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 3. 23. 토요일.
문학지에 낼 글을 고르려고 일기장을 들여다보다가 아래 글을 보았다.
'앵두가 떨어질 무렵'을 쓴 시기는 내가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다.
내 어머니는 시골에서 혼자 사셨다.
앵두가 떨어질 무렵
지금쯤 고향집 마당가 앵두나무에는
붉은색 열매가 흐드러지게 열려서
지나가는 바람에도 후두둑 떨어지며 땅 위를 덮겠지.
아침이슬을 머금은 단내를 나무 주위에 뿌리고,
풀벌레와 작은 새를 홀리고 있겠지.
지금은 너무나 늙어 그루터기에 올라서기도 힘든데도
늙은 어머니는 침침한 눈으로 잔가지를 당기고 한 움큼씩 따시겠지.
쉬 오지도 않는 아들이 이번 주말에는 오겠지 하는 기다림으로
알알이 담긴 소쿠리를 냉장고 안에 채워 두시겠지.
고향에 가고 싶다, 오늘은.
2000. 5. 30. 환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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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카꽃이 필 무렵
1.
시골 다녀온 지 아흐레째.
어제도 아내와 가볍게 실랑이를 했다.
5월 30일에 시골 내려가겠다고 말을 꺼냈다가 지청구나 들었다.
"앵두 그까짓 것 잊어버려요. 당신은 당뇨병환자이기에 앵두, 감 등의 과일을 먹으면 안돼요.
시골에서 일해도 자동차 기름값도 안 나와요. 왕복 교통비만 12만 원이 더 드는데...
뭐 하러 시골에 내려가려고 그래요? 나는 시골에서 살면 두드러기 등이 생겨요.
공연히 일거리만 있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이어요.
가려거든 매실 딸 때나 갑시다. 나는 앵두주보다는 매실주가 훨씬 좋아요."
"매실 딸 때에는 한참 뒤에나..."라고 대꾸하다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내는 시골생활 부적응자인가?
뭐라고 대꾸하고 싶지도 않았다. 대꾸하다 보면 말싸움이 번져서 속이나 뒤집힐 게다.
오늘 오후에 아내는 또 말을 꺼냈다.
"다음 주 월요일에나 갑시다."
내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제발 대답 좀 해요"라는 말을 듣고는 내가 고개를 끄덕이었다.
다음 주 월요일이면 6월 3일이다.
앵두가 거의 다 땅바닥에 떨어졌을 게다. 잔챙이만 남고.
내가 고개를 끄덕거려서 승낙한 이상 번복하기는 틀렸고, 다음 주 월요일 오후 늦게나 시골집에 도착할 터.
은근히 화가 난다. 신발을 신고는 석촌호수로 나갔다. 화를 식히려고...
농촌생활(산촌, 어촌 등)에는 다 때가 있다.
특히나 식물과 관련한 일을 할 경우에는 다 그렇다.
식물마다 그 시기가 제각각이기 마련이다.
내 텃밭 안에는 아마도 80여 종의 식물(재배)이 들어 있다.
재배기술 부족과 관리 부재로 숱하게 죽였어도 이 정도는 남아 있을 게다.
한때에는 다 정성 들여서 풀 한 포기도 나오지 못하도록 작업했던 두둑이었다.
아쉽게도 손 뗀 지도 벌써 5년이 넘다 보니 지금은 그 밭은 도로 풀밭과 잡목밭이 되었다.
여러 해 걸려서 풀씨를 잡아냈는데 이제는 잡초 씨앗이 흙속에 잔뜩 남아 있어서...
풀씨는 흙속에 몇 해 동안 살아 있다. 생명이 긴 씨앗은 40년도 살아 있는 경우도 있다.
잡초의 씨를 없애는 방법은 농사를 짓는 게 가장 낫다.
오늘은 5월 29일.
물앵두가 최절기로 익었을 게다.
따지 않으면 금세 곪아서, 물러 처져서 땅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질 게다.
물앵두 :
5월 15일경부터 익기 시작. 5월 29일 최절정. 6월 3일이면 거의 다 진다.
내 밭에 열댓 그루가 있다. 40여 년 전부터 재배하고 있다.
앵두 :
나무줄기가 긴 꼬챙이처럼 길게 내뻗고, 앵두 알은 가지를 따라서 서너 개씩 매달린다.
물앵두보다 뒤늦게 익는다.
내 텃밭에 한 그루 있다.
맛이 없다. 재배하고 싶지 않다. 이런 품종도 있다는 차원에서 키운다.
산앵두(이스라지) :
5월 중순경에 꽃이 졌다. 아무래도 6월에서야 열매가 익어갈 듯.
내 텃밭에 있다. 꽃이나 보려고.
2.
우리 안에 갇힌 동물처럼 마음이 답답하여 아파트 발코니에 나가서 화분 80여 개를 들여다본다.
하루에도 숱하게.
아파트 유리창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 공기 소통의 부족으로 화분 속의 습기는 마르지 않고 축축하게 마련이다.
또 내가 지나치게 물을 자주 부어주는 탓도 있다.
베란다 한 구석에는 큰사위가 사 왔다는 고구마 박스 하나가 자리를 차지했다.
잔챙이 고구마에서 썩는 냄새가 은근히 나기에 나는 물바가지에 고구마를 조금 담아서 수돗가에서 씻었다.
흙물은 따로 모아 두었다가 화분에 조금씩 부어줄 예정.
고구마를 냄비 안에 넣고는 삶았다. 시간은 20분 정도. 설 익히면 고구마가 단단하게 쪄지고, 맛이 훨씬 낫다.
뜨거울 때에 먹으면 맛이 가장 낫다.
5개나 껍질 벗겨서 먹었다.
당뇨병환자가 이런 군것질을 욕심내서는 안되는데...
어제 송파구 잠실 올림픽로에 있는 내과병원에 들러서 혈당을 조사했다.
당화혈색소가 9.0에서 6.8로 많이 낮춰졌기에 여의사와 나는 빙그레 웃었다.
"운동 더 하세요"라는 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었다.
아내와 함께 올림픽공원으로 나가 3시간이 넘도록 걸었더니만 귀가할 때에는 무척이나 지쳤다.
올림픽 성화가 24시간 불타오르는 광장 건너편 화단에는 실유카가 꽃대를 잔뜩 올렸다.
날카로운 잎사귀들 가운데 막대기처럼 길게 솟구친 꽃대 하나. 꽃이 피지 않았다.
'서해안 내 시골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의 유카는 꽃대를 열댓 개 올렸는데 지금쯤 꽃을 피웠나도 모르겠네'라고 말하면서 고향집을 떠올렸다.
실유카보다 유카가 훨씬 크고 굵다. 그만큼 잎사귀 끝은 창날처럼 뾰족해서 찔리면 엄청나게 아플 터.
아파트 안에서 화초를 가꾸고, 주방에서 고구마를 씻어서 삶고, 바깥나들이에 나가면서도 식물에 관심을 두는 행위는 무척이나 그렇다.
시골로 내려가지 못해서 생기는 울화증을 달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게다.
내일(5월 30일) <ㅇㅇ문학>사무실에 들러서 월간지 6월호를 수령해야겠다.
이렇게 하면서 시간이나 보내야 할 듯...
유카
사진은 인터넷으로 검색.
용서해 주실 게다.
2019. 5. 29. 수요일.
첫댓글 과묵하시고 생각이 깊으신분으로 읽혀집니다
멋있습니다
건강관리 잘하셔서 오랫도록 기력 왕성하시길 바랍니다 그저 물 흐르듯한 온유함의 자기성찰로 후배들의 귀감이 돼 주신다면 더 없는 존경의맘 올리겠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활동 정지가 되셨네요. 흠..
그러하오니 글에 대한 문법오류를 지적했던 저의 장황한 댓글 부분은 지웠습니다.
국어 100점은 없다/학자분들 말씀. ㅎ^^
도깨비불 님
고맙습니다.
위 글 쓸 당시에는 한자로 많이 썼지요. 지금에서야 한자를 우리 소리대로 고치다 보니 '연로'를 '연노'로 잘못 썼군요.
글 쓰면서도 이상하다고 여겼는데...
덕분에 이를 고칩니다.
그러면서 또 고개를 갸우뚱 합니다.
'연로'의 순서를 바꿔서 '로연'으로 하면 이게 맞나요?
年老(연로) → 老年(로연)?
오래전 서울 강서구 국립국어원에서 몇 차례 단기교육을 받으면서....
우리나라 '표준국어정책'이 논리 부족하고, 또 특정기관 단체 간의 학설에 따라서 억지를 피운다고 느꼈지요.
@최윤환
ㄹ 이 단어의 첫머리 앞에 오면 두음법칙을 받아서
ㄴ 으로 합니다.
연로(o) = 연노(x)
노연(o) = 로연(x)
라레로루뢰르 = 나네노누뇌느
@섭이.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지적하자면 이렇게 끝도 없이 논쟁을 하게 된다는 취지로 댓글을 써 봤습니다.
삶방에서 나이든 이웃들이 정담을 나누는데 완벽한걸 바라는게 이상하고
좀 틀려도 괜찮고 그게 재미가 되고 그런거 아닐까 합
@도깨비불 도깨비불님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