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詩 한 수, 도잠(陶潛)의 느긋한 마음새
남산 자락에 콩 심었더니, 잡초만 무성하고 콩 싹은 듬성듬성.
새벽같이 일어나 김매러 나갔다, 달빛 속에 호미 메고 돌아온다.
풀이 길게 자란 좁다란 길, 내 옷자락이 저녁 이슬에 젖는다.
옷이야 젖어도 아까울 거 없지만, 내 소원만은 어그러지지 않았으면.
種豆南山下, 草盛豆苗稀. 종두남산하 초성두묘희
晨興理荒穢, 帶月荷鋤歸. 신흥리황예 대월하서귀
道狹草木長, 夕露霑我衣. 도협초목장 석로점아의
衣霑不足惜, 但使願無違. 의점부족석 단사원무위
―‘전원으로 돌아오다(귀원전거·歸園田居)’ 제3수·도잠(陶潛·365∼427)
[註釋]
1. 種豆(종두): 콩을 심다.
2. 草盛(초성): 잡초가 무성하다.
3. 豆苗稀(두묘희): 콩 싹이 드물다.
4. 晨興(신흥): 새벽에 일어나다.
5. 理荒穢(이황예): 우거진 잡초를 뽑아내다. ‘理’는 정리하다, 손질하다. ‘穢’는 잡초.
6. 帶月(대월): 달과 함께 오다. 달빛을 받으며 밤늦게 돌아온다는 뜻이다.
7. 荷鋤歸(하서귀): 호미를 메고 돌아오다. ‘荷’는 짊어지다, 메다.
8. 道狹(도협): 길이 협소하다.
9. 夕露霑我衣(석로점아의): 저녁 이슬이 내 옷을 적신다. 이 구는 풀을 헤치면서 걷다 보니 저녁 이슬이 옷을 적신다는 말이다.
10. 但使願無違(단사원무위): 오직 바람으로 하여금 어긋남이 없게 하였으면 한다. ‘願’은 일차적으로 농사가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뜻하며, 나아가 시인이 세속의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온 본래의 뜻을 말하기도 한다.
달빛 받으며 호미를 멘 채 좁다란 풀숲 길을 헤치고 귀가하는 시인. 황무지를 개간한 탓에 온종일 밭매기하는 고된 일과지만 왠지 여유로워 보인다. 내 소망이 어그러지지 않는다면 콩 싹보다 잡초가 더 무성하든, 저녁 이슬에 옷자락이 젖든 개의치 않는다. 시인의 소망은 무엇일까. 평소 꿈꾸었던 전원생활을 순조롭게 꾸려 갔으면 하는 것일 테다. 부와 권세를 위해 관직을 고수하면서 쉼 없이 앞을 향해 내달리는 여느 사대부의 삶과는 딴판이다. 당시 시인은 한 고을을 다스리는 현령(縣令) 자리를 석 달도 채우지 않고 내던졌다. 쌀 다섯 말의 녹봉(祿俸)에 굽신대지 않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 이전에도 그는 대여섯 차례 사직과 귀향을 반복한 경험이 있다. 세속의 관습을 좇으며 풍요를 누리느냐, 불편과 가난을 감수하되 정신적 평안을 얻느냐로 갈등했다는 증거로 보인다.
문벌주의 사회 풍조 덕분에 벼슬살이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음에도 흔연히 전원살이를 결행한 시인의 속내는, 그가 관직 생활을 ‘오랫동안 새장 속에 갇힌’ 것으로 여겼던 데서 잘 드러난다. 새장을 떠난 다음에야 그는 ‘뜰 안엔 세상의 번잡함이 없고 빈방엔 한가로움이 넘쳐난다’는 걸 실감했다. 이후 시인은 ‘경전을 읽어도 깊은 뜻을 헤아리느니 대충 이해하면 된다’는 느긋한 마음새로 전원생활의 여유를 만끽했다.
들풀 가족의 전원일기 고구마 수확 20211016(토)
✵ 도잠(陶潛·365∼427)은 도연명(陶淵明)이다. 자는 원량(元亮)이고 이름은 잠(潛)이다. 호는 집 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가 있다고 하여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하였다. 심양(潯陽)의 시상(柴桑) 출신으로, 현재는 장시[江西]성 지우장[九江]이다. 동진(東晋) 말에서 남송(南宋) 초기의 시인이자 문학가이며 산문가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주로 시를 썼으며 귀거래사'(歸去來辭)가 유명하다. 중국의 서정시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당(唐) 나라 이후로 육조(六朝) 최고의 시인으로 불린다.
서진(西晉)의 유명한 장수 도간(陶侃, 257-332)이 증조부였지만, 가정 형편이 부유하지는 않았다. 29세에 벼슬길에 올라 강주제주(江州祭酒)로 시작하여 건군참군(建威参軍)과 진군참군(鎭軍参軍) 등을 지냈다.
그러나 벼슬살이에는 큰 뜻이 없었기에 41세 때 누이의 죽음을 핑계로 팽택현령(彭澤縣令)을 사임한 후 전원으로 돌아간다. 이때 관리를 그만둔 이유를 〈귀거래사혜(歸去來兮辭)〉로 쓴다. 귀향하여 직접 농사를 지었고, 이를 계기로 전원생활에 대한 작품을 창작한다. 그 후 62세에 생을 마친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동아일보 2021년 10월 15일(금), 이준식의 漢詩 한 수(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원색한국식물도감(이영노,교학사)》, 《한국의 자원식물(김태정, 서울대학교출판부)》, 《Daum, Naver 지식백과》/ 생태사진과 글: 이영일∙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무원 김명희 교장선생님
도연명의 여유스러움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전 현실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자연에서 치료하는거지요. 홍천에 상주하는게 아니라서일까요? 거의 일과 싸운답니다. 잡초와 싸우고 곤충과 싸우고~~ 지금도 내일 한파예고에 고추를 따야 할 지 그대로 둬야 할 지 고민 중이랍니다. ㅎㅎ
관직을 마다하고 전원을 즐기는 도잠의 느긋한 마음새~~♡♡
고봉산 정형욱 님
몇번씩이나 벼슬을 내던지고 귀향으로 얻는 자유로움에서 시를 쓴 시인 도잠이 누군가했드니 바로 도연명이였군요
오늘 한파에 무를 그냥 둬야할지? 고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