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18. 월요일 저녁무렵.
고등학교 남녀 동창생들의 모임을 양재역 인근의 음식점에서 가졌다.
회의 직전에 충북 영동 출신의 S시인이자 사진작가의 영상이 화면에 흘렀다.
화면 속의 한국산 소나무를 보면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뒤틀리고, 휘어지고, 닭발처럼 잘린 소나무의 형상에 어떤 아픔을 느꼈다.
내가 대전 C고교 카페에 글 올리려다가는 그만두었다.
대신에 여기에 올려서 내 글감으로 삼는다.
좋은 작품이군요.
화분 속에서도 저렇게 큰 나무를 심어서 가꿨다니 정성이 대단하고, 식물재배 기술도 상당하군요.
저는 이런 능력을 '부럽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식물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학대'이지요.
화분 속의 식물을 뽑아내서 너른 땅에 심었으면 합니다.
식물이 뿌리를 넓게 깊게 벋게끔 하고, 키와 가지도 많이 번졌으면 싶지요.
어제 제 고등학교 동창생 모임에서
시인이며 사진작가인 친구가 한국산 소나무 사진을 화면으로 방영했지요.
친구들은 괴기스럽게 뒤틀린 소나무 작품 사진을 칭찬하대요.
병신이 된 소나무, 닭발처럼 뭉뚱 뭉뚱 잘린 형태의 나무들, 굽어지고, 휘어진 상태의 나무들이 영상에 흐르대요.
저는 고개를 흔들었지요.
한국의 소나무는 엄청나게 크고 올곧고, 단단해서 큰 건축자재로 활용하지요.
이런 소나무를 병신처럼 뒤틀리게 만드는 게 예술?
서해안 산골 아래의 텃밭 세 자리.
밭에는 조경수, 꽃나무, 과일나무들로 가득 찼지요.
하늘을 찌르듯이 올곧게 큰 은행나무를 비롯하여 앵두나무, 호도나무, 목백일홍 등이 눈에 훤하네요.
덕분에 작품성 사진 잘 보았습니다.
결언한다.
반려식물, 분재식물 ....
모두 병신으로 만든다.
식물학대이다!
분재를 하면 식물 가꾸기에 더욱 정성을 들여야 한다.
분재가 화분에서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핵심적인 이유는 분갈이를 하기 때문이다.
분토가 오래되면 미량요소가 부족하고 비료의 흡수도 잘 되지 않고, 심하면 뿌리가 꽉차서 배수가 불량해져 나무가 쇠약해진다. 적절한 시기에 분갈이를 해야 한다.
나는 서울 아파트에서 산다.
시골생활을 잊지 못해서 화분에 식물을 심으면서도 늘 미안해 한다.
시골에 내려갔다가 귀가한다.
자연 그대로 놔두었으면 싶은데도 삽으로 떠서 자동차 트렁크 안에 넣고는 서울로 가져온다.
화분 속에 심었는데도 곧잘 죽는다.
시골에 그냥 놔두었더라면 후회하면서도 화분에 또 욕심을 낸다.
시골에서 농사 짓고 싶다는 욕구의 표현일 게다.
시골에서 살면서 수백그루의 묘목을 심었지만 전정을 하지 않았기에 제멋대로 웃자란 과일나무들.
숱하게 죽었어도 지금은 자생하는 나무와 풀들로 가득하다.
함께 살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나도 시골생활을 접고는 서울로 올라와서 산다.
무엇이라도 해야 하기에 좁디좁은 아파트 베란다에 화분 140여 개를 올려놓고는 '화분농사'를 짓는다.
예컨대 고추씨앗을 화분 흙에 묻어서 싹을 틔워서 키우면 고추는 다년생이라서 오래 산다.
해마다 붉은 고추도 익어가고....
이처럼 나는 사물 하나라도 정성을 들인다.
일전 고교 모임에서 여동창생이 내 손을 잡고는 말했다.
'윤환씨는 마음이 참으로 따뜻한 사람이야. '
사물 하나라도 소중히 아끼려는 내 마음을 아나 보다.
나중에 보탠다.
2024. 3. 19.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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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
오늘은 3월 21일 목요일.
봄하늘이 맑고 밝고, 푸르다.
이 글 쓰면서도 오늘이 며칠인지를 몰랐다.
핸드폰을 열고서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이처럼 서울에서 사는 나는 늘 어리벙벙하다.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기에 ....
아파트 쓰레기장에 주민이 내다버린 화분, 화초 등을 나는 주워와서 이를 재활용한다.
무생명인 물품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고, 생명이 있는 식물들을 아끼며 사랑하려고 한다.
깨끗이 씻고, 다듬어서 정성을 들이면 화분과 화분 속의 식물은 이에 대해서 오래토록 보답한다.
전족(纏足)
* 전족 : 중국의 옛 풍습의 하나.
여자의 엄지발가락 이외의 발가락들을 어릴 때부터 발바닥 방향으로 접어 넣듯 힘껏 묶어 헝겊으로 동여매어 자라지 못하게 한 일이나 그런 발을 이른다.
사진들은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용서해 주실 게다.
사진에 마우스를 대고 누르면 사진이 크게 보인다.
첫댓글 네 그래요. 식물 입장에 관찰 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식물의 입장에서 본단면 분재는 때로는 모순이지요.
지난해 늦가을 시골로 시향 지내려고 내려갔지요.
이웃집 밭에서는 고추 농사가 끝나서 고추대를 뽑아서 내버렸대요.
주인한테 말해서 세 포기를 얻어서 서울로 가져온 뒤 화분에 심고는 살아나기를 희망했으나 ... 모두 죽었지요.
제가 아파트 안에 있는 큰 화분, 큰 식물들은 쓰레기장에 내다버린 것들을 주워와서 재활용한 것들이지요.
헌 화분이라도 깨끗하게 씻으면 훌륭한 화분이 되며, 뿌리 뽑혀서 내동댕이 친 화초라도 주워서 정성들이면 되살리지요.
물론 대부분 식물은 이미 죽었지만 더러는 살려내서, 식물의 자손을 퍼뜨리지요.
식물도 이런 것을 알 겁니다.
말은 하지 않아도...
분재식물의 학대 식물입장에서 보면 옳은 말씀입니다
어릴때 봤던 중국여인의 뒤틀린 전족이 생각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시절에 대전으로 전학 갔지요.
대전 시내에는 화교 중국인들이 제법 있어서 이따금 아주머니들을 봅니다.
발이 병신이 되어서 뒤우뚱 뒤우뚱 걷는 여자가 정말로 안타까웠지요.
대전 대흥동 천주교 인근에는 중국 빵집들이 제법 있어서 중국여자를 이따금씩 봤지요.
중국 남자들은 전족하지 않았을까요?
왜 여자한테만 발 병신을 만드는지....
중국의 괴기한 전족 문화가 지금껏 제 뇌리에 박혀 있군요.
화분 속에 박재된 식물도 같은 이치일 겁니다.
분재에 대한 생각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만,
'병신'이란 표현이 몹시 거슬리네요.
댓글 고맙습니다.
'병신' 이외에 다른 표현이 있을까요?
불구, 장애,
제가 그당시 본 중국 여자의 걷는 모습이 정말로 괴상했지요.
그당시 중국 남자들은 왜 그렇게 심성이 고약했을까요?
고약한 사회풍속이었을 터.
@최윤환 최윤환선배님
장애란 댓글은..지나친듯합니다
남에게 상처주시는 댓글은
아닌것 같습니다...
댓글이 모독처럼 느껴집니다
식물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분이, 언어가 거칠어서,,,
그러게요
국어 우리말 애정한다면서~~
너무 놀라운
요즘 거의 안 쓰는
표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