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를 물고 귀를 싸맨 자화상
1889년 1월, 캔버스에 유채
테오에게...
편지와 동봉한 100프랑 수표, 그리고 50프랑짜리 우편환 모두 아주 고맙게 받았다. 고갱은 아를이라는 훌륭한 도시, 우리가 작업하고 있는 작고 노란 집,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조금 싫증이 난 것 같다.
사실 우리 둘 모두 두손 들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 원인은 물론 다른 무엇보다 우리 자신에게 있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는 당연히 그냥 떠나버리거나 머무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그에게 결정을 내리기 전에 깊이 생각해 보라고, 또 이익과 손해를 잘 따져보라고 말했다.
고갱은 아주 강하고 창의력이 뛰어난 친구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라도 그는 평화로운 환경이 필요하다. 그가 이곳에서 평화를 얻지 못한다면 다른 어느 곳에서 그걸 찾게 될까? 묵묵히 그의 결정을 기다리겠다.
● 그동안 고흐와 고갱은 여러 가지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그런데 이 편지를 쓴 12월 23일, 그들 사이의 긴장은 극으로 치달았고 이미 잘 알려진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고갱의 말에 따르면, 저녁에 라마르틴 광장의 정원을 산책하고 있는데,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고흐가 면도칼로 위협했다고 한다. 고흐를 진정시킨 고갱은 불안한 나머지 노란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호텔로 갔다. 밤 11시 30분 경, 사창가에 나타나서 라첼이라는 매춘부를 불러낸 고흐는 "이걸 잘 간수해" 라는 말과 함께 스스로 잘라낸 귓불을 싼 종이를 넘겨주었다. 다음 날 아침, 의식을 잃은 채 자기 침대에 누워 있는 고흐를 경찰이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겼다. 고갱이 전보로 알려준 소식을 듣고 테오가 급히 아를로 왔으며 고흐는 그 지역의 병원에 잠시 입원해 있었다. 다음 편지는 고갱이 테오에게 전보를 쳐서 걱정을 끼치고 아를까지 오게 만들었다고 생각한 고흐가 화가 나서 고갱에게 쓴 것이다.
고갱에게...
자네에게 깊은 우정을 전하기 위해 퇴원하자마자 편지를 쓰네. 병원에서 자네 생각을 많이 했네. 높은 열에 시달리고 정신이 희미해진 순간에도.
그런데 내 동생 테오가 여기까지 올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하나? 이제 내 동생을 안심시켜 주겠지. 그리고 부탁인데, 모든 일이 늘 좋아지고 있는 이 멋진 세상에서 결코 어떤 악의도 없었다는 점을 자네도 분명히 알아주기 바라네.
슈퍼네커에게 안부를 전해주기를, 우리의 초라하고 작은 노란집에 대해 나쁜 말을 삼가주기를 바라네. 또 파리에서 내가 알고 지내던 화가들에게 안부를 전해주게. 파리에서의 행운과 번영을 기원하네.
추신 : 룰랭은 나에게 정말 친절했네. 다른 누구보다 먼저 나를 퇴원시킬 생각을 했던 사람이네.
부디 답장을 보내주기를.
1888년 12월
첫댓글
모든 일이 늘 좋아지고 있네.
【 파이프를 물고 귀를 싸맨 자화상 】고흐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