시 나가 주색잡기에 침범하게 되어 결국은 그 집은 망하게 됩니다.
집안은 잘 되려면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의가 좋아야만 성가(成家)하게 됩니다.
옛적에 한 집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압박을 주며 흉을 보는데 며느리는 효부로서 극력 순화하게 효성을 다하여 오나 시어머니는 종시 열도(熱度)를 가하여 오므로 며느리는 생각하다가 하루는 여승을 만나
32) 제1차 세계대전을 뜻함.
33) 적지 않다, 드물지 않다는 뜻.
이 사유를 말한 즉 여승 답이 이 동리 후방에 돌부처님에게 정성으로 축원하면 화평히 살 수 있다고 말하므로 즉시 주야를 불구하고 축원을 하였습니다.
시어머니는 이것을 알고 못 가게 할 방책으로 매일 식후에 쌀을 한 되를 쓸게 하였으나 시어머니 시키는 일을 다 끝내고는 또 축원하고 오는 지라 시어머니는 그 다음 날은 두 되 그 삼일에 세 되 이와 같이 증가하여 못 가게 하였으나 며느리는 평화한 가정으로 살림을 할 생각으로 할일을 다 마치고는 하루도 빠짐이 없이 계속하여 오던 차 하루는 그 시어머니가 그 모양을 보리라고 그 곳 뒤에 숨어서 자기 며느리 하는 짓을 본 즉 돌부처에 가서 하는 말이우리 시어머니 마음을 고치며 화순케 하여 달라고 축원하는 것을 보고 시어머니는 골이 나서 때리려고 소리를 칠 때 며느리는 그만 겁이 나서 아무 말 없이 돌아서 집에 온 지라 그 후 며느리는 자기 시어머니가 들어오면 사죄할 생각으로 고대하였으나 종시 오지 않기로 문 밖으로 나가서 차츰차츰 돌부처에가서 보니 자기 시어머니는 전에 하던 모양으로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조금도 부동하고 서 있는지라 며느리는 겁이 나서 시어머니 앞에 가서 죄를 사하였던지 그제야 말을 하며 운신을 하여 전일부터 잘못한 것을 며느리한테 말을 하며 그 후부터 화평하게 잘 살았다는 것이 있습니다.
그 반면에 어떠한 집에서는 망동 며느리를 데려온 집이 있는데 시어머니의 말과는 정반대로 하여 어떤 말이든지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사하여 오는 관계로 양순한 시어머니는 별별 수단으로 이 며느리를 효부로 개선하여 고부간에 화합하여 살림을 하며 근검저축하여 대부가로 성가한 것이 있습니다.
옛적에 한사람이 아내를 얻으려고 들어 올 때 장인이 딸을 보고 하는 말이 새 옷과 좋은 음식으로 생활을 하라 하는 것을 이 사람이 듣고 대경실색하여 할 수 없이 실심한 태도로 귀가하였는지라 이 사람은 필연코 새 옷을 요구하고 좋은 음식만 취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반대로 도무지 요구치 않는지라 고로 남자는 전에 들은 말을 하며 어찌하여 그런 조미(粗未)한 옷과 조악한 음식을 먹는가 하고 물은 즉 여자는 하는 말이 ‘그때에 하신 말이 좋은 옷을 입으라 한 것은 때 묻은 옷을 때때로 세탁하여 입으란 말씀이고 좋은 음식을 먹으란 한 것은 때로 음식을 부패하지 않게 하여 깨끗이 하여 먹으란 말씀이요 결코 호의호식으로서 고등생활을 하라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습니다’라고 답하였습니다.
어떤날 남편은 자기 처한테 와서 하는 말이 과거일은 4, 5일 후이나 원래 빈한한 형편에 노비 한 푼이라도없으니 갈 수 없다고 한탄하며 우는 지라 처는 그때 이번 과거에 가면 반드시 과거를 할 것인가를 묻고자기 옷장 속에서 돈 40량을 내놓으니 남편은 감사함을 인사하고 과거길을 떠나가서 과거에 진사 급제를 하여 일등 장원하여 홍패 백패를 가지고 온지라 그간 처는 남편이 과거하기를 기원하기 위하여 후원에 나가서 밤낮 불구 축원하였습니다.
첫째 나라에서는 특히 생각하시고 양주 목사를 제수케 되어 여러 관속을 데리고 양주읍에 가서 훌륭히 지낸 말이 있습니다.
이상 몇 가지 말씀한 것은 부부 합동하여 근실(勤實)히 노동하고 또 질소(質素)로서 검약하여 저축할 것이며 가정의 살림하면 반드시 남편보다 여자의 주장이 필요함을 생각해서 노력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너무 오랜 변변치 못한 말을 올리어미안합니다. 그만 그칩니다.
9. 비상시국과 화경(和敬)의 이상(1937년 11월 27일, 평강군 옥봉(玉峰)에서)
비상시국이란 말은 우리 일본제국과 중국과 4~5개월을 싸우고 있는 것을 이르는 것인데 4~5만의 병사가 북삭(北朔)34)에서 전투하고 있습니다. 우리 총후(銃後)에 국민으로서는 각자 생업에 성심성의를가지고 보국할 것을 각오치 않으면 안 됩니다. 이전 태평시대와는 다릅니다. 시국에 대한 말씀은 도,군, 면 경찰관서 직원께서 촌촌부락마다 순회하면서 강연 강화(講話)를 해서 충분히 하실 줄로 압니다만은 내가 다시 간단히 말씀하겠습니다.
일본은 동양에 안정세력을 가지고 있고 동양은 일본, 만주, 중국 즉 삼국이 있는데 우리 삼국은 미래의 행복과 동양평화유지를 위하여 과거에 많은 희생도 있었습니다. 동양에 평화는 일본의 세력에 있는데 이전 일청(日淸), 일러(日露), 만주사변 등의 희생도 동양평화를 유지함에 있습니다.
즉 만주국도 우리 일본의 힘이 아니면 잘 돼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진의를 모르고 오해하여 서양각국과 친하여 배일(排日)해 온 고로 이번 사변이 일어난 것이니 전 책임이 중국에 있습니다.
북지(北支)는 우리의 생명과 특수권익을 가진 지역이므로 상업의 증진과 경제개발을 위하여 20억 원의 거대한 자본을 늘이고 있습니다. 또 거기는 주병권(駐兵權)도 있습니다.
이번 사변은 주병권침해로 인한 것이고 더욱이 이 사변에 원인은 멉니다.
중국 사람들의 배일, 항일,모일(侮日)을 하고 심한 것은 학교의 학생생도까지에도 교수선전(敎授宣傳)을 해왔습니다.
동양의 정책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정부는 응징의 방침을 수립하여 황군을 파견한 이래 아울러 나갈수록 연전연승하여 북지(北支)는 전부 북해(北海), 소주(蘇州), 남경(南京)까지 무인지경(無人之境)처럼 점거에 들어갔습니다.
중앙정부 수령인 장개석(蔣介石)은 남경에서 피하여 중경(重慶)으로 옮겼는데 끝내 항복치 않으면 중경까지도 공격하리라고 오늘 아침 신문(新聞)에서 보았습니다. 현재의 상황은 십분의 칠(十分之七)은 이겼습니다.
그 수습이 어렵고 사변은 상당히 장기에 이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영국, 미국, 프랑스, 러시아(露西亞)의 각국의 지지가 있으므로 아무래도 2~3년의 긴 날이 걸릴 것이니 우리 국민은 특별한 대응책이 필요합니다.
농산어촌민(農山漁村民)은 견인지구(堅忍持久),35) 일치단결이 더욱 필요할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전선의 황군보다 총후의 우리 국민책임이 더 큰 것입니다.
군량, 마량(馬糧), 총기 등의 군수품도 우리가 보내줄 책임이 있습니다. 이상의 여러 가지를 경제적으로 제일선의 장병에 보답하며 후고(後顧)에 염려가 없도록 출정군인의 가족유족도 성의와 온정으로 동정해 주어야 합니다.
위문금도 충실히 바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각오해야 됩니다.
그러한 고로 물질적으로도 필요하나 정신적으로도 필요한데 즉 심전개발(心田開發)이 필요합니다. 심전개발이라는 것은 심의 개조인데 심전개발을 해야 생활도 안정되고 향상됩니다.
심전개발(心田開發)
불교 잡아함경(雜阿含經) 제4권
심전경작(心田耕作)이라함에서 나왔습니다.
마음(心)은 만 가지를 하는 것인데 즉 마음을 가지고, 집도 짓고, 곡식 심는 것입니다. 용지(用地)가 우리의 생명에 필요합니다.
민(民)은 이식위전(以食爲田),밭 전(田)은 입 구(口)자 네 개가 모인 모양. 인(人)은 이식위천(以食爲天)=날 일(日) 두개가 병행하면 명(明)자, 나란히 부친 것이 밭 전(田)입니다.
고로 전(田)은 농가에 제일 필요한 것입니다. 애당초부터
34) 북방의 오랑캐의 땅.
35) 굳게 참고 견디어 오래 버팀.
농업(農)은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니 전은 우리 생활에 또 중대합니다. 그러니 심(心)도 전(田)도 다 중대합니다.
심(心)에서 좋은 일, 나쁜 일, 친하며, 안 친하며, 우습고 슬프고, 기쁜 일의 만사가 벌어져나오는 것입니다. 또 산에 초목도 벌어져 나옵니다.
옛적에 석가여래(釋迦如來)가 일찍이 도통해 가지고 진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방방곡곡이 세계를 무대삼고 다닐 적에 어느 여름 농촌 벌판에서 수천인이 삼, 사십 명씩 군데군데 서로 모여 앉아 점심을먹는데 그때에 부처님이 지나다가 ‘나는 배가 고프니 점심을 좀 달라’고 하니 어느 청년 하나 있다가 대답하기를 ‘밥이 없다’하면서 ‘당신이 미리 올 줄 알고 밥을 해 두지 않았으니 당신 줄 밥은 없다’고했습니다.
부처님이 ‘물론 내 밥은 없을게오 당신들의 밥을 십시일반으로 나눠주시오’했습니다. 농부들은 ‘우리는 우리 손으로 만들어서 우리가 먹는 것이니 당신은 먹을 자격이 없다 가래질을 했느냐, 종자를 뿌렸느냐, 김을 매었느냐, 벼를 베었느냐, 도리께질을 했느냐, 당신도 일을 해서 먹으라 도(道)고 무엇이고 다 버리고 농사를 지으라’고 했습니다. 부처님 하는 말이 ‘농사 안 짓는 사람은 못 먹느냐 나도 농부에하나이다. 전답을 갈아야만 농사가 아니고 나는 여기서 말하는 것이 농사다’하며 말하고 자꾸 자꾸 피차 떠들고 법석할 제 온 벌판에 사람이 산 같이 모여 왔습니다. 이때에 부처님이 말씀하기를 ‘농사짓는방법은 몸뚱이 만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으로 하는 것이다. 머리 속에서 나오는 마음(心)이 있어서 사람이다.
정신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몸뚱이만 있고 정신이 없으면 헤애라비고 또 몸뚱이가 없고 머리 정신만 있으면 귀신이다. 몸과 머리가 있어서 만물의 영장이 된다. 몸뚱이를 먹이기 위해서 농사를 짓는 것이고 사람은 먹고 입고 잠자고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인무학(人無學)이면 비인(非人)이다.
염치가 사람에게 없으면 짐승(개, 돼지)과 같다. 금수도 배고프면 먹고 치우며 굴속에 드는 것이다.
사람은 마음이 양식을 구하고 정신을 배부르게 하는 것이 제일이다.
고서에 화호난화골(畵虎難畵骨),지인불지심(知人不知心)이라 하였으니 마음(心)은 무형이다.
마음(心)은 형용(形容)이 밉고 곱다는 만가지를 생각하는 것이 심전(心田)이다.
사람의 마음을 내가 볼 때에는 「황무지」라 왜 그러냐 하면 상살(相殺), 강절도(强窃盜) 등 모든 악이 차서 사람들이 심전을 경작치 못하였으므로 황무해졌다.
그러므로나는 심전을 경작하는 사람이다. 농부들은 춘하추(春夏秋)에는 일을 하나 겨울(冬)에는 쉰다.
그러나 나의 심전경작면적은 동남서북지구 처음부터 끝까지 수십만 리에 이른(亘)다. 만나는 사람마다 가르친다.
만나는 대로 밤낮 가르친다. 사람으로 하여금 임금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붕우(朋友)에게 믿게하며 여인은 남편에게 공경하도록 겨울도 쉬지 않고 밤도 낮도 헤아리지 않고 세상에 훌륭한 사람만되라고 가르친다.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에는 사람이 제일이라.
다른 동물은 기어 다니지만 사람은머리를 하늘에 두고 하늘에 가깝도록 다니는지라.
나의 농사는 신심위종자(信心爲種子), 고행위시우(苦行爲時雨), 지혜위리액(智惠爲犁軛), 참괴심위원(慚愧心爲轅).
신심위종자(信心爲種子)라 하는 말은 남편이 처를 믿지 않고 처가 남편을 믿지 않으면 집안이 망하고 아버지가 아들을 불신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불신하면 집이 망하나니 이와 같이 자꾸 자꾸 불신이모여가면 나라가 망한다.
아들이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가 아들을 믿으면 집이 흥(興)하고 남편이 부인을 믿고 부인이 아버지를 믿으면 집이 흥하며 이와 같이 신심(信心)이 모여가면 나라가 흥(興)할 것이다 신 은 성 이다 . (信) (誠) .
남편은 부인에게 성심으로 하면 집이 화(和)하고 아버지와 자식의 대함을 성심으로 하면 가화(家和)한다.
지금 우리도 비상시국에 있어서 황군은 우리를 믿고 우리는 황군을 믿어야만 국난을 타개하겠는즉 국내 사람은 최후일각까지 후원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처님 믿는 것(信)을 종자로 삼는다.
고행위시우(苦行爲時雨)란 것은 간단히 말하면 어렵게 실행하면 때에 비가 오는 것과 같다.
지혜위리액(智惠爲犁軛)란 것은 지혜로 버선을 삼는다는 말인데 어떤 방법으로 가르쳐야 천하에 한사람도 빠지지 않고 전부 충효의 사람이 되도록 할까 하는 것입니다.
참괴심위원(慚愧心爲轅)이란 말은 사람이 참괴심(慚愧心)36)이 있어야 향상이 될 것인 즉 항상 참괴심으로 멍에를 삼으라 합니다.
이상의 세 가지로써 심전개발의 농사를 짓는다. 즉 화교의 정신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부처님은 「육화교합(六和敎合)」이란 것으로 설교했으니
1. 신화동경(身和同經)
2. 구화무쟁(口和無爭)
3. 의화무건(意和無建)
4. 견화동해(見和同解)
5. 계화동도(戒和同導)
6. 이화동균(利和同均)
1.은 수신제가(修身齊家)라 남에게 잘 뵈도록 몸을 단정히 가지는 것이고
2.는 내외나 형제나 친구 부자 등의 전부가 이미 화(和)하지 않으면 쟁투(爭鬪)가 나는 것이다.
옛적 어떤 가정이 있는데 그 남편이 술이 취하여 집에 들어오면 주정질을 하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라 어떤 때는 술 먹고 집안에 들어와서 마누라 머리채를 쥐고 막 때려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너무도 기가 막혀 마누라는 남편의 주정질을 고치기 위하여 뒷산 절(寺)에 가서 기도드리며 어느 중(僧)한테 물어보기를 자기 남편이 술 먹고 주정질을 하니 가정불화가 생겨서 기도를 드리러 왔나이다.
무슨 좋은 도리가 있으면 가르쳐 주세요. 중의 대답이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남편이 술 먹으러 나가거든 방 구석구석에 물을 떠 놓고 있다가 남편이 술 먹고 들어와 주정을 시작할 때는 떠놓은 물을얼른 마시고 하면 장차 가정이 화합하리라고 일러주었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술 먹고 여전히 문밖에서부터 혜욕질하며 들어올 때 마누라는 중이 시킨 대로 떠놨던 물을 마시고 또 마시고 하니 남편이 생각하기를 이년이 오늘은 벙어리가 되었나 하고 한참이나 욕질을 해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러니 남편은 싱거워서 그만 주정질이 자연 없어졌습니다.
맞장구를 쳐야 불화가 생기는 것인데 여인이 물마시고 대답을 아니 하니 그래서 싸움이 없어져서 그 후는 화합해졌습니다.
또 한 예는 어떤 화합한 가정과 불화합한 가정이 있는데 화합한 가정에서는 아들이나 며느리가 잘했더라고 항상 잘했습니다 라고 해서 집안이 화합하고 불화합한 집에서는 잘못했어도 잘했다고만 하니늘 싸움이 잦아서 하루는 불화합한 집 사람이 화합한 집사람에게 그 연유를 물으니 그 대답이 우리 선
36) 부끄러운 마음, 염치.
조의 유훈(遺訓)이 상하를 막론하고 늘 잘못했다고만 하면 불화는 없는지라 하셨기에 그 유훈을 지켜오니 과연 가정이 화합한 가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3.은 문구 그대로입니다. 뜻이 화해야 틀림이 없습니다.
4.는 의견이 화해야 틀림이 없는데 단체나 국가도 의견이 화해야 융성할 것이고 남의 의견을 무시하면 아니 되며 국론통일도 즉 여기에 기인한 것입니다.
5.는 국민은 절대로 국법을 준수하며 가정에서는 가장의 말을 잘 들어야 할 것이고 불교에서는 계(戒)로써 절대복종케 하는 것이니 계라는 것은 국가에는 즉 법이요. 사회에는 도덕이요. 가정에는 가헌(家憲)과 같은 것입니다.
6.은 이불가독식(利不可獨食)인데 즉 가정에서도 남편이 자기 혼자만 돈을 쓰지 말고 부인에게 금비녀 같은 것을 사주어야 불평이 없을 것입니다. 또는 자기 혼자 돈이 많아도 사회사업이나 자선사업을해야만 하고 또는 크게 말하면 국가비상시에는 국가에도 헌납을 해야만 국가가 평정히 나가는 것입니다.
즉 세상은 혼자는 안 되며 경제융화도 이것입니다.
1. 경우무숙견(耕牛無宿牽)
2. 창서유량(倉鼠有糧)
3. 만사분기정(萬事分己定)
4. 부생공자망(浮生空自忙)
해설하면 밭가는 소는 묵은 풀이 없고 곶간 속 쥐는 양식이 있는지라. 만사가 분수가 이미 정해 있는데 세상 사람이 공연히 스스로 바쁘게 군다. 즉 다시 말하면 소는 일을 해도 먹을 것이 묵어있지 않고쥐는 아무 일도 안 해도 늘 양식이 많다. 그와 같이 세상 사람의 일도 운수가 정해 있는데 공연히 자기의 이익만 취해서 덤빈대도 안 되는 것을 각오치 않으면 안 됩니다.
최후로 단단히 여러분께 부탁하여 말씀할 것은 한마디 있습니다.
옛적에 양두사(兩頭蛇)가 있는데 이 뱀은 꼬리와 머리와 늘 싸우고 있습니다. 머리가 꼬리를 보고 하는 말이 ‘나는 눈도 있고 코도 있고 입도 있고 해서 먹고 듣고 사람의 해(害)도 피하는데 너는 몸도 죽고너는 코도 입도 없고 나만 따라다니느냐, 내가 먹어야 너도 먹고 산다’고 했습니다. 꼬리가 하는 말이‘뱀은 꼬리가 있어야 뱀이다. 내가 없으면 너를 누가 뱀으로 인정하겠느냐 내가 방해하면 너도 먹지 못한다.’ 하루는 어디를 가다가 나무 위에 올랐을 때에 꼬리가 나뭇가지에 자기 몸을 칭칭 감고 며칠 동안 풀어주지 않으니 머리가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라 그때에 머리가 항복하며 통사정을 했다.
꼬리는항복을 받고 자기 몸을 풀러 땅위에 내려왔습니다.
그때에 머리가 하는 말이 그러면 네가 먼저 앞서서다니자하고 그 후로는 꼬리가 앞서서 다니다가 눈이 없어 보이지 않아서 그만 불덩이에 들어가 타서죽은 일이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상하가 분명히 정해 있으니 상하는 일치화합 해야만 됩니다. 세상은 서로 화합일치단결해서 살아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대화교정신(大和敎精神)을 잘 깨달으시고 이 비상시국에처하시며 일본제국이 바른 정신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끝)
10. 신앙생활과 거화취실(去華就實)(1937년 12월 6일, 김화군 금성(金城)에서)
작년 7월 이곳에서 여러분을 대하고 1년 후인 오늘 또 다시 여러분을 대하고 말씀드리게 된 것을 적지 않은 인연으로 압니다. 시국에 대하여는 이미 도(道)나 군(郡)에서 여러 가지로 상세히 말씀드린 바있겠기에 간단히 한 말씀드리고 정신생활에 대하여 몇 마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지나사변(支那事變)에 대하여 개략적으로 말씀하면 이번 사변의 원인은 전부 중국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원래 우리 일본은 세계적 안정세력으로서 동양평화의 맹주로 한 손으로는 만주국을 한 손으로는 중국을 껴안고 영원한 동양평화를 기도(企圖)하여 왔던 것입니다. 즉 동양평화라는 것이 우리나라의 목적이오, 이상이오, 방침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우리의 이 노력에 점점 어그러질 뿐 아니라 전연 이해하지 못하고서 역화사상(亦化思想)으로 세계를 뒤엎으려는 음흉하기 그지없는 소비에트 러시아(露西亞)와 악수하여 나가려 하며 우리나라의 친애, 부조(扶助)의 친절한 태도를 단번에 배척하고 항일배일을 계속하여 왔던 것입니다.
중국은 자진하여 우리나라와 제휴하여 동양평화를 수립할 것임에 불구하고 일본의 요구를 배척하였습니다.
역사를 소고(遡考)37)하여 볼진대 과거에 있어서 만일 동양에서의 일본의 세력이 없었더라면 중국의 전판 국토는 세계 각 국에 영토로 되었을 것이 명백한 사실이요. 오늘날 중국 심장이라 할 본부만이 남아서 유지되어가는 것도 오로지 일본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하므로 이 점에서라도 중국은 우리 일본에 대하여 감사하며 제휴(提携)하여 나아가며 동양평화를 위하여 노력할 것인데 도리어 항일, 모일(侮日)을 국시로써 주재영사관원의 살해, 재류나인(在留那人)의 납치, 구타사건 등 모일적(侮日的) 적극행동을 노골(露骨)적으로 취하여 왔습니다. 즉 지난 7월 7일 사변 발단 이전 중국은 국내 각 언론기관 각 학생, 아동층을 통하여야 항일, 모일, 배일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고취하여 왔습니다.
그리하여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예민한 형세에 이르렀던 것이 드디어 7월 7일 밤 북지(北支) 주둔 황군이 노구교(蘆溝
橋)에서 야간 야외연습 중에 중국군의 불법사격으로써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변발단과 함께 우리측에서는 즉시 마치안(溤治安), 송철원(宋哲元)에 대하여 엄중항의를 하는 한편, 8일 오전 중으로 패퇴시키기를 약속시켰던 것이니 마(溤), 송(宋)은 자기에 직속군대가 아니므로 주지할 바 아니라는 대답을하게 되자 이를 비적(厞賊)으로 인정하고 섬멸(殲滅)키로 하고 드디어 소탕하게 되자 중국군은 공공연히 적대행동을 취하여 온 것이다. 무적황군에 하나에도 도저히 대적할 여지가 없어 백기를 들고 진사(陳謝)38) 해오자 우리 편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사건을 무사히 해결코자 힘썼으나 송철원은 표면만으로 진사를 보이고 실지에 있어서는 남경정부(南京政府)39)와 연락을 취하는 한편, 중앙군을 북상시키며뒤미쳐 □방(□坊)불법사격사건, 북평광안문불의타사건(北平廣安門不意打事件) 등 적대행위를 취하고 장개석(蔣介石)은 장기항일을 선고하는 등 본거를 근절키로 결의한 것입니다.
즉 우리 제국정부는 3억 7천만의 중국 민중을 도탄에서 구하기 위하여 악분자를 응징(膺懲)코자 정의의 군대를 파견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발단 후 불과 수개월의 금일 십분의 팔, 구는 함락(陷落)시키며
37) 거슬러 생각해 본다는 뜻.
38) 까닭을 설명하며 사과의 말을 함.
39) 장개석(蔣介石)이 수장이 되어 좌파 무한(武漢)국민정부에 대항해 남경에 수립한 국민정부를 뜻함.
전 중국을 점령한 감(感)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경 함락이 가까운 금일 아직도 장개석은 사변으로 인해 천도(遷都)를 하는 등 장기작전을 계획하고 있는 것은 그 배후에 어떤 세력이 숨어 있는 것이므로 이를근절치 않으면 안 될 것이므로 그리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장기에 이를 것임은 총독각하의 훈시로써 명백한 것입니다.
고로 우리 국민은 일치협력하여 시국 난관 극복에 매진(邁進)하는 동시 생업보국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에 성의를 계속하여 얼마나 장기에 이르러 지구전에 들어갈지라도 이것을 돌파해 나갈 각오가 필요한 바 이 난국돌파에 대한 방법여하에 있어서는 각인각종에 의견이 있을 것이다.
나는 종교방면에 있어서의 신앙생활에 의한 천화취실(天華就實)40)로써 극복치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신(信)하고 이를 강조하는 까닭(所以)입니다. 신앙은 마음을 긴장(緊張)시키는데 필요한 고로 우리는 신사참배, 경신사상(敬神思想)의 고취(鼓吹) 등 믿음을 통하여 국민전체가 단결을 해야할 것입니다.
각 농촌의 중추인물(中埾人物)이 각기 신앙심이 충만하다면 어떠한 외적강적이라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고어에 ‘우리는 항상 전쟁을 하고 있다’함과 같이 우리는 자신, 가정, 사회, 생활을 통해 언제나항마(降魔)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1. 내발(內發)적 속박과 2. 외습(外襲)적 속박이있습니다.
내발적 속박은 욕망, 허욕, 부정한 마음 등 중심에 고통을 익히지 못하는 가운데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속박하는 것인 바 인생은 여잠처이충(如蠶處爾虫)이라는 불교의 말씀과 같이 인생은 누에가 자기에 뽕을 실로 자기의 몸을 스스로 어리 여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외습적 속박은 자유와 욕망 또는 하고자 하는 마음을 외부에서 제지하는 장애물이 있는 바 이를 가리켜 외습적 속박이라 하는 것입니다.
왕양명(王陽明)의 말씀에 「산중 도적을 무찌르기 쉬우나 심중(心中)의 도적은 무찌르기 어렵다」하는 말이있음과 같이 우리는 마음에 도적을 이기기 어려운 것입니다. 수양(修養), 수도생활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전쟁을 어찌하면 이길까 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며 신앙생활은 이것을 제지해 나가는 유일의 무기입니다. 국가의 내란, 가정의 내란, 마음의 내란을 이기지 못하는 고로 외란이 생기는 것이므로 마음의 승리가 가정의 승리이며 국가의 승리임으로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일본은 신(神)을 중심으로 건국한 나라입니다.
우리는 국민도덕을 고정하고 위(上)로 황실을 모시고 고유한 신앙심을 배양(培養)하는 가운데 이 모든 속박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면 이 신앙생활은 어떠한 방법으로 익혀나가야겠는가 힘에 대하여 말씀하겠는바 즉 삼심(三心)의 수양이란 것이 있는데 1. 환희심(歡喜心) 2. 자애심(慈愛心)
3. 견고심(堅固心)의 세 가지를 가리켜 삼심(三心)이라 합니다. 첫째 환희심은 보은감사의 정신인 바 나라는이한몸이있음은, 1. 국왕은(國王恩) 2. 부모은(父母恩) 3. 삼실은(三實恩) 4. 사장은(師長恩) 5. 사회은(社會恩)의 다섯 종류 대은(大恩)의 덕(德)임을 생각하고 보은감사의 염(念)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먼저 국왕은이 없어서는 안 될 것인바 보은감사의 진수는 국왕은입니다. 국가에 어려움이 있을 때는그 생명을 바치어 국왕께 보은치 않으면 아니 될 것입니다. 유대민족(猶大民族)은 부(富)의 축적으로는세계에 제일일 뿐 아니라 또한 세계적 학자가 많습니다. 돈이 많고 학문이 있고 인격이 있으며 기술이
40) 거화취실(去華就實)의 오기. 겉치레를 삼가고 실질을 추구한다는 뜻.
있지만 가는 곳마다 패배를 당하여 쫓기는 원인은 다른 것이 아니라 국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일월(日月)과 같은 황실을 뫼시고 대일본국토에서 안락한 살림을 하게 된 것은 오로지 국왕은입니다.
고로 가정교육도 국왕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라는 충효교육을 근본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음에 부모은은 ‘경부지천(敬父知天) 경모여지(敬母如地)’란 고어와 같이 부모에게 효하고 그 은혜를 보답해야 할 것이며 불법승삼보(佛法僧三寶)의 은혜를 감사하고 나에게 지혜를 주고 학문을 주신 스승(師長)의 은혜에 감사하며 사회에서 살아가며 사회에 은혜를 입은 이상 사회은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더 말할 수 없이 불행하고 비참해서 다시 용납할 수 없는 자라도 이 5대 은혜를갖지 않는 자 없고 5대 은혜 중에 빠지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 어떠한 사찰에 노승이 실수해서 다리가 부러졌을 때 제자들이 위로하니 노승이 웃으며 말하길(笑曰) ‘늙어죽을 때 이리된 것은 부처님이 깨우쳐 주심이 오히려 늦은 것이다. 따라서 감사를 모르고 지나왔으니 다리가 부러지고 다리의 은혜를 깨닫겠다.
몸의 일부분이 이러하거든 몸을 만들어 주신 부모님의 은혜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몸이 건전할 때나 나라를 위하여 일하지 못함이 부끄럽다. 팔십 후 오늘날 겨우 깨우치고 보니 이미 때가늦었다’고 이것은 신앙생활에 들어가지 않고는 도저히 이러한 생각이날 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환희심이 없고는 항상 불평불만이 생기는 고로 살아 나갈 때 우리들은 위를 쳐다보지 말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살 것이며 태평한 마음으로 환희의 마음으로 모든 일에 감사해야 될 것이다. 오늘날 싸움하고 있는 중국군을 볼진대 누구를 위하여 싸우는지도 모를 뿐 아니라 전쟁마당에 서게 된 것을 불행하게생각하기 때문에 약탈, 방화를 일삼고 있는 형편이다. 황군은 그렇지 않아서 황국(皇國)을 위해 오로지 생명을 바칠 각오와 의기(意氣)아래 감사하는 동시에, 불행히 총포 밑에 넘어질 지라도 성상폐하(聖上陛下)의 만세와 함께 기뻐하며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람에게는 환희심이 필요한 것이나 일조일석에 배양(培養)할 수 없는 것이므로 오랫동안 교육 종교수양에 힘을 빌어야 될 것입니다.
다음은 자애심인 바 자애심이라는 것은 남을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1. 인류애(人類愛)41) 2 동물애(動物愛) 3 자연애(自然愛)의 세 개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동포애로써 서로서로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동물에게는 모성애는 있지만 그 외는 아무 사랑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에게는 동정심 즉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마치 태양과 같아 따뜻하며 기계기름과 같이 서로충돌이 없이 원활하게 됩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쓸쓸하며 사랑이 없는 가정은 사막과 같으며 사랑이 없는 국가는 냉혹할 것입니다.
옛적에 친구 두 사람이 사냥을 하러 산중에 갔다가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다가 추위와 굶주림에 몸이 얼어붙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자 한 사람이 생각하기를 ‘나는 아직도 숨이 좀 남았다.
어찌 친구의죽음을 그저 보고만 있으랴. 사랑하는 친구의 전신을 마찰하며 소생시키리라’하는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열심히 친구에 전신을 마찰하는 동안 서로 서로 운동이 되어 맥이 돌아옴에 따라 다시 살아났다는 말이 있음과 같이 인생은 자기 혼자만은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것임으로 서로 서로 사랑하고 동정하며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야 한다. 그리고 경로애유(敬老愛幼)에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이 인생선대(先大)에 천성(天性)입니다. 예수교에 박애(博愛), 유교에 인의(仁義), 불교에 자비(慈悲) 등
41) 동포애(同胞愛).
이다.
이 사랑에서 사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함정에 빠진 것을 볼 때엔 이를 구하고자 하는마음이 있거늘 하물며 동족 간에야 물론 말할 것이 없으리라고 믿는 바입니다.
이번 사변도 우리 황군은 정의와 인류애로써 싸워나가며 폭려무쌍(暴戾無雙)42)한 장개석 정부를 타도(打倒)하여 2억 7천만에 중국 민중을 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실례로 본다면 서로 서로 다투어 그 결과 무고한 인민이 희생당한 자만도 헤아릴 수 없지만은 수지(數支)인 바 소위 공산당의 발호(跋扈)로 인하여 150만이라는 동포가 죽었으며 각 군벌의 투쟁으로 인하여 희생당한 자만이 이십여 년 간에 1천 500만이라는 엄청난 숫자에 달한다는 것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우리는 경애(敬愛)와 친애심(親愛)을 가지고 인보상조(隣保相助)로 서로 자애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동물애인 바 동물애는 동물을 사랑하는 것이니 우리는 동물, 특히 가축동물로 많은 은혜가 매우 큰 것입니다.
만일 양이 없다면 모직물이 없는 것이고 우마(牛馬)가 없으면 전시는 물론 운반 상하자유를 느낄 것이며 개도 현대에 있어서는 사람이상에 활약을 하고 있음은 이는 사실로써 소, 말, 양,돼지, 개, 닭, 고양이, 집오리가 없다면 인생은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예전 지순대사가 한 마리에 부엉이가 포수에게 쫓기어 암자로 날라 들어오는 것을 보고 벽장 속에 감추었더니 곧 포수가 쫓아 들어와 부엉이를 내노라 하기에 ‘지금 이 부엉이를 내어주면 그대가 잡아먹을 것이니 못 내어주겠노라.
정 고기가 먹고 싶거든 부엉이 대신 내 고기를 먹으라’ 하며 칼로 자기에 두 귀를 베어 주었다는 말이 있으나 우리는 그 같이 자기의 몸으로 동물을 대신 할 수는 없는 형편이나 동물을 볼 때 저놈을 될 수 있는대로 많이 사역(使役)한 다음 잡아먹겠다고, 우마(牛馬)의 짐을 많이 싣고 끌지 못한다고 때려 등을 벗기는 것과 같이 동물을 학대(虐待)해서는 못씁니다.
끝으로 자연 우리는 생활상의 필수품(必需品)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연물에 혜택을 생각할 때 물 한방울이라도 아껴 써야 할 것입니다. 즉 경제절약을 해야 할 것인바 특히 현 전시체제의 비상시국을 당해 수입은 이전과 동일하나 지출이 엄청나게 초과되는 실정이니 의복, 음식물 등을 절검(節儉)하며 폐물(廢物)을 이용하는 등 후생이용을 하여 보국을 결심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견고심. 오늘의 전쟁은 일견 무기의 싸움과 같으나 실로 그 무기 속에 들어있는 마음과 마음의 싸움인 것이 즉 국민과 국민의 싸움인 것이니 그 국민전체에 마음의 견고 여하로 오늘날의 싸움은승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중국으로 본다면 물질은 세계의 비류(比類)가 넓은 만치 풍부하나 가는 곳마다 섬멸패전을 당하고 있음은 그 국민의 마음이 견고치 못한 증거(證據)라 하겠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신앙심을 토대로 하여 견고심을 배양하며 의지를 단련(鍛鍊)시켜 최후(最後)까지 겨누고 이겨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즉 종교, 신앙을 통하여 거화를 하고 실질을 강조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국난을 타개(打開)하리라 믿는 바입니다.
한마디나마 여러분에 수고될 말씀이 있다면 감사히 생각하겠습니다. (박수)
42) 폭려무쌍(暴戾無雙) : 인도에 벗어나게 모질고 사나움이 비할 데가 없다는 뜻.
11. 심전개발과 국민지구전(國民持久戰)(1937년 12월 6일, 김화군 창도(昌道)에서)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을 뵙게 된 것은 심전개발과 시국에 대한 말씀으로 강연을 하라고 청한 바 있어 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 모양을 보시면 아시려니와 저는 절에 있어 종교에 몸을 바친 사람으로 기도를 올림으로 주로삼습니다.
여기서역시국위선양과무운장구기원을해야되겠습니다.
여러분은이렇게(합장하면서)합장을 하시고 일어서십시오. (일동기립) 그러고 제가 불경말씀을 올릴 터이니 따라하십시오. (돌아서서)
귀의불양족존(歸依佛兩足尊), 귀의법리욕존(歸依法離慾尊), 귀의승중중존(歸依僧衆中尊) 다시 돌아서 앉으십시오.
일동착석.
오늘 제가 말씀드릴 강연 주제는 「심전개발과 국민의 지구전」이라는 것으로 약속(約)한 시간동안 말씀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시국에 대한 말씀을 하겠습니다만은 이 시국에 대한 말씀은 군청, 경찰서, 각 관공서 여러분의 말씀을 이미 많이 들으시고 잘 아실 줄로 생각합니다. 사변이 생긴 후 전황(戰況)이 어떠하다던가하는 자세(仔細)한 것은 말씀하지 아니하고 대략 말씀하고 다음에 심전개발에 대한 말씀을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아주 중대한 시국에 처해 있습니다. 오늘의 시국이 얼마나 중대한가 말씀하면 여기에계신 여러 백 명되시는 분이 창해(蒼海) 간에 배를 타고 항해하실 적에 그곳에는 노도폭풍(怒濤暴風)이 있고 해적과 같은 나쁜 행동을 하는 분자(分子)를 만난다고 하십니다.
이런 난관에 봉착할 때에 어떠한 분별심을 가지지 아니하면 안 될 것입니다. 그
럴 때에는 오직 선중(船中)에 계신 여러분이 일신일의(一身一意) 일치단결하여서 어떤 방법이던지 노도풍랑(怒濤風浪)을 헤치고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해적을 정당방위로 물리치지 아니하면 안 될 것입니다.
동양에는 대일본제국이라는 큰 배가 있습니다. 그 배에는 일본, 조선, 만주 동포가 모여 항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 큰 대일본선이 항해를 할 적에 난관인 무서운 바람과 사나운 바람과 사나운 물결과 나쁜해적이 대일본선을 향하여서 올 적에는 내선일치(內鮮一致) 내선만(內鮮滿)이 일치하여 일신일의 대동단결하지 아니하면 이 난관을 돌파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시국인식에 있어 이 사변이야말로 얼마나 중대하다는 것은 여러 생도들도 교장선생님 또는 담임선생님께 들어서 잘 알겠지요. 우리 제국과 중국과 4~5개월에 이르러 싸우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요.
우리 일본이 중국의 지도자인 것을 모르고 영토적 야심이 있다고 악선전을 하면서 곤란에 들게한 것인데 우리 제국이 중국을 응징하는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동양의 영원한 평화를 위하고 서미(西美)세력을 구축(驅逐)하며 미래의 이상을 건설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 미국, 프랑스(佛國) 등 여러 나라는 야심을 가지고 중국에 마수를 펴고 동양에 대하여 침략적 행동을 하
고 항구, 해관세(海關稅), 금광(金鑛), 철도부설권 등 중국 것을 전부 서미인이 영유하게 되어서 중국은 겨우 심장만 가지고 각 기관은 다 분실할 운명에 닥쳐 있습니다.
심장만이라도 갖게 된 그 원인도 동양판도 내에서 동양의 안정세력인 일본 때문에 각 기관이 잔존한 것입니다.
만일 일본이 아니면 벌써 심장부까지라도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중국은 우리 일본과 악수하여 가지고 나가지 아니하고 우리 제국을 무시하고 너의 말은 들을 수 없다고 하고 추진하여서
지도함을 듣지 하고 러시아(露西亞)와 서양세력을 믿고 의지함에서 이번 사변이 생기게 된 게 첫째 원인입니다.
동양평화건설의 둘째 목적은 중국의 의뢰하는 마음을 깨뜨려서 동양은 동양인의 손으로 훌륭하고 강한 동양을 만들어야 할 것으로 일만지(日滿支) 삼국이 궤도를 같이 하여야 할 것입니다.
옛날부터 우리 일본은 동양의 지도자요 만주와 중국을 옹호(擁護)하여 왔습니다.
옛날 솥(鼎)은 발이 셋이지요.
그 솥도 발이 셋이 있어야 되지 하나라도 없으면 넘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치 협조하여야 될것이며 또는 경제문화를 통하여 장래의 평화를 위하여 우리 일본의 진의를 중국이 알아야 할 것인데 만주는 우리 제국의 지도를 달게 받아서 현재와 같이 좋은 나라가 되었으나 중국은 우리의 진의를 모르고 또 지도를 받지 아니하고 공산주의라는 나쁜 것을 갖은 러시아와 악수해 가지고 일본에 대항하며 또 영국과 같은 실리주의인 나라 즉 야심을 가지고 타국으로 하여금 이간질 붙여서 중간이익을 착취하는 나쁜 국민성을 가진 그런 나라의 평판에 사로잡혀 속아가지고 영국을 의뢰(依賴)하며 이이제이(以夷制夷)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정책을 가지고 일본을 배척하는 것으로 여간 변심한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중국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서양의 세력은 중국을 거쳐 만주 조선 일본 이렇게 침입하게 된것입니다.
우리는 중국 4억만 인민을 구원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책임을 가졌으며 4억만 인민을 적대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의 요인(要人)은 대개 군벌파로 대다수의 인민을 도탄에 집어넣어 1천 5백만이라는 많은 희생자를 내고 있습니다. (청중으로 ‘아이구’)
이 아름답지 못한 사실은 러시아의 선동에 의하여4억만이나 살고 있는 큰 나라가 자멸하지 아니하면 아니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있어 우리 제국은 국방상 정당방위와 자위심(自衛心)으로 이번 사변을 피치 못하게 된 것이 가까운 원인입니다. 우리 일본은 어디까지든지 중국을 옹호하려고 합니다.
족속은 비록 다르나 동양인 됨은 마찬가지요 고대문화는 중국으로부터 조선을 통하여 일본으로 수입되었던 관계라든지를 보아서 지금도 악수하여 친절하지 아니하면 안 될 것임으로 일지(日支)친선문제를 가지고 역대의 내각은 물론
전일본국민이 최선을 다하여 왔습니다. 중국은 이와 같은 성의를 무시하고 중국 장령(將領)들은 자기의이권획득에 일심을 다하느라고 여일(餘日)이 없었고 그래서 이와 같은 행동을 엄폐하기 위하여 국민사상의 방향전환을 시키고자 일본은 자기네 적이라고 국민에게 높이 외쳐 우리는 단합하여 항일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자기네 야심을 만족케 하려다가 많은 인생을 도탄에 넣고야 말았습니다.
중국은 우리 일본에 대하여 배일(排日), 항일, 모일(侮日)함으로 만주사변 이후 6, 7년간으로 일삼아 왔습니다.
장개석(蔣介石)의 발육사상은 배일사상으로 소학교 교과서에까지 이 사상을 집어넣어 만들게 하여 소학교부터 배일사상을 집어넣게 하였고, 자기의 이권을 넓히고 국가를 통일하고자한 경로가 중국으로 하여금 파옥(破沃)하게 하여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7월 7일 북경에서 서남으로30리쯤 되는 노구교(蘆溝橋)에서 황군이 야간연습을 하려고 할 적에 돌연 중국군이 불법사격을 하였기 때문에 연습중지를 시키고 중국 측에다 엄중 항의를 하였던 것입니다.
북중(北中)에서 산해관(山海關)까지는 정전협정 지대입니다.
즉 매진하응흠(梅津何應欽)과의 협정한 것인데 중국 중앙군이 이곳에 와서는 안 되고, 주병권(駐兵權)을 가지는 지역부근에서는 자유로 연습(演習)과 교련(敎練)을 하게 되어있지 아니하냐고 항의를 한 즉 중국 측의 답변이 불법사격을 한 것은 송철원(宋哲元)의 부하가 아니고 토비(土匪) 또는 마적이라고 변명하고 쫓아버려도 좋은 일본군이죽이던지 살리던지 우리는 관계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군 측에서는 현물조사를 중국 측과 한 다음 중국군의 철퇴를 요구하였었는데 8일 오전 4시까지는 용왕묘(龍王廟) 부근 영완하(永完河) 서쪽 장행점(長幸店) 부근으로부터 집결중인 아군에 대하여 불법도전(不法挑戰)을 함으로 황군은 부득이 응전(應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황군 앞에는 추풍낙엽으로 흩어지고 말았으며 송철원은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사과하여 정전을 간절히 원해 와서 일시 정전상태로 되게 되었었고 아군 측에서는 불확대주의로 은인자중(隱人自重) 하였던 것입니다.
8일 오전 11시까지 철퇴요구를 하였던 바 철퇴하겠다 잘못되었다고 사과하면서 외적으로는 군대이동을 하여 전투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양향(良鄕)에서 작업 중인 공병을 향하여 불법사격을 하며 북경에는 우리나라 재주동포(在住同胞)가 많은데 중국 측 군대급 관청의 반일감정이 의외로 치열하고 우리 헌병 2명을 검속(檢束)하고 그밖에 재주동포에게 대하여 가택침입 부녀자에게 추해(追害)하는 등 위협이 심하여 감으로 재류동포의 보호에 당하지 아니하면 안 되게 되어 우리 군대는 출동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북경성 내에 입성하려고 할 적에 고의로 광안문을 닫아버리고 중국군은 우리 군대에 대하여 난사를 하여 다수의 사상자를 내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우리군 측에서는 자중하여 왔던 것인데 중국 측은 일본이 실력이 부족하여서 그런가보다 하고 자꾸 도전(挑戰)하여오므로 부득이 응전하였고 북지(北地) 내에서 정전하고 무사해결을 요망하였던 것인데 여러분의 기억에 아직도 새로운 통주사건(通州事件)이 나지 않았습니까.
잘 아실 터이지만 중국 측의 포악무도한 편의대(便衣隊)가 우리 재주동포에게 대하여 비인도적 행위를 감행하고 상해에서도 8월 9일 대산대위(大山大尉) 사건이며 그밖에 수병사건(水兵事件) 등 이런 여러 가지 외 불평사건이 속출하고 장개석은 일본과 전쟁하겠다고 중국 전토에다가 선언하기를 우리는장기전을 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장기전이래야 우리 편이 유리할 것이니 국민은 단결하여 구국에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제국은 그대로 도저히 있을 수 없어 정당방위에 나가게 되어서 지나사변이 된것입니다. 북지나사변(北支那事變) 이후 4, 5개월간을 세계에 제일 강한 황군은 금상천황폐하의 성려(聖慮)를 받들어 선전하여 왔으며 국민은 황공하고 감격하여 이사보국(以死報國)하겠다고 굳게 생각을갖게 되어 북지사변(北支事變)은 지나사변으로 되어 상해를 함락시키고 소주(蘇州)를 함락하고 남경함락도 목첩(目睫)43) 간에 있게 되었습니다.
제1선에서 나라를 위하여 싸움하고 있는 황군이 얼마나 고맙습니까. 여름날 북지(北支)의 혹서(酷暑)라면 철도 녹일 만큼 더운 130~140도나 되는 전장에서 지금 주둔하고 있는 우리 군대는 얼마나 고생스럽겠습니까.
여러분은 솜옷을 입고 실내에 앉았어도 춥다고 하시지요만은 중국 더욱이 북지방면은 여기보다 춥기가 10배 20배나 더하여서 병사들이 신은 구두와 발이 얼어붙어서 한 번 신은 것은 뺄 수가 없다고 하며 소변을 누면 그대로 고드름 같이 언다고 합니다.
우리 국내에 있는 사람은 얼마나 편안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최선의 노력과 실행을 짜서 우리 자신도 한가지로 결심을 해 가지고 충성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사보국(以死報國)하는 우리 병사를 생각하고 무운장구(武運長久)를 기원하는 동시에 생산을 많게 하며 경제력을 충실케 하여 생업보국(生業報國)을 하는 것이 선
43) 눈과 속눈썹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아주 가까운 때나 장소를 비유함.
결조건이올시다.
미나미(南) 총독 각하 순시에도 대단히 중대한 시국에 당하였으며 사변은 단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장기에 이를 것이니 낙관을 불허함으로 치안문제와 질서유지에까지 특별 유의할 것이라고 하셨지요.
장개석이가 다수의 인명을 희생시키면서 까지도 불복하는 것은 외국의 소동때문이요, 외국인을 의뢰하고 제삼국의 간섭을 들어가지고 있는 때문입니다. 그리고 패잔병에다가 항일사상을 강조하여서 곳곳에서 아직도 항전을 하는 것인데 우리는 단연 그 근거를 소탕하지 아니하면 안 될 것이므로 사변은 장기에 걸쳐있는 것이요. 장기에 걸쳐있을 수록 민심통일과 국론일치하여 가지고 당하지 아니하면 안 될것이올시다.
저 세계대전 때에 독일이 연합군과 싸울 적에 프랑스(佛蘭西), 러시아(露西亞), 영국(英吉利) 이 여러 나라와 4~5년간을 싸우면서도 이 여러 나라의 군대에게 독일의 영토를 밟지 못하게 하였던것입니다.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이것은 강한 독일의 국민성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독일이 왜 패하였냐 하면 경제 때문에 패전하였던 것입니다.
4~5년간을 싸우는 사이에 연합군 당사국에서 독일에 대하여 경제봉쇄를 하였던 것입니다. 경제봉쇄가 되니까 외국품(外國品) 수입은 절대로 못하게 되고 국내 물자가 결핍하게 되어 장기전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보다도 부인들이 먼저 각성하였던 것입니다.
전쟁하는 사이에 남자들은 전부 전장에 나가게 되니 국내에서 여러 가지 치정(治政)을 하게 되어서 그 관공서를 비롯하여 모든 직업을 맡아 가지고 군수품 수송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수년간을 이 부인들의 열렬한 원조로 잘 싸우게 되었던 것이다.
여러 해 동안 많은 돈이 들고 경제봉쇄를당하고 보니 국내가 어찌할 수 없게 되니 부인들이 그만 염증이 생기게 되어 이와 같이 더 싸움을 계속하면 국내는 기아(飢餓)하여 다 죽고 말 터이니 정전(停戰)을 하라고 부인들이 먼저 외치고 자기네 가족이 출전한 것을 소환하여 달라고 야단을 치고 국내에는 혁명사상이 농후하게 되어 부득이 정전하게 되어 독일이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독일이 패한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속할 만한 경제력이 없던 것이 큰 원인이올시다. 이것을 우리나라에다가 비춰보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독일의 패한 원인을 알아가지고 경제적 대각오가 있어야 할 것이요, 독일의 그것이 우리에게 당하지 아니할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모든 소비에 절약근검해서 5년, 10년이 가도 국내 경제가 부족되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되겠습니다.
이 점에 있어 지구전을 계속하려면 국내민중이 강한 후원을 할 것이요, 황군을 위문하며 진심을 다하여 총후(銃後)의 성원을 하지 아니하면 안 되겠습니다.
그래서 산업을 충실하여 경제력을 크게 하는 동시에 이 사변의 정도를 짐작하면서 대책을 강구할 것인데 아무래도 6~7년간은 간다는 것을 감히 생각하셔야 되겠습니다.
다음 말씀드린 것은 신앙생활을 하여야 된다는 것인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이 시국에 대하여 없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마는 그 골자로 말씀할 것은!! 심전개발(心田開發)이올시다.
심전개발이라 함은 정신의 개조입니다. 마음을 고쳐서 강하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국민의 일치단결은 모든 신념으로부터 신앙심을 고취하는 데에 있습니다.
정신상에 있어 굳은 신념으로 능히 지구전을 감당하리만큼 되어야 합니다. 심전개발은 정신작풍에다 종교를 숭배하여 신앙심을고취하는 것인데 그 출처는 불교에서 나온 말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퍽 재미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불교의 교주는 부처님44)이올시다.
부처님께서는 가비라국(加毘羅國) 왕자로 태어나셔
44) 불타 : 佛陀.
가지고 이 세상에서 큰 목적을 달성하셔야 되겠다 하시고 감히 생각하신바 계시어 조그만 나라 영토내에서 선정을 한다면 이 나라 밖에 있는 천하 여러 나라 사람은 어찌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조그만 나라 왕보다 우주중의 법왕이 되어 가지고 천하 사람을 구하지 아니하면 안 될 것이라고 감히 뜻을 품으시고 설산에 들어가시어 6년간을 공부하신다음 진리를 깨달으셨습니다.
즉 도통하여 가지고 이것을 여러 사람에게 전포하기 위하여 교화하시고자 방방곡곡으로 포교와 교화를 업으로 하시어
순회 하시게 되었습니다.
어느 해 늦은 봄 이른 여름인 농번기에 농부들이 있는 농촌으로 장사하는 시장으로 이골에서 저골로 지도행각을 하시게 되었는데 마침 어느 날들에 나가시게 되셨는데 넒은 들에는 수백 명의 농부들이 밭에서 일을 하다가 점심때가 되어서 여러 집에서 점심밥을 만들어가지고 나와 이곳저곳서 모여와서음식물을 나눠 먹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점심 먹는 곳에 나아가서 농부들을 향하여 ‘나는 도를 전하러 다니는 사람인데 지금 시장하니 요기를 좀 시켜달라’고 말씀하신 즉 한 농부가 거절하여 말하기를 ‘우리 먹을 밥은 있어도 당신 줄 밥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은 ‘내가 밥을 요구하는 것은 한 사람 먹을 밥을 그대로다 달라는 것이 나이라 여러분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주면 요기를 할 것이라’고 하신 즉 또한 농부가 일어나 성을 내면서 ‘도저히 한 술이라도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반술이라도
줄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시며 ‘어찌하여 그러냐’고 물은 즉 ‘우리는 피땀을 흘려가지고 농사지은 것이니 주고 아니 주는 것은 우리의 권리요 그러고 임자와 같이 한가히 놀고먹는사람에게는 밥을 줄 수 없다 만일 임자가 배가 고프면 지금 씨를 뿌리라 우리가 농사지을 적에 무엇하나 조력하여 준 것이 있는가.’
이 말을 들으시고 부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농사지은 사람이래야 이 밥을 먹지 그렇지 아니하면 못 먹는다는 데는 내가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사람은 다 농사를 지으니 나에게도 부득불이 밥을 주어야 되겠다. 나도 먹을 만한 권리와 의무가 있다. 나도 농사꾼의 한사람이니 농부면 밥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신 즉 농부들은 그런 이치가 어디 있는가 여러 사람은 모두 소리를 합하여 ‘당신이 무슨 농사를 언제 하였는가’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러면 나도 이곳에서 농사를 하겠다 그러고 농부인 것을 알아 줄 터이니 모두 모이라’고 하신 즉 이웃에 있는 사람이 수백 명 수천 명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높은 언덕에 서서 여러분이 모였다고 말씀하시고 ‘이제 내가 농사를 짓겠다’고 언성을 높여 ‘내가 농부인 것을 설명을 할 터이니 잠시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하시고 ‘대단히 바쁘지만 좀 기다려 듣기를 바란다’ 말씀하시기를,‘우리 인간이 창조될 때에는 제일 육체와 제이 정신과 합하여서 사람이 된 것이다. 육체적으로 된 인간은 생리적으로 어머니 젖을 먹을 때부터 시작하여 죽을 때까지 먹어야만 산다.
여러분처럼 농사하여야 먹고 연명할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동안은 육체생명을 위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은 육체적생활로만 만족할 것인가 우리는 육체의 욕망을 채우는 육체적 생활 외에 정신적 생활을 잘 하여야 한다. 인간은 의식주에만 만족하여서는 안 된다’
러시아(露西亞)에서는 정신적 생활은 필요 없고 ‘빵’만 해결하면 그만이라고 하시지만은 연사주(演士註) 하등동물도 의식주는 구한다만 우리 인생도 의식주만을 구한다면 하등동물과 다를 것이 무엇이며 육체적 생활로만 만족한다면 인간이 만물의 영장 될 것이 무엇이며, 의식주만으로 만족하다고 하면 동물이상의 동물이 되고 말 것이다.
영장이라고 부를만한 임무는 육체보다도 정신적으로 더 역설되는 것이요, 육체도 정신적 생활에서 더 건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자체는 보이지 아니하고 형상이 없는 것이나 그 심전이라는 것은 수천 명의 머리에서 생각하는 정신작용을 심전이라고 한다. 그런데 마음(心)을 왜 전(田)이라고 하느냐 하면 전(田)이 오곡(五穀)을 또는 만물을 생(生)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만사의 도덕 습속 그밖에 모든 인간사는 다마음(心)에서 나온다.
그리하여 인간사 모든 것을 이 마음(心)에서 건설하게 되는 것이니 전(田)에서 오곡만물(五穀萬物)이 생(生)하게 되는 것에 비유하여 심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의 눈으로 본 이 세상인심이 황전(荒田)이 되고 있다. 지금 사람마음은 참으로 기막히다. 이 세상 사람은 인면수심(人面獸心)이다.
모양은 사람이나 마음 쓰는 것은 짐승과 같아서 동족 간에 싸움하고 모해(謀害)하여 모든 범행을저지르고 골육 간에 서로 다투고 하는 비행이 하나 둘 아닌 이 세상이다.
나는 이와 같이 이 충전(茺田된 것이 세상 사람의 심전을 경작하는 한 사람이니까 나 또한 농부다. 나와 그대들과의 농사짓는데 힘드는 것을 비교하여 보자. 너의 농사짓는 것은 전지(田地)면적이 좁은 관계로 낮에 일하고 밤과 겨울에는 쉬지 않는가.
나의 심전은 동서남북으로 수십만 리다. 원체 그 면적이 크기 때문에 어디까지 갔는지모른다.
그러므로 저물던지, 또는 아침저녁 새벽 때를 가리지 아니하고 교화를 한다.
춘하추동 언제나 또 역시 교화를 한다. 이렇게 주야를 분별하지 아니하고 농사짓는 나와 너의 농사짓는 것과 어느 편이
크냐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지혜와 교양이 있어야 한다”하시고,
양자불교(養子不敎)면 여양호랑(如養虎狼)이요.
양녀불교(養女不敎)면 여양저양(如養猪羊)이라.
하시어 야만민족 간에서는 부모형제 간에 해내는 것은 불효자 악자(惡子)이다.
이런 현상을 곳곳에 발견하게 되는 바다. 야수(野獸)들만 사는 곳에도 신용은 있다.
국가의 법률이나 보국에 대하여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아니한다고 불평을 갖는 것은 여양호랑(如養虎狼)이다.
양자불교(養子不敎)면 여양호랑(如養虎狼)이라는 말은 자식을 기를 때 가르치지 아니하면 랑이 기르는 것과 같고 여식을 기를 적에 가르치지 아니하면 돼지 양을 기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밥도 지을 줄 모르고 배가 터지게 먹는 사람, (일동 웃음) 옷 한 가지 못하고 입을 줄만 아는 것, 아이를 낳기만 하여 귀엽다고 하면서 가르칠 줄 모르는 사람 그런 것은 이 말씀과 같습니다. 남녀 간에 교양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교육을 하여서 충군(忠君)할 줄 알고 애국할 줄 알고 경사(敬師)할 줄 알아야 하등 동물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만물 외 영장이 될 것이다 하셨으니 이렇게 하려면 제일 먼저 심전개발이 필요합니다.
교양이 부족하면 현재 사변 때와 같은 비상시 어떻게 할지를 모를 것임으로 교육을시켜야 합니다.
여러분이 자제님을 학교에 보내는 것은 밥을 주려고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주려고 보내는 것일것입니다.
훌륭한 교육을 시켜 건전한 국민을 만들어 주는 것이 직접으로 국가를 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들려고 하는 기회를 실(失)하여서는 안되며 겸하여 교양에 있어서 심전개발이 우리 국민에게제일 중요합니다.
부처님도 천하 사람에게 다 심전개발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시어 여러 농부에게 향하시어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치시어 ‘신심위종자(信心爲種字), 고행행위시우(苦行爲時雨), 지혜위리액(智慧爲犂軛),참괴심위원(慚愧心爲轅)’이라 하셨는데 ‘신심위종자(信心爲種子)’라 함은 인간은 신앙심을 가져야 우주공리를 알 수 있으니 신(信)은 일만행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곡식의 종자와 같다. 그러므로써 신심이 있는 다음에야 부모, 친구, 동포를 알아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고행위시우(苦行爲時牛)’라 함은 실천궁행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고행은 즉 실천인데 오곡도 시우(時雨)를 만나지 못하면 자라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지혜위리액(智慧爲犂軛)’이라는 것은 지혜를 닦아서 세인을 교화해야 하는데 밭가는‘보습’과 ‘멍에’ 같이 방법을 삼자는 것입니다. ‘참괴심위원(慚愧心爲轅)’이라함은 사람은 부끄러운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즉 치욕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기를 수레채와 같이 그 방법을 삼자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변변히 치욕을 모르고 제가 제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심전을 경작하여 신심을 종자로 뿌리지 아니하면 도저히 안 될 것입니다.
그래 부처님께서 ‘난행(亂行)함은 심전을 경작하지 아니하는 것이니 심전을 경작하여 신심을 가져야 한다.
성인,군자, 철인, 현인이 되려면 지금 나에게 이 종자를 받아라. 만일 이 종자를 받지 아니하면 좋은 종자를얻을 수 없다’ 하신 뒤에 그래 ‘누가 농사짓는 것이 힘이 더 하냐’ 물으신 즉 농부들이 듣고 ‘참으로 당신께옵서 농부올시다.
진실로 농부가 당신이라’ 하시며 여기저기서 모두 점심을 모아가지고 와서 부처님께 드렸다합니다.
부처님께서 신심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약인무신심(若人無信心)이면 여승무주선(如乘無主船)이요 역여무어마(亦如無馭馬)요 장야시경참(長夜是更塹)’이라 하시어 만약 사람으로 신심이 없으면 주인(사공)없는 배를 탄 것과 같고 ‘정마’ 없는 말과 같고 밤새도록 구렁텅이 같은 험한 곳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신심을 갖는 방법으로는 성인의 경전을 힘써 읽어야 하겠습니다.
불교면 불경을 예수교 신자는 예수의 언행하심을 잘 배워 실행함을 각기 가까운 길을 택하여 가지고 나가지 아니하면 안 될 것입니다.
일본은 경신사상(敬神思想)이 가장 강한 나라로 신사(神社)를 모셔놓은 사궁(社宮)에 하루에 아침저녁으로 수만 인이 참배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참배하는 것은 신념을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동양에서 떼어낼 수 없는 종교이고 더욱 우리 일본에 성행하니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어느 것이나 좋습니다.
종교와 신앙을 가져야 할 것이오며 만일 이 신앙을 가지지 아니한다면 신앙심이없어서 일상생활이 규모가 없게 됩니다. 우리 국민은 이 신앙심을 통하여 일치단결한다하면 세계가 다 덤벼도 무섭지 않을 것입니다.
이 주먹이 비록 적으나 이 주먹 다섯 손가락에다 다 힘을 주어 긴축시켜가지고 사람을 친다하면 아무리 몸이 큰 사람이라도 긴장하지 않으면 넘어질 것입니다.
조그만 주먹에 큰 몸집이 넘어진다는 것은 주먹에다가 힘을 모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념이 큰 사람일수록 승(勝)하고 신념이 적을수록 패하는 것입니다. 우리 황군도 역시 이 신념이 굳센 까닭에 중국 도처에서점령을 하고 있는 것이며 또 국내에서는 신사가 1,300개소나 있는데 그 신사 신궁에다 매일 기원하는고로 우리황군도 기운을 얻어서 연전연승(連戰連勝)하는 것입니다.
빈 주먹 앞에 큰 몸이 넘어지듯이 수천 년간을 신념을 길러온 우리 일본 앞에는 커다란 중국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신념을 갖기 위하여 신사, 불각을 신심으로 하여 기원하십시다.
황군은 전쟁터에서 나라를 위하여 싸우고 있으나 그 배면에는 더 큰 전쟁이 있습니다. 경제로 사상전으로, 외교전 언론전 선전전이 있습니다.
우리는이와 같은 모든 싸움을 신앙심을 굳게 하여 가지고 지구전을 하여도 언제든지, 이기도록 하여야 됩니다.
신앙을 가지고 나간다 하면 신념만 있다고 하면, 우리 앞에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신념을 갖는동시에 생산증진을 하여 경제가 충실케 하고 승전하도록 이 밤에 많이 모이신 여러분도 심전개발이 어떠하더라는 것을 잘 깨달으시고 신념을 가지시도록 실행하시어 경제절검을 힘써하시어 난관돌파를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오늘 저녁 말씀하고자 한 바를 더 말씀하고 싶습니다만 장소도 차갑고 시간도 오래되어 그만 말씀하겠습니다.
끝으로 오늘밤에 여러분이 모이시어 저의 말씀을 들어주신 것과 이렇게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심전개발 및 시국에 관한 순회강연집(제1호) 완
<출전 : 金泰洽, '心田開發竝時局에 關한 巡回講演集'(第一號), 江原印刷合資會社, 1938년 발행>
4) 권순구, 심전개발론
근일에 당국(當局)으로부터 ‘심전개발(心田開發)’이라는 네 글자를 가지고 하나의 알맞은 글을 지어서 후진들을 잘 계도하여 깨우쳐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는 저로 하여금 관직에 있거나 학교에 있거나 일체의 종교 활동과 일체의 사회 활동을 함에 있어서 옛날 주인(遒人)의 목탁(木鐸)45)이나 우인(虞人)의 잠(箴)46)과 같은 역할을 하게 한 것으로, 그 뜻이 아주 성대합니다.
저 역시 여러 대중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처음에 착수할 방도를 깊숙이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심전(心田)’이라는 두 글자가 어느 서책에서 나온 것인지 상세히 모르겠습니다.
일찍이 양(梁)나라 간문제(簡文帝)가 지은 [대법송표(大法誦表)]를 보니, 거기에 이르기를, “윤택한 비가 치우침이 없으매, 마음의 밭이 윤택함을 받는다.(澤雨無偏心田受潤)”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唐)나라의 백거이(白居易)가 지은 시를 보니, 거기에 이르기를, “성품 바다 맑고 맑아 풍랑 없이 고요하며, 마음의 밭말끔하여 티끌 없이 깨끗하네.(性海澄渟平少浪心田灑掃淨無塵)”라고 하였습니다. 이 두 작품을 통하여보건대, 심전은 바로 불가(佛家)에서 쓰는 말인 듯합니다.
그러나 저는 유학자입니다.
이에 유가(儒家)의 설로써 그 뜻을 풀어보고자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우리 유가에는 마음을 가리켜 ‘지수명경(止水明鏡)’이라고 하는 비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음의 본체(本體)가 허령(虛靈)함을 이르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 마음을 가리켜 밭이라고 하였으니, 실지
45) 주인(遒人)의 목탁(木鐸) : 주인은 명령을 전달하는 사람을 말하고, 목탁은 옛날에 정교(政敎)를 베풀면서 백성들에게 고할 때 가지고 다니면서 치던 것이다.
'서경' [하서(夏書)] 윤정(胤征)에 이르기를, “해마다 첫봄이되면 주인(遒人)이 목탁(木鐸)을 가지고 길에 돌아다니면서 외치기를, ‘관(官)과 사(師)가 서로 바로잡고 공인(工人)은 예사(藝事)를 가지고 간(諫)하는데, 혹시라도 공경하지 않으면 나라에서 떳떳한 형벌이 있으리라.’한다.” 하였다.
46) 우인(虞人)의 잠(箴) : 옛날에 주 무왕(周武王)의 태사(太史) 신갑(辛甲)를 시켜 백관(百官)들로 하여금 각자경계 말을 만들게 하였는데, 우인이 ‘임금은 사냥을 삼가야 한다.’는 내용으로 잠언을 만들었다고 한다. ≪春秋左氏傳襄公4年≫.
상의 공부를 함에 있어서는 따비밭을 (實地) 갈듯이 잘 간다면 좋은 밭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황폐해 질 것입니다.
생각건대, 우리의 마음도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개발(開發)’이라는 두 글자로 급선무를 삼아 잠시라도 헛되이 보내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 종사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전지(田地)가 어떠한지를 먼저 안 뒤에야 부지런히 힘 쏟는 공을 시험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밭이란 것은 우리들이 태어나는 처음부터 하늘에서 품부 받은 것으로, 귀하고 천하거나, 지혜롭고 어리석거나, 어질거나 불초하거나 간에 모두 똑같이 얻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번 그것이 있게 되면, 비록 옛날에 이른바 문권(文券)이나 오늘날에 이른바 등기(登記)가 없더라도 다른 사람이 빼앗아갈 수 없어서 옮겨갈 수가 없습니다.
그 밭의 모양새는 평평하고 둥글고 고르고 적당하여 치우치지도 않고 기울지도 않았으며, 모서리가 지거나 굴곡이 있거나 하는 등의 이상한 모양이 없습니다.
그 흙의 성질은 모두가 옹주(雍州)의 상상(上上)에 해당되는 누런 땅47)이고, 제(齊) 지방의 쓸모없는 돌밭이 아닙니다. 그 기후는 항상 천지의 중화(中和)를 얻어서 요(堯) 임금 때의 홍수나 탕(湯) 임금 때의 가뭄이 없습니다.
그러니 참으로 예(禮)로써 경작하고, 의(義)로써 씨 뿌리고, 학(學)으로써 김매고, 인(仁)으로써 거두어, 바르게 길러서 해가 없게 한다면, 원(元)이 싹틔워주고, 형(亨)이 길러주고, 이(利)가 익게 해주고, 정(貞)이 여물게 해 줄 것입니다.48)
아 아름답습니다.
예로부터 풍년이 들었을 적에는 덕(德)의 기장(稷)49)이 오직 향기로워서 아침에 씨를 뿌려서 저녁에 수확할 수가 있었으며, 성(性)의 벼(禾)50)가 저절로 자라나서 이쪽이나 저쪽의 구별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마다 곡식이 풍부해지고, 집집마다 봉(封)할 수가 있었습니다.51) 마음밭을 개발하는 공효는 이와 같은 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혹 사지를 부지런히 놀리지 않아, 앉은 채로 농사지을 때를 놓쳐 갈지를 않고 김매지를 않을 경우, 지난날에 비옥하던 땅이 변하여 척박한 땅으로 되고, 풀이 자라나 곡식 싹은 드물어져,가을 추수를 거둘 가망이 없게 됩니다. 여기에서 또 잘못된 생각이 생겨나 이르지 않는 곳이 없게 되어,욕심의 물결이 하늘까지 닿아 한 조각의 좋은 밭이 이미 떨어져나가 남아있는 곳이 없게 됩니다.
그리하여 형벌을 받는 데 이르지 않으면 장차 시궁창에 굴러 죽게 됩니다. 그러니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땅을 많이 차지고 있는 집을 보면, 비록 논 두둑이 이어진 넓은 땅을 가지고 있는 부자라고
47) 옹주(雍州)의……땅 : 아주 좋은 땅을 말한다. 옹주는 중국 9주 가운데 하나이다. '서경' [우공(禹貢)]에 ‘옹주는 그 토질은 누런 땅이며, 그 전지는 상상(上上)이다.’ 하였다.
48) 원(元)이……것이다 : 원(元)·형(亨)·이(利)·정(貞)은 하늘의 네 가지 덕(德)이다.
49) 덕(德)의 기장{稷) : '서경(書經)' [군진(君陳)]에 이르기를, “지극한 다스림은 향내가 풍기는 것 같아서 신명을 감동시키나니, 제수가 향기로운 것이 아니요, 밝은 덕이 오직 향기로운 것이다.(至治馨香感于神明黍稷非馨明德惟馨)” 하였다.
50) 성(性)의 벼(禾) : 한(漢)나라 때의 학자인 동중서가 성설(性說)을 논하면서 성을 벼에 비겨 이르기를, “선(善)은 쌀과 같고, 성(性)은 벼와 같다. 벼에서 비록 쌀이 나오지만, 벼를 가지고 쌀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였다.
51) 집집마다…… 있었습니다 : 임금의 교화가 사해에 두루 미쳐 풍속이 아름다워짐에 집집마다 모두 덕행(德行)이 있어서 정표(旌表)할 만하다는 말로, 풍속이 몹시 아름다운 것을 뜻한다.
할지라도, 혹 하루아침에 자신의 재산을 잃게 될 경우, 다시 회복될 가망이 없어서 천장만 쳐다보며 탄식을 토할 뿐입니다.
이에 반해 오직 우리의 심전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참으로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서 스스로 새롭게 된다면, 떨어져 나간 것을 보충할 수가 있고, 풀이 우거진 것을 쳐낼 수가 있습니다.
이에 반 묘(畝) 정도 되는 자그마한 땅이 도리어 지난날처럼 의연하게 자신의 좋은 밭으로 됩니다.
그러니 앞에서 말한 많은 땅을 가지고 있는 부자 집에 비교해 볼 때 어떻겠습니까? 스스로 새롭게 하는도는 역시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을 뿐으로, 오늘날 우리들이 함께 힘써야 할 바인 것입니다.
<출전 : 權純九, 「心田開發論」, '經學院雜誌' 제39호, 1935년 10월 5일, 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