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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房夜話 下
수행과 신통력은 어떤 관계가 있읍니까?
객승이 또 질문하였다.
"불. 보살은 모두 신통(神通)하신데, 이것은 수행하여 증득〔修證〕한 것인지요?"
나는 말했다.
"신통력(神通力)은 수행해서 얻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신통은 불.보살들이 구원겁(久遠劫) 동안 4무량심(四無量心). 6바라밀(六波羅蜜)을 닦고, 갖기지 선행(善行)을 순수하케 닦아 생긴 능력입니다, '신통은 수행을 통해서 얻어진다'고 말한 뜻은 위와같은 갖가지 수행을 하지 않으면 신통을 얻지 못한다 것입니다. 그리고 '수행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한 뜻은 불.보살이 수행한 바라밀과 공덕은 신통을 얻으려는 목적에서 행해진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신통은 대자대비한 마음이 자기의 원행 (願行)에 뿌리박혀 저절로 얻어진 것입니다. 가령 불.보살이 구차하게 신통을 구하고자 한 순간이라도 생각했다면, 처음부터 이 한 생각이 장애가 되어 모든 선행을 다 수행해도 결국은 유루(有漏)의 인(因)이 될 뿐입니다. 그렇게 하고서 어떻게 자재(自在)한 해탈변화(解脫變化)의 신통을 얻겠읍니까?"
혹 부처님의 심종(心宗)과 인위적인 조작이 없는 원행(願行)에 계합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밖의 2승(二乘)의 소과(小果)로부터 외도(外道)에게도 신통 변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통이 아니라 요술로서 단순한 변화일 뿐입니다. 요술은 모두 작위적(作爲的) 사유(思惟)에 의해 얻어진 것이므로, 괴이한 것을 나타내 중생을 현혹하는 생멸(生滅)의 인(因)일 뿐입니다. 하지만 불.보살이 대자대비한 마음을 내어 인위적 조작없는 원력으로 발현한 신통은 법성(法性)과 같습니다. 불보살은 털구멍 하나에서도 백 천의 광영과 백천의 장엄구(莊嚴具)를 드러내어 법계를 채우고, 중생들이 좋아하는 것을 모두 얻게 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불, 보살의 해탈한 마음 속에는 신통력을 가졌다는 생각이 없고, 또한 신통을 나타내겠다는 생각도 없으며, 그 신통력으로 중생들에게 복을 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법성은 평등하여 일이(一異).자타(自他).능소(能所)의 차별이 없으므로, 신통 또한 그러한 차별이 없음을 알 수 있읍니다."
객승이 또 질문하였다.
"불.보살의 신통력이 결코 닦아 얻은 것이 아니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닦아 얻은 것이 아니라면, 수행을 하지 않는 범부에게는 왜 신동력이 없는지요?"
나는 말했다.
"범부라고 해서 그외 법성에 신통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범부와 축생들은 모두 몽매하여 그것을 스스토 알지 못할 뿐입니다. 범부는 인위적인 조작이 없는 원행(願行)으로 바라밀을 행하지 않기 때문에 장엄한 신통력이 나타나질 않습니다. 반면 불.보살은 인위적인 조작이 없는 대자대비한 마음으로 원행을 했기 때문에 신통을 얻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상의 10대악업(十大惡業))을 짓고도 참회를 하지 않는 중생이 있다고 합시다. 이 사람은 생명이 끝나면, 그 업력(業力) 때문에 곧바로 지옥으로 떨어져 갖가지 괴로움을 받게 됩니다. 이 사람이 악업을 지은 것은 단지 미망(迷妄)한 마음이 생겨서이지, 죽어서 지옥에 들어가리라는 사실을 알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옥이란 자성(自性)도 없고 실다운 법도 없는 것입니다. 지옥은 바로 자신의 허망한 업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두어야 하겠습니다. 이와같이 불.보살의 신통도 자성이 없으며 실다운 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 계.정.혜와 바라밀을 잘 닦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니, 다시 무엇을 더 의심하겠옵니까?"
요즈음 스님들에게는 왜 신통력이 없읍니까?
객승이 또 질문하였다.
"서천(西天)의 27조사(二十七祖師)는 모두 신통력이 있었으며, 달마대사 역시 신통력이 있었다고합니다. 그런데 달마대사 이후에는 왜 신통력을 가진 스님이 없었을까요? 한두 분 있었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자주 듣지는 못했옵니다.
나는 말했다.
"인도(印度)의 외도(外道)도 다 인위적인 사유(思惟)에 의한 신통변화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 부처님이 중생을 교화 할 때는 신통력을 부리지 않고서는 그 외도들을 제압할수 없었읍니다. 인도 땅에서는 응화(應化)하신 불.보살들이 조사(祖師)의 몸으로 화현하시어 불법을 전수하셨읍니다. 달마대사같은 분은 관음보살의 응신이라고 합니다. 달마대사 이후 한두 분 신통력을 갖춘 스님이 출현한 것은 바른 가르침을 드날리도록 도운 것뿐입니다. 그러나 신통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부처님의 심종(心宗)을 깨달으려고만 노력했습니다. 부처님의 심종은 백천삼매(百千三昧)와 갖가지 신통의 씨앗으로서, 그 씨앗이 뿌려지기만 하면 반드시 신통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진실하게 마음을 깨달은 사람은 어쩌다 자신에게서 신이(神異)함이 발생하여도 그자리에서 제거해버립니다. 그는 이것을 기이하게 여기지도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만일 구차스럽게도 이것을 기이하게 여기다가는 본심을 잃게 됩니다. 깨달은 사람도 신이함을 자랑하지 않는데, 깨닫지 못한 사람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겠읍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올바른 깨달음은 구하지 않고 신통삼매(神通三昧)만 얻으려 한다면, 이것은 불자가 아니고 외도의 권속입니다. 이렇게 하면 깨달음의 씨앗(正因)을 영원히 잃게 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온 '옛 스님들은 신통도 전수를 하셨는데, 중국에 와서 기이한 것을 말한다고 꾸중을 들을까봐 전수가 끊어졌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자신을 미혹시킬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미혹시키는 말이니, 굳이 그렇게 할 까닭이 있겠읍니까?"
도대체 앎〔知〕이란 무엇입니까?
객승이 물었다.
"저는 반평생 동안 학문을 닦아왔습니다. 그리하여 불조(佛祖)의 언교(言敎)를 섭렵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마주하면 언제나 늘 아는 것 갈았읍니다. 그러나 감각적인 자극에 초연하지 못하고 애증(愛憎)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나는 말했다.
"그대의 말은 앎〔知〕을 개괄적으로는 설명하긴 했지만, 핵심을 찌르지는 못했습니다. 앎에는 영지(靈知)도 있고, 진지(眞知)도 있으며, 망지(妄知)도 있읍니다. 영지는 바로 도(道)이고, 진지는 곧 오(悟)이고, 망지는 즉 문자로 아는 것입니다. 앎이라는 측면에서는 모두 같지만 나눈다면 하루와 영겁(永劫)처럼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참선하는 사람이 이치는 헤아려보지 않고, 대충 알고서 히망한 집착을 내고 시비를 일으켜 도의 근원을 흐려 놓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 매몰시켜 버립니다.
배휴(裴休: 797∼870)가 말한 것처럼 '혈기(血氣)가 있는 생명체에게는 반드시 앎〔知〕이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 앎은 다 똑같다'고 했는데, 이것은 바로 영지(靈知)를 말한 것입니다. 영지는 범부와 성인, 미혹과 깨달음에 관계없이 조금도 차이가 없는 앎입니다. 이것은 본래부터 마음 바탕에 넉넉히 갖추어진 것으로서 더하거나 덜어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화엄경」에서 '일체의 법이 마음에 상즉(相卽)한 자성(自性)임을 알았다면, 지혜의 몸〔慧身〕을 성취하는 것이 다른 깨달음에 의한 것이 아니다'고 한 것과 같으며,「원각경」에서 '헛꽃〔空華〕인줄 알았다면 바로 윤회가 없으리라'한것과, '허깨비인 줄알고 그대로 떠나면 빙편을 쓸 필요가 없다'고 한 것과 다 같은 말입니다.
이 말은 진지(眞知)는 바로 오입(悟入)해서 된다는 것입니다. 미혹의 구름이 활짝 걷혀서 사량분별을 뚝 끊고 알음알이 내지 않기를 마치 무슨 일을 오랫동안 잊었다가 문득 기억해 내듯이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순간에 해탈(解脫)하여 모든 것이 다 진실해집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그 나어지는 결코 옳을 리가 없읍니다.
또 「원각경」에서 '중생은 아는 것〔解〕이 장애가 되지만, 보살은 깨달음〔覺〕을 떠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또 '말세 중생이 성도(成道)하기를 바라거든 깨달음〔悟〕을 구하지 말라, 그것은 다문(多聞)만을 더하고, 아견(我見)만을 키울 뿐이다’고 하였읍니다. 이것은 모두 망지(妄知)를 통해 깨달으려는 것을 통렬히 지적해 말한 것입니다. 지극한 이치를 궁구하교 성품을 밝히는데, 종일토록 수없는 변론으로 결론에 도달하려는 것이 바로 망지입니다. 이것은 따져볼 것 없이 이미 그 이전에 잘못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석가모니께서는, 설산(雪山)에서는 깨달은 그림자 만을 보이셨고, 최후로 백만 대중 앞에서 꽃 한가지를 들어 깨달은 이치를 나타내셨습니다. 조사들이 제자들을 가르치는 방법이 서로 동일하지 않았으나, 가까이하면 마치 불무더기와 같았고, 태아(太阿)의 검처럼 날카로왔으며, 우뢰와 같이 우렁차고, 독약같이 무서웠읍니다. 그러나 이와같이 어묵동정(語默動靜)하는 사이에 끝내 바느질한 흔적도 지름길도 용납하지 않은데는 다 까닭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종문(宗門)에서는 깨달음의 자취를 찾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또한 그것을 법진(法塵)이라고 비난했고, 견해의 가시
라고 배척하였습니다. 종문에서 이렇게 한 것은미(迷)와 오(悟)를 둘 다 잊어버리고 신령한 근원에 젖어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였읍니다. 혹 이렇게 하지 않고 자기가 아는 것으로 걸핏하면 허망을 드러내는것은 마치 봉사가 횃불을 들고 대낮에 길에 나가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길을 밝히는 효과도 없을뿐 아니라, 계속 횃불을 들고 있다가는 손마저 태우게 될 것입니다.
나 또한 진지(眞知)를 깨우치지 못한 사람으로서 망지(妄知)를 쓰는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대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함으로써 내 자신을 경책했을 뿐입니다.”
세상사가 수행에 방해가 됩니까?
객승이 질문했다.
"번뇌라는 두 글자는 세속에서 쓰는 말입니다만, 그것의 근원〔因〕은 무엇이며 그 뜻은 무엇인지 모르겠읍니다.〃
나는 말했다.
"미망(迷妄)이 바로 번뇌의 근원이고, 물들여 더럽힌다는 것이 그 뜻입니다. 미망이란 자기의 마음이 미혹되어서 일체의 법은 자성(自性)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성이 없다는 뜻은 성품(性品)이란 본래 공적(空寂)하여 지견(知見)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성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해서 사람들은 망정(妄情)을 일으키고, 일체의 법을 잘못 인식하여 실제로 있다〔實有〕고 믿는 것입니다. 한번 있다〔有〕는 견해에 떨어지면, 취.사.순.역(取捨順逆)의 생각이 나〔我〕로부터 일어납니다. 그리하여 자기 생각에 맞으면 사랑하고, 어긋나면 미워합니다. 또한 사랑하면 취하여 받아들이고, 증오하면 버리게 됩니다. 이런 상태가 심해지면, 자기에게 좋으면 기뻐하고 그렇지 않으면 노한 마음이 생깁니다. 이러한 마음은 의식에 속속들이 잠복해서 마음대로 날뛰고 아무 때나 막 생깁니다. 이렇게 되면 5욕(五欲)과 7정(七情)에 얽매이고, 생각은 이리저리 날뛰게 됩니다. 여기에 오염되면 6범(육凡)이 되고, 다행히 여기에 물들지 않으면 4성(四聖)이 됩니다. 미(迷)와 오(悟)는 서로 차이가 있지만, 번뇌에 얽매인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한 가지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본래 청정하고 진실된 인간의 성품에는 예토부터 지금까지 따로 법을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것과, 조금이라도 청정함과 진실됨을 얻거나 잃는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온 천지에 가득했고, 모든 것을 다 포함했고, 분명하여 결코 안주하는 모양〔住相〕이 없읍니다. 중생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걸핏하면 바깥 경계를 좇습니다. 그 무엇에라도 의지하면 모두가 번뇌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성인이니 범부니 가릴 것도 없이 모두 번뇌에 오염되고 말 것입니다.
이와 같은 번뇌는 계율로 다듬어진 몸을 심하게 하고, 정(定)의 근원을 혼탁하게 하며, 지혜〔慧〕의 거울을 흐리게 합니다. 그 결과 탐욕의 뿌리는 더욱 견고해지고, 분노의 불꽃은 더욱 치솟으며, 어리석은 구름을 더욱 퍼지게 하며, 악도(惡道)를 열고 선문(善門)을 폐쇄하며, 업연(業緣)을 돕고 도력(道力)을 소멸시킵니다. 번뇌의 허물은 이 외에도 끌이 없습니다. 요즈음 참선하는 이들은 모든 행위가 모두 번뇌라고 말하면서 자기의 몸은 어느 것도 침범하지 않는 곳에서 펀안히 살고자 합니다. 조그마한 일이라도.자신의 감정을 언잖게 하고 번거롭게 하면 '도력을 소멸시킨다'고 말하며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립니다. 그 기상이야 갸륵하다고도 하겠지만, 이것은 오히려 미혹한 가운데도 더더욱 미혹된 사람의 행동입니다. 그런 시람과 함께 도를 의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번뇌는 미망 때문에 생기는 것이지 결코 세상일에서 나온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번뇌가 세상일에서 나왔다면 배가 고파도 먹지 말아야 하고, 추워도 옷을 입지 말아야 하며,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따뜻한 집을 그리워하지 말아야 하고, 길을 가도 남이 닦아놓은 길로는 가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그러므토 이렇게 하다가는 머지 않아 죽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정말로 이와같이 한다면 곡식은 농사를 지어서 나왔고, 옷은 베틀에서 만돌어졌으며, 집은 건축하고 보수하는데서 나왔고, 도로는 길을 개척해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령 사람들이 제각기 세상일을 분담해서 하지 않는다면,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 기지 물품을 어찌 얻겠읍니까?
또 이것은 바로 지금 도를 수행하는 이 몸이 본래는 없었는데, 부모가 양육해주신 노력으로 생겼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더우기 부모가 어루만지고 안아준 수고로움으로 자랐다는 것도 생각지 못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옛부터 도가 광대하고 덕이 구비된 불조(佛祖)께서도 모두 밥먹고, 옷입고, 가옥에서 거주하며, 땅을 밟고 걸었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는 것입니다. 불조들은 확연히 깨달은 원만청정한 자심(自心)이 법계에 가득차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으므로, 한 찰나 사이에 팔만 번뇌를 8만 불사(佛事)로 바꾸어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영가(永嘉)스님께서는, '한 법도 보지 않으면 바로 여래(如來)이다. 굳이 그것에 이름을 붙이자면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다'고 하였읍니다. 어떻게 자심(自心)을 깨닫는 것외에 다른 법이 있어 번뇌가 되겠읍니까? 이 때문에 화엄회상(華嚴會上)의 모든 선지식(善知識)들은 모두 번뇌에 의지하여 보살도(菩薩道)를 실천했고, 보살행(菩薩行)을 닦았읍니다. 이것은 장엄한 부처님의 정토(淨土)에 들어가는 하나의 중요한 관문이었던 것입니다.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번뇌를 떠나서는 6바라밀도 없고, 번뇌를 버리면 4무량심(四無量心)도 없으며, 번뇌를 떠나서는 성현도 없고, 번뇌가 다하면 해탈도 없다는 것을........... 번뇌라는 것은 3세(三世)의 불조와, 시방(十方)의 보살들과, 가없는 선지식들의 모은 계.정.혜(戒定慧)와, 수많은 선공덕(善功德)을 잉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번뇌가 없다면 성현의 중생구제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참선하는 자가 이 이치를 분명히 알지 못하고 허망하게 기뻐하고 싫어하는 마음을냅니다. 번뇌를 가지고 번뇌를 제거하려 하면 더더욱 미혹만 증가할 뿐입니다.
성인(聖人)은 이러한 중생의 번뇌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능엄경」에는 '나는 손가락을 누르기만 해도 해인(海印)의 광채가 발현하지만, 너희들은 마음을 조금반 움직여도 번뇌가 먼저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어찌 사람들을 속인 것이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사람마다 이
자리에서 그윽히 성인의 마음에 계합하여, 번뇌를 그대로 오묘하게 사용하여 보리를 구할 수 있겠읍니까?
가령 백만이나 되는 공덕행(功德行)으로 번뇌를 씻어 내려고 할지라도 성인께서는 오히려 쓸데없는 짓이라고 꾸짖으실 것입니다. 번뇌를 씻어버리려는 것도 꾸짖으시는데, 더구나 마음이 옹색하여 올바른 깨달음을 얻으려 하지 않고, 다만 모든 것에 걸림이 없다는 것만으로 구실을 삼는 것은 더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자키의 마음을 속이는 것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읍니까?"
주지의 소임은 무엇입니까?
객승이 또 질문하였다.
"스님의 도는 온 세상에 널리 알려졌읍니다. 그련데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시절 인연에 따라, 한절의 주지 소임을 맡아 교화를 펴서 불조예(佛祖)께서 세우신 심법(心法)을 널리 펴려 하시지 않으십니까? 펀안히 변변찮은 절개만을 지키며 고집하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불법 안에서 죄인이 되는 것을
면할 수 있을는지요?"
나는 말했다.
"생각지도 않은 명성을 얻어서 매일같이 이런 질문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는 까닭은 그런 요청에 설명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정말로 사람을 위하는 도가 있다고 합시다. 고상한 절개를 흉내내어 굳게 그것을 지키기만 하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불법 가운데 죄인이 된다는 질책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위하는 법은 실제로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시세를 타고 명예를 얻으려고 억지로 이치를 어그러뜨린다면, 죄인이라는 낙인을 면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면하지 못할 경우의 죄는 굳게 절개만을 지키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몇배나 무거울 것입니다. 나는 이 이치를 약간은 알았고, 그 때문에 구태여 외람된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대가 말한 주지(住持)의 직책에 필요한 덕목을 생각해본적이 있었읍니다. 무엇보다도 다음 세 가지의 능력이 있어야만 일을 그르치지 않을 것입니다. 첫째, 주지의 소임을 말은 사람은도력(道力)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연력(緣力)이 있어야 하고, 세째는 지력(智力)이 있어야 합니다.
도력은 근본〔體〕이고, 연력과 지력은 활용럭〔用〕입니다. 근본이 있기만 하면 설사 활용력이 없을지라도 그런대로 괜찮다고 하겠읍니다. 이런 경우는 교화하는 방편이 엉성하고, 관리기술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 뿐입니다. 그러나 도의 근본이 이지러진 상태라면 백천 가지의 신이(神異)한 방편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서로 맞아떨어지질 않습니다. 비록 연력과 지력이 있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더구나 근본과 활용력이 모두 없는데도 외람되게 주지의 소임을 맡는다고 합시다. 인과의 법칙이 없다면 얘기할것도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지 자격이 없으면서도 속편하게 그 소임을 말
겠습니까? 나는 불조의 도를 깨달아 증득하지는 못했습니다. 평소에 내가 했던 말과 글은 단지 믿어서 아는〔信解〕것뿐입니다. 옛 사람은 일단 종지를 얻은 후에는 다시는 자신의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았읍니다. 2,30년 동안 부목이나 공양주로 있으면서 깨달은 자취를 물리치고,증오한 이치도 씻어버리려 하였읍니다. 그런 뒤에는 진에(眞).속(俗)어느 알음알이에도 읽매이지 않았습니다. 즉 그의 온 몸은 날카로운 칼이나 오랫동안 닦아온 거울과 같아서 기연(機緣)에 머무는 것이 없었고, 군더더기 말도 없었습니다. 위엄있게 수만 대중 위에 군림하편서도 자신이 존귀한 줄도, 영화로운 줄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갖추고 있더라도 혹 인천(人天)의 안목(眼目)을 만날 경우는 뒤로 물러나야만 욕됨이 없습니다. 이 경지를 어찌 미혹한 생각〔情見〕을 벗어나지 못한 자가 흉내낼 수 있겠읍니까?
깨달아 증득〔悟證〕한 자취를 살펴볼 때, 혹시라도 번뇌를 모두 씻어버리지 못했다면 주관.객관의 견해〔能所之見〕가 걸핏하면 어지럽게 일어납니다. 주관〔能〕이니 객관〔所〕이니 하는 것은 모두가 미혹한 생각〔情見〕입니다.
또한 깨달아 증득한 자취도 마음에 간직해서는 안되는데, 하물며 순전히 믿어서 이해한〔信解〕미혹한 생각은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지극한 도의 근본은 가까이하면 할수록 멀어집니다. 또 자신도 아직 도에 회합하질 못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도에 하나가 되게하겠습니까? 나는 도를 깨닫지 못했으므로, 감히 망령되게 큰 평상에 앉아 도를 널리 펴는 스승이라고 자칭하지는 않을것입니다.”
객승이 말하였다.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고금에 즐비하게 들어선 사찰의 주병(주柄)을 잡은 큰스님들이 지금껏 끊어지질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분들은 정말이지 근본〔體〕과 활용력〔用〕을 잃은 분들이 아닐는지요?"
나는 말했다.
"그대의 질문은 매우 자세합니다. 그런데 그대는 들어보지 못했습니까? '각자의 삼매(三昧)는 남이 알지 못한다'고 한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데 옳고 그름을 논한다면 내 허물만 커지지 않겠읍니까?"
이렇게 주고 받으면서 객과 마주보며 한바탕 웃었다.
명예욕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객승이 또 질문하였다.
"저는 반평생이나 공적(空寂)한 도량에서 수행을 했는데도, 명성과 영리의 세계로 감정이 쏠리고 있읍니다. 그래서 나틀 돕지 않는다고 조물주(造物主)만 원망하던 차에 주지의 소임을 맡게 되어 기쁘게 이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이 주지라는 직책을 걸머진 이래로는 도리어 그 이전보다도 편안하
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일의 잘잘못과 여러 대중들의 기쁨과 노여움이 모두 제 마음에 모여들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조금 이라도 생각에 빈틈이 생기면 재앙과 욕이 몰려들었습니다. 어찌 옛날의 불조들께서도 이러셨겠읍니까?"
나는 말했다.
"그대는 생각지 못했습니까? 소임을 맡은 그때부터 책망이 시작된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이름은 까닭없이 생긴 것이 없습니다. 모두 실상이 있어서 생기는 것입니다. 명칭과 그에 따르는 실상의 관계는 마치 물체와 그림자의 사이와 같고, 옷감으로 옷을 만드는 것과 같고, 식량으로 밥을짓는 것과 같습니다. 책망하는 것은 실상을 찾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마치 그림자를 말할 때는 형체의 상제를 찾는 것과 같으며, 의식(衣食)의 명칭을 말할 때에는 반드시 곡식과 비단의 실제를 찾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처음 주지라는 소임을 걸머질 때에는 반드시 우선적으로 깨달음의 바른 씨앗〔正因〕을 지녀, 법을 오랫동안 머물게 하는 자세가 있는가 없는가를 스스로 따져봐야 합니다. 그런 자세가 없다면 이것은 본체를 떠나서 그림자를 좇는 것이고, 곡식과 비단을 버리고 의복과 음식을 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서 껍데기에 대한 말이 많으면 그 본질과는 더더욱 멀어지며, 심기(心機)가 촘촘할수록 대용(大用)은 더욱 어긋나고, 반연(攀緣)이 많아질수록 깨달음의 바른 씨앗〔正因〕은 더욱 없어집니다. 이 껍데기에 대한 말을 빨리 버린다면 그래도 막을 방법이 있겠지만, 그 상태가 계속된다면 그 시람은 받드시 지옥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도대체 명예란 무엇이길래 이토록 숭상을 하는 것일까요?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예 그 자체보다도 자기 자신〔我〕에게 집착합니다. 내가 있기 때문에 애견(愛見)이 발생하게 되고, 이 애견 중에 가장 심한 것이 바로 명예욕입니다. 그러므로 명예욕은 5욕(五欲)중에서도 첫 번째를 차지하고 있읍니다.
욕망〔欲〕이 마음에 깊숙이 들어있을 때는 아직 미미해서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외견(外緣)을 만나 욕심이 움직이면 그때는 그 힘이 강해져 수만 명의 장정도 대적할 수 없고,수천 명의 성인이 있어도 그것을 제지하지 못합니다. 또한 도끼와 톱으로 위협하고, 뜨거운 가마솥의 형벌이 기다린다 해도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당장에 볼수 없는 인과를 두려워하겠읍니까?
그런데 명예 중에서도 가장 제일가는 명예는 성현(聖賢)과 도덕(道德)이란 명예입니다. 그 다음은 공리(功利)라는 명예이며, 그 다음은 기능(技能)이란 명예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성현을 속여서 명예롤 얻으려 하고 도덕을 빙자해서 명예를 얻으려 하고, 기능을 멋대로 부려 명예를 얻으려 하고, 공리를 훔쳐 명예를 얻으려 합니다. 진정한 명예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사념(思念)에서 생겨난 망식(妄識)에 매달려서 행동거지와 언어에 이르기까지 명예만 얻으려고 힘씁니다. 그러면서도 명예의 참된 본질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으며 되돌아보려 하지 않습니다. 종일토톡 바쁘게 애를 쓰지만, 크게 패가망신할 것이 분명합니다.
반면 그러는 사람 중에 더러는 보연(報緣)이 맞아 구하던 것이 우연히 적중하여 훌륭한 명성을 죽은 뒤에까지 남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보연이 다하면 지난 날의 명예는 도리어 오늘의 치욕이 되고 맙니다. 지난날의 명예가 높았을수록 치욕 또한 더욱 심합니다. 그러므토 실
속 없는 명예〔名〕는 패배와 치욕을 가져올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옛 성인들의 거취를 살펴보면, 그분들은 이치의 근원을 통철히 꿰뚫어보시고, 가슴 속에 참다운 본질을 간직하여 잠시라도 그것을 잊어버릴까 두려워했습니다. 이 때문에 한량없는 세월이 지나도록 지극한 도만을 구하셨습니다. 이는 바로 생사(生死)의 마구니를 타파하여 본래의 신령한 자리로 돌아가려는 참된 본질이었습니다. 6바라밀을 세밀하게 실천하고 4무량심(四無量心)을 널리 베푼 이유는 대자(大慈)한 마음을 내어 대비심(四大悲心)을 여는 참된 본질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3백여 회동안 반(半).만(滿),편(偏).원(圓)의 가르침을 설했던 것은 중생의 근기에 알맞게 병에 따라서 치료하고 지도하는 참된 본질이었습니다. 후에 손수 한 송이 꽃을 들어보이시고 의발(衣鉢)을 가섭존자에게 부촉하셨읍니다. 이것은 마음으로 마음을 인가(印可)하고, 그릇으로써
그릇을 전하는 참된 본질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백천의 훌륭한 수행과 항하강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공덕도 참된 깨우침의 자리 속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읍니다. 이를 말하여 순일진실(純一眞實)이라고 합니다. 안으로는 억지로 하는 인위적인 행위가 없었고, 밖으로는 명예를 사모하는 욕망이 없었으며, 자기 자신을 뽐내지도 않았으며,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도 않았읍니다, 용맹건장한 모습도 보이지 않고, 다만 실제와 진실을 실천하는 올바른 생각만을 당연하게 여기셨습니다. 그 성실한 행동이 구족원만(具足圓滿)했기 때문에 조어사(調御師).천인존(天人尊)이라든가 우담화(優曇華).광명장(光明藏)등과 같은 갖가지 아름다운 호칭과 갖가지 훌륭한 명예들을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얻게 되었읍니다. 만일 성인이 외적으로 명예를 홈모하는 마음이 털끝만큼이라도 있었다편 온갖 선행을 열심으로 수행했어도 훌륭한 명성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도리어 허망을 좇는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옛 사람들은 이처럼 참다운 본질이 없을까봐 근심했을 뿐, 결코 명예를 얻지 못할까 근심하진 않았읍니다. 그것은 참다운 실상이 명예를 부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하 고금에 참다운 실상도 없으면서 명예를 얻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른바 주지(住持)라는 소임의 참다운 본질은 무엇일까요? 멀리는 선불〔先佛〕의 가르침을 이어받고, 가까이는 조사들의 교화방편을 지녔으며, 안으로는 자기의 진성(眞誠)을 간직했고, 밖으로는 인간과 천상(天上)이 의지할 믿음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총명하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어리석다고 해서 안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순종한다고 해서 사랑하지도 않고, 자기 뜻을 거역한다고 해서 미워하지도 않으며 모든 만물을 평등하게 자비로써 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부처님을 대신해서 교화를 드날리고, 높은 자리에서 스승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참된 실상입니다. 능력이 미치지 못하면 직위에서 물러나 수행을 할지언정 구차하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혹 조금이라도 수단을 써서 참된 실상을 흉내내려 한다편, 밝은, 대낮에 빈딪블처럼 전혀 도움이 안될 것입니다. 성인께서는 참된 실상만을 실천해야 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참된 실상을 실천하는 것 외에 다시 무슨 명예를 생각하셨겠습니까? 이것은 마치 곡식과 비단을 많이 쌓아두면 의복과 음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총림이 생긴 이래로 주지라는 소임에 대한 아름다운 명예는 마치 허공에 걸린 과녁과도 같았읍니다. 총명하고 재능있는 사람들이 필설(筆舌)과 변론의 날카로운 회살을 그 과녁에 쏘아 댈 적에도 모두 참된 실싱은 돌아보지 않았읍니다. 그러고서는 과녁을 적중시켰다고 했으나, 어찌 그렇다고 하겠습니까? 교화가 잘되고 못되고, 법도가 제대로 서고 못서고 하는 원인은 주지 자리를 탐내는 명예 때문이냐 아니면 주지의 본래 임무겠습니까? 모두가 주지의 본래 임무를 얼마나 잘 수행했느냐에 달려 있읍니다."
후진 교화에 대한 처신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객승이 질문하였다.
"그러면 후진 교화를 맡아야 합니까 맡지 말아야합니까?"
나는 대답하였다.
"4대(四大) 육신 껍데기를 3계(三界)의 바다 가운데 띄웠으니, 이것은 마치 드넓은 바다에 떠도는 한 알의 좁쌀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재빨리 나아가고 용맹하게 물러나는 일을 매일 천만회씩 한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참으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이 일정하지 않아서, 공직에 나아가도 시비거리가 되고 물러나도 시비거리가 됩니다. 사람들은 긴 안목으로 지극한 이치를 살펴보지 못하고, 걸핏하면 시비에 미혹되어 생각나는대로 일진일퇴(一進一退)할뿐, 전혀 줏대가 없읍니다.
그러나 성현은 그렇지를 않으셨읍니다. 나아가면 받드시 바른 도(道)를 펴서 사람들을 구제할 것을 생각했으며, 물러나도 여전히 바른 도(道)를 펴서 자신의 잘못을 보완할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진퇴를 하는 동안 수백 번 죄절해도 호연한 기상으로 근심이라곤 전혀 없으셨습니다. 어찌
도의 근본자리를 깨닫지 못한 자들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혹 영화를 누리고 총애를 얻으려고 자기 한 몸을 위해 일을 꾸미는 자들은 나아갔다 하면 갖가지 업(業)을 짓고, 물러났다 하면 속이 상해서 걸핏하면 시비가 분분하니, 인과가 뚜렷하여 그 과보를 피할 수가 없읍니다. 도인(道人)이라면
어찌 나아가고 물러나는 일을 조심하지 않겠옵니까?"
공(公)과 사(私)는 어떻게 다릅니까?
객승이 질문하였다 .
"공(公)과 사(私)는 서로 반대되는 것입니다. 사(私)는 알겠읍니다만, 공(公)의 의미는 어떤 것인지요?"
나는 말했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기에 감히 그것을 논하겠읍니까? 다만 옛 사람들에게 들은 바로는, 공(公)이란 말은 바로 불조성현(佛祖聖賢)의 본심입니다. 지극히 위대하고 지극히 맑아 늠름하게 흘로 서서 천지로도 그것을 가릴 수 없고, 귀신도 엿볼 수 없는 것입니다. 더 간단히 말하면, 공에는 지공(至公)이 있고, 대공(大公)이 있으며, 소공(小公)이 있습니다. 지공은 도(道)이고, 대공은 교(敎)이고, 소공은 행정을 잘하는 것때〔物務〕입니다.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새벽녘에 샛별을 보고 말씀하시기를,'기이하구나. 모든 중생들이 다같이 여래의 지혜와 덕상(德相)을 구비하였구나" 하셨읍니다.
여기에서 성인과 범부가 신령함을 동일하게 받았다는 점을 밝히시고, 무궁토록 전하게 하였읍니다. 바로 지공의 도는 여기에 근원한 것입니다. 이윽고 300여회 동안 상대의 근기와 그릇에 따라 여러 방법으로 가르쳤던 문자와 말씀은 산과 바다와 같이 넓었는데, 바로 대공의 가르침이 여기에
근본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교화가 5천축국(五天竺國)을 덮고, 부처님의 광명이 증국 땅에 들어가고 나서는 절의 살림살이가 많아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공으로써 살림살이를 잘하는 것〔物務〕입니다. 도가 아니면 교(敎)를 드러낼 수 없고, 교가 아니면 살림살이를 잘할 수 없고, 또 살림살이를 잘못하고서는 도를 널리 전할수 없습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의존관계에 있는 것으로서, 모두 불조성현의 본심에서 나온 공(公)인 것입니다. 하늘이 온 세상을 두루 덮어주고, 땅이 온 세상을 받쳐주며, 바닷가 모든 강물을 받아들이고 봄이 모든 생물을 길러주는 것은 대단히 지극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불조의 공(公)이 지극함과 두루한 것에는 비교가 되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불조의 도(道)로 말하자면, 원만함은 3계(三界)를 싸고도 남고, 훤출함은 10허 (十虛)를 관철합니다. 그리하여 한 생명체라도 그것을 증오(證悟)하지 못할 까닭이 없읍니다. 또 불조의 교(敎)로 말해보면, 3승(三承) 10지(十地) 및 6도 만행(六度萬行) 등의 수행 단계를 자세하고도 널리 설명해 놓았기 때문에 한 중생도 문호에 들어가는데서 빠지지 않았읍니다. 살림살이 잘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높고 큰 전각을 만들어 강당과 실내를 꾸며놓고 한 그릇의 밥을 먹을 때에도 반드시 종과 북을 울려 저숭과. 이승의 중생들을 경책하여 은택을 고르게 베 풀고 덮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불조성현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마음속에 공(公)을 간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실로 공(公)을 간직하지 못하면 흔자 있을 때는 근심만 생기고, 하는 행동마다 재앙에 빠지고 맙니다. 그리하여 궁색해지면 더욱 어리석어지고 혹 영달하치라도 하면 죄악만을 짓게 됩니다.
그러다가 끝내는 3악도(三惡道)와 6도에 윤회하여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끌내 스스로 풀려날 길이 없게 됩니다. 이것은 실로 마음에 공(公)을 간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이루(離婁)처럼 눈밝은 사람이라도 잘못된 길에 빠지기만 하면, 천리 밖을 아는 빼어난 지혜가 있어도 한 치 앞을 못보
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현들께서는 차마 교화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안락한 삶을 바라면서도 참된 안락이 공(公)에서 나오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또 복과 지혜는 사람마다 숭상하는 것이지만 복과 지혜의 근본이 되는 것이 곧공(公)인 줄은 알지 못하는 듯 합니다. 또 성현은 사람들마다 우러러보는 바이면서도 스스로가 성현이 되려면 공(公)이 바로 지름길인 줄은 모르며, 모든 사람들이 불조는 공경할 줄 알면서도 불조가 되는 데에 필수적인 것이 공(公)인 줄은 모르고 있읍니다. 공(公)은 바로 그대로 본심입니다. 그래서 성인께서는 지공(至公)의 도를 그대로 가리켜 중생의 마음을 밝히고, 대공(大公)의 교(敎)를 베풀어서 중생의 마음을 비췄으며, 소공(小公)에 해당하는 살림살이〔物務〕를 베풀어 증생의 마음을 바로잡으셨던 것입니다. 마음과 공(公)은 비록 그 명칭은 서로 다르지만 그 본체는 동일합니다,
그러나 공(公)의 이치는 일시적인 미봉책으로써 실현되는 것도 아니며, 억지로 되는 것도 아니며, 더구나 인위적인 조작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오직 한결같이 그대로 바로 가리켜야만〔直指〕얻을 수 있는 도입니다. 아주 진실한 마음만이 이 도에 계합될 수 있으며, 조금이라도 사량분별하면 공(公)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현은 도를 수행할 때에 조금도 위의 사실을 어기지 않았읍니다. 수행할 때에 조금도 사량분별하지 않고, 오로지 분명하고드 공명(公明)해서 억지로 조장하여 깨달음이 나타나키를 바라지 않아도, 그것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곤 합니다.
세속에서 그 공(公)을 속이는 자들은, 그 공(公)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마음은 속여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면,공(公)은 저절로 확립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교(敎)와 도(道)를 통달하고, 나아가 살림살이를 하는 것까지도 모두 공(公)에 어긋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일생을 살아가면서도, 혹 공(公)을 잘 모르고 미혹 되는 것은 나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더러는 그 공을 알면서도 고의로 위배하며, 도리어 지공(至公)의 도를 기만하여 명예를 얻으려고도 하며, 또 소공(小公)에 해당하는 살림살이를 횡령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하기도 합
니다. 이들은 너무 깊이 악의 구덩이에 빠져들어가, 남들이 자기를 본받는다는 사실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런 행위는 자기 자신을 속일 뿐만아니라 남까지도 속이는 일입니다.
옛날에 조정에서 어느 사찰을 개조하여 창고로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스님이 이것을 반대하여 따르지 않자, 이 사실이 왕에게 보고되었습니다. 왕은 해당 관리에게 칼을 내주면서 은밀히 말하기를, '지금 또 항거하면 목을 쳐라. 그러나 만일 죽기를 무릅쓰고 항거하면 절을 그대로 두거라'라고 했읍니다, 드디어 그 관리가 임금께서 이 절을 창고로 고쳐쓰라고한 명령을 전하자, 스님은 웃으면서 목을 쑥내밀고 말하기를, '불법을 지키다 죽는다면 실로 시퍼런 칼날을 혀로 핥으라고 해도 달게 받겠다'라고 했답니다. 스님은 목을 내믿고서도 끌내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구차하게 억지로 그렇게 할수 가있겠습니까. 모두가 진성(眞誠)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그 마음을 추측해 보건대 어찌 절간의 살림살이에 해당하는 소공(小公)만이겠읍니까. 교(敎)와 도(道)에도 깊은 깨달음이 있는 스님이 분명합니다.
수(隋)나라의 태수(太守)였던 요군소(堯君素)가 명령하기를, '모든 승려들은 성곽에 올라가서 부역을 하라. 감히 이 명령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목을 베겠다'라고 했읍니다. 이 때에 도손(道遜)이라는 스님이 태수한테 가서 항의하자, 요군소가 도손스님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이르기를, '스님께서는 담력과 기상이 대단히 씩씩하십니다'라고 말하며, 마침내 부역을 그만두게 했읍니다. 이것은 대공(大公)에 해당하는 교(敎)를 지키기 위하여 창칼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찌 구차하게 억지로 그랬겠읍니까.
동산 연조(東山演祖)스님의 편지를 대략 소개하면 다음과같습니다. '금년 여름에는 모든 들판에 가뭄이 들어 손해를 많이 보았읍니다만, 나는 그것을 조금도 근심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 대중 스님들이<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라는 화두를 들고 있는데, 하나도 깨치는 사람이 없을까봐 오히려 그것이 근심일 뿐입니다'라고 했읍니다. 연조스님께서는 지공(至公)의 도에 항상 뜻을 두어, 늘 그것을 걱정하며 잠시라도 그것을 잊지 않았었읍니다. 그러니, '모든 돌판에서 가뭄으로 손해본 것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한 까닭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소소한 살림살이야 지극한 도에 비교한다면,
그 근심이야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
절〔僧園〕의 살림살이는 교(敎)를 일으키고 도(道)를 전하는 데에 그 필요성이 있읍니다. 교가 널리 퍼지지 못하고 도가 후대에 전수되지 않는다면, 나를듯한 누각이며 용솟음치는 듯한 전각이며 남아도는 황금과 곡식이 대천세계에 가득하다 해도 공(公)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교와 도의 허물만 늘어나게 할 뿐입니다. 공(公)이 제대로 드러나느냐 못드러나느냐는 오직 불법이 융성하느냐 아니면 침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조심하지 않겠으며, 어찌 삼가하지 않겠읍니까! "
제자들을 지도하는데 위엄이 필요합니까?
객승이 물었다.
후진 교화에 위엄이 필요합니까?
나는 말했다.
"세상에는 위의의 종류가 둘이 있읍니다. 즉 하나는 도덕이 높아서 생기는 위의이고, 또 하나는 권세가 높아서 생기는 위의입니다.
도덕이 높아서 생기는 위의는 자연스럽지만, 권세 때문에 생긴 위의는 인위적으로 생긴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나온 위엄과 존경은 상대의 미음까지 복종시킬 수 있지만, 인위적으로 생긴 위엄과 존경은 그저 외형만을 복종시킬 뿐입니다.
그러나 상대의 마음까지 복종시키는 위엄과 존경은 자기의 눈앞에서만 위엄스럽게 할뿐만 아니라, 만리 밖에서도 위엄과 존경을 받습니다. 뿐만아니라 현재는 물론 백세가 지나도록 그 명성은 알려져 존경과 위엄을 받을 것입니다. 왜 그런가? 옛날에 도덕이 뛰어난 분들에 대해 요즈음 사람들은 그 유풍(遺風)에 머리 숙이며, 깊이 존경하지 않는 자가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분들의 모습을 직접 뵙고 말씀을 몸소 들은 그 당시의 사람들이야 어찌 경외하지 않았겠읍니까!
그분들의, 사람의 마음을 복종시키는 위엄은 한결같이 지성(至誠)에서 나왔읍니다. 모두가 자연스러워서 털끝만큼의 인위적인 조작도 없었습니다. 도덕 때문에 생기는 위엄이 시람의 마음을 감복시키는 것은 실로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성현들께서 임시 미봉책으보 도덕을 문란하게 하면서
사람을 복종시키려 했다면, 사람들이 어찌 그분들에게 복종했겠습니까? 또 도덕이 갖고있는 훌륭한 가치는, 성현이라도 자기 마음대로 문란하게 하여 사람들을 복종시키지는 못합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도덕을 버리고 권세에 아부하면서도 그 위태로움을 스스로 깨닫지 못합니다. 오히려 시끄럽게 떠들며 종일토록 남돌이 나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만을 원망합니다. 잘못 되어도 어찌 이토록 잘못될 수가 있읍니까. 그러니 권세의 위엄이란 사람을 겉으로는 복종시킬 수는 있다해도 잠시일 뿐입니다. 눈 앞에서 돌아서기만하면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찌 그가 죽은 이후까지 위엄스럽게 존경받을 것을 기대하겠습니까. 죽은 뒤에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사람들이 가슴에 한을 품고 그 권세에 무릎 꿇었던 과거를 들추어서 보복하려 들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권세가 훗날에 재앙이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지난날의 존경과 위엄이 후일에 가서는 재앙이 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다행히도 우리들은 4무량심 (四無量心)의 큰 훈계를 저 멀리 서역(西域)의 부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위엄과 권세 같은 것은 한순간이라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객승이 또 질문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바로잡는데는 상벌보다 더 효과가좋은 것은 없다고 들었습니다. 은혜가 없으면 상을 내릴 수 없고, 위엄이 없으면 벌을 줄 수가 없읍니다. 스님의 말씀은 보통 세상의 물정과는 거리가 아주 멉니다. 사찰의 살림살이를 책임진 스님이 혹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경우, 위엄을 부려 꾸짖지 않으면 어찌 되겠읍니까?"
나는 대답했다,
"분명하고도 엄연한 인과의 법칙이 실로 그대의 몸에 있읍니다. 성현께서 후세에 보여주신 모범을 누구라서 감히 바꿀 수가 있겠습니까. 위엄을 부려도 뉘우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것은 오히려 내 스스로가 도덕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제 스스로 도덕을 실천하여 지성(至誠)이 안팎으로 충만한데도, 다른 사람들이 그를 믿고 추종하지 않는다는 소리는 듣질 못했읍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위엄을 부리고 그러겠읍니까?
또 세상에는 임금님이 위엄을 부리지 않은 날이 없었읍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횡포를 부리며 악을 행하는 자들은 그위엄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되는 것이 모두 위엄이 악한자에게 미치지 못해서 그러했겠습니까? 실로 도덕이 자기 몸에 충만히지 않은데도 직위에서 물러나
수양할 것은 생각히지 않고, 도리어 위엄과 권세를 가지고 군림하쇠고만 애쓰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설사 지금은 재앙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그 재앙을 죽은 뒤에라도 반드시 받을 것입니다."
객승이 이말을 듣고 두려워하였다.
불법과 외호중(外護衆)은 어떤 관계가 있읍니까?
객승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불법은 국가로부터 외호(外護)가 있어야만 시행될 수 있다고 하여, 불법을 국왕과 대신에게 부촉했다는 소문이 나돌게 되었읍니다."
나는 이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事)의 측면에서 말한다면 그말이 옳을 수도 있겠지만, 이(理)의 측면에서도 그말이 옳은지는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수후(隨侯)라는 사람이 가졌던 구슬(珠)은 아주 존귀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을 구하려 했으며, 변화(卞和)라는 사람이 소유했던 구슬〔璧〕은 전혀
티가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성곽도 아끼지 않고 그것과 바꾸려고했으니 그럴 법도 합니다. 그러나 가령 그의 옷 속에 구슬이 없고 품 속에 옥이 없다면, 아부하고 굽신거려 그들과 가까이하려 해도 사람들은 멀리할 것입니다. 또 무엇 때문에 수많은 성곽도 가볍게 여기고 그 구슬과 바꾸려 하겠으며, 갖가지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을 구하려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불조(佛祖)께서는 도덕을 수양하느라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몸과 부귀영화를 모두 잊으신 것입니다. 그러한데 무슨외호(外護)를 받으려고 억지로 애를 썼겠읍니까!
자기 자신이 도덕을 함양하지 못했는데도 국왕이나 대신이 정성껏 대접하는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의 어리석은 스님들은 자기 자신의 도덕이 어떠한지는 되돌아보지도 않고, 그저 영화와 총애만을 얻으려고 권세있는 집의 문턱을 드나들면서 외호 세력을 찾습니다. 그러다가 그 일이 잘 안되기라도 하면 원망하고 탄식하며 우울하고 성난 얼굴을 하다가 끝내는 재앙과 치욕을 당하고 맙니다. 어찌 도를 수행하는 자가 이럴 수가 있겠읍니까! "
사찰의 살림살이하는 법은 무엇입니까?
또 객승이 물었다.
"혹시 사찰〔僧園〕의 경제적인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면, 몸을 돌보지 않고 노력하여 보완해도 되는지요?"
나는 대답했다.
"모든 약(藥)은 반드시 훌륭한 의사의 문으로 모이게 마련이고, 돈은 큰 상인의 점포로 투자되기 마련입니다.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면 산새들이 모여들고, 연못에 물이 가득하게 차면 달빛이 찾아드는 것입니다. 옛날 설산(雪山)의 부처님께서는 만승(萬乘)의 부귀영화도 모두 버리시고 6년 동안 춥고 배고픈 고생을 감수했습니다. 대천세계(大千世界) 보기를 한 물거품 처럼 하잖게 여길 따름이었읍니다. 그러니 어찌 세간에 무슨 유위(有爲)가 있으셨겠습니까? 그러나 훌륭한 덕을 갖추시자 화려한 누각과 모든 장엄한 살림살이가 두루 쌓였습니다. 비록 열반하신 지 2,000여년이 지났지만 그 영향력은 온 천하에 가득했읍니다. 이야말로 '자기가 버린 것을 도로 자기가 거두어 들인다'라는 속담과도 통합니다.
보살이 세상을 교화할 때에 혹 구족(具足))하지 못할 경우라도 싱대방이 나를 돕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않고, 오직 6바라밀을 철저하게 수행하고 나아가 4무량심〔四無量心〕을 널리 베푼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교화의 기연〔化機〕이 원만 해져서 시주하는 사람들이 재물을 봉헌하면 담
담하게 그것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 시주한 사람들이 뛸듯이 기뻐하곤 했습니다.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고르게 하는 것을 해탈(解脫)이라 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그것이 바로 절간의 살림살이를 돌보는 복전(福田)인 것입니다.
요즈음 스님들은 무슨 일을 할 때면 참된 이치를 위배하고 무엇인가를 얻으려고만 하는 잘못을 저지르곤 합니다. 가령 한 조각의 땅덩어리라도 마련하지 않으면 도리어 많은 재물을 모으며, 혹은 엄청난 권세로 군림하키도 하고, 혹은 죄를 얽어매어 남을 두렵게 하기도 하며, 혹은 잔재주를 부려 남
을 해치기도 합니다. 한 때에 잠시 권세를 성취했다고는 하나 모두가 번뇌의 근본이 될 뿐입니다. 복전(福田)에 무슨 이익이 되겠습니까! 이렇게 해 놓고도 둘러대기를, '사찰은 천 년의 시방상주물(十方常住物)이며, 스님은 하루 아침 이슬처럼 잠시 머물렀다 갈 뿐이다'라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천 년 상주물이 정.혜(定慧)를 바탕으로 하고 자리이타(自利利他)를 동시에 행하지 않았다면, 어찌 존재할 수가 있겠읍니까! 혹시라도 그 근본〔定.慧〕을 잊는다면 이것은 마치 연못을 버리고 밝은 달을 부르는 격이며, 나무를 버리고 뭇새들을 모으려는 격입니다. 어찌 그럴리가 있겠읍니까! 도대체 어찌 그럴리가 있겠읍니까 ! "
설법하는 형식에는 어떤 것이 있읍니까?
객승이 질문했다.
"설법의식(說法儀式)에는 반드시 우화당(雨花堂)과 수미좌(須彌座) 를 갖추는데 꼭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나는 대답했다.
"의식(儀式)의 측면에서 말한다면 그렇게 해야 하겠지만, 법의 측면에서 말한다면 어찌 그렇게 꼭 해야만 하겠습니까. 무릇 법(法)은 일정한 모양이 없으며, 설법 또한 일정한 형식이 있을 수 없읍니다. 백주(白주)의 불자(拂子)를 휘두르고 입술을 나불거리는 것은 사상(事相: 걸모습)의 설법입니다. 부처님의 경우는 보리좌(菩提座)에서 일어나시지도 않으며, 나가정(那伽定: 부처님의 선정)에서 나오시지 않고,움직이지도 않으며, 한 법의 모양도 보이시지 않으셨지만, 불이 치솟듯이 항싱 설법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어찌 굳이 49년 동안 삼백여회를 국한하여 말씀하셨겠읍니까.
모든 보살들의 경우는 보통사람이 버리기 어려운 것을 능히 버리는 보시(布施)로써 설법을 삼으셨으며, 또 남들이 지키기 어려운 것을 능히 지키는 인욕(忍辱)으로써 설법을 했읍니다.
나아가 6바라밀과 4무량심을 닦는 것도 모두 설법이었던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이 32종류의 모습으로 응신(應身)할 적에, 천(天). 용(龍). 귀신(鬼神). 사람. 사람처럼 생겼으나사람은 아닌 존재〔人非人〕등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을 나투는 것이 모두 설법인 것입니다. 그러니 따로 뭐 설법할 것이 있겠읍니까!
위로부터 여러 조사스님들이 나무집게를 들어보이고〔擎叉〕공을 굴리던 것 〔곤迷〕과, 기름을 팔던 것〔提油〕과, 흘을 흔들었던 것〔舞笏〕과, 강을 사이에 두고 손을 잡으려 했던 것〔隔江招手〕과, 눈 속에서도 마음을 편한히 했던 것〔立雪安心〕과, 초가집에서 빈주먹을 세웠던 것〔竪空拳於草盧〕과, 두 다리를 꼬고 비위굴 속에 앉았던 것〔疊雙趺於巖穴〕과, 어지러운 세상에서 목탁을 울렸던 것〔감木석鐸於紫陌江塵之隙〕과, 누런 갈대 덮힌 물가에서 낚싯줄을 드리우던 것〔於絲綸於白覡黃葦之濱〕과, 땅을 치고 뱃전드렸던 것〔打地叩舷〕과, 화살을 눈앞에 꽂아놓고 참선을 했던 것〔張弓面壁〕과, 외로운 봉우리에서 홀로 잠자던 것〔孤峰獨宿〕과. 외길에서 서로 만났던 것〔狹路相逢〕과, 소를 받아 놓고도 말을 돌려주며 평상(平常)이라고 말했던 것〔得牛還馬而道出平常〕과, 옹기를 종(鐘)이라 부르는〔喚甕作鐘〕 등 말밖의 말들이 수만가지가 있었다. 이것이 모두 옥진금성(玉振金聲)이 어찌 반드시 우화당괴.수미좌에서 한 것이겠읍니까!
도만 깨우친다면 비록 바위굴 속에서 명아주풀을 먹고 살더라도 분명히 여러 대중들에게 바른 가르침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면 호사스럽게 좋은 옷을 입고 매우 존엄하게 큰 법상에 올라가, 질문이 구름처럼 몰려오고 그에 대한 대답이 병 속의 물을 쏟듯이 막힘없이 줄줄 나온다 해도 말만 많아지고 뽑내는 마음만 더욱 늘어날 뿐입니다. 세정 (世情)에 아첨하여 세속의 풍속을 좇으면서도 스스로 말하기를, '불법을 설하여 만 중생을 이롭게 하며, 부처님을 대신해서 교화를 한다'라고 하니, 그 잘못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읍니다."
깨달은 스님마다 그 행적이 왜 다릅니까?
객승이 질문하였다.
"옛 사람들은 종지를 체득한 뒤에는, 혹 외로운 봉우리에서 흘로 머물기도 하였고, 혹은 시장바닥으로 들어가 포교하기도 했으며, 혹은 제 마음대로 교화의 방편을 펄치기도 했고, 혹은 오로지 불조(佛祖)의 정령(正令)만을 다루기도 했으며,혹은 문전 가득히 제자들을 제접하기도 했으며, 혹은 아무도
만나지 않기도 했으며, 혹은 자취를 끊고 은거하기도 했으며, 혹은 명성이 온천하에 떠들썩하게 하기도 했으며, 혹은 직접 세싱의 환란에 뛰어들기도 했으며, 혹은 고질병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달마스님의 제자들이면서도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달마스님이 곧바로 가리킨〔直指〕뒤 참된 자심(自心)을 깨달은 점은 모두 동일합니다. 그러나 3세(三世)의 허환(虛幻)으로 맺어진 업(業)을 받는 점에서는 서로 다릅니다. 업보의 인연〔報緣〕에 따라 살아간 측면에서 본다면, 그저 고요함을 즐기기 위해서 외로운 봉우리에 흘로 머물렀던 것도 아닙니다. 또 그저 시끄러운 것을 좋아해서 시장터에 들어가 교화를 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제멋대로 교화의 방편을 베풀었다고 해서 이단에 빠지는 것도 이니며, 한편 불조의 정령만을 다룬다 해서 정통인 것도 아닙니다. 또 제자가 문전에 가득했다하여 구차하게 세속에 영합한 것도 아니며, 친구라고는 자기 자신의 그림자뿐일 정도로 흘로 살았다 해서 외물(外物)을 끊은 것도 아닙니다. 세상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은거했다 해서 고상하게 여길 것도 없으며, 명성이 온 우주를 떠들썩하게 했다해서 자랑할 것도 못됩니다. 영고화복(榮枯禍福)은 모두가 각자의 인연에 따랐을 뿐입니다.
그러나 금강정안(金剛正眼)의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세상 일이란 작은 티끌이 눈앞을 스치는 정도도 못되는데, 어찌 어지럽게 애증취사(愛憎取捨)의 쓸데없는 생각을 내겠습니까! 그래서 용문사(龍門寺)의 청원(淸遠 : 1067∼1120) 스님께서는, 각자가 겪는 업보의 인연들은 모두가 헛된 그림자에 불과한데 억지로 무엇을 하고 무엇을 안하겠는가! '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또 연조(演祖)스님께서는, '모든 것에 도(道)가 들어있는데도 그저 과거의 인연만을 믿고 그것만 따른다'라고 지적했읍니다. 실로 지극한 이치로 비춰보지 않으면 세상의 갖가지 일에 휘말려서 미혹되고 말 것입니다."
임제스님의 법손들만이 번성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객승이 질문하였다.
"스승의 위치에 있는 스님들이 부처님을 대신해서 교화를 드날리는 목적은 제자들을 길러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전승하려는 것입니다. 지금 5종(五宗)의 문중에서 오직 임제스님의 계열만이 북쪽에서 내려와 혈맥을 계승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가 법사(法嗣)가 끊겨버렸읍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법을 전수하고 받을 즈음에 부촉을 안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인연이 그렇게 되도록 된 것인가요?"
나는 대답했다.
"성인의 도는 시절 인연에 따라 숨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습니다. 그 시대의 상황, 인물의 성쇠와 교화하는 방편의 방편침체는 한 털끝만큼이라도 인위적으로 더 보태거나 덜 수가 없습니다. 옛날 우리 달마조사께서는 인도땅을 떠나지 않고서도 반야다라(般若多羅)존자께서 미리 하신 예언을 받으셨으니, 이것이 바로 그 증거입다.
청원(靑原)스님과 남악(南嶽)스님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때에도 5가(五家)는 이미 정해진 이치가 있었읍니다. 5가(五家)가 한창 성대할 당시에 길고 짧은 운수에 어찌 일정한 이치가 없었겠습니까. 다만 서로가 어리석어서 스스로 그것을 알지 못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임제스님은 자상하여서 자세하고도 간절하게 제자들을 지도하고 또 기연(機緣)도 뚜렷하였고 말씀은 활구(活句)였다. 스님이 제자들을 단련하는 것은 마치 손을 뒤집는 것처럼 신속하였다. 그래서 임제가풍의 명성이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스님들은 이와는 달랐기 때문에 그 법이 세상에 오래 가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선철(先哲)을 속이고 비방하며 잘못된 견해로 시비거리만을 삼을뿐만 아니라, 나아가 바른 이치까지도 어둡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들어 스승의 위치에 있는 스님들이 평등한 마음으로 교화를 베풀어 불법이 이 땅에 오래 가도록 할 생각을 하지 않는 듯 합니다. 대부분이 제자〔法嗣〕구하는 일에만 급급하여 세속의 못된 풍습만을 본받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세력과 이익으로써 결탁하고, 명예와 지위로써 서로를 유혹하며, 물욕(物欲)에 끄달리고, 나쁜 생각으로 싱대를 속입니다. 이렇게 하면 제딴에는 수천백년 동안이나 그 법사(法嗣)가 끊기지 않고 전승되리라고 믿지만, 진리에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어찌 이익만 없겠습니까? 실로 엄청난 피해까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월당(月堂 : 1089∼1171)스님은, '한 낮에 오이밭에 물을 주어서 도리어 오이덩굴을 죽이는 격이다'라고 비유하시기도 했고, 석실(fil : 1293N1389)스님의, '겨드랑이를 부비고 신선이 되려고 깃털을 꽂는 격이다'라는 나무람이 승가(僧伽)의 속담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되려고 스스로 뉘우치지 않는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옛날 운문(雲門)스님은 목주(睦州)땅의 도명(道明)스님으로부터 법(法)을 얻었읍니다. 그런데 도명스님은 운문스님을 끝내 설봉(雪峰)스님의 법을 계승하게 했읍니다. 그래서 총림에서는 지금까지도 그것을 아름답게 여기고 있읍니다. 또 자수(慈受)스님은 장산(莊山) 땅에서 불감(佛鑑 : 1059∼1117)스님을 친견했는데 집안에서 기이한 만남이라 하여 그 법사(法嗣)를 바꾸려 하자, 불감스님은 끝내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총림에서는 이것을 매우아름다운 일로 돌리고 있읍니다.
나의 도가 다른 사람에게 널리 전파되지 못할까를 염려할 뿐, 법사(法嗣)가 바뀐다고 해서 무슨 흔들림이 있었겠습니까? 비유하면 동쪽에 있는 집의 등불을 붙여다가 서쪽에 있는 등불에 점화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오직 어둠을 타파하여 밝게 하는 것만이 최고의 미덕일 뿐입니다. 어찌 나의 등불이 홀러 들어온 유래에 대해서 상대방이 잘 모른다고 속좁게 그것을 따지겠읍니까! "
깨달은 내용을 설법할수 있읍니까?
객승이 질문하였다.
"「능엄경」에서 말하기를, '내가 멸도한 후 보살이나 아라한이 말법 세상에서 갖가지 모습으로 나타나 중생들과 동사섭(同事攝)을 하면서도, 내가 진실한 보살이며 참된 아라한이다'라고 스스로 말하고,'부처님의 밀인(密因)을 누설하고 말세의 학자들에게 경솔하게 말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오직
생명이 끝날때에 은밀하게 부촉하는 것만은 제외된다'라고 했읍니다.
요즈음 스승의 위치에 앉아있는 스님들을 살펴보니 여러 무리 앞에서 깨달은 연유를 말하고, 혹 배우는 시람들이 믿지 않으면 정말이라고 거듭 맹세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마치 옛부처님의 진실한 말씀을 어기고 후세 사람의 허망한 습속을 조장하는 듯합니다.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요?"
나는 대답했다.
"이 말에는 그 유래가 있읍니다. 「오등회원(五燈會元)」에서, 모든 조사스님들의 본전(本傳)을 뽑아 편찬할 때 반드시 그가 깨달은 연유를 우선적으로 실었습니다. 그가 깨닫던 때에는 마치 오랫동안 잊었던 것을 갑자기 기억한 것 같기도 했으며, 벙어리가 꿈을 꾸는 듯도 했으며, 오직 자신만이 알뿐 그 밖의 사람들은 알 수 조차 없었읍니다. 이야말로 스스로 몸소 증득한 삼매(三昧)이기 때문에 입을 막고 말을 못하게 했습니다. 어찌 들오리〔野鴨〕에게 묻고, 포모(布毛)를 불며, 도화(桃花)를 보고, 뿔로 만든 피리〔畵角〕를 듣는다는 따위의 허깨비 같은 말이 있을 수조차 있겠읍니까! "
대체로 이런 말이 있게된 데에도 그 까닭이 있읍니다. 그것은 스승이 따져 물어서 마지못해 그렇게 대답한 경우도 있고,혹은 어떤 경계를 굳이 설명하자니 그렇게 한것이며, 혹은 증오한 깨달음이 전혀 치우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오랜 뒤에 그렇게 대답하기도 했으며, 혹은 그 당시에 나쁜 소문이 나돌지 못하도록 하려고 그런 말을 하기도 했으니, 모두가 어쩔 수 없어서 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깨달은 것을 걸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그런 것도 있읍니다만, 이미 깨달은 대열에 들어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뒷받침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도 있읍니다. 다만 아주 비밀스럽게 감추어 걸으로 드러나게 하지 않으려고 했었을 뿐입니다.
정말 도를 체득한 분들은 일찌기 깨달았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산속에 훌륭한 옥(玉)이 묻혀있는데도 겉에는 그저 초목만 무성하게 자라나는 것과도 같고, 또 연못에 보배 구슬이 들어 있는데도 걸으로는 그저 파도와 물결만 출렁이는 것처럼 자연스런 이치입니다. 진짜 깨달은 스님〔本色宗匠〕은 자신이 체득했다는 사실을 구차하게 끌어들여 남들이 믿어주기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또한 마음을 내고 사념을 요동하면서까지 기연(機緣)을 교묘하게 만듣어서, 그 당대의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나아가 후배들을 피곤하게 하는 것을 결코 하지 않습니다. 다만 상대의 능력
에 알맞게 자세히 지도하다가 혹 제자들이 믿지 않더라도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실로 생멸심을 망령되이 내어서는 절대로 삼매(三昧)를 바로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깨닫는 이치를 어찌 비밀스럽다고만 하겠으며, 또 어찌 누설했다고만 할 수 있겠읍니까!"
열반하는 모습으로 도의 깊이를 따질 수 있읍니까?
객승이 질문했다.
"참선하는 스님은 임종할 때에 앉은 채로 입적하기도 하며, 혹은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읍니다. 임종할 때에 앉은 채로 입적하는 분은 무엇을 지켜서 그렇게 되는지요?"
나는 대답했다.
"지킬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업연(業緣)에 관계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굳이 그것에 구애될 필요는 없습니다. 보통 마음을 깨달은 사람은 알음알이가 소멸하여 바깔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견해〔見〕가 물러나고, 집착이 없어져서 앉은 채로 열반하는 것〔座脫〕같은 것은 애초부터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혹 임종할 때에 질병의 고통이나 다른 근심 걱정에 걸리지 않으면 요요분명(了了分明)하여 초연히 흘로 육신의 껍질을 벗어납니다. 그리하여 육신을 벗어버리고 활개치고 가버려는데 무슨 앉은 채로 열반에 든다는 것 따위를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또 세상에는 더러 도를 배우거나 수행하지 않았던 사람도 가끔은 앉은 채로 열반하는 자도 있읍니다. 나아가서는 죽으려 할즈음에 광채를 드날리기도 하는데, 이는 모두 보연(報緣)이 아니고 무엇이겠읍니까 !"
일반적으로 도를 익히는 사람들이 심요(心要)를 힘써 궁구하지 않고, 죽을 때에 초연히 해탈하지 못하면 남들이 흉볼까만을 염려하여 앉은 채로 열반하려고 애씁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외도 마구니가 그대가 죄탈(座脫)을 지중하게 여기는 틈을타고 들어와, 그대에게 죽는 시기를 미리 알게하여 갖가지 기이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게 할 것입니다. 이는 자못 마구니에게 붙들려 3악도(三惡道)를 돌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어찌 바른 이치에 보램이 되겠읍니까.
더러 진실하게 마음을 깨달은 사람 중에도 임종할 때에, 혹독한 독에 중독되기도하고, 혹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혹은 오랫동안 이상한 질병에 걸려 온몸을 지탱하지도 못하여 한마디의 말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평소에 도력(道力)을 잃지 않은 사람은 정념(正念)을 굳게 지키며 명이 다하기를 기다릴뿐, 일찌기 지극한 이치에서 조금도 떠나질 않습니다. 임종할 때에 혹 죽지 않으려고 하거나, 혹은 산 사람에게 비위를 거슬리는 말을 하거나, 혹은 억지로 한 생각을 내어 어떻게 해야겠다고 한다면 그 해로움이란 대단히 큽니다.
어떤 큰스님 중에는 죄탈할 것을 미리 알리기도 하며, 몸에서 향기를 내기도 하며, 혹은 짐승들이 슬피 울기도 하며, 혹은 초목이 시들기도 하며, 화장할 때에 불빛은 휘영청하고 사리(舍利)에서는 광채가 나며, 갖가지 생각지도 못할 신이(神異)한 일이 4부대증(四部大衆)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세세생생에 선지식이 되어 정.혜(定慧)를 닦아온 승인(勝因)이 좋아서, 이와 같이 특이한 과보를 낸 것일 뿐입니다. 결코 스님께서 억지로 집착하여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면 혹 수행이 높은 보살이 세상에 나와 교화의 방편을 펴고, 그와 같은 훌륭한 모습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적은 한 생(生)을 참학(參學)해서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보연(報緣)에 관계된다는 말이 오히려 적절할 것입니다."
이제껏 스님의 말씀도 사구(死句)가 아닙니까?
객승이 질문했다.
"제방에서 하는 설법은 보통사람의 생각으로는 알 수조차 없도톡 하니, 이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설법〔活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내용이 있는 법〔實法〕으로써 사람들을 얽어매고 있으니 이야말로 죽은 설법〔死句〕이 아닐는지요?"
나는 대답혔다.
"그대는 제방의 살아있는 설법 중에서도 살아있는 말만을 본받으려 하고, 죽은 설법〔死句〕중에서 죽은 말은 조금도 본받으려 하지 않으니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그대같은 분이야말로 설혹 죽은 말〔死句〕을 본받아 죽게 되더라도, 오랜 뒤에는 반드시 그 죽음에서 흘연히 살아나 그 활구(活句)만
을 또렷하게 볼 것입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한밤 내내 했던 대화가 이쯤되자, 숲속에서 새벽 닭은 울고 동방이 점점 밝아왔다. 나는 그만 잠이 들고 그 객승 또한 말을 잊었다. 잠깐 있다카 깨어 나서 밤채 담론했던 내용을 생각해 보았더니, 끝내 한 글자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우연히도 동자가 붓으로 종이에 내용을 수록하여 나에게 보여 주길래, 나는 화를 내면서 물리치고 꾸짖었다.
"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이야말로 총림에서 죽과 밥 먹는 그 기운이 뻗쳐서 한 헛소리이니 마땅히 물리쳐야 하느니라"
[출처] 山房夜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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