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 항의, 스님들 안목 믿지 못하는 것
불교문화유산 보전 일차적 책임은 스님들”
“불교문화유산의 보전과 활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을 지키며 사는 스님들의 안목이다. 문화재청장 시절 사찰분위기 망치는 불사 청에서는 뭘 하냐는 항의 많았다. 항의는 스님들의 안목을 믿지 못하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불교문화유산 보전을 위한 승가의 안목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지적하고, 스님들의 안목을 키울 것을 주문했다.
유 전청장은 8월 31일 조계종 승가교육진흥위원회가 진행하는 한국불교중흥을 위한 8월 대토론회 ‘1700년 불교문화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주제발표에서 이같이 지적하고, “절집에 사는 스님들은 자신들의 일상 속에서 행하는 작은 행위 하나가 사실을 불교문화유산 보전과 활용의 일부분으로 나타난다는 주체의식과 주인의식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불교문화유산의 보전과 활용을 위해서는 △종교적 관점과 문화재적 관점 △역사적 관점과 현재적 관점 △유형유산과 무형유산 등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로 발제를 시작했다.
“나무 베었는지 무슨 꽃을 심었는지 모른다”
먼저 고려할 점인 종교적 관점과 문화재적 관점이 동시에 묶여져 있는 불교문화유산 보존 활용 문제를 사찰 내부의 문제는 드러내지 않고 문화재청 등 관리 기관 쪽만 탓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그는 “국보, 보물을 소장한 사찰에 국가적 차원에서 보수하고 절집 환경 개선을 위해 건물을 지어주기도 한다.”며 “그러나 공사 시행은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허가한다. 문화재청이 직접 시행하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했다.
이어 “절집에서 이루어지는 통상적 일상적 일은 전적으로 사찰에 맡겨져 있다. 나무를 베어버렸는지 무슨 꽃을 심었는지 일일이 알 수 없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다”며 “그런데 불교계 내부의 반성과 문제점은 부각되지 않고 대개 문화재 관리 쪽으로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역사적 관점과 현재적 관점의 공존에 대해서 발제를 이어갔다. 법당과 불상들은 문화유산인 동시에 종교시설이어서 현재 상황에 맞춰 바꾸어야 하는 일들이 많지만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발목 잡혀 있는 현실이 불편하고 비능률적이라는 불만에 대해 ‘안목 부재’를 비판했다.
“소유자의 재력과 안목 문화능력이 문제”
유 전 청장은 “내 절집을 왜 내 맘대로 하지 못하느냐는 것이고, 현대적 편의를 왜 이용할 수 없느냐는 것으로 심한 경우 어떤 절집은 10여 채의 건물 중 반이 불법건문”이라며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성을 잃지 말아 달라는 일정한 규제”라고 설명했다. 자기 땅이라도 맘대로 집을 짓지 못하는 것은 민간도 마찬가지며, “문제는 소유자의 재력과 안목, 그리고 그 시대 문화능력일 것”이라며 불교계의 문화재 안목 부재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유 전 청장은 불교문화유산의 보전과 활용에서 고려할 사항으로 유형유산과 무형유산을 균형된 시각의 중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문화유산은 유형과 무형이 있지만 대개 유형유산에 국한해서 문제를 논한다”며 “불교문화유산의 높은 정신적 인문적 가치를 어떻게 구현해야 할 것인가가 더 큰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날 유 전 청장은 불교문화유산 보전과 관련 △사찰건축과 중창불사의 문제 △자재와 재료 문제 △폐사지 복원 문제 △보호각과 산성비 문제 △시대양식 등으로 나눠 문제를 제기했다.
사찰 중창불사에 대해서 그는 우회적이지만 행정당국과 종단, 스님들의 반성을 촉구했다.
그는 “절집 자체를 어떤 모습으로 가꾸는가는 사찰을 지키는 승려문제로 중창불사 문제는 반성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가난하게 살아온 것이 한이라도 된 듯…”
유 전 청장은 “그동안 가난하게 살아온 것이 한이라도 된 듯, 화려하고 부티 내려는 중창불사는 우리 산사의 미학을 완전히 일그러트려 버렸다”고 비판했다.
1980년대 후반 대대적불사들이 일어나면서 불교를 새롭게 단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지만 중창불사의 방향을 설정하고 현대 사찰의 새로운 미학을 이끌어갈 스님이나 건축가가 없어 중흥의 기회가 사찰건축에 치명적인 별질과 상처를 입혔다고 그는 보았다.
포크레인을 동원해 삽시간에 형질을 바꾸고 이유 없이 넓은 절 마당이 생기고, 현대적 편의를 이유로 길을 넓게 닦고 주차장을 바짝 당겨 마련한 것은 산사의 미학을 일그러트려 놓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중창불사나 복원불사에서 사용되는 자재와 재료의 문제도 비판했다. 요즘 목조건축의 자재로 주로 사용하는 더글라스 서퍼 소나무가 우리 전통 목조건축의 질감을 주지 못하고, 단청은 페인트칠한 듯한 이질감을 준다는 것이다. 기와도 KS기와로 플라스틱 기와처럼 밋밋하고 석자재도 기계로 마감해 손맛을 느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천박한 개금 부처님 욕되게 하는 것”
특히 그는 개금문제의 심각성을 강도 있게 지적했다. 유 전 청장은 “불상 개금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개금 불상은 한결같이 번쩍번쩍한다. 번잡스러울 정도다. 재료문제도 있지만 번들거리는 개금에 스님들이 별로 거부감을 갑고 있지 않다는 점이 참 기이하다”고 비판하며 “천박한 도금은 부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임을 우리 모두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폐사지 복원에 대해서 유 전청장은 부여 정림사 복원은 찬성하면서도 경주 황룡사은 반대했다.
그는 “부여 정림사는 백제역사재현단지의 능사를 복원하느니 그 예산의 절반 정도면 가능한 정림사 복원이 옳았다고 생각한다”며 “복원한 정림사는 문화재관리인이 아닌 스님들이 상주하며 살아있는 사찰로 운영되야 마땅하다”고 했다.
하지만 황룡사의 복원은 상상복원과 복원할 문화능력의 부재를 이유로 반대했다.
유 전 청장은 “황룡사를 복원하면 위용이 대단할 것이다. 2만5천평 대지에 약 3천 500억원이 든다. 1년에 500억 씩 7년이면 가능해 예산 문제는 아니다”면서 ‘상상복원’이 가져올 문제점을 지적했다. 복원 능력에 대한 문화능력이 있는 지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황룡사 복원은 후손에 맡기자”
그는 “황룡사 복원은 종교하는 마음 나라를 구하는 마음으로 복원하는 문화창조의 자세가 이 시대에 없다. 복원한다면 예산을 감안해 수많은 재벌 건설회사들이 달려들 것이다. 그들은 문화재 복원 거룩한 신전이라는 정신보다 3천 500억원 짜리 건물 공사에 마음을 둘 것”이라며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종교, 문화재, 토목, 건축 등 관계분야에서 이 시대 문화역량을 모아 추진할 수 있지만 그 시점이 언제일지 모르겠다”고 했다. 황룡사 복원은 후손들이 복원할 수 있게 미루자고 했다.
보호각과 산성비 문제에서도 사찰에 상주하며 지켜보고 관리하는 스님들의 관심을 요구했다.
그는 “문화재 관리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의 하나가 산성비에 의한 석조문화재 손상”이라며 일부에서 제기하는 보호각 설치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견지했다.
“불상 등 상투적 조악한 매너리즘 답습”
그는 “무생물의 별리적 현상은 다 망가진 다음에야 그 징후가 나타난다. 언제가는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며 “그렇다고 석조문화재에 보호각을 세울 수는 없다”고 했다.
“불국사 석가탑에 보호각이 세워졌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고, 원각사 10층석탑을 투명 보호각에 가두어 놓은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드물다”며 “서산 마애불 보호각 철거가 석모문화재 보존에서 의례적으로 생각하는 보호각 건물이 보존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유 전 청장은 문화능력에 맞는 불교문화유산 창출을 주문했다. “지금의 법당 불사 석탑 석등 불화 등이 당대적 예술역량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상투적으로 조악한 매너리즘을 답습하고 있다.”며 “21세기 새로운 전통이 이 시대에 창출되어야 한다”고 했다.
성보박물관 양보다 질, 사람 재정 투자해야
유 전 청장은 불교문화유산 활용 문제에서는 △성보박물관의 과제 △템플스테이와 걷기 문화 △불교의 사회적 참여방식 등을 원론적 입장에서 제기했다. 이어 한국불교 사상의 뿌리를 밝히는 노력과 인문정신 발현에 불교계가 더욱 나서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그는 성보박물관을 불교계가 근래 이룬 하나의 성과라면서도 빈약한 전시물로 성보박물관의 질을 저하시키기 보다는 본사 중심 또는 성보가 많은 사찰 몇 곳에 집행해 운영할 것을 제안했다. 대부분 성보박물관이 관리인 수준의 사람이 맡아 전망이 회의적이라고도 했다. 양보다는 질이라는 것이다.
유 전 청장은 통도사와 직지사성보박물관을 높이 평가하면서 박물관 구성요소가 유물과 건물 사람 재정인 점을 상기시키면서 “건물과 유물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사람과 재정의 이해는 부족한 것 같다. 기획전을 하고 심포지엄을 열고 대중강연회를 갖고 연구활동ㅇㄹ 할 수 있도록 사람과 재정을 넉넉히 지원하라”고 주문했다.
‘남도 산사 순례’길 스님들이 엮어 달라
템플스테이와 걷기 문화를 불교문화유산 활용을 위한 기회로 보고 ‘남도의 산사순례’ 등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을 제안했다.
그는 “제주 올레길과 각 지방의 둘레길을 ‘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길’과 비교할 때 인문정신과 역사에 대한 동기부여가 적다”면서 “‘남도의 산사 순례’ 같은 프로그램으로 지리산 자락 이땅에 선종이 뿌리가 내리던 시절을 생각하며 남도의 봄을 들길 수 있는 길을 스님들의 길로 엮어 주면 나부터 따라가 보고 싶어진다”고 불교문화콘텐츠의 적극적 개발을 주문했다.
유 전 청장은 불교문화유산의 활용의 한 방법으로 국가적 현안인 독도문제 해결 ‘히든카드’로 독도에 암자를 지어 스님을 상주시키자고 제안했다. 불교문화유산 활용 방안으로 불교의 사회적 참여와 연관한 제안이다.
독도에 암자 지어 스님 상주 방안 검토
그는 “문화재청장 재직 시절인 2004년 시마네현이 독도를 일본 영토로 선언하는 일이 있었다. 현 차원의 일에 대통령이 나설 수도 외교장관이 나설 수도 울릉군수나 경북도지사가 대리해 대처할 일이 아니어서 ‘조용한 외교’ 방침을 유지했다”며 “그때 일본이 독도문제를 또 다시 들고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준비한 히든 카드가 독도에 암자를 지어 스님이 상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당시 지관 총무원장 스님도 동의했다”고 소개했다. 당시 독도에 지을 암자의 이름을 ‘동해암’이나 ‘무무암’으로 하자는 의견도 나누었다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불교 자체로 사회와 국가에 참여하며 불교의 위상과 역할을 높이는 것도 불교문화유산의 적극적 활용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유홍준 전 청장의 자신의 발제를 현대사회의 인문정신을 위해 ‘불교무형유산’의 연구에 힘써 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으로 마감했다.
시대문제 헤매는 중생에 답해줘야 불교문화 부흥
그는 “유형문화재인 법당과 탑파의 복원보다 절실한 요구는 인문학으로서의 불교를 대중적 언어로 말하는 것”이라며 “시대의 문제는 고전에 답이 들어있다. 불경과 같은 위대한 고전이 또 있을까. 답을 찾아 헤매는 중생들에게 스님들은 친절하면서도 진중한 답을 말해 줄 수 있어야 이 시대 불교문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한국불교 사상의 뿌리를 밝히는 노력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불교의 뿌리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발굴하고 정리하는 사업이 범불교적 차원에서 대대적 지속적 이루어져야 한다”며 “불교계는 달마 마조 임제 같은 스님들을 먼저 떠올리지만 우리 역대 교승의 사상과 실천 속에서 그 참을 구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전 청장은 원효, 의상, 의천, 지눌, 지증, 무염, 청허, 사명당, 진묵, 초의 스님 등등 일일이 언급하며 “불교는 먼 나라 이방인 말씀을 떠나 이 땅에서 이루어진 일과 언어에도 깊이 들어가 한국인의 마음속에 들어 앉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거대한 프로젝트 시행하듯 몇 십년 뒤에 결실을 볼 일을 조계종에서 발굴 정리하는 일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며 “인재를 키우고 불교 인문정신을 발굴하고 연구하고 대중을 교화하는 데 마음 써 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중앙종회의장 보선 스님, 교육원장 현응 스님, 기획실장 정만 스님, 재무부장 도문 스님, 문화부장 진명 스님, 특보단장 정념 스님, 특보 장적 스님 등 교역직 스님들이 다수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