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는 반대인데요?! 처음 변경에 절도사를 설치할 때 그들에게 주어진 권한은 '병마전수(兵馬戰守)' 즉 군사권에 한해서였습니다. 근데 중앙재정이 후달리자 절도사들에게 돌아갈 돈이 없어서 해당 지역의 행정권과 수세권이 위임되었고, '안사의 난'을 겪는 와중에 번진이 내지로 확대되면서 아예 기존의 행정단위인 '도(道)'를 대체하게 되죠.
당말의 금군은 환관들이 장악한지라 반란을 때리는 경우는 그닥... 황제도 환관이 세우고요. 문제는 번진입니다. 사방의 번진들이 장안을 털아먹는 사례도 수차례 나와요. 게다가 조정의 명이 씨알도 안먹히는 동네가 많았다는 것이 문제... 지방세의 상납인 '상공(上供)'이 올라오는 지역이 강남이었는데, 이 동네는 번진의 힘이 좀 약해서 조정의 명이 먹혔기 때문입니다. 근데 나중에 '황소의 난'으로 이 동네가 쑥대밭이 되면서 중앙으로의 상공이 ㅈㅁ... 돈이 후달리던 조정은 무려 황실호위군인 금군이 이탈하여 주변의 번진으로 흘러들어가는 상황까지 연출하다 망합니다...-_-;
@★海東天子☆당나라는 비록 반란을 잘 토벌했지만 고려는 이용당했거든요/// 사쿠라님이 중앙-지방의 갈등 차원에서 이해되는 번진 할거와 중앙의 시위군이 일으킨 무인정변을 혼동하셔서 하는 말이지요. 성격이 다른 사건이니.ㅁ. 말기에 가선 금군을 장악한 환관들이 황제까지 좌우하면서 무인집권기랑 비슷한 모양새가 되지만, 적어도 강회지역 같은 순지의 자원으로 지방의 번진들을 컨트롤 할려 한 당황제들과 중앙군이 정변을 일으킨 고려 무인집권기랑은 상황이 아예 다르ㅋ
애시당초 과거로 무관을 선발하는 개념이 아니라(건 공양왕시기에 가서 시작;;) 음서로 세습하거나 군공으로 고위 장군이 선발을 하는 방식이다보니까 '군벌'적 모습이 나타날수 밖에 없었죠 ㅎㅎ;; 근데 제가 아는교수님께서는 무신란이 문무반의 차별도 원인이었지만(이건 군사정권시절에 이용당한 면도 많다고 하시더군요) 그전에 묘청의 난때 세력이 약간 불어난 무장들을 정리하려다가 벌어진 일이라는 견해를 피력하시더군요 ㅋ
공무원 방식처럼 고위 장성부터 말단 장교에 이르기까지 급여/승진/임지 등에 나라가 직접 간섭을 하는경우 군인들의 충성대상이 '나라'가 되지만 그렇지 않고 위에서 나타나는데로 고위장군이 하게되면 그 군인들의 충성대상이 '장군개인'이 되어버리니까요. 애시당초 '직업군인'들이 군인을 '직업'으로 선택한 근본적인 이유는 급여 등의 생계수단을 위한 것이고 그것을 가지고 있는 '대상'에게 충성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죠.
근데 전근대는 물론 현대까지도 군관들의 충성대상은 국가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고과에 영향을 미치는 윗분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관료제가 발달하면서 '군벌'의 성장을 원천적으로 억압하는 구조라는 것이 다른 것이죠...^^; 뭐 조선시대에도 무과가 시행되어 무인들도 정식관료로써 편입되지만, 사실 고관직은 특정가문이 세습하는 경우가 나타납니다. 일례로 조선후기 수군통제사는 당연히~ 치트공의 자손인 덕수 이씨가 해먹는 것이라는 관념이 있었고, 다른 5영군문의 경우도 능성 구씨 같은 가문들이 해먹죠...-_-; 사실 정계를 장악한 붕당이 군권을 틀어쥐는 방법 중의 하나가 자기편에 유력 군사명문가를 두는 것이었습니다.
첫댓글 잦은 외침으로 군사력이 비대화된 나라에서 무인을 천대해서 그런것 아닙니까?
군사력이 그렇게 강했나요?
당나라는 반대인데요?! 처음 변경에 절도사를 설치할 때 그들에게 주어진 권한은 '병마전수(兵馬戰守)' 즉 군사권에 한해서였습니다. 근데 중앙재정이 후달리자 절도사들에게 돌아갈 돈이 없어서 해당 지역의 행정권과 수세권이 위임되었고, '안사의 난'을 겪는 와중에 번진이 내지로 확대되면서 아예 기존의 행정단위인 '도(道)'를 대체하게 되죠.
그 당나라도 금군이 반란 때리면 답이 벗지요.ㅁ. 무인정변의 주체들은 다름 아닌 왕의 시위군이니ㄷㄷ
당말의 금군은 환관들이 장악한지라 반란을 때리는 경우는 그닥... 황제도 환관이 세우고요. 문제는 번진입니다. 사방의 번진들이 장안을 털아먹는 사례도 수차례 나와요. 게다가 조정의 명이 씨알도 안먹히는 동네가 많았다는 것이 문제... 지방세의 상납인 '상공(上供)'이 올라오는 지역이 강남이었는데, 이 동네는 번진의 힘이 좀 약해서 조정의 명이 먹혔기 때문입니다. 근데 나중에 '황소의 난'으로 이 동네가 쑥대밭이 되면서 중앙으로의 상공이 ㅈㅁ... 돈이 후달리던 조정은 무려 황실호위군인 금군이 이탈하여 주변의 번진으로 흘러들어가는 상황까지 연출하다 망합니다...-_-;
@★海東天子☆ 당나라는 비록 반란을 잘 토벌했지만 고려는 이용당했거든요/// 사쿠라님이 중앙-지방의 갈등 차원에서 이해되는 번진 할거와 중앙의 시위군이 일으킨 무인정변을 혼동하셔서 하는 말이지요. 성격이 다른 사건이니.ㅁ. 말기에 가선 금군을 장악한 환관들이 황제까지 좌우하면서 무인집권기랑 비슷한 모양새가 되지만, 적어도 강회지역 같은 순지의 자원으로 지방의 번진들을 컨트롤 할려 한 당황제들과 중앙군이 정변을 일으킨 고려 무인집권기랑은 상황이 아예 다르ㅋ
애시당초 과거로 무관을 선발하는 개념이 아니라(건 공양왕시기에 가서 시작;;) 음서로 세습하거나 군공으로 고위 장군이 선발을 하는 방식이다보니까 '군벌'적 모습이 나타날수 밖에 없었죠 ㅎㅎ;; 근데 제가 아는교수님께서는 무신란이 문무반의 차별도 원인이었지만(이건 군사정권시절에 이용당한 면도 많다고 하시더군요) 그전에 묘청의 난때 세력이 약간 불어난 무장들을 정리하려다가 벌어진 일이라는 견해를 피력하시더군요 ㅋ
공무원 방식이 더 좋은 군인통제를 할수 있는 이유는 뭔가요?
공무원 방식처럼 고위 장성부터 말단 장교에 이르기까지 급여/승진/임지 등에 나라가 직접 간섭을 하는경우 군인들의 충성대상이 '나라'가 되지만 그렇지 않고 위에서 나타나는데로 고위장군이 하게되면 그 군인들의 충성대상이 '장군개인'이 되어버리니까요. 애시당초 '직업군인'들이 군인을 '직업'으로 선택한 근본적인 이유는 급여 등의 생계수단을 위한 것이고 그것을 가지고 있는 '대상'에게 충성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죠.
근데 전근대는 물론 현대까지도 군관들의 충성대상은 국가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고과에 영향을 미치는 윗분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관료제가 발달하면서 '군벌'의 성장을 원천적으로 억압하는 구조라는 것이 다른 것이죠...^^; 뭐 조선시대에도 무과가 시행되어 무인들도 정식관료로써 편입되지만, 사실 고관직은 특정가문이 세습하는 경우가 나타납니다. 일례로 조선후기 수군통제사는 당연히~ 치트공의 자손인 덕수 이씨가 해먹는 것이라는 관념이 있었고, 다른 5영군문의 경우도 능성 구씨 같은 가문들이 해먹죠...-_-; 사실 정계를 장악한 붕당이 군권을 틀어쥐는 방법 중의 하나가 자기편에 유력 군사명문가를 두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고려시대의 경우는 [벽소권(장수나 지방관이 자신의 막료를 직접 선발-임용하는 권한)]이 조선시대보다 강했을 것이기 때문에 자기사람을 심기가 더욱 쉬웠다는 것이 문제죠...ㅎㅎ;;
@★海東天子☆ 수군통제사에 그런식의 풍조도 있었군요 ㅎ 전 신유장군(나선정벌)이 삼도 수군통제사가 된일도 있고해서 통제사 직위도 꽤나 여러사람이 역임하는 직위인줄 알았는데;; 뭐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군벌적인모습이 나타났던 한국을 보면(비슷한게 하나회)군의 장악이라는게 쉽지는 않았던것 같기는 하네요 ㅠㅠ
@★海東天子☆ 덕수 이씨 중에서도 충무공파에서 집중되었죠. 문헌공파(이쪽은 율곡 이이계열)에서는 문관직에 집중되었다고...
그런면에서 조선은 참으로 대단함.
행정력이 정말 탁월했죠 대한민국도 못깔정도
@[♥]CARDCAPTOR SAKURA 머 지금의 행정체제도 조선시대 거 약간 배껴온거도 많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