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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미 3집 - 바람(1973)
김정미는 김추자와 함께 ‘신중현 사단’을 대표하는 여성 가수다. 활동 당시에는 김추자의 명성에 가려 빛을 덜 본 감이 있지만 오늘날 ‘전설’의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김추자를 크게 능가한다. 우선 김추자는 1970년대 간판스타 중 하나라 할 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크게 누려 오늘날 다소 식상한 감이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김정미의 존재는 ‘신비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금지곡도 유난히 많아 제약이 많았고, 활동 기간도 6년 남짓으로 그리 긴 편은 아니었다. 또한 간간히 근황이 들려오는 김추자와는 달리 김정미는 가수 활동을 접은 이후 완전히 대중의 사야에서 사라졌다. 이러한 상황이 김정미를 중고 LP 음반계의 ‘여제’로 등극시킨 주요 원인인 듯싶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김정미를 영원히 잊기 힘든 존재로 각인시킨 것은 ‘음악적인 면’이 아닌가? 물론 ‘신중현의 싸이키델릭을 가장 뛰어나게 구현한 최고의 가수’라는 애호가들 사이의 찬사는 과장된 면이 있는 것은 확실하나(김추자는 물론이고 박인수나 이정화 등이 이 말을 들으면 얼마나 섭섭해할 것인가?), 그럼에도 김정미는 대단히 뛰어난 보컬리스트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정미처럼 호소력을 기본 바탕으로 깔고 청순함과 관능미가 완벽한 결합을 이룬 경우는 실로 보기 드물다. 관능미에 있어서는 김추자의 보이스도 이에 못지않으나, 김정미에 비해 풋풋함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거기에다 김추자의 경우는 비슷하게 비음이 두드러지고 카랑카랑하긴 해도 좀 더 대중 친화적인 면이 두드러졌음에 비해, 김정미는 ‘대중’보다는 ‘신중현’에 보다 충실했던 것 같다. 즉 인기보다는 신중현의 음악 세계를 제대로 구현해 내는데 더 큰 관심이 있었던 듯 보인다는 말이다.
[바람](1973)은 [Now](1973)와 함께 김정미 명반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음반이다. 그런데 이 두 음반은 서로 겹치는 곡이 많다. “바람”, “비가 오네”, “아름다운 강산”, “불어라 봄바람”, “나도 몰래”, “당신의 꿈”, “고독한 마음”이 두 음반에 다 같이 등장한다. 음원 또한 동일하다. 세션은 신중현과 더 맨, 또는 엽전들 초기 멤버들이 맡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의 멤버는 신중현(기타), 이남이(베이스), 문영배(드럼), 김기표(키보드), 그리고 손학래(금관악기) 등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강산”에는 굳이 “THE MEN 노래”로 명기되어있는 것이 이채롭다(사실 더 맨과 엽전들의 멤버 차이는 거의 없음).
연주 상에서 보면 내추럴 톤의 전기 기타 반주가 주도를 이루고 있다. 별다른 이펙트가 들어가지 않고 드라이빙감이 강한 기타 사운드는 오히려 ‘싸이키델릭’한 효과를 창출하는데, 제퍼슨 에어플레인으로 대표되는 샌프란시스코 싸이키델릭 록에 보다 가까운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바람”, “불어라 봄바람”, “어디서 어디까지” 등이 이러한 경향을 대변하고 있다. 반면 “추억”, “나도 몰래”, “당신의 꿈”, “마음은 곱다오” 등은 이미 김추자가 완성시켜 놓은 ‘신중현식 가요’의 전형들이다. 즉, 한국적인 정서가 유난히 강한 노랫말, 때로는 비장감이 넘치거나 아니면 해학적인 분위기를 구현하는 멜로디와 보컬이 두드러진 노래들이다. 마지막 곡 “고독한 마음”은 많은 이들이 [바람] 음반의 백미로 꼽는 곡인데, 다른 트랙들에 비해 블루지한 느낌이 유난히 강하고 김정미의 곡 장악력 또한 두드러지기 때문인 듯싶다. 다른 노래들에 비해, 감정이 고양되어도 결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특색이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음반은 당시 신중현을 사로잡던 화두, 즉 서구의 음악 양식을 어떻게 우리의 것으로 환골탈태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과도기적 고민이 엿보인다. 즉, 문제 제기의 소재는 나열되어 있지만 ‘융합’의 단계로까지는 아직 나가지 않은 듯싶으며, 그 완성은 신중현과 엽전들의 음반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바람]은 보컬리스트로서 김정미의 출중한 재능과 더불어, 신중현 음악 세계의 당시 상황까지도 부족하지 않게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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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나는 노래
즐감 합니다
잘 듣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