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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개역:『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 보
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
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자들이
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
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5-17)』
◇신세계역:「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모든 창조물
가운데 처음 나신 분이십니다. 다른 모든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곧 왕좌들이든 주권자들이든 정부들이든
권위들이든 그에 의하여 하늘과 땅에 창조되었기 때문
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그에 의하여 그리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다른 모든 것보다 먼저 계시고,
그에 의하여 다른 모든 것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
영문 신세계 역 본문에도 “other”라는 단어가 4개 들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개역성경 골1:15-17에서 『다른』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쓰이지 않았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그러면 신세계역을 보자.
위에서 보듯이 신세계역에는 “다른”이라는 단어가 4번이나 들어 있다. 왜 그럴까? “다른”이라는 단어가 4번이나 들어 있다고 해서 무슨 큰 일이라도 생기는 것일까? 먼저 영어 성경을 보자. RSV나 KJV나 NIV나 ASV나 International Bible Publishing Company 판 The Simple English Bible 신약성경을 보아도 “다른”이라는 단어는 하나도 없고 유사한 의미를 가진 단어도 없다.
이번에는 헬라어 성경을 보자. 골로새서1:15-17 어디에도 “다른”이란 의미를 가진 헬라어가 한 군데도 없다. 이상하다. 명색이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신세계역인데 그 성경에 4번이나 쓰인 “다른”이 헬라어 성경에서는 한 군데도 보이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필유곡절(必有曲折)이다.「여호와의 증인」이 골로새서1:15-17에 헬라어 성경에 없는 “다른”이라는 관사를 4번이나 끼워 넣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일 것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다른 만물보다 먼저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인데, 언뜻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무서운 흉계가 숨겨져 있는 있다.
이성호편 성구대사전(Bible Concordance)을 보면 “다르다”란 항목으로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헬라어 단어는 διαφέρω, ἑτεροδι-δακαλέω, ἄλλος, ἀλλότριος, διάφορος, ἕτερος, λοιπός, ξένος, ἀλλαχοῦ, παρά 등 이다. 이상의 열 개 단어 가운데 「여호와의 증인」이 골1:15-17에서 “다른”이라고 사용한 헬라어는 어느 것일까? 한글 성경만 보아서는 알 수 없다. 신세계역 영문 성경을 보아서도 알 수 없다. 두 가지 단어로 압축해 볼 수 있다. ἄλλος(알로스)와 ἕτερος(헤테로스)이다. 고영민 편저 신양성서 헬라어사전을 보면 ἄλλος는 [질에 대해] ‘다른, 같은 성격, 종류가 아닌, 서로 다른’이라는 설명이고, ἕτερος는 ‘종류의 차이, 질적 차이까지 포함’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여호와의 증인」이 골1:15-17에서 끼워 넣기 한 “다른”은 ἕτερος 를 염두에 두고 썼을 공산(公算)이 크다. 간교한「여호와의 증인」이 아무 의미 없이 “다른”이라는 단어를 썼을 리 없다. 신세계역 한글판을 꼼꼼히 읽어보면 답이 나온다.「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성을 부인하고, 피조물이라는 교리를 전파하기 위하여 “다른”이라는 단어를 넣은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을 피조물로 본다. 다만 다른 만물이 창조되기 전 맨 처음 창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예수님에 의해서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피조물 보다 먼저 존재했을 뿐이라는 그 썩어 빠진 주장을 여기서도 되풀이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헬라어 원문에는 없는 그야말로 다른 복음일 뿐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잠30:6의『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라는 말씀을 명심하라.
◆한글개역:『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신세계역:「시초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은
신이셨다. 」
한글 개역성경과 신세계 역의 문장을 비교해 보면 의미상으로 차이가 없는 듯이 보인다. 차이가 없는 듯이 보이는 것이 함정이다.
우선 영어성경을 보자.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KJV, NIV, RSV, ASV)이다.
영문으로 된 신세계역을 보자. 다른 부분은 똑 같은데 마지막 부분이 다르다. 달라도 아주 다르다. 끝부분이 “.....and the Word was a god”이라고 되어있다. “a god" 이라고.
달라도 아주 다르다고 했지만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의역(意譯)을 한다면 한글개역성경이나 신세계역이나 “그 말씀은 하나님이었다”라고 번역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도들이여, 마귀의 술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사탄은 교묘하게 역사한다. 어떻게 교묘한가 알아보자.
영어를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은 정관사(定冠詞)와 부정관사(不定冠詞)의 용법을 알 것이다. 정관사를 사용하여 “This is the boy”라고 하면 바로 그 소년(유리창을 깼든지, 사과를 따먹었든지 하는 바로 그 소년)을 의미한다. 부정관사를 사용하여 “This is a boy”라고 하면 소년 중의 하나를 말한다. 특별한 의미가 없는 여러 소년 중의 하나라는 뜻이다. 국어사전을 보면 부정관사(不定冠詞)를 풀이하기를 “관사의 하나. 구미어(歐美語))에서 명사나 집합 명사의 단수형의 앞에 붙어 ‘하나’, ‘어느’등의 뜻을 표시함. 반대말은 정관사”라고 했다.
신세계역의 영문“...... and the Word was a god”은「여호와의 증인」의 예수님 격하(格下) 흉계의 극치를 보여준다.「여호와의 증인」은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a god”이라고 써 놓았다. 그리고는 그들의 신세계역 한글판 요1:1에는「.....말씀은 신이셨다.」라고 번역해 놓았다. 아무리 예수님을 격하시키기 위해서라지만 해도 너무한 짓이다. “a god” 라고 하면 귀신, 잡신을 의미한다. 영한사전의 ‘god’표제를 보라. 하나님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할 때는 반드시 대문자(大文字)로 “GOD” 또는 “God”라고 쓴다고 표기되어 있다. 웹스터 영한사전에도 'god' 표제어에 “신, 남신, 우상, 신과 같은 것, 신과 같이 숭앙 받는 사람.....”등으로 설명하고, [G〜]라고 대문자로 시작하면 “하나님, 조물주”라는 뜻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요1:1을 다시 보자.“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KJV, RSV, NIV, ASV). 여기서 보면 하나님의 모든 것이 the Word(헬라어 ό λογος:호 로고스) 안에 표현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관사가 붙었으므로 두 단어는 상호 교체 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ὁ λόγος 는 관사가 붙음으로써 주어임이 분명해 지고, θεὸς(데오스: 하나님)는 관사가 없으므로 술어임이 명백해 진다. 이것은 마치 요4:24에서 πνεῦμα ὁ θεός(프뉴마 호 데오스: 하나님은 영이시니)를 의미할 뿐 “영은 하나님이시니”를 의미할 수 없는 것과 마찬 가지이다. 따라서 헬라어 문법상으로 봐도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이다. 할렐루야! 「여호와의 증인」은 헬라어 원문의 θεός(데오스: 하나님)앞에 정관사인 ὁ (호)가 없기 때문에 “a god" 이 옳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카고대학의 콜웰(Ernest. C. Colwell)박사는 “헬라어 문법에서 정관사적 서술 명사는 그 명사가 주동사를 따를 때에만 정관사를 취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관사를 취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여호와의 증인」의 번역이 틀렸다는 말이다. “...the Word was God.”이 옳다는 말이다. 헨리 디이슨은 그의 조직신학강론에서 같은 말을 하고 있다. “.....and the Word was God."(헬라어 원문은 και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 여기서 “θεὸς 앞에 관사가 없는 것은 ”하나님“이 술어(述語, the predicate)가 되어 있음을 뜻한다. 즉 하나님이 누구시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로고스가 누구시냐에 관한 문제이다.” “...the Word was God.”이 맞는다는 말이다.
정관사에 관한 헬라어 문법을 좀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호머던컨(Homer Duncan)의 글을 인용하고자 한다.
《유능한 희랍어 학자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의 번역이 잘못 된 것을 제시하기 위해 두 개의 기본적인 희랍어 문법을 예시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1)정관사 “the”의 기능은 개개의 정체를 지적하기 위한 것이지 반드시 무쌍(無雙)함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정관사 the가 하나님의 경우에 사용될 때 그것은 앞에 전술(前述)된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독자들은 이미 그 분이 단순한 이방신(異邦神)과는 대조가, 즉 차이가 있음을 알고 있다. “하나님”이나 “주”는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을 칭하는 모든 이름과 동등한 것이며 위의 경우도 같은 원칙에 속한다. 예를 들어서 요3:2의 희랍어에 따르면 “하나님께로서 오신”이란 말이 있다(정관사 없음-‘Come From God“. 자 그렇다면 위의 말은 여호와의 증인들에 의한다면, 단순히 하나의 신으로부터 왔단 말인가?(Only Coming From a god?). 아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오셨다는 말이다. 거기에 있어서의 강조점은 하나님으로부터의 기원을 말함이며 그의 인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2)두 번째 법칙은 유명한 학자 E. C. 콜웰 씨에 의해 제시된 것으로서 여호와의 증인들의 위치를 여지없이 와해시킨다. 콜웰 씨의 법칙은, a)정관사의 서술 명사는 그 명사가 주동사를 따를 때에만 정관사를 취한다. b)그렇지 않으면 정관사를 취하지 않는다. c)고유 명사는 정관사를 취하지 않는다.
상기한 법칙을 요한복음1:1에 적용하면 흠정역이 가장 정확한 번역이며 엠퍼틱 다이아그롯역이나 신세계역이 오역임은 명백하다. 이것을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 미네소타, 미네아폴리스의 베다니 펠로우쉽의 허가로 인쇄된 월터 마틴이 저술한 「이단들의 왕국」이란 책자로부터 몇 자 인용하고자 한다.
“문장의 주어는 ‘말씀’(로고스)이며 동사는 ‘계셨다’이다. 그리고 ‘계셨다’ 다음에는 결코 직접 목적어가 따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문법적 용어에 의해 자동사는 목적어를 취하지 않고 주어와 관련 술어 주격 즉 이 경우에 있어서는 말씀(로고스)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Theos’(하나님-God)는 관사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것을 하나님의 신으로 번역한다는 것은 부정확한 문법인 동시에 서투른 헬라어가 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Theos’는 그 구절의 셋째번 문장절(文章節-clause) 의 술어 주격이며 따라서 ‘Theos’는 반드시 주어인 말씀(로고스)에 귀착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도는 만일 그가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면(요1:14)-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가 될 수 없으며 그렇지 않으면 헬라어 원본 즉 하나님의 말씀이 부정되는 것이다.》
헬라어 정관사 ὁ가 없기 때문에 요1:1의 ϴεὸσ(하나님)가 “a god"이라고 주장하는「여호와의 증인」은 그 주장에 책임질 수 있는가? 다음의 예를 보라.
▶고후4:4의『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라고 한 헬라어 원문은 “ἐν οἷ ὁ ϴεὸσ”(엔 호이스 호 데오스)이다. ϴεὸσ 앞에 정관사 ὁ 가 있다. 그런데 왜 God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among whom the god of this system of things”이라고 번역했는가? 물론 “이 세상의 신”은 사탄을 가리키는 말이다.
▶고전8:4의『.....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라는 말씀의 헬라어 원문은 “......ἐν κόσμω καὶ ὅτι οὐδεὶς θεὸς εἰ μὴ εἷς”이다. 분명히 ϴεὸ(하나님) 앞에 정관사 ὁ가 없다. 그런데 왜 "a god"라고 번역하지 않고 “God”이라고 번역해 놓았는가? 신세계 역 영문판을 보면 고전8:4를 “in the world and that there is no God but one."이라고 하여 “God”을 사용하여 번역해 놓았다. 왜 “god”라고 번역하지 않았는가?
▶요8:54의『......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라는 말씀의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는 헬라어로 “......ὅν ὑμεις λεγετε ὅτι θεὸς”로서 θεὸς 앞에 정관사가 없다. 그런데 신세계역 한글판에 “하느님”으로 번역해 놓았고, 영문판 역시 “....the one who you say is your God"이라고 번역해 놓았다. 왜 "a god"이라고 번역하지 않았는가?
▶요일5:20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의 헬라어 원문은 “.....οὗτός εστιν ὁ ἀληθιὸς ϴεὸς καὶ ζωὴ αἰώνιος”인데 ϴεὸς 앞에 정관사가 없다. 그런데 신세계역 영문판에는 「.....This is the true God.....」라고 번역하였다. 왜 “a god"이라고 번역하지 않았는가?
▶계21:7『.....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의 헬라어 원문은 “.....καὶ ἒσομαι αὺτῷ θεὸς....”로서 θεὸς 앞에 정관사 ὁ가 없다. 없는데 신세계역 영문판에는「......I will be his God.....」라고 번역해 놓았다. 왜 “a god"이라고 번역하지 않았는가?
막12:27『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너희가 크게 오해 하였도다』의 헬라어 원문은 “οὐκ ἔστιν θεὸς νεκρῶν ἀλλὰ ζώντων.....”(욱크 에스틴 데오스 네그크론 알라 존톤....)이다. θεὸς 앞에 정관사 ὁ가 없다. 정관사의 유무에 따라서 “God”으로도 번역하고 “god”으로도 번역하는 「여호와의 증인」이 본문에 정관사 ὁ 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죽은 사람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느님이십니다......”라고 번역해 놓았다. 왜 “a god”이라고 번역하지 않았는가?
▶ 고후5:19『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의 헬라어 원문은 “ὡς ὅτι θεὸς ἠν Χρ-σιτῷ κόσμον καταλλάσσων ἐαυτῷν,......”로 θεὸς 앞에 정관사 ὁ 가 없고,
▶고후6:16『......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의 헬라어 원문은 “......καὶ ἔσμαι αὺτῶν θεὸς, καὶ αὐτοὶ ἔσονταί μου λαός.”로 θεὸς 앞에 정관사 ὁ가 없고,
▶갈2:6『......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의 헬라어 원문은 “πρόσπων θεὸς ἀνθρώπου οὐ λαμβάνει.....”로 θεὸς 앞에 정관 ὁ 가 없고,
▶갈6:7『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慢忽)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의 헬라어 원문은 “Μὴ πλανᾶσθε, θεὸς οὐ μυκτηρίζται.....”로 θεὸς 앞에 정관사 ὁ가 없고,
▶엡4:6『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의 헬라어 원문은 “εἷς θεὸς καὶ πατὴρ πάντων,....”으로 θεὸς 앞에 정관사 ὁ가 없고,
▶딤전2:5『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의 헬라어 원문은 “εἷς γὰρ θεὸς, εἷς καὶ μεσίτης θεοῦ καὶ ἀνθρώπων..... ”으로 θεὸς 앞에 정관사 ὁ 가 없다. 정관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세계역은 모두 “하느님”, “God”로 번역하였다. 왜 “하나의 신”이나 “a god”로 번역하지 않았는가? 왜 그런가?
「여호와의 증인」은 이렇게 헬라어 문법도 무시할 뿐만 아니라 일관성 없는 번역으로 성경의 진리를 파괴하는 것은 그들이 이단이기 때문이다. 요1:1을 영문으로 번역할 때 “θεὸς”앞에 정관사 ὁ(호)가 없기 때문에 “a god" 이라고 해야 옳은 것이라고 떼를 쓰던 때와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들이 이단이기 때문이다. 요1:1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의 헬라어 원문 “καὶ θεὸς ἧν ὁ λόγος”를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영문 and the Word was God. RSV, NIV, KJV, ASV가 모두 동일하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말씀은 (하나의)신이셨다”나 혹은 영문 신세계 역 “.....and the Word was a god ”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성경에 의해서 이미 판가름 난 일이다.「여호와의 증인」이 아무리 궤변을 늘어놓고. 거짓 진리를 농(弄)할지라도 성경 말씀은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고후10:5), 참 진리를 굳게 세우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신세계 역에서는 온갖 미사여구(美辭麗句)로 예수 그리스도를 칭송하고 있다. 창조자요, 대능자요, 구원자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귀신이요 잡신이라고 한다. 예수님을 가리켜 귀신, 잡신이라니 이 무슨 미치광이 소리인가. 귀신 들린 사람도 “하나님의 아들이여”라고 했는데 (마8:29)「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군대마귀 들린 광인(狂人)만도 못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실 때 그 앞에 가서도 한번 “귀신이여! 잡신이여!” 해보라.
「여호와의 증인」는 귀머거리, 벙어리인체 하지 말고 분명히 밝혀야 한다.「여호와의 증인」은 다신교를 믿는가? 유일신을 믿는다면서 요1:1절에 있는 “the Word”는 무슨 “신”인가? 끝까지 귀신이요 잡신이라고 주장할 것인가? 그러면『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라는 말씀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귀신이요 잡신이 이 세상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인간을 창조했다고 주장할 것인가? 그런 종교를 “여호와의 종교”라고 말 할 수 있는가? 그런 소리는 귀신의 속삭임이다.
「여호와의 증인」에 의하면 최고의 신 여호와께서 제일 먼저 창조한 것이 로고스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다. 그 로고스 예수 그리스도가 천지만물을 창조했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누차 말하는 것이지만 피조물인 예수 그리스도가 천지만물을 창조했다면 피조물이 피조물을 창조했다는 말이 된다. 이런 학설(學說)은 성경적으로도 불가능하고, 신학적으로도 불가능한 억설(臆說)이다. 성경 어디에 피조물이 천지만물을 창조했다는 구절이 있는가?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성경이 어떻게 성경이 되겠으며, 이런 성경에서 어떻게 올바른 신학이 나올 수 있으며 올바른 교리가(신조가) 나올 수 있는가?
「여호와의 증인」의 “창조된 창조주”라는 말은 풀 수 없는 논리이다. 예화를 들어 보자. 중세 시대에 피터 다미안이라는 수도사가 있었다. 카말돌레스 교단의 수도사요 신학자였다. 그가 이런 기발한 주장을 내어 놓았다. 신(神)은 모순법(矛盾法)에 구속되지 않으며 한번 이루어진 일을 환원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신이 전능하다면 자신이 들어 올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돌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신이 전능하다면 반드시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은 그 돌을 들어 올릴 수도 있고 들어 올리지 못할 수도 있다. 신의 전능성은 모순원리를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관념으로 결과한다. 그의 주장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부정되었다.
「여호와의 증인」의 “창조된 창조주”라는 논리는 모순이라기보다 신학의 혼란이요 혼돈이라고 해야 옳다. 무엇이 어찌 되었다는 말인가?「여호와의 증인」의 창시(創始) 연도(年度)를 1874년으로 본다면 14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여호와의 증인」은 자기들의 신학을 체계화하고 논리화하는데 전심전력하여 왔다. 자기들의 교리를 뒷받침할 성경 구절을 발굴하고 호교론적인 이론을 세우는데 처절한 노력을 경주하여 왔다.「여호와의 증인」은 정통 교회가 그들에 대해서 갖는 관심보다 정통 교회에 대한 관심이 훨씬 많다. 다시 말하자면「여호와의 증인」은 정통 교회를 유달리 의식하고, 정통 교회의 비판에 대해서 예민하다. 그들의 주장을 들어 보면 그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신학이나 교리에는 허점이 많이 있고 논리의 모순도 많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신학이나 교리는 아리우스와 안식교의 주장을 빌려다가 조립했기 때문이다. 이단은 태생(胎生)적으로 잘못된 성경해석이 필요하고 모순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이단이다.
세계 기독교 신자의 수가 21억쯤 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믿는 종교이고, 좋든 나쁘든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종교이기도 하다. 그런 기독교를 시골 산골 동네에서나 믿음직한 귀신, 잡신을 믿는 종교를 만든다는 것은 개탄을 금할 수 없는 노릇이다. 「여호와의 증인」이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역설(力說)해도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의식까지 그렇게 되어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귀신, 잡신이라고 하면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깊이 회개하라.
『말씀은 하나님이셨다』라는 성경 말씀에서 예수님을 도저히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한 신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해도 그렇지 귀신이요 잡신이라니,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도 역시 귀신이요 잡신이라는 말이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그러면 어떻게 2위1체가 되는가? 신세계역 요16:28에「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습니다.」라고 했고, 또 요16:30「이제 우리는, 당신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또 아무도 당신에게 질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오셨다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했다. 이밖에도 요13:3; 요8:14이하, 요3:2; 요17:8에 유사한 구절들이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하나님 아버지까지 폄하하고, 비방하고, 욕하고, 모독해야 되겠는가? 당신들이 정말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분으로 믿는다면 당장 회개해야 한다.
▣요8:19『이에 저희가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 하는 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요5:23『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 하느니라』
▣요13:20『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요일2:22『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지 않는다면 아무리 여호와 하나님을 잘 믿는다 해도 그것은 공허(空虛)한 일이라는 것을 위의 성구(聖句)들이 보여 주고 있다.
◆한글개역:『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상을 얻느니니라 』(히10:35)
◇신세계역:「그러므로 여러분이 말의 자유를 버리지 마십시오. 그것에는 주어지는
큰상이 있습니다. 」
「여호와의 증인」의 신세계역 본문은 엉뚱해도 지나치게 엉뚱하다. 생경(生硬)하다.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는 시민단체의 구호 같다. 그 당시 성도들이 말의 자유를 버림으로써 무슨 불이익을 당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본문은『그러므로 너희 τὴν παρρησίαν ύμων(텐 파르레시안 후몬)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이다. 웃음이 먼저 나는 것은 παρρησίαν(파르레시안)이라는 헬라어 단어가 “말, 연설”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말의 자유를 버리지 말라고 써놓았으니 찰리 채플린보다 더 웃기는 일이다.
35절 본절은 32절 이하의 고난을 당하고 비방과 환난으로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여긴 것은 더 낫고 영원한 산업이 있는 줄로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는 권면(勸勉)이다. 그 권면에 이어 말의 자유를 버리지 말라고 했으니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포복절도(抱腹絶倒) 할 일이다.
먼저는 전후 문맥을 살폈어야 하고 두 번째는 “파르레시안”의 다른 성경에서의 용법(用法)도 살펴보았어야 한다.
‧ 막8:32 = 드러내 놓고,
‧ 요10:24 = 밝히,
‧ 행2:29; 4:29,31 = 담대히
‧ 행4:13 = 기탄없이
‧ 고후7:4 ; 요일5:14 = 담대한 것
‧ 엡3:12; 히3:6 = 담대함
‧ 딤전3:13; 몬1: 8; 히10:19 = 담력
등으로 사용되었다. 「여호와의 증인」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직역을 해 놓았으니 주먹 맞은 감투 골이 되었다. 확실한 오역이다.
첫댓글 줄 바꾸기가 안 돠어서 지면을 낭비한 셈이 되었고, 오자를 수정하지 못한 곳도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미안합니다.
류비 님의 충고 대단히 감사합니다.
나름 좋은 글이라 읽기 괜찮았다. 미안해하지마라.
류비 님은 a god은 잡신으로 격하의 표현은 아니라고 하셨는데 "신적인 존재"라는 의미로 사용된 말일까요?
참고로 제가 저술한 책 "여호와의 증인 이래서 이단이다" 상권 41페이지에 있는 각주의 해설문을 복사하여
붙입니다.
"박영관 박사는 (감신대 교수)「여호와의 증인」이 주장하는 일신론은 단일신론주의라고 규정하고 있다. 박영관 저, 이단종파비판, 예수교 문서 선교회, 1976년. p.312
「여호와의 증인」이 말하는 일신론은 오직 성부 하느님만이 유일한 신이라고 주장하고, 그 리스도를 구주로 간주하지만 신은 숫자적으로 하나뿐 이어야 한다는데 집착하는 것으로 보아 일신론(Monarchianism) 또는 단일신론(Monolarity)이라
고할 수 있다.
Monarchianism은 “군주신론”이라고도 하는데 영지주의자들과 마르시온이 주장했던 하나 님의 이중성 에온(aeon :靈體)들의 다양성에 반대해서 하나님의 통일성 혹은 “君主性 (monarchy)”을 옹호하려는 데서 생겨난 말이다.(후토스 L. 곤잘레스 저, 이형기 외역, 기독교사상사, Vol. 1.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출판국, 1990년. p. 178.)"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그리스도교대사전에는 일신론이라는 항목은 없고 유일신교라는 항목만 있다.
김희보 박사는(장신대 학장) “유일신교(Monotheism)란 말은 일신교(Monolarity)와 다르다. 일신교란 다신(多神)중에서 일신(一神)만을 택하여 숭배하는 것이다. 유일신교는 모든 우상은 헛것으로 그 실재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했다. 김희보 저, 구약신학논고, 예수 문서 선교회,1980년, p. 13에 각주에서 인용. "
제가 오래 전부터 "여호와의 증인"의 이단성을 논증하기 위하여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였습니다. 물론 여증에서 발행한 책들도 수집하여 읽어 보았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일신론이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그런 주장의 전거를 세월이 오래 지나고, 이사를 여러번 다니는 와중에 분실하여 밝히지 못하는 심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제가 연구한 바에 의하여 여증은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차등을 두어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최고의 신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보다 아래의 조력자 쯤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신론을 믿기 때문입니다. 요 1: 1에서 a god이라
고 번역한 것도 그때문입니다. 여증의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編手라고 했습니다.
도편수 밑에서 일하는 목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전능자(Almighty)로, 예수 그리스도는 大能者(Mighty)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KJV나 RSV "전능하신 하나님" 을 Mighty God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여증은 어거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격하시키려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그런 격하 노력은 성경에 의해서 여지 없이 무너졌습니다.
저 혼자만 긴 댓글을 올려서 미안합니다.
류비 님, 올려 놓으신 링크는 하나도 열리지 않습니다. 설혹 링크가 열린다고 할지라도 여호와의 증인을 비판하는 논의에서 여증의 사전들을 제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증이 위 사전에서 God에 대해서 어떤 설명을 하든지
전능한 하나님과 대능한 예수 그리스도를 位格에서 차등을 두고 있다는 것을 명백한 사실입니다. 더 이상의 논의가 필요
없는 일입니다.
시골나비님은 그런 여호와를 믿으셔요? 예수를 믿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