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유일한 남자에게는 아주 소박한 소망이 하나 있단다.
그것은 순전히 그 남자의 꿈이고 난 엄청난 사건에 해당한다.
이 남자 왈,
"내가 뛸 때 말이다 마누라가 젙에서 자징거에다가 물병싣고
묵을 것 싣고 같이 뛰모 얼매나 좋노..."
이런 근사한 주문을 시도 때도 없이 한다.
결혼해서 지금껏 해온 주문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낚시와 등산을 같이 가자고 했고 오뉴월 뙤약볕에 테니스장엘 가자고 했으며
헬스장엘 가자고 했고 잔디밭에 나가자고 했지만
들어준 것이라고는 헬스장 가는 것 밖에 없는 마누라에게
이제는 달리기를 같이 하자고 한다.
'흐미, 혼자하믄 얼마나 좋을까.
방에서 뒤굴뒤굴 이것저것 뒤적거리는 마누라를 그냥 두면 안될꺼나...'
혈기왕성할 때에야 싹 무시하고 굳굳하게 제 갈 길을 가면 되려니 생각했으나
어느 때 구조조정 당할지 모르는 어깨 늘어진 남편이고 보니 요구를 무시할 수가 없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여지껏 처자식 땜에 산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 남자의 소박한 소망 하나 못 들어주랴 싶었다.
이제부터 夫唱婦隨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리라.
퍽이나 인심쓰는 척,
"그대가 원한다면 내 무엇을 망설이리요.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들어 주리다"
이렇게 거드름 피우며 허락을 하고 공원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네 발 달린 것이야 중심 잡을 일 없으니 정신만 바짝차리면 되더니
이것은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자전거에 몸을 맡겨라"
"생사고락을 같이 한다고 생각해라"
"팔을 쭈욱 뻗어라"
"워데 보노? 앞을 보라는데"
"다른 건 다 잘났더니 이기 뭐꼬?"
..........................
안장에 올라타는 것은 고사하고
페달 위에 서는 연습을 두 시간이나 했는데도 3초도 못 서있었다.
지나가는 꼬마들 아저씨 아줌마 할머니 할아버지...
더듬대는 꼴이 얼마나 우스운지 힐끔힐끔 쳐다보고 한 마디씩 한다.
"어려운 걸 배우시네요"
"중심만 잡으세요 중심"
'누가 중심 잡을 줄을 몰라서 못 잡나, 안 잡히니 걱정이지'
남이 보든말든 그래도 폼이라도 잡아보고 싶어 안장에 훌쩍 올라가 본들
한 바퀴도 제대로 돌릴 수가 없었다.
딱딱한 안장에 몇 번 올랐다 내렸다 했더니 엉덩이뼈만 아프고 넘어지기만 했다.
"차라리 책 한 권 읽고 레포트를 쓰면 안될꺼나?"
이런 주문 아닌 주문을 했더니
"씰데없는 소리말고 빨리 연습 안하나?"
콧소리 내서 팔 아프다고 꾀를 부리며 집으로 끌고 오는데
지금껏 잘 보이지도 않던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세발 자전거 타는 아이들, 손놓고 귀에 이어폰까지 꽂고 달리는 학생,
연인을 싣고 달리는 늠름한 청년, 아들과 경주하는 아빠.....
아름답고 부러운 모습들이다.
이 남자도 이런 모습을 꿈꾸고 있는 모양이다.
달리는 동안 격려도 해주고 가다가 쉴 자리가 보이면 먹을 것도 내놓고,
땀이 흐르면 수건을 꺼내 목덜미를 닦아주고,
돌아오는 길에서는 마누라를 뒤에 태우고 휘파람을 불면서 오고 싶은 게지...
이번 만큼은 그 꿈을 깨지 말아야 할텐데 정말 고민이 많다.
퇴근하면 공원으로 가자고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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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9월 첫 주의 일이다.
그 후 일 주일만에 학교 운동장을 돌 수 있었고
지금은 안양천변을 달릴 수 있다.
자전거 위에서 맞는 바람은 향기가 있다.
첫댓글 우와~ 그 기쁨!!! 축하드려요. 옛날 뚝방길에서 목숨걸고(?) 자전거 배운 기억이 새삼스럽네요.
살아있는 느낌, 그거 이제 동감하죠? 제가 다시 돌아오면 전국일주 합시다.
지는 고등핵고 다닐때 배웟는디 왜 그렄케 늦엇다냐 학생징 맥기고 자전거 빌리면 얼마나 재민는지 꿈에도 자정거 타는디 왜 브레끼는 안 듣는지 사람 받든지 낭떠러지에서 어쩔지 모르다가 진땀 흘리다 깨지요 하여튼 자정거 처음탈줄 알고나면 이세상이 다 내꺼 갇지요
자전차 왈! -- 오로지 앞으로 나가는 자 만이 쓸어지지 아니하느니--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같이 자전차 타고 귀가하는 모습....... 좋아 보이네요,할머님그런데 할아버지께서는 갱상도 할배인 모양이네요.
부러워라 난 언제 해결하나....... 현관안에 버티고 서 있는 자전거 걱정스럽다. 6,7년 전에 여의도공원에서 초보입니다. 소리리치며 달려 보았는데 아흐 지금은 안 되던데 ..... 나는 바퀴 달린 것이 무섭다.
성공 하셨네요. 축하 드려요. 둘이 타는 자전거도 있던데... 언제 같이 안양천변 달릴 수 있기를 바래 봅니다.
짝짝짝!!!.... 축하합니다.그러고보니 초등학교 4학년때 발이 끝까지 닿지도 않는 자전거를 손 놓고 탔었는데... 그후론 언제 자전거를 탔는지 기억도 없네요. 저도 향기로운 바람을 맞고 싶군요.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남들은 초등학생일 때부터 타는 자전거를 들국화님 말씀대로 할머니가 다 되어 타면서 이렇게 자랑을 늘어놓다니..... 어쨌든 무지허게 즐겁습니다.
와~~정말 축하 드립니다. 저도 무지하게 하고 싶은것이 자전거 타기였는데 ~~저도 한번 시도 해볼까요? 싸부님으로 모시고 어떻게 좀*^^*
남들 다 하는데 못하는 게 제게 두개가 있습니다. 수영과 자전거타기... 수영은 어릴 때 물에 빠진 경험으로 못배우고, 자전거는 고등학교 때 잠시 배우다가 그만뒀는데 친한 친구가 배우다가 앞니를 몽땅 잃는 것을 보고 무서워서...부러버라!!! 그냥 이렇게 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