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러일전쟁 전진기지 구축을 위해서
기존에 살던 농민들을 다른 동네로 쫓아내고
만든 대한민국 계획도시 1호가 진해 랍니다
이름도 熊川에서 바다를 제압한다는 뜻의 鎭海로
개명했습니다
거리의 중심도 욱일승천기를 상징하는
8거리로 조성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여기냐?
해군기지를 근방에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방후 그 기지 두군데는
해군작전사령부와 해군사관학교로 쓰입니다
기가 찬 천연요쇄입니다
여기로 들어오기 전에 가덕도와 거제도에
포 진지도 있었습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패했다면 또 대한민국의 역사가 달라졌겠지요
윗사진은 일제때(1914년경)
아래 사진은 어제 탑산에서 찍었습니다(2024년)
110년 정도 차이나나요?
비교해보시면 아직도 그 건물이 다수 남아있습니다
진해시도 웅천시로 복원해야 하지 않을까요?^^
첫댓글 웅천에서 진해로 바뀐 이유가 다 있었군요.
8거리는 그대로
그 위에 세워 진 건물도
더러는 남아있네요.
흔적과 번성을 동시에 느껴봅니다
저 팔거리에서 보면 한 길도 넓힌 길이 없어요
그럼에도 소도시치고는 상당히 넓은길입니다
110년전에 일본넘들이 상당히 도시계획을 잘한거지요 홍수가 와도 물범람하는 곳도 없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우리민족도 무서운 민족이지만 저것들 진짜 보통이 넘는것들이다 싶어요
유쾌한 휴일보내세요 ^^
거대 중국점령을 목표로
110년전에 이토록 치밀한 계획하에 전쟁을 시작한 나라였으니
그 사이에 끼어 지금껏 살아남은 우리도 참 대단한 나라임을 다시한번 느낍니다.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누릴 수있는 그곳에 꼭 한번 가보고싶네요
오시게 되면 연락주세요
꽃단장해서 가이드해드리겠습니다!!
문어 주제에 꽃단장해봤자지뭐~
이렇게 말씀하시면
옴메~~ 기죽어!!^^
세월따라 참 많이도 변합니다요.
소도시라서 그닥 변하지 않았어요
군인들이 바글바글 했는데
각함대로 나눠지고 해군작전사가 부산으로 가서
인구가 줄었어요^^
오 진해가 그렇군요.
러시아가 이겼다면 한반도는 러시아인들이 살고 한인들은 모두 중앙 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겠죠. 역사는 적에 의해 다행이 될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
진해사람도 아닌것이 아는체 했어요
여기는 특히 노후에 살기 좋은곳입니다^^
아 그럴 사연이 있군요. 잘 보았습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마을이든 마음이든
안 변하는건 없지요^^
오호 계획도시1호라니?
잘 몰랐던 진해에 대하여 오늘은 공부배웠네예
몸부림 쌤님 감사합니더어
저한테는 아주 소중한 정보/지식이군요.
제 고향은 충남 보령시 웅천읍.
웅천(熊川)은 '곰 熊' '내 천川'으로 이뤄진 합성어.
저는 고향을 사랑했기에 카페에서 닉네임 '곰내'로도 활동했지요.
곰이 있으면 산이 제법 높고, 산이 높으면 물이 흘러서 강물이 되겠지요.
진해가 과거에는 웅천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진해'로 바꿨군요.
아쉽군요.
저는 오래전 부하들과 함께 진해작전사령부로 출장 가서 업무 보았고, 일과가 끝난 뒤 진해 벚꽃축제도 보았지요.
님의 글에서 러일전쟁( 1904. 2. 8 ~ 1905. 9. 5.)
청일전쟁( 1894. 7. ~ 1895. 4.)
두 전쟁 모두 일본이 승리했고....
아쉽게도 그 당시 조선은 무엇을 했대요?
조선조 제26대 고종때로군요.
우리나라 국사공부를 하다가는 책을 내던지고 싶었지요.
정말로 찌질이....
지금은 어떨까요?
국토가 반토막이 되어...
애국가에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나오는데도 저는 이제껏 백두산에 한번도 가 본 적이 없지요.
위 진해의 옛 사진과 현대의 사진을 비교합니다.
아직도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군요
글과 사진 정말로 고맙습니다.
엄지 척! 합니다.
가보고 싶은 내고향 진해
애기때 해군 관사에서살았고 진해 성심 유치원 다녔대요
기억은 안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