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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교회 고난을 축복으로 여기자 !
2002년 어느 날, 옥한흠목사님은 본인이 65세에 물러나고
오정현목사님이 사랑의교회 담임목사로 오셔야 하는 당위성을
남자 순장반에서 논리 정연한 말씀으로 설명했습니다.
그 말씀 이 후 한편으로 왜 순장들이 한사람도 "안됩니다"라고
반대의견을 제시하지 않는지 조금은 아쉽다는 인간적인 마음을 피력한 적이 있었습니다.
2003년 8월, 한 사람의 이의 제기 없이 후임 담임목사님으로 오정현목사님이 부임했습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사랑의교회는 예배인원 17,000명선에서 34,000명선으로
폭발적으로 성도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세대교체와 제자훈련에 의한 건강한 교회의 이미지를 토대로
사랑의교회는 활력이 넘치고 다락방은 부흥의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오정현목사님의 찬양은 말씀으로만 은혜를 받던 모든 성도들의 울림이 되었고
성령 충만함이 무엇인지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3년 8월부터 시작된 새벽기도의 은혜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늙어 자식을 낳을 수 없었던
사라의 은혜를 통해 이삭을 낳은 축복으로 대대손손 믿음의 자손이 이어졌던 것처럼
사랑의교회를 축복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옥한흠 목사님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후임 오정현 목사님을 정한 안목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때 예배의 말씀은 옥목사님보다 좀 떨어지더라도 이러한 찬양의 은사를 발휘하면서
성령의 은혜로 사랑의 교회가 발전해 나간다면 한국교회의 새로운 발전모델이 될 것으로
예측해 보기도 했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께서는 2006년 6월 폐암 초기 선고를 받으셨습니다.
연약한 육체적 한계가 있으셨지만 수술 후 잘 요양하면 완치되실 수 있는 상태라고
사랑의교회 기라성같은 의사 장로님들이 조언해 주셨습니다.
항암주사는 목사님의 연약한 체력으로는 버거웠기에 맞을 수 가 없었습니다.
옥목사님은 순진한 마음으로 "내가 오목사 너를 후임으로 선택하고 인계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할 뻔 했나"라고 목회인계를 잘했다고 술회한 적이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2007년에 접어들면서 사랑의교회는 본질을 벗어난 목회적 문제점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 했습니다.
제자훈련이 약화되고 있었고 다락방의 순원들의 수가 줄고 은혜가 식어 가고 있었습니다.
여자순장반의 대외봉사활동(난곡사랑의집 식사봉사 등)이 없어지고
순장 직분만을 받으려는 집사님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순장의 숫자는 늘어나는데 순원들의 숫자는 줄어드는 기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섬기는 자세보다는 사랑의교회 순장이라는 직분이 명예로운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으며
직분만능주의 사조가 순장들의 마음 속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풍조가 남순장반에 번져나갈 즈음, 남순장반의 활력을 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2009년 5월 1일, 남순장반 비젼트립이 조직되었습니다.
연변과기대와 백두산 두만강 칠백리길 비젼품기 탐방에 나섰던 12명의 순장들은
그곳에서 북한 어린이 양식 보내기 운동과 남순장반 출신 교수님들의 눈물겨운 전푹훈련의 현장
(훈련생들에게 밥 한끼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는 형편)을 목격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후 남순장반의 선교헌금 모금을 시작해 한해 2천5백만원을 지원하는 노력을 하고 있었으나
4년째 접어든 순수한 열정도 점점 더 식어만 가는 중병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순장반 조직 속에서 한국교회의 제2의 부흥이 일어 나겠는지요.
부목사님들의 심방이 점점 뜸해지더니 다락방에 빠진 순원들 자리에
간혹 새로운 순원이 배정은 되고 있지만 다락방으로 출석하는 순원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까?
한 가정의 진정한 심방과 교제가 없이 부인들의 권유만 듣고 다락방으로 인도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교회 소그룹의 허상은 한 영혼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광인정신으로 무장된
담임목사의 노력이 없이 헛된 욕망과 야심이 허황된 비젼을 품고
모든 조직을 사조직화 했기 때문입니다.
또 거기에 발맞춰 나갔던 부목사들과 당회의 장로들과 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것을 방관하고 나만의 축복을 바라는 나 같은 기복신앙의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외적으론 블라디 보스토크의 군인휴양소를 구입한 손니치와
중앙아시아에 문화센터를 매입하여 북방선교의 기지로 사용한다고 했지만
텅 빈 센터의 운영비로 적자가 누적되고 있습니다.
장애인 복지관을 세우기 위해 용인에 부지를 매입했지만
주민 반대로 복지관 건립은 커녕 맹지라서 부지가 팔리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제천기도동산을 매입 수리하여 성도들의 기도처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용률이 낮아 적자관리로 유지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 정부가 권장하고 있는 삼자교회와 제자훈련 적용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추진하고 있는지 설명도 진전도 없습니다.
최근엔 영국 웨일즈에 선교비젼을 이루기 위한 선교센터를 세우고 매년 7억원의 비용을 지원한다는데
영국인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우리교회 내부는 텅 비어 가는데
왜 우리가 헌신한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강원도 횡성에 사랑의 전인치유 센터를 17억을 지원하여 지어 놓고
한사람의 암환자도 유치하지 못하고 있고 남녀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이 참여도 하지 않는다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도 없습니다.
한 영혼을 변화 시키려면 광인이 되어야 한다는 옥목사님의 목회철학을 외면하고
제자훈련의 세계화와 한국교회의 제2의 부흥을 위한 오목사님의 목회지향점은
세계인 모두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나요?
한사람의 인사도 잘 받지 않는 인사성 없는 성품으로
한국교회의 부흥을 이루어 내는 지도자가 될 수 있는지
이런 깡통 비젼으로 깡통광인이 되겠다는 깡통 목회철학인지요?
내실없고, 적자만 늘어나고, 구호만 난무하는 알맹이 없는 비젼이
오목사님의 세련된 한복 두루마기로 각인되고 있습니다.
옥 목사님은
타일러도 보고,
나무래도 보고,
큰소리로 야단도 쳐보았지만 막무가내기식으로
점점 오목사님은 자신의 야심찬 생각대로 교회를 요리해 갔습니다.
교회직원들이 항의가 늘어 갔습니다.
오정현목사님을 추종하는 부목사들로 주위를 여리고성처럼 보호하고
사회적 지위와 재력이 있는 사람들로 장로를 선임하고
충성 맹세한 장로들로 당회를 구성하여 점차 사조직화하고
미래를 경영하기 위한 발전연구회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정치조직의 중심에서 한국교회의 지도자로 야심찬 야망을 실현하고자 혈안이 되어 갔습니다.
또한 이러한 성도들은 표절이 아니고 협박당했다는 거짓 술수로 눈물짓는 오목사의 호소에
박수를 치고 있습니다.
순장반도 재교육을 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면서
재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순장들을 다시 가르쳐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가르치면 뭐 하나요 실행이 하나도 없는데 . . .
교회 전반에 걸쳐 비판의 목소리가 커져 가고 있었을 때
원로 장로님들이 오목사님의 목회에 여러 문제가 많으니
당회를 통해 제재를 해야한다는 의견을 옥목사님에게 개진하고
추진할 것을 옥목사님에게 간곡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옥목사님은 사랑의교회가 혼란에 빠지면 안된다는 단호한 입장으로
원로 장로님들의 충언을 막으셨습니다.
옥목사님의 보호 우산 밑에서 오목사님은 자신의 욕망과 야망의 실체를 꺼리지 않고 드러내며
옥목사님의 충언도 얕잡아보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2008년 6원1일 옥한흠 목사님의 최후 결단의 시간이 왔습니다
옥목사님께서는 오직 사랑의교회 만이라도 살려보기 위해
"사랑하는 오정현 목사에게"라는 이 메일을 보내게 됩니다
30년동안 쌓아올린 사랑의교회 명성이 목회 비젼의 차이로 인해
몰락의 길로 들어선 상태를 바라보는 비통한 심정으로 지적한 10가지 질문(아들이 올린자료 참조)은
옥목사님의 참담한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옥 목사님은 화요일에 만나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미리 알려주는 것'이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치밀한 서두의 말씀을 적었습니다.
그러나 화요일 오정현 목사는 대화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야비합니다 .
오늘의 그가 있게 한 은사요, 아버지를 향해 비수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 후 10가지 질문에 대해 두 분이 만나서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두가 모르고 있습니다.
2008년 11월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이진수박사의 검진결과는 폐암 재발 이었습니다.
얼마나 마음 깊이 괴로워했으면 그랬겠습니까?
이진수박사님은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니 염려하지 말고 전력을 다해 치료해 보자고 간청을 했습니다.
옥목사님은 치료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는 두문 불출 했습니다.
사모님의 극진한 배려에도 먹는 것 조차 사양했습니다.
오정현 목사님도, 아끼고 사랑하던 초기 제자반 원로 장로님들도 목사님을 뵙기 위해 노력 했지만
목사님은 끝내 현관문을 열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호스피스봉사자로서 수많은 암 환자들의 말벗이 되어 마지막 임종의 순간을 지켜 왔었기에
사랑하는 목사님의 마지막 외로움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 목사님의 옆에 다가가기를 자원했지만
목사님은 "고맙고 감사하지만 내 자신이 혼자 있고 싶다"고 정중히 거절 했습니다.
저는 단언하지만 그때 목사님은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죽음뿐이라는
거룩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으리라 짐작 합니다.
2010년 9월2일 마지막 임종의 순간 옥목사님은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오정현 목사의 손바닥에다 "나를 위해 기도한 성도님들에게 감사한다"라고 썼다고
오목사님께서 예배 중 말했습니다.
(오목사는 자신의 손바닥에 옥목사님이 직접 썼다고 말했지만
실제론 "누가 제일 보고 싶은가?"라는 아들 옥성호의 질문에
"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라고 조그마한 칠판에다 쓰셨다함)
그것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랑의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셨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2011년 8월, 우리가족 8명 모두가 제천 기도동산을 방문하여 예배가 끝난 후
50여명 정도의 인원밖에 없던 본당에서 오목사님을 뵙고 인사를 하고자 준비를 헀으나
뭐가 그리도 중요한 일이 있으신지 담당 부목사님과 말씀만 나누고
성도들이 나갈 때 손 한 번 잡아주지 않던 오목사님,
상처입은 성도들의 마음을 어루만질지 모르는 고약한 태도가 새삼 떠오릅니다.
바티칸의 베네딕트 16세 교황이 사임을 했습니다.
사임의 사유는 바티칸 신부들의 성추문과 뇌물 수수사건이 주된 이유라고
로마인들이 인터뷰에서 지적했습니다.
신부들의 잘못을 징계하면 천주교 전체가 문제화됨으로 인해
교황이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명예를 지키려 한 것입니다.
최고 책임자가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에 동참하는 거룩한 모습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 이후 바티칸은 115명의 추기경들이 모여 콘클라베를 통해 다섯 번의 투표 끝에
새로운 교황을 선출했습니다.
서너 명의 유력한 후보자들이 선택되지 않고 청렴과 겸손의 덕목으로 꼽히던
프란체스코 1세 추기경을 교황으로 선출했습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도 자가용을 타지 않고 버스로 동료들과 함께 돌아와
동료들과의 식사시간에 건배사를 통해 "하나님 나를 뽑아준 추기경들을 용서하여 주소서"라고
말씀하신 위대함이 우리교회의 모습과 확연히 비교 됩니다.
저는 지난 두 달동안 아내와 많은 의견 충돌이 있었습니다.
저는 오정현 목사님이 스스로 사퇴함으로서
사랑의교회가 다시 한 번 성도들의 성숙한 모습을 한국교회 앞에 보일 수 있기를 기대하며 3월 13일을 기다려 왔습니다.
아내는 성숙한(?) 성도가 목회자를 비판하는데 앞장서고 불순종한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교회에 나가 은혜를 받을 수 있는가? 라고 쏘아 붙이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게 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우리 가정이 어떻게 축복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라면서
작년 1월에 태어난 친손주가 출산 후유증으로 아기의 폐가 열리지 않아 23일간 숨죽이며
죽을 수도 있었던 아기를 하나님께서 살려냈던 걸 잊으셨는가? 라고 하면서
흠이 없는 목회자가 어디 있는가 조금씩 문제가 있어도
긍휼로 용서하고 감싸주는 마음이 있어야 축복을 받는다는 설교적 대응에 기가 죽어 지냈습니다.
아내와의 충돌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평화롭던 한가정이 이러한 영적충돌로 인하여 받는 고통은 누가 해결해 주나요.
저는 3월 18일 0시를 기해 사랑의교회 순장직을 내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섬기고 봉사하던 모든 사역을 중단했습니다.
철따라 다르게 입고 나오시는 오목사님의 멋진 두루마기 한복 속에 감추어져있던
무서운 욕망과 야망의 실체를 자세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만 불분명한 태도로 인해
제자신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기 싫어서였습니다.
오목사님의 다락방교재만 봐도 위선의 글로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오정현목사님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반납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 마음속에는 제가 받고 있는 지금의 고난을 기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난은 축복의 통로라고 배운 그 진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이번 고난을 통해 내가, 교회가 더 성숙되기 위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네가 나를 부인 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부끄러움이 뼈에 사무쳐 울고 있던 베드로를 친히 찾아오셔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 하느냐"라고 똑같이 세 번 반복 질문 하셨던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제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똑같이 세 번 반복 대답케 하시면서 실의와 낙심에 젖어있던 베드로를 변화시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물로 사용하신 주님을 저는 목숨을 다 해 사랑하고 싶습니다.
이 세상의 6,000년 역사는 주님의 일로 기록되어 있고 인간은 주님이 주신 진리의 말씀으로
세계공동체 지고의 가치를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모든 사회계약의 기본 가치는 주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한순간 모순과 불의가 우리를 아프게 할지라도 진리는
다시 이 땅의 희망으로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부족하고,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저의 능력이 미치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사랑의교회와 옥한흠 목사님의 유지를 받들고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고
그 영혼이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목회 철학을 숭고히 지키는데
작은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2013, 03, 21, 09:00
죄인 권** 안수집사 (양재 2-1교수)
첫댓글 지난 해의 글(사랑넷, 하우사랑?)입니다. 실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본인이 원하시면 수정하겠습니다.
사랑의교회 고난을 축복으로 여기자! 는 글 절절히 공감합니다.
복음의 본질회복을 위해 영혼구원과 교회의 거룩성을 회복하고 주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갱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절제된 감정으로 담담히 쓰신 글, 다시 읽어도 감동으로 또 눈물이 나네요....
매번 읽어도 감동입니다 새롭게 다짐합니다.
@사랑넷가입원함 그렇군요
한구절 한구절이 가슴속에 절절이 와 닿는 군요.
'흠이 없는 목회자가 어디 있는가 조금씩 문제가 있어도
긍휼로 용서하고 감싸주는 마음이 있어야 축복을 받는다는 설교적 대응'이라는 말씀에 절대적 공감이 많이 갑니다.
오먹사의 잘못된 행동과 관행을 위와 같은 생각을 많이 하는 성도들이 많은데, 어찌 오먹사의 참다운 회개가 이루어 질 수 있을 까요? 참 답답한 현실입니다.
눈물겨운 이야기입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네...
인사성없는 성품...성도들을 우습게보는 태도의 단면이지요..작은 모습이지만 여러번 겪으면 그자의 인간성과 교만이 보이지요
그자의 눈물쑈를 보면 성품을 알죠,,,참 비굴하죠...이제는 속이 훤히 보이는거같습니다
어제 인터넷에 일본의원의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쑈가 화제가 됬는데 ...속이 확실히 보이죠 근데 연기력은 한수 아래네요
<강원도 횡성에 사랑의 전인치유 센터를 17억을 지원하여 지어 놓고>.... 이 부분은 황성연블로그에 70억으로 나옵니다.
아마 사랑의교회 지원금 만 17억입니다.
나머지 돈은 박남규목사님의 사비와 헌금으로 신축되었습니다.
그 지원금을 받기위해서 무척 힘이들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도 작년 3월 생각이 다시 나네요 거의 멘붕상태였습니다 이 글을 쓰신 ***집사님! 안수집사회를 재건하는데 역활을 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매우 훌륭한 글입니다. 전체의 구도가 너무 잘 묘사되어 최근 십년간의 자료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몇 가지 정확한 자료의 정리가 필요하다고 저는 봅니다. 일후에 제가 이글에 명시된 사안의 첨언의 글을 쓰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2003.예배인원 17,000명선에서는 2003년 당시 예배인원은 21,000명입니다.(구자관장로확인)
아름다운 세대교체와 제자훈련에 의한 건강한 교회의 이미지도 이유가 있었지만 강남의 주위에 있는 대형교회 즉 S. K. C교회의 문제가 표출되자 그곳에서 이탈한 성도들의 이입으로 인한 요인도 한목했습니다.
집사님의 많은 고민이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권** 안수집사님의 영적 안목이 대단함을 목격합니다. 장로가 되셔서 당회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분인데 참으로 아깝습니다. 여러 가지 의문점들을 제시하셨는데 정확한 답변은 어렵지만 조용한 교회는 영성이 부족한 교회입니다. 그렇다고 싸우고 시끄러운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영적인 성숙의 물고를 트지 못한 목회자들의 소극적 태도가 가장 큰 문제일 수 있습니다. 평신도들이 목회자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는 목회자는 결코 좋은 목회자는 아닙니다. 제 눈에는 모두가 그렇게 보였습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가 자라나야 합니다. 가정문제가 있으시지만 부인께서는 분명히 권집사님의 발걸음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타협이 필요하겠지만 맨 먼저 부인께서 권 집사님을 전적으로 밀어드려야 합니다. 기독교인으로서의 축복은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잘 자라고 건강유지하고 풍성한 가계를 꾸려나가는 것이 측복입니까?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목사도 평신도와 같은 성도라는 것을 신성남 집사님의 글에서 보셨을 것입니다. 목사가 잘못하면 그 죄값은 교회가 받습니다. 교회가 죄값을 받으면 모든 교인들이 영적으로 침해를 받게 됩니다. 교회는 생명이 있고 살아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 자체입니다. 교회를 헤치는 목사는 물러나야 합니다. 이것이 공동의회의 장점을 살리는 장로교회인데 이 기능이 오목사 때문에 마비..
되었습니다.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에 권징의 기능이 있어야 하는데 그 권징은 성경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목사가 자기 반대하는 장로를 권징하여 당회를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것이 지금 목사의 의중입니다. 그런데도 교인들은 오목사가 무슨 말만 하면 "아멘, 아멘"하는 쓰나미 같은 제직회와 공동의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나 혼자서 아무 것도 못한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교회가 짓밟히고 있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눈물로 지새시는 것을 보암직하지 않습니까? 이것을 위해서 우리 모두가 재를 뒤집어쓰고라도 회개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