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도의 일반 중학교 시절은 부모의 걱정과 달리 순탄하게 지나간다. 한나 선생님의 뜻있는 마음과 성심 어린 마음으로 균도는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고등학교를 진학해야 하는데 집이 시골이라 진학할 곳이 없다. 특수학교나 장애특수반이 있는 곳은 인원이 다 차버렸다. 교육청이 수요 조사를 잘못한 까닭에 그해 학생이 너무 늘어나서 증원이 힘들다고 한다.
단비에 희소식이랄까? 이제 균도는 일반 학생으로서의 학창시절은 끝내어야 할 것 같다. 다른 학생의 학업 스트레스를 균도가 받는 것 같다. 대학이라는 명제에서 고등학교는 변질되어 가고 있고 성적지상주의에서 아이들이 숨을 못 쉰다.
균도 역시 중학교 때 일반 학생하고 더불어 성적을 낸다는 것이 나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장애 특성을 무시한 채 균도도 일반 학생과 더불어 시험을 쳤다. 용하게 꼴찌는 면했지만, 아무런 의미 없는 성적표가 날아온다.
집 근처에 조그만 학교가 개교한단다. 아직 뼈대만 있지만 균도를 진학시키기로 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난 부모운동에 관심은 없었다. 내가 사는 곳이 시골이라 혼자 학교 현장에 부딪혀 해결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직 학교가 인가가 나질 않아 고심 중에 마지막 날 조건부로 인가가 나서 균도는 겨우 갈 곳이 정해졌다. 부산성우학교 고등부. 이제 균도가 다닐 학교다.
학교는 사립이지만, 학교 선생님이 젊은 분이라 마음에 든다. 학교 다니는 순간부터 나이 드신 선생님에 대한 편견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고등학교에 잔학하고 나니 나름대로 고심도 많다. 균도가 학교에 들어가니 사립이라는 학교법인과의 마찰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균도의 교육권을 위해 무지하게 많이 뛰었다녔다. 다른 학부모와 연대해 학교에 대항하고, 그런 와중에 장애인부모회를 만났다.
장애인부모회는 나에게 희망이었다. 혼자서는 너무 절실했기에 너무나도 큰 용기였다.
그렇지만 부모회는 대부분 어머니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학령기를 벗어난 부모님이 많아 학령기 문제에 대해서는 경험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난 그래도 부모회의 일원으로서 균도의 미래와 장애인 가족의 앞으로 일어날 일을 같이 이야기하면서 이루어 나가자고 다짐하고 연대했다. 단비 같은 사람들이었기에 같이 싸워나간다면 우리 아이의 미래는 꼭 이루어질 것 같았다.
▲오늘은 기초법 부양의무자 기준 전면 폐지를 위한 보건복지부 규탄 투쟁현장에 와있다. 서울 복지부 앞에서 빈곤층 죽이는 보건복지부를 규탄한다. |
이진섭 부산장애인부모회 기장해운대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