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26. 7. 25. 토요일.
아내는 점심밥에 닭다리를 내놨다.
"복날이어요."
앳된 병아리 다리만을 잘라서 볶은 감자탕.
작은 닭(병아리 수준)다리 살을 뜯어먹고, 부드러운 뼈마디까지 내 이빨로 으드득 깨물어서, 즙까지 쪽쪽 먹었다.
시장에서 사 온 닭다리는 중닭이나 늙은 닭의 다리가 아닌 병아리수준의 연약한 뼈이다.
삐약거리는 앳된 병아리를 3개월 정도 키었을 성싶은 아주 어린 닭이다.
뼈가 하도 연약해서, 닭다리 뼈를 입안에 넣고는 나는 엉성하고 연약한 어금니 이빨로도 으드득 깨물어서 즙까지 쪽쪽 삘이먹었다.
내 이빨은 치과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받기에 어금니조차도 연약한 이빨이다.
화가 치민다.
개고기 먹는 날은 복날( 伏날)인데도 최근부터 '개한민국'에서는 개를 더욱 소중히 여긴다.
* 대한민국이 아닌 개한민국
2026년 7월부터는 전면 식용금지 조치를 취했다.
앞으로는 개고기를 먹다가 적발되면 형법으로 처벌받는다.
개는 아주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기타 가축은 마구 잡아먹어도 된다는 뜻이다?
개고기는 절대금지하되, 소, 말, 돼지, 염소, 양, 토끼, 고양이 등의 가축은 물론이거니와 닭, 오리, 거위, 꿩, 비들기, 참새 등의 조류와 생선류(미꾸라지, 장어 등)은 먹어도 된다는 뜻이다.
개(개님)만큼은 아주 소중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예전부터 내려오는 복날은 물론이거니와 평소에도 개 식용은 절대금지한단다.
'개같은 세상'이 아니라 '개님의 세상'으로 변했다는 뜻이다.
서울지역 아래에는 성남시가 있다.
성남시 모란시장은 예로부터 개장국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모두 개고기 판매를 접었을 것이다.
개고기 판매 식당은 아예 폐업한 업소도 많다고 한다.
개고기 대신에 다른 육류로 대체해서 판매하지만 아예 폐업한 업소도 많단다.
2.
심복( (三伏)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들어 있는 세 번의 절기.
첫 번째 복날을 초복이라 하고, 두 번째 복날을 중복, 세 번째 복날을 말복이라 한다.
2026년 복날
초복 7월 15일 (수)
중복 7월 25일 (토)
말복 8월 14일 (금)
삼복(三伏)은 양력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 사이에 들어가는 잡절(雜節)이다.
복날(伏날) 혹은 삼경일(三庚日)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로부터 세 번째 경일(庚日)을 초복(初伏), 네 번째 경일을 중복(中伏), 입추 혹은 그 이후 첫째 경일을 말복(末伏)이라고 한다.
* 한자 복은 개를 뜻한다.
3.
나는 시골 농촌태생이다.
충남 보령군 웅천면 구룡리 화망마을 출신이다.
사방이 야산으로 둘러싸인, 지대가 높은 촌구석이다.
마을 뒷산(신안재)에 조금 오르면 산 아래 저건너편에 서해바다가 펼쳐진다.
남쪽으로는 독산해수욕장, 장안해수욕장, 서천군 춘장대해수욕장, 서쪽 산 아래에는 무창포해수욕장이 있다. 무챙이는 서쪽 산 아래에 있기에 무창포해수욕장은 직접 보이지 않는다.
내 집에서 3.5 ~ 4km 걸어가면 갯바다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북쪽으로는 남포면 용머리해수욕장, 더 멀리는 대천해수욕장, 더 멀리에는 섬섬... 원산도 등이 내려다보인다.
내 어린시절에는 우리집에서도 개를 키웠다.
일꾼 머슴을 두었기에 일소(암소)도 있었다. 머슴은 구루마를 이끌고 면내 장터로 가서 마을사람들의 짐을 실어날랐다.
우리집에서는 돼지, 염소도 키우고, 닭도 키웠다. 쌍둥이 나는 토끼도 키웠다.
마을에 큰 잔치가 있으면 동네사람들은 돼지를 잡아서 뼈를 바르고 살을 잘라냈다.
개도 잡고, 염소도 잡고, 닭도 잡아서 삶아 먹었다.
내 어린시절(1950년대)에는 마을청년들은 야산으로 올라가 토끼몰이를 해서 그물로 산토끼를 잡았고, 콩 알에 '싸인나 독약'을 넣어서 꿩들을 잡아서 먹었다.
내가 기억하는 1950년대 60년대에는 못 먹는 게 없었다. 모두 다 먹었다.
구렁이 뱀도 잡아서 먹었고, 메뚜기도 잡아서 불에 구워먹고, 들판 논과 둠벙, 시냇가에서 미꾸라지도 잡았고, 갯물 따라, 시내물 띠리 마을 뒷산까지 오른 뱀장어, 참게 등 바다/ 강의 어패류도 그물 쳐서 잡아먹었다.
아쉽게도 부사방조제가 설치되면서 강물과 바닷물이 완전히 차단되어서 갯것 생물들은 완전히 소멸되었다.
부사방조제는 둑이 아주 높게 쳐져서 서해바다 갯물이 차단되었고, 웅천천을 통해서, 뒷산까지 강물을 역류해서 올라오던 갯장어, 칠성장어, 피리미, 갯가재, 갯조개도 영원히 사라졌다.
지금은 갯바다로 직접 나가야 한다.
4 ~ 10km 이상을 걸어야만 노천리 웅천천 강가, 무창포해수욕장, 독산해수욕장, 장안해수욕장, 부사방조제, 서천군 동백정, 춘장대해수욕장 등으로 나갈 수 있다.
북쪽으로는 보령 남포면 용머리해수욕장, 대천해수욕장 등으로 갈 수 있다.
내 학생시절에는 멀리 대천해수욕장 등지로 걸어다니면서 갯것도 잡아서 냠냠했다.
4.
예전 동네사람들은 복날에는 개를 잡았다.
개 목에 밧줄로 묶어서 독다리 천장에 매달아서, 개가 발버둥치면서 죽었다.
개털을 장작불로 태워서 그슬리고, 날카롭게 간 부엌칼로 개 배를 잘라서 창새기를 꺼내고....
복날에는 개고기를 푸짐하게 먹었다.
구경꾼한테도 나눠주고 .....
5.
아쉽게도 내 어린시절의 경험은 별로 없다.
초등학교 4학년 말 봄철에 쌍둥이형제는 대전 아비의 손에 이끌려서 대전으로 전학 가야 했다.
완행열차를 타려고 역전에 가면서 쌍둥이들은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가.
어머니, 할머니,누나,누이동생들과 헤어져서 객지로 떠나가야 했기에.
여름방학, 겨울방학 때라야 완행열차를 타고 고향집으로 갔다.
이런 이유로 내 어린시절, 학생시절, 청년시절애는 산골 촌구석 이야기가 드물게 된 요인이 되었다.
지금은 집나이 일흔아홉살, 만나이 77살이라서 옛기억조차 자꾸만 흐려지고 사라지고, 착각한다.
아쉬운 세월에 와 있다.
잠시라도 쉬자.
나중에 ...
자녁밥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