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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호와의 증인」의 이단성을 논증하는 책을 써서 주변의 지인들에게 나누어 준 일이 있다. 그 책의 내용 중에 “신세계역의 오류에 대하여”라는 소제목의 글이 들어 있는데 오래 동안 고심하다가 여기에 게시하게 되었다. 나의 글이 독자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한 사람도 아니고, 헬라어에 능한 사람도 아닌 주제에 쓴 글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넓은 아량과 이해를 바라마지 않는다. 아울러 여러분들, 특히 현역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이 글을 읽고 신세계역의 오류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앞으로 4∼5회에 걸쳐 게시할 예정이다.
특기할 것은 본문 전체에 95개의 각주(脚註)가 달렸는데 해당 페이지에 맞춰서 각주를 달려고 하니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부득이 본문을 모두 게재한 다음 끝 페이지에 각주를 몰아서 게재하려 한다. 각주를 찾아보시려면 곤란하시겠지만 부득이한 조치이니 이해하시기 바란다.
지난 2011년 4월 7일 자 조선일보에 난 기사에 의하면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문의 한글 본을 검토한 결과 총 207건의 오류가 나왔다고 한다. 예를 들면 “역학서비스”(Epidemiological Service)를 “피부의학서비스”, “이식”(Transplant)을 “수혈”로, “자회사”(Subsidiary)를 “현지법인”으로 번역했다고 한다. 이것은 영문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란다. 외교통상부에는 영어깨나 한다는 사람들이 수두룩할 텐데 일국의 정부에서 번역한 것이 이 정도인 것이다.
번역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문학가(文學街)에서는 격언처럼 전해져 오는 말이 있는데 “번역(飜譯)은 반역(反逆)이다”라는 말이다.1) 그 말은 번역을 아무리 잘 한다 하더라도 원전(原典)의 의미와 향미(香味)를 완벽하게 나타낼 수 없고, 더 나가서는 원전의 훼손은 불가피하다는 뜻일 것이다.
성경도 마찬가지이다. 오랜 시일에 걸쳐 많은 저자가 기록한 책이다. 원어도 히브리어와 아람어에다가 헬라어까지 시용되었다. 각 성경이 쓰일 때 유대 민족을 비롯해 여러 민족들의 각기 다른 문화가 있었고, 다른 생활이 있었고, 독특한 정서가 이었다. 거기에다 국제간의 역사도 있었다. 그러한 성경의 배경을 도외시하거나 무시한 채 성경을 번역한다는 것은 “반역”이 될 수 밖에 없다. 성경은 픽션(fiction) 소설이 아니다. 누워서 재미있게 읽고 집어던질 문학작품이 아니다.
필자가 젊었을 때 투병생활 하면서 꽤 많은 책을 읽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연애대위법(戀愛對位法. 원제는 Point Counter Point이다)이라는 책이다. 아마 Aldous Huxley의 작품이었을 것이다. 제목이 흥미로워서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독서가 생활이 된 사람이 연애대위법이라는 책을 들고서는 열심히 읽었지만 난해하고 재미가 없어서 끝까지 읽지 못하고 손에서 놓
아 버렸다. 내 일생에 읽다가 그만둔 책은 그 책이 처음이요 마지막 이었다.
성경은 그 보다 더 어려운 책이다. 한글이나 영어처럼 글자의 모양이 쉽게 파악되는 그런 글자가 아니라 히브리어나 아람어는 우선 보기에 어려워 보인다. 글씨 밑에 점을 찍거나 복잡한 표시를 한다. 더구나 인쇄술이 없어서 손으로 필사를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오자나 탈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성경이 원본이 있다든지, 단행본으로 된 책이 있다면 그나마 나을 것이지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은 5500개로 조각나 있는 사본을 기초로 종합한 것이다. 2)
「여호와의 증인」신도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느끼는 것이 있다. “이 사람들은 성경해석을 식은 죽 먹기 쯤으로 생각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성경구절 해석에 막힘이 없다.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신세계 역”을 완전무결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철석 같이 믿고 있다. 그들은 신약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책의 표제를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신세계역”이라고 거창한 이름을 붙여 놓았다. 신세계역 한국어 역본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영어판을 번역 한 것이라고 그들 스스로 밝히고 있다.3) 우리는 이렇게 영어에서 한글로 중역(重譯)한 성경을 쓰던 때가 벌써 오래 전 일이다.4) 시대에 뒤떨어진 중역본을 사용하면서 신세계역 만이 헬라어에서 직접 번역한 권위 있는 성경이라는 듯이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이라고 표제를 인쇄해 놓았다. 얄궂다. 이는 신세계역 만이 헬라어에서 직접 번역한 권위 있는 성경이라는 인식을 그 신도들에게 심어 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 신세계역이 과연 잘 번역된 책일까? 아니다. 오류투성이의 책이다. 1950-1961년 사이에 신세계역 성경을 번역하여 사용하기 전까지 KJV, 미국표준역(ASV)을 사용해 왔던 그들은 신세계역 성경이 나오자 KJV나 다른 번역본들을 가리켜 “악마의 성경”이라고 악평하기 시작했다.5) 이 또한 얄궂다.
「여호와의 증인」은 신세계역이 중역본(重譯本)이고, “문자적으로 번역하려고 노력하고, 직역(直譯) 방식을 반영하려고 노력하였다”고 하지만 부자연스럽고, 부적절하고, 의미가 통하지 않는데다, 여기 저기 변개(變改)하여 누더기 성경을 만들어 놓았다. 성경을 이렇게 누더기로 만들어도 된다는 말인가? 신세계역 성경이야말로 악마의 성경이다. 그 이유를 보자.
1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국역(國譯) 개역 구약성경에 7029 회 사용되었다.6) 그와 달리 신약성경에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아주 대조적이다. 개역 신약성경에서는 여호와라는 신명(神名) 대신에 “하나님”과 “주”가 사용되었다. LXX에서도 여호와라는 이름 대신에 “하나님(θεὸς)” “주(κύριος)”가 사용되었다. 그런데「여호와의 증인」은 그들이 펴낸 신세계역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신세계역”(한글판) 신약성경에 “주”라는 이름 대신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썼다. 237회 썼다고 신약 편 부록에 밝혀 놓았다.7) 신약성경 헬라어 성경에 한 번도 기록된 바가 없는 “여호와”를 237회나 써 놓고, 여호와의 이름을 회복시켰다고 후안무치하게 주장하고 있다. 신세계역에 237회의 “여호와”의 이름을 “회복”시킨 근거는 히브리어 성경에 “여호와”라는 신명이 7,000여회 사용되었는데8) LXX(70인역:Septuagint)을 번역할 때 번역자들이 삭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세계역 한글판 부록 2에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LXX으로부터 인용했을 때, 인용문에서 그 이름(여호와의 이름을 의미-필자 주)을 삭제했을리 만무하다”고 단언했다.9) 그러나 LXX에는 “여호와”나 테트라그라마톤 YHWH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삭제했을 리가 없다니 무슨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사용된 “여호와”를 회복한다고 하면서 왜 신약성경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넣었는가? 신약성경이 히브리어로 쓰인 것도 아니고 “여호와”의 이름이 삭제된 것도 아니쟎는가? 신약성경이 LXX 보다 300–400여 년 후에 기록되었으니 “여호와”라는 이름을 회복시켰다는 것은 가당히 않은 말이다.
LXX은 구약성경 히브리어 원문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으로서, BC3세기에서 시작하여 AD1세기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의 개정을 단행한 것을 포함하여, AD2세기의 아퀼라(Α), 심마쿠스(Σ), 데오도티온(Θ), AD 4세기 기독교의 대문자(大文字) 사본에 집결하기까지의 여러 헬라어 역본의 총칭이다.10)「여호와의 증인」이 말하는 LXX인 역은 어느 것을 두고 하는 말인지 알 수 없다.
“주” 나 “여호와”나 하나님을 부르는 같은 이름인데 “주”대신 “여호와”로 이름을 바꾸어 놓았다고 무슨 문제냐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1) 성경말씀은 일점일획도 변개 되어서는 안 된다.
2) “주”를 대신해서 “여호와”를 사용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을 약화시키려는 저의에서 나온 악행이다.
3)「여호와의 증인」이 “여호와”라는 이름과 함께 “야”라는 이름을
사용하므로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혼란을 느끼게 한다.
「여호와의 증인」은 신세계역 계시록 19:1,3,6에 “야”라는 하나님의 이 름을 사용했다. 「여호와의 증인」은 무슨 의도로 “야”를 사용했을까? 그 저의를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성서대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야”라는 항목이 있다. 예배의식에서 쓰는 할렐루야의 단축형(短縮形)이라고 쓰 여 있다.11)
그런데「여호와의 증인」은 왜 불쑥 이 이름을 썼을까? 여러 번도 아 니고 단지 3회를 말이다. 헬라어 원문에는 “할렐루야”로 되어 있다. 그 렇게도 집착하는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두고 “야”를 썼다는 것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다.
4)「여호와의 증인」은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귀중하게 여기고 있 는데, 과연 “여호와”라는 이름은 정확한 것인가?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이름이 정확히 전해 내려오고 있지 않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은 출20:7 의 말씀을 엄중하게 받아드려서 하나님의 이름을 너무도 경외한 나머 지 하나님의 이름을 입밖에 소리 내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그런 두려움 은 성경을 필사(筆寫) 작업하는 데까지 적용되어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 버리는 최악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남아 있는 것은 테트라그 라마톤(Tetragrammaton) (히브리어로 הוהי :요드 헤 와우 헤라고 발음 함)12)이라고 부르는 네 글자인데 로마자로 표기하면 YHWH라고 쓴다. 모음은 없고 자음만 남아 있기 때문에 발음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 문 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맛소라 학자들이 Adonai라는 주님의 이름에 들어 있는 모음을 YHWH의 사이에 넣어서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만들었 다.13) 즉 모음 a는 제1자음 아래서는 a로 읽지만 Y 아래서는 e로 읽는다. 그것이 16세기 기독교 학자들에 의해서 “여호와”(Yehowah)로 읽히게 된 것이 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야웨” 또는 “야훼”라는 이름이 더 정확한 하 나님의 이름 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었지만 그 또한 정확 한지는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다.
5)「여호와의 증인」은 신세계역이 잘 된 번역이라고 자부할 것이다. 그러나 오역(誤譯) 문제 뿐 아니라 성경(특히 신약성경)전체가 부적합한 번역, 부자연스런 문장으로 오염(汚染)되어있다. 종교개혁자들이 행위를 강조 한 야고보서를 가리켜 “지푸라기성경”이라고 경시(輕視)하는 투로 불렀 다. 그렇다면 필자는 신세계역은 쓰레기 성경이라고 부르겠다. 오죽 했 으면「여호와의 증인」내외에서 1500여명의 사람들이 신세계역을 보고 “도대체 이런 성경 번역을 누가 했느냐?”고 항의했지만 통치체는 번역자의 신분을 밝히지 않기로 결정해 버렸다고 한다.14)
부르스 M. 메쯔거(Bruce M. Metzger) 교수15)는 신세계역은 헬라어성 경에 충실치 못했다고 지적했고, 레이 C. 스테드만 (Ray C. Stedman) 목사는 “여호와의 증인의 번역은 독약을 푼 우물과 같이 위험하다”고 결 론을 내렸으며, 월터 R. 마틴(Walter R. Martin)교수는 여호와의 증인의 번역 성경은 “소경이 소경 인도하는”것이라고 비판했다.16)
6)여기서 반듯이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신약 성경에 “여호와”라 는 하나님의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은 신약 성경의 저자들이 하나님의 감 동을 받아서 그렇게 쓴 것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 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라는 엄연한 성경 구절을 아무리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여호와의 증인」이라 할지라도 부정하지는 못할 것 이다. 그들의 신세계 역 한글판에도 「모든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것으로........」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신약 성경에 “여호와”라는 하나님 의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 은 LXX에서 삭제한 “여호와”를 회복한다는 미명 아래 신약성경에 한 번 도 쓰이지 않은 “여호와”를 237회나 대체(代替) 기록하였다.17)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성경을 변개한 것이다. 이는 중범죄(重犯罪)이다. 자신들 의 교리를 옹호하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변개하는 이단이나 저지르는 범죄이다.
「여호와의 증인」이 사용하는 신세계역(한글판)의 오역(誤譯)을 살펴보자
◆한글개역:『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 하더라』(요12:3)
◇신세계역:「........예수의 발에 바르고.......」
「여호와의 증인」이 “바르고”라고 쓴 헬라어는 ἤλειψεν(엘레이프센)은 기름을 붓다를 뜻하는 ἀλείφω(알레이포)의 제1부정과거능동태직설법으로 “붓다”가 옳은 번역이다.
◆한글개역:『.....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요12:13)
◇신세계역:「.......그들은 당신에게 기도하니 구원해 주십시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곧 이스라엘의 왕은
축복을 받으신 분........」
※신세계역에서 말하는
(1)“당신에게 기도하니” 구절은 헬라어 성경에 없는 것이고,
(2)“여호와의 이름”으로는 헬라어 성경에 없는 것이고,
(3)“축복을 받으신 분”은 헬라어 성경에 없는 것이다.
분명한 오역이다.
“호산나”는 “구원하다”와 “지금”이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로 “지금 구원하소서”란 뜻이다.18)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받는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이 임박한 때, 백성들은 로마의 지배에서 해방시켜 줄 위대한 구원자를 갈망하고 있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한 예수는 마침내 다윗 왕조의 재건이라는 꿈을 실현시켜줄 메시야로 추앙되었다. 그렇게 구원의 시기가 도래했다는 확신에 찬 군중들이 “여호와여 지금 구하오니 우리를 구원하소서”하고 외치는 것이다. 학자들을 군중들의 외침이 시118:25의 인용이라고 보고 있다. 신세계역은 구세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해 달라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오역이다.
◆한글개역:『.........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
◇신세계역:「나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은 죽어도 살아날 것입니다.」
ὁ πιστεύων εἰϛ ἐμὲ(호 피스튜온 에이스 에메)는“나를 믿는사람”이라는 뜻이다. 신세계역에서 “나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은” 잘못된 번역이다.
◆한글개역:『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16:8)
◇신세계역:「그가 도래하면 그는 죄에 관하여, 의에 관하여,
.......납득할만한 증거를 세상에 제시할 것입니다. 」
“세상을 책망하시리라”를 나타내는 헬라어는 ἐλεʹγξει τὸν κὸσμον(엘렝크세이 톤 코스몬)은 반박하다를 의미하는 ἐλεʹγχω(엘렝코)의 미래 능동태로서 “긍지를 가지고 책망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납득할만한 증거를 제시할 것입니다.” 라는 문구는 전혀 근거 없는 삽입구로 성경을 변개한 것이다.
◆한글개역:『.........그가 자의(自意)로 말하지 않고』(요16:13)
◇신세계역:「.......그는 자기 자신의 충동으로 말하지 않고.......」
신세계역은 부적절한 번역이다.
◆한글개역:『.....또 나를 하나님께로서 온 줄 믿은 고로(요16:27)....』
◇신세계역:「.......내가 아버지의 대표자로서 왔다는 것을 믿고......」
이 성구에 “아버지의 대표자”라는 술어는 헬라어 성경에 없는 말 이다. 헬라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ὅτι ἐγὼ παρὰ τοῦ θεοῦ ἐξῆλθον.
that I from - God came forth.
어디에도 “아버지의 대표자”라는 문구는 없다.
◆한글개역:『예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요19:30)』
◇신세계역:「이제 신 포도주를 받으시고 예수께서는 다 이루어졌다 하고.. ......」
“다 이루었다”는 뜻의 헬라어 τετεʹλεσται(테테레스타이)는 끝이라는 의미 τεʹλος에서 유래하였고 끝, 목적, 완성을 의미한다. 거기에 완성하다, 완료하다 라는 의미의 τελεʹω가 결합하여 현재 완료형 테테레스타이가 되었다. 따라서 “다 이루었다” 가 옳은 번역이다. 신세계역은 오역이다.
◆한글개역: 『은혜 』
◇신세계역: 「과분한 친절」
“과분한 친절”은 부적절하고 부정확한 번역이다. 부모님의 은혜를“과분한 친절”이라고 하지 않는다. 간(肝)을 제공해 준 사람에게 “과분한 친절로 살았습니다.”하지 않는다. 죄인이며 아무 공로 없는 사람을 의롭다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과분한 친절”이라고 하는 것은 그 큰 하나님의 은혜를 폄훼(貶毁)하는 표현으로 배은망덕자의 말이다. 주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의 표현이다. “과분한”이란 형용사를 열 개 붙여서 말한다고 할지라도 “은혜”라는 말의 깊은 의미를 따라 갈 수 없다. “은혜”와 “친절”의 사회적 통념도 모르는 하는 어설픈 번역이다.
은혜는 헬라어로 χάρις(카리스)라고 한다. A. T.로버트슨은 은혜를 설명하기를 χάρις는 가능한 모든 의미를 포함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언급하는데 이 구원은 갈보리 십자가를 통하여 얻어진 것이며, 하나님의 흉악한 원수에게, 결코 이 구원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에게, 오직 죄의 댓가로 응분의 형벌을 받아야 할 자에게 주신 것이며,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으시고 오직 베푸신 자의 아낌없는 마음씨와 관용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20)
χάρις란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칭송”으로(행2:47), “은총”으로(행7:10), “호의”로(행25:3),“감사함”으로(고전10:30; 골3:16), “칭찬”으로(눅6:32,33,34), “사례”로(눅17:9), “마음”으로(행24:27; 25:9), “기쁨”으로(몬1:7), “사랑스러워”로(눅2:57), “은혜로운”으로(눅4:22), “감사하다”로(롬6:17; 고전15:57), “아름답다”로(벧전2:19,20)등으로 사용된데 비하여 “은혜”로는 총 133절에 143회 사용되었다.21)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 말이다.
신세계역 신약 편에서는 “은혜”로(눅1:28, 30; 2:40; 행6:8; 7:46), “호의적인”으로(눅4:22), “감사”(눅6:35)등으로 쓰였고 그 외에는 거의 대부분이 “과분한 친절”로 쓰였다. 특이한 것은 개역 성경 눅4:19『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를 「여호와의 받아들이실 만한 해를 전파하게 하셨기 때문이다」로 번역하여 “은혜”라는 말을 생략하고 “여호와의 받아들이실 만한 ......”로 번역하였다.
「여호와의 증인」이 “은혜”를 굳이 “과분한 친절”이라고 번역한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심으로 죄인에게 주어진 은혜를 부정하는 것이며, 그 은혜를 과소평가하려는 저의(底意)에서 나온 오역이다.
◆한글개역: 『우애』 (롬12:10)
◇신세계역: 「부드러운 애정」
◆한글개역: 『사람』 (롬13:1)
◇신세계역:「영혼」
개역성경에서 “사람”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ψυχὴ(푸슈케)로 신약성경에서 목숨, 영혼, 마음, 생명, 사람, 심령, 생물 등으로 사용되었다. 롬13:1의 문맥을 보아서 “사람‘으로 번역한 것이 자연스럽고 타당하다. RSV는 person으로, NIV는 everyone으로, 표준새번역은 사람으로, 공동번역은 ‘누구나’로 번역하였다.
◆한글개역: 『하나님의 명(命)을 거스름이니』(롬13:2)
◇신세계역: 「하느님의 마련을 거스르는 입장을....」
부적절한 번역이다. “명(命)”은 헬라어로 διαταγῇ(디아타게)라 하는데 “명령하다, 지시하다”라는 뜻을 가진 διατάσσω(디아타쏘)에 유래한 말이다. “마련”이라는 우리 말은 “준비, 계획, 대비”를 의미하는 말이다. 신세계역은 잘못된 번역이다.
◆한글개역: 『직원』(마9:23)
◇신세계역: 「통치자」
“직원”이란 단어의 헬라어는 ἄρχοντος(아르콘토스) 인데 이 말은 “직원”으로 마9:18, “왕”으로 마9:34; 12:24; 눅11:15, “집권자”로 마20:25, “법관”으로 눅12:18, “두령”으로 눅14:1, “관원”으로 눅18:18 외 17회, “당국자”로 요7:26,48, “임금”으로 요12:31; 14:30 계1:15, “권세 잡은 자”로 엡2:2 등으로 사용되었다. 이로 보건대 “통치자”라는 번역도 가능하다. 그러나 죽은 딸을 살려달라고 간청한 “직원”이란 점을 감안하여야 한다. 마9:18-26의 병행구인 막5:21에서는 이 사람을 “회당장 야이로”라고 밝히고 있고, 눅8:40-56에서도 역시 “회당장 야이로”라고 밝히고 있다. 회당장은 회당 건물의 유지 보존과 운영 및 회당 예배의 질서와 신성함을 유지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이다.
그 회당장을 통치자로 번역한 것은 격에 맞지 않는 번역이다. 조선시대에 정5품 벼슬아치를 영의정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한글개역:『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諫)하여 가로되(마16:22)』
◇신세계역:「이에 베드로는 그분을 따로 모시고 나가서 나무라기 시작하
여, 」
본문의 “간(諫)하여”는 헬라어로 ἐπιτιμάω(에피티마오)의 현재 능동태 부정사인 ἐπιτιμαν(에피티만)인데 “꾸짖다”의 의미이다. 마8:26에서 바다를 꾸짖으시고, 마17:18에서 귀신을 꾸짖으시고, 마19:13에서 어린이들의 접근을 막는 제자들을 꾸짖으셨다고 쓰인 단어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두 가지 점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는 ἐπιτιμάω 가 기본전치사 ἐπί와 “공경하다”, “존경하다”, “정가(定價)하다”(마27:9), “대접하다”(행28:10)”의 의미를 가진 τιμάω의 합성어인 점을 고려해야 한다. 둘째는 존귀하신 주님이요 스승이신 예수님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신세계역의 “나무라기 시작하여”라는 번역은 외람되고 무례한 말이다. 잘못된 번역이다.
특기할 것은 개역개정성경에서는 개역성경의 “간하여”를 “항변하여”라고 번역해 놓았다. 이 역시 불손하고 무례한 말이다. 신하(臣下)가 왕에게 “나무랐다”거나 “항변했다”는 언사(言辭)를 사용했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다. 신하가 그랬다가는 곤장(棍杖)을 맞거나 귀양을 갔을 것이다.
헨드릭슨은 “간하여”와 관련하여 이렇게 설명했다. “베드로의 말은 하나님이 주를 긍휼히 여기시니 이 일이 있어서는 안 되며, 일어나지도 않을 것입니다.”22)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23) 개역성경의 “간하여”가 적절한 번역이 라고.
◆한글개역:『그리마옵소서(마16:22)』
◇신세계역: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십시오,」
한글개역성경의 “그리마옵소서”는 헬라어 ἵλεώς σοι(히레오스 소이)를 번역한 말인데 ἵλεώς σοι는 “하나님께서”를 생략한 문장으로 원 뜻은 “(하나님께서)당신에게 자비를”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 받고 죽으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가 간하여 가로되 “그리마옵소서”라고 말했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적절한 번역이다. 신세계역의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심시오”라는 번역은 헬라어 원문과도 거리가 멀뿐더러, 마 16:22절 전체의 문맥과도 어울리지 않는 잘못된 번역이다.
◆한글개역:『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마19:6)』
◇신세계역:「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멍에를 함께 메게 하신 것을,」
“짝지어주신”을 의미하는 헬라어는 συνέζευξεν(슈네쥬켄)은 “함께 멍에를 메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그러나 “함께 멍에를 메다”라는 말은 고대 헬라어에서 결혼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NIV, ASV, RSV, KJV 모두 joined together(짝지어 주신)라고 번역했다.
신세계 역은 여자적(如字的)으로 번역한 것으로 부적절한 번역이다.
◆한글개역:『......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눅 6:37)
◇신세계역:「......계속 놓아 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놓일 것입니다.」
“용서하라”와 “계속 놓아 주어라”와는 의미상 아무 유사점이 없다. 개역성경의 “용서하라”나 신세계역의 “놓아 주십시오”의 헬라어는 ἀπολύέτε(아포루에테)인데 전치사 ἀπό와 기본동사 λύω의 합성어로, 신약성경에서 ‘놓아 주다’, ‘끊다’, ‘버리다’, ‘흩어 보내다’, ‘용서하다’, ‘용서 받다’, ‘놓다’, ‘작별하다’, ‘흩어지게 하다’ 등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관련 성구는 생략한다.
이상의 여러 가지 의미 중에서 어느 것을 택하여 한글로 번역하면 좋을까? 최선의 방법은 “용서하라” 앞에 나오는 “비판하지 말라”, “정죄하지 말라”를 기본으로 하여 번역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용서하라”로 번역하게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비판하지 말라”와 “정죄하지 말라”와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놓아 주어라”는 아니다. “비판하지 말라”와 “정죄하지 말라”와 전혀 관련 없는 번역이 되고, 의미가 모호해지기 때문에 잘못된 번역이다.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가 옳은 번역이다.
◆한글개역: 『태초에......』(요1:1)
◇신세계역: 「시초에 .....」
“태초에”나 “시초에”나 헬라어 Έν ἀρχῇ(엔 아르케)인데 영문 성경에서는 RSV, NIV, KJV, ASV 모두 ‘In the beginning’으로 번역해 놓았다. 신세계 역 영문 성경도 마찬 가지다.
같은 “태초에”를 사용했지만 창세기1:1에 사용된 “태초에”는 역사와 과학과 신화(神話)를 뛰어넘는 개념으로 ‘시간의 개시에’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창조의 사역을 시작하신 시점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와 달리 요한복음1:1의 “태초에”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 이전의 영원성을 의미한다.
그런데 “시초에”는 어떤가? 개역성경에 “시초에”라는 단어가 단 세 곳에 기록되었는데 사18:2,7; 빌4:15이다.
•사18:2『......장대하고 준수한 백성 곧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로 가라 하도다』
•사18:7『그때에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 장대하고 준수하며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 백성에게 만군의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에 이르리라』
•빌4:15『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 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세 곳의 성구를 살펴보면 “시초에”라는 단어는 창1:1의 “태초에”와도 다르고, 요1:1의 “태초에”와도 다른 구원 역사상의 어느 시점을 말하고 있다. 사18:1-7까지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구스에 대하여 도와주실 것이며, 구스가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예언한 내용이다. 빌4:15의 “복음의 시초에”란 빌립보에서 일을 마친 어느 시점을 가리킨다. 신세계역의 “시초에”란 적절치 못한 번역이다.
◆한글개역:『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요1:6)
◇신세계역: 「하느님의 대표자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한글 개역성경의 번역이 옳은 번역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의 헬라어 원문은 ἀπεστελμένος παρὰ θεοῦ(아페스텔메노스 파라 데우)인데 ἀπεστελμένος는 ‘.....부터’의 의미를 가진 전치사 ὰπό와 ‘정돈하다, 준비하다, 조심하다(고후8:20), 떠나다(살후3:6)’의 의미를 가진 στέλλω의 합성어로서 ‘보내심을 받은’이라는 뜻이다. 헬라어 원문에는 ‘대표자로서’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가 들어 있지 않다. 신세계역은 잘못된 번역이다.
◆한글개역:『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1:11) ◇신세계역:「그 분이 자기 집에 오셨으나 그 백성은 그 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헬라어 원문에는 “자기 집에”라는 단어가 없다. 신세계역은 오역이다.
◆한글개역:『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16)
◇신세계역:「우리는 모두 그분의 충만함에서 과분한 친절 위에 과분한 친 절을 받은 것이다, 」
“은혜 위에 은혜러라”의 헬라어 원문은 καὶ κάριν ἀντὶ χά-ριτος(카이 카린 안티 카리토스)인데 κάριν은 χάριτος의 대격으로 ‘.....위하여, ......의 기쁨을 위해, 이러므로, 그러므로 이유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χάριτος의 원형은 χάρις로 주로 ‘은혜’라는 말로 사용되었는데 개역 신약성경에 143회 사용된 단어이다. 그 밖에 ‘은총, 친절, 호의, 칭송, 감사함, 은혜로운, 아름답다’로 쓰였다. 신세계역의 “과분한 친절”은 오역이다.
◆한글개역:『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
◇신세계역:「보십시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십니다」
헬라어 원문은 ἴδε ὁ ἀμνὸς τοῦ θεοῦ ὁ αἲρων τὴν ἁμαρ-τίαν τοῦ κόσμου(이데 호 암노스 투 데우 호 아이론 테 하마르티안 투 코스무)로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뜻이다. 신세계역의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이란 뜻은 없다. 신세계역은 오역이다.
◆한글개역:『....인자(人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 치신 자니라(요6:27)』
◇신세계역:「아버지 곧 하느님께서 그에게 승인의 인장을 찍기 때문입니다, 」
헬라어 원문에는 ‘승인의’ 뜻을 가진 단어가 들어 있지 않다. 인 치심이 승인이나 확인이나 보호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만큼 “승인의”를 첨가할 필요가 없다. 신세계역은 오역이다.
첫댓글 solitude님이 링크로 알려주신 글, 이것 확실한 이야기입니까? 정말 프랜즈가 법정에서 히브리어를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까?
http://cafe.daum.net/christianfreedom/Idne/60?q=여증+신세계역의+번역위원회에+관하여%28펌%29&re=1
신세계역 최신판에는 아예 책 앞쪽에 장문의 교리부터 실어놓았더군요. 신자들이 폭넓은 정보와 지식으로
사물에 대한 객관성을 가지도록 도와야 할텐데, 편협하고 편집된 지식으로 세뇌시키기로 아예 작정을
하고 기획진행해온것 같습니다. 봉사니, 집회참석과 집회준비니, 순회방문이니, 각종대회니 해가지고
생할 자체가 다른데 아예 눈을 돌릴 틈을 주지 않는 시스템이죠. 이른바 북한 스타일이 아닌가
싶습
니다. 북한의 노동총화, 자아비판, (회중내에서의 소집단 분류)5호감시제, 집단체조, 10년간 군복무,
외부정보차단, 일반인과의 교제차단, 분위기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무보수 강제노동, 반강제 헌금
사상교육, 크고작은 대회들. 개인숭배(통치체와 조직에 충성강요). 어찌이리 북한과 스타일과 시스템이
똑같을 수가 있죠? 오마니, 무섭습네다~!
증인에 호의적인 일반인이 대회 처음으로 와서
소감을 묻자 '저 미안한데.. 통일전망대서 많이보던 북한 전당대회가 자꾸 오버랩된다` 하더군요
푸하하~!^^, 아이고 배야~!^^
Scotland - Douglas Walsh vs. The Right Honourable James Latham Clyde - November 1954 재판으로 검색해보시면 되겠습니다.
신세계역, 정말 번역에 문제가 많군요~! 원문에 충실한 정말 잘된 최고의 번역으로 알았었는데, 원문에 없는 말까지
집어넣어 자신들이 의도하는 바의 생각을 주입한 것 같은데, 이래도 되나? 차라리 그런 부분들이 있다고
하나하나 밝혀 알려주든지... 정말 세뇌를 철저히 당했었다는 생각밖에 안드네요
사실은 20-30년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던 내용입니다. 탈증 후 대부분 이 사실에 새로운 충격을 받기는 하지만. 그러한 자료들이 정치적 색깔이 입혀져 그 때는 회피했거나 혹은 정보 차단 때문에 접하지 못했던 것이겠지요.
그런가요? 저는 처음보는군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잘 올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증교리~,악마~
신세계역이 자신의 교리에 뒷바침되게 성경원문을 오역했다면 그 죄는 클 것입니다. 결론은 하느님이 성경의 저자임에 틀림없기에 그분이 직접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전 그날을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