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성큼성큼 다가오는 중국 핵의 그림자"
중국은 1964년 첫 핵실험 이래 최소한의 제2격 능력으로 미.소와의 전략적 안정을 꾀하는 '최소 핵 억제' 전략을 수십년간 고수했었다. 이 '겸손'모드는 미국이 전략방위구상 (SDI)을 추진했던 1980년대는 감축되기도 했다. 그랬던 중국이 시진핑 이래 노골적인 핵 강국 행보를 시작했다. 중국은 지상.공중.해저 발사 핵무기를 대량 증강하고 2015년에는 제2포병을 독립병종인 로켓군으로 개편하면서 중국판 '핵 3축체계'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 최근에는 서부 사막지대에 300여개의 대규모 대륙간 탄도미시일 (ICBM) 사일로를 건설 중이다. 즉 미.러와 대등한 핵 강국 지위를 지향하면서 전통적인 최소 핵 억제전략에서 탈피해 핵 억제와 핵 사용 모두를 상정하는 초강대국의 핵태세로 급선회 중이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SIPRI) 등 전문기관들은 중국의 핵탄두가 현재 500여 기에서 오는 2035년에는 1500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 핵 급증을 촉발한 요인에 관해 중국 당국자들은 한결같이 '안보수요론'을 제기한다. 즉 외부 위협 억제, 미.러와의 전략적 안정, 미.중 대결구도로 증가하는 미국의 핵 위협 억제, 핵심적 국가 이익 수호 등이 단골 메뉴다. 최근의 폭발적인 핵 증강도 미국의 정밀 공격수단 개발, 방어체계 첨단화등을 상쇄하는 '대응적 조치라면서 대다수 중국 전문가가 이 주장에 가세한다. 그럼에도 설득력은 부족하다. 그보다는 '정치적' 동기론'이 더 큰 설득력을 가진다.
첫 핵실험 때부터 마오쩌동은 "핵은 없고 수류탄만 있으면 다른 나라들이 중국을 우습게 본다" 고 말했고, 덩샤오핑도 "워폭.수폭.인공위성 등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강대국 대접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 데서 보듯 지도자들은 일찍부터 '핵무기의 정치적 역할'을 강조했다. 장쩌민, 후진타오 등 후임들도 국제적 지위에 걸맞은 핵 군사력'을 힘줘 말했다.
그렇다면 대대로 이어져 온 이들의 정치적 야망이 도광양회 (韜光養晦)에 가려져 있다가 구조적 현실주의 지도자인 시진핑 시대에 '중국몽 (中國夢)'으로 발현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터, 중국이 말하는 '핵심적 이익'도 대만 통일, 남중국해 영해와, 경제영토확대, 주변국 제압용 전랑외교 등 '무력을 앞세운 현상 변경'이라는 팽창주의 행보와 관련된 것이어서 '안보수요'라고 하기엔 무리다.
'미 핵 위협의 대응'이라고 하기는 더욱 어렵다. 미국은 냉전이 끝난 뒤 핵탄두를 80% 이상 감축했고, 대부분의 전술핵을 퇴역시켰지만 중국은 미.러를 따라잡겠다며 핵 군축대화를 거부한 채 대량 응징 및 공격 능력을 키우고 있다. 따라서 올 들어 미국이 핵 운용지침을 강화한 건 중국의 핵증강과 중.러.북의 위험한 핵공조에 대한 대응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중국이 자신의 사후 100년 동안은 미국에 대항하지 말라고 했던 덩샤오핑의 유언을 무시하고 서둘러 '대국굴기 (大國屈起'에 나선 것이 중국에 좋은 일일지는 후일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어쨌든 분명한 것 하나는 북핵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이 땅에 지금 또 하나의 거대한 핵그김자가 서큼성큼 다가오고 있지만 그것이 위협인지, 위협이라면 당면 위협인지 또는 미래위협이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를 사실상의 도서국으로 만들고 있는 기구한 '지정학적 멍애'를 곱씹어 보면서 '자강과 동맹, 외교'라는 소중한 세 단어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