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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창의포럼에서는 ‘1박 2일’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등 예능 프로그램 제작으로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나영석 PD’ 를 초청했다.
< 이야기를 시작하며... >
솔직히 되게 부담스럽다. 이렇게 충격적으로 부러운 공간이 서울 한복판에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곳의 평당가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며 방송국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려 하니 편하게 들어주시길 바란다. 지금은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을 만들고 있다. 평소 강의할때는 이야기하는 레파토리가 있는데 여기서는 그 이야기를 하지않으려 한다. 폐쇄적인 공간에서 만나기 쉽지않은 여러분들을 만난 만큼 듣기좋은 이야기가 아닌 정말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기자들이 취미를 물어보면 사이클, 독서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방송용일 뿐이다. 난 솔직히 일중독이다. 일에 미쳐 있어야 성공한다. 일이 잘됐을 때 성취감과 보람을 느낀다.
예능프로그램을 왜 만들까? 첫째는 시청자 때문에 만든다. 둘째는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으니까 만드는 것이다. ‘네꿈을 펼쳐라’라는 말은 그 꿈이 대중에게 다가갈때 가치있는 꿈이 된다. 후배들에게 종종 이야기를 한다. 우선 네가 좋아하고 원하는게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고 네가 좋아하는 것을 대중도 좋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만 좋아하고 대중이 사랑해주지 않는 일은 지속 가능하기 어렵고, 나와는 상관없이 대중만 좋아하는 일을 억지로 하게되면 괴롭기만 하고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 내가 좋아하고 남들이 좋아하는 것 사이에 교집합이 있어야 한다. 대중이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즐거움은 오래 가지않는다. 나는 방송을 만들며 그러한 일에 대한 방황과 탐구의 오랜 시간을 가졌다. ‘1박 2일’ 이전에는 내가 원하는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일을 했다.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은 선배가 하자고 해서 했고, ‘여걸 파이브’는 방송국에서 하라고 해서 했다. 암흑 속에서 길을 헤메듯 방송을 만들어 왔다.
< ‘1박 2일’과의 만남 >
우연히 ‘1박 2일’이란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다. 처음에는 여행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고 만든게 아니었다. 부작용이 때로는 더 큰 발견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은가. 2007년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라는 회사의 명이 있었다. 그 당시 예능 프로그램은 모두 한톤이었다. 드라마는 드라마 자체의 기승전결의 힘이 있지만 예능은 인위적 갈등을 만들어 주어야 시청자가 본다. 이전에는 예능하면 쇼, 노래, 코메디가 전부였다. ‘일요일 일요일 밤’이 예능의 시작이었는데 일본 프로그램을 베낀 일종의 버러이어티쇼였다. 여기서 가지를 치고 진화하여 여러 예능프로그램이 나왔다. 10여년 전에는 ‘출발 드림팀’류의 달리거나 뺏거나 하면서 인위적 갈등(경쟁)을 만드는 프로그램이 예능의 트렌드였다. 경쟁을 해서 우승팀엔 상을 주고 꼴찌에게는 벌을 주는것이 예능의 기본적인 뼈대이다. ‘엑스맨류’ 가 당시의 예능 트렌드였기 때문에 일단 따라 해보는 것이 내가 해야할 일이었다.
< 복불복 과 상벌 >
‘1박 2일’에서는 무엇으로 경쟁을 시킬까만 생각했다. 그러다 나온게 모든걸 운에 맡기는 ‘복불복’ 개념이다. 복불복에도 경쟁, 갈등, 절정, 해소의 과정이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상벌이 필요하다. 상벌 메커니즘은 상이 너무 커도 안되고 벌이 너무 가혹해도 안된다. 상을 바라보는 시청자의 마음까지 챙겨야하는 것이다. 연예인이 경쟁의지를 가질수 있는 명분과 시청자가 상으로 허용해주는 범위의 접점을 정확히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상벌회의가 가장 중요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심각한 연구결과로 나온 상벌이 ‘굶기는 것’과 ‘밖에서 재우기’ 였다. 첫번째 복불복에서 이긴팀은 밥을 주고 진팀은 밥을 굶긴다. 두 번째 복불복에서는 이긴팀은 실내에서 자고, 진팀은 여름엔 맨땅에서 재우고 겨울엔 텐트속에 재운다. 밥 한끼를 굶으면 배는 고프고 괴롭겠지만 죽지는 않는다. 시청자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그들의 고통을 즐길수 있다. 이렇듯 적절한 경쟁과 상벌로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1박 2일 첫방송은 충북 영동 포도밭에서 찍었다. 관광지도 아니었고 느티나무 아래 평상이 있는 평범한 시골마을이었다. 시청율이 10% 넘게 좋게 나왔다. 거기서 진화하지 않고 끝났으면 1박2일은 그저그런 프로그램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 ‘1박 2일’ 기본 rule >
내가 만든 프로그램들은 1박 2일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다르다. 단순한 경쟁, 상벌이 있는 예능프로그램에서 남자들의 여행, 우정, 의리 등이 담긴 프로그램으로 진화했다. 잘 진화된 프로그램은 대박 프로그램이 된다. 밖에서 먹고자는 리얼야생로드 버라이어티쇼의 연출자가 신급의 몸값을 가진 게임에서 진 강호동이 카메라를 끄고 배고픈 것처럼 연기할테니 밥을 달라고 하면 안줄수 없다. 그러나 그런 규칙이 헐거워지면 프로그램을 끌고가기 어렵다. 초기부터 이런 상황을 안만들기 위해 생각해낸것이 카메라를 픽스(고정)하는 것이다. 리얼은 연출자가 없는 상황이고 연출진이 최대한 접근하지 않는 것이다. 촬영감독이 카메라로 찍으면 출연자들은 말과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 원장님이 없는 상황에서는 별소리 다할수 있는거 아닌가. 출연진 단독으로 카메라를 장착한 차를 타고 목적지로 간다. 스텝들은 그 차에 타지 않고 조용히 따라가는 것이다.
< 첫 촬영과 편집 -인생을 바꾼 포인트 - 진화 >
영동까지 가는데 4시간 걸렸다. 보통 촬영이 끝나면 편집을 하는데 선임PD인 나는 게임, 상벌을 촬영한 주요 부분을 편집하고 후배에게는 이동구간을 촬영한 4시간 촬영분을 3분으로 편집하라고 했다. 3분이란 시간은 차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음악좀 깔고 도착하면 그게 3분이다. 관습적으로 게임, 상벌이 있어야 시청자가 좋아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저녁밥 복불복, 잠자리 볼불복으로만 방송을 꾸미려했다. 그이외에는 시청자는 지루해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후배가 차에서 찍은 4시간 분량을 10분으로 편집해왔다. 제작진이 차에 타지 않으니 차안에서 피디에 대한 뒷담화, 나이트 이야기, 강호동의 배고픈 이야기 등 보통 스텝앞에서는 하지않는 별별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막내 PD는 그것이 게임, 상벌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했다. 후배의 말이 맞을수도 있겠다 싶었다. 여기에 인생을 갈라놓은 포인트가 있다. 후배의 새로의 발견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고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뜬 것이다. 그래도 확신이 없어 3분으로 줄였다. 그동안 믿고 있었던 것에 대한 포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머리속에는 ‘저것이 미래의 먹거리가 될 수 있겠다’ 라는 가능성에 대한 여운이 남았다. 자연스러운 그들의 이야기를 첫 방송에는 3분, 다음엔 4분, 5분, 7분으로 늘려갔다. 그렇다고 10분 20분으로 늘리면 시청자들은 안본다. 황금율이 있는 것이다. 김C가 이불을 덮어주는 장면이 3초 있었는데 댓글이 무려 1000개가 넘게 달렸다. 시청자들에게 남다른 작은 위안을 준 것이다. 소통, 관계를 맺는 방식, 캐릭터의 개발, 스토리가 게임, 복불복 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종의 드라마처럼 가야겠다는 생각들었다. 기승전결이 있고, 캐릭터를 만들고, 서로 협력하고, 화해하고, 보듬어주는...... 캐릭터와 관계의 힘으로 시청율 3-40% 달성했다. 후배의 발견을 내걸로 만들어 프로그램을 진화시킨 나도 대단한 사람이다.
< 위기를 기회로 만들다 >
강호동, 지상렬, 이수근, 은지원, 노홍철, 김종민 6인의 출연자로 시청률이 대박이 나자 1년은 어려움 없이 가겠구나 했는데 위기가 찾아왔다. 강호동과 동갑으로 죽이 잘맞던 지상렬이 드라마 ‘이산’에 캐스팅 되어 출연을 못하겠다고 했다. 만류하였으나 결국은 빠졌다. 이어 노홍철이 ‘무한도전’ 수목 녹화, ‘1박 2일’ 금토 녹화로 몸에 무리가 와서 빠졌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김종민이 영장이 나왔다. 주축 3명이 빠져 비상이 걸렸다. 지상렬이 빠졌을때 관습적인 판단으로 몸값이 고만고만한 같은 급의 연예인을 끼워넣으려 했다. 당시 강호동, 유재석 몸값이 ‘신급’이라면 지상렬은 ‘수퍼 A급’이었다. 박명수, 김구라, 탁재훈, 신정환이 수퍼 A급으로 출연섭외를 하였으나 실패했다. 그렇다고 아무나 넣을 수도 없는거 아닌가. 고민이 많았다. 선배 이명환 PD가 섭외를 왜 그렇게 하느냐, 차라리 원점에서 생각하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컨셉에 맞는 누군가를 넣는다면, 한명 더 충원한다면 누가 어울릴까를 제로에서부터 생각해보니 시야가 넓어져 40명 정도의 섭외 대상자가 생겼다. ‘1박2일’ 프로그램의 컨셉인 야생리얼 버라이어티쇼에 어울리는 사람을 찾으니 김C도 포함되어 파격적인 발탁을 했다. 당시 김C는 무조건 선글라스 꼭 써야하고 아무말 안할 수도 있는 것을 출연조건으로 달았으나 조건없이 받아들였다. 리스크를 받아들인 것이다. ‘내 여자라니까’ 노래와 드라마로 인지도만 있을뿐 웃기지는 않았던 이승기는 아주 성실하다는 평이 있어 받아들였다. 당시 노홍철 대신 이승기를 넣은 것은 엄청난 리스크를 안은 것이었다. 김종민 대신으로는 당시 예능 탑중에 탑이었던 ‘MC몽’을 넣었다. 이렇게 다시 만든 6명의 조합이 레전드를 만들어냈다. 위기가 왔고 쉽게 해결되지 않을거라면 차라리 제로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게 맞다는 교훈을 얻었다.
< 맺음말 - 앞으로의 진화 >
‘1박 2일’을 하며 PD로서 재미를 느꼈다. ‘1박 2일’ 이전이 방황하는 시간이었다면 ‘1박 2일’ 이후는 여러분들 입장에서 본다면 내 연구주제를 찾은 그런 느낌이었다. 여행이라는 소재, 캐릭터라이징, 인물과의 관계, 소소한 재미, 일상이라는 나만의 주제를 찾은 것이다. ‘1박 2일’을 끝내고 더욱 전위적으로 흘렀다. 게임을 제거하고 ‘일상’만 가지고도 드라마를 만들수 있다는 실험작으로 ‘꽃보다 할배’를 만들었다. 심심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소소한 재미와 감동, 여운이 있으면 시청자들은 볼 것이라고 확신했다. 리얼리티의 가능성, 뭔가를 더하는게 아니고 소거해가는 아나로그적인 프로그램을 만든게 ‘삼시세끼’ 이다. 지금도 다른 예능프로그램은 시청자가 채널을 돌릴까봐 잠시의 쉴틈도 없이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 ‘1박 2일’도 그러한 연유에서 계속 장소를 옮겨다니고 도착하면 불불복을 한 것이다. ‘삼시세끼’는 그런걸 모두 거부했다. 정해진 한 장소에서 단지 멤버 2명이 게임도 없이 진행한다. 새로운 것을 대중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즉, 리스크한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으면 리턴은 적을 수밖에 없다. 난 이런 프로그램이 미래의 예능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삼시세끼에서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많은 피디들이 착각을 하고 있다. TV를 재미로만 본다고 생각하는데 시청자들은 시간을 무의미하게 소비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적당히 재미도 있으면서 의미도 가지고 여러 가지를 얻어가고 싶어하는 욕심장이다. 욕심에 안차니까 채널을 옮겨다니는 것이다. 삼시세끼보고 앞으로 예능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당황해하는 PD들이 있다. 삼시세끼에는 수많은 갈고리와 세밀하게 포장된 장치들이 깔려있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을뿐이다. 예를 든다면 솥을 두 개만 주는것은 일부러 실수를 만드는 것이다. 솥 뚜껑을 활용하여 계란 후라이를 하고 비빔밥을 만들어 먹을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나는 비빔밥을 예상하고 두달전 촬영지 텃밭에 깻잎, 상추, 쑥갓을 심어놓았다.
(이동주 문화경영팀장의 글에서...)
첫댓글 나영석 피디가 키스트에 다녀갔군요.
인기인들, 명사들을 초청해서 강의도 듣고 하는 휴식같은 시간이 종종...,
홍능 카이다에 큰오빠 근무 할 때 나도 딱 한 번 가본적이 있는데
정말로 충격적으로 아름답고 좋은 환경이였어요.
시간이 없어서 구경은 제대로 못 했지만,
들어갈 때도 엄청 어렵게 들어갔던 곳 이라서
기억의 저장고에 간직해 둔 장소가 하나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