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랬죠. 우린 이해 이전에 오해를 하고 있는 거라고.
출근 길에 류시화 시인님이 페이스북에 쓴글 올려봅니다.
좋은 한주 되세요.!
유럽의 대학에서 인도 문학을 강의하는 교수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입학 면접 장소에서 처음 카밀라라는 학생을 만났는데 각각 다른 머리 길이에 파랗고 빨간 염색을 하고, 눈썹은 두 배나 진하게 그려져 있었다. 오른쪽 귀에 5개의 귀걸이를 하고, 비대칭의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왼쪽 귀에는 또 얼마나 많은 귀걸이를 하고 있을지 신만이 아는 일이었다. 손가락은 커다란 반지들로 뒤덮여 있고, 긴 손톱들은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팔찌, 검은색 립스틱에 높이 올라오는 검은색 부츠… 그리고 면접관의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알아듣기도 힘들었다. 단지 외모만의 문제가 아닌 듯했다.
그런데 어찌어찌해서 카밀라는 합격이 되어 내 친구의 수업을 듣게 되었다. 다행히 많은 학생들 속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얼굴을 가능한 한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4년이 흘렀고, 졸업을 앞둔 카밀라가 찾아와 문학 석사에 등록해도 되는지 물었다. 그것은 교수와 학생이 일대일로 자주 접촉해야 함을 의미했다. 내 친구는 그녀의 머릿속도 외모와 비슷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고집을 부렸고, 그래서 현대 인도문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녀의 외모가 아니라 그녀가 하는 말에 집중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석사 과정이 끝나갈 무렵, 그녀가 매우 재능이 뛰어나고 지적인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석사학위 논문은 다른 학생들의 박사학위 논문보다 뛰어났다. 현재 카밀라는 힌디어와 우르두어를 아름답게 구사하는 인도문학 박사학위 소지자이며, 내 친구의 훌륭한 동료 강사가 되었다. 머리는 본래의 갈색으로 돌아왔고, 보석과 화장도 요란스럽지 않다. 지금까지 가르친 학생 중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제자라고 내 친구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외모로 타인의 존재 전체, 혹은 삶 전부를 판단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범하는 일반화의 오류이다.
당시 카밀라는 고딕 록(얼터너티브 록의 한 장르)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녀는 어느 젊은 록 그룹 가수에게 흠뻑 반해 그것에 걸맞은 의상을 걸치고, 얼굴에는 가능한 한 많은 피어싱을 했다. 그 가수의 공연은 장소를 불문하고 따라다녔다. 공연 후의 파티에도 어떻게든 참석하고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그 가수와는 진실한 접촉을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포기했다.
어느 겨울, 카밀라는 방학을 맞이해 아버지의 차를 타고 고향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날따라 날씨가 엉망이었다. 강풍이 불고 잿빛 하늘에서 진눈깨비가 날려 도로가 미끄러웠다.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던 아버지가 문득 히치하이크를 하려고 손을 흔드는 젊은이를 발견했다.
카밀라는 관심이 없었지만 아버지는 험악한 날씨에 히치하이크를 해야 하는 젊은이에게 동정심을 느껴 차를 멈췄다. 그 히치하이커가 차에 올라탔을 때 카밀라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그토록 몇 년 동안 따라다니던 그 록 가수였다! 두 사람은 결혼해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다.
우리는 타인을 판단하는 데 빠르다. 외모를 보고 그 사람에 대해 성급한 판단을 내리는 이면에는 내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에고가 자리하고 있다. 제한된 지식과 경험에서 얻은 자신의 결론을 만유인력의 법칙인 양 절대적 진리로 여기는 것이 일반화의 특징이다.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어느 마을에서 붉은색 장미만 키운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장미는 붉은색이며 흰색, 분홍색, 검은색 장미는 가짜라고 믿는 이야기는 우화책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오래전 자동차를 몰고 캘리포니아 지역을 여행할 때였다. 도로 옆으로 쌓인 산악지대를 가는데 중간에 통행 제한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겨울철에는 잦은 폭설로 도로가 두절되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 팻말을 옆으로 치우고 운전을 계속하자 옆에 동승한 친구가 놀라서 나를 말렸다. 그래서 "가다가 길이 막히면 돌아오면 되지 않는가?"라고 하자, 그녀가 말했다.
"너, 별자리가 물병자리이지?"
나의 한 가지 행동으로 그녀는 내 별자리를 정확히 알아맞혔다. 알고 보니 그녀는 별자리에 대해 전문가적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그 후 나는 '전형적인 물병자리답게' 점성학에 푹 빠져 몇 년을 공부했다.
점성학 공부는 나 자신과 인간 존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또한 상대방의 별자리를 아는 순간 그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확신하는 오류도 안겨주었다. 그 사람이 무심코 생년월일을 말하는 순간 그가 하는 모든 행동과 하지 않은 행동들까지 다 파악되었다. 그 사람 자신보다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더 잘 안다고 믿게 되었다. 만약 내 분석이 실제와 다르면 그가 생일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엉터리로 내 사주를 보고서는 운명대로 살지 않은 내 잘못이라고 역정을 내던 인도의 손금 보는 노인처럼. 실로 어리석은 짓이었다.
점성학도 결국에는 제한된 경우의 수로 개개인을 일반화해 내리는 해석이다. 그 후 한 사람의 별자리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오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식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눈앞의 사람을 판단 없이 만날 수 있었다.
한번은 여행지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나를 알아본 한 여성이 무척 반가워하며 말을 걸었다. 우리는 테라스에 앉아 명상과 아쉬람에 대한 대화를 나눴는데, 날이 몹시 더워 내가 티셔츠를 벗는 순간 내 등에 새겨진 커다란 문신이 드러났다. 그녀는 너무 충격을 받아 라시 잔을 쥔 손을 떠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두려움 속에 얼버무리며 자리를 피했다. 내 등의 문신으로 순식간에 나를 판단한 것이다. 그 문신이 며칠만에 지워지는 헤나이며, 그날 내 인도인 친구의 조카가 헤나 실력을 점검할 겸 나를 실험 대상으로 삼아 그려 준 것임을 알지 못했으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진실만을 원한다.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처럼 타인에 대한 판단에 열중한다. 일반화된 기준이 아니라 한 사람을 그 개인으로 보고 존재로 볼 때 나의 인식이 풍요로워진다. 성급히 상대방을 판단할 때의 가장 큰 손해는 나의 인식이 1차원적 영역에 머문다는 것이다. 일반화는 눈앞의 대상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그때 꽃, 동물, 사람은 분류되고 끝난다.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말한다.
"당신이 나를 분류하는 순간 당신은 나를 부정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만나려면 그 사람을 내 판단의 연장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몸의 세포는 매일 바뀐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은 과거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이 천 개의 강물을 받아들이는 바다와 같아질 때 풍요로워지는 것은 우리 자신의 존재이다.
가톨릭 수사 윌리엄 맥나마라는 많은 정원사 중에서 유일하게 모든 장미를 훌륭하게 피워 낸 어느 정원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사가 그 정원사에게 성공의 비밀을 묻자, 그는 다른 정원사들이 모든 장미를 잘못 취급한 것은 아니고 다만 너무 일반적으로 취급했다고 말한다. 반면에 그 자신은 각각의 장미나무를 하나하나 관찰했으며, 각각의 나무가 특별히 필요로 하는 흙과 거름과 물, 그리고 햇빛을 제공해 주었을 뿐이라고.
첫댓글 삼해를 극복해야 합니다
좋은글 잘보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편협한 시선을 가지고 살았을까 돌아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