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은 “반국가 세력” 검찰총장이었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3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사회보장전략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제공: 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은 언제나 상상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특이한 대통령입니다. 지난주에도 가장 뜨거운 정치 뉴스를 생산한 사람은 윤 대통령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지난 6월28일 자유총연맹 창립 기념식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정부를 ‘반국가 세력’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인 29일 개각에서 ‘김정은 정권 타도’를 공공연하게 주장해온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를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습니다.
두 사건은 긴밀히 연결돼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가치관과 정책 노선이 극우로 선회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윤 대통령을 ‘일베 대통령’이라고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심한 것일까요?
말과 생각, 인사까지…극우로 치닫는 윤 대통령© 제공: 한겨레
전임 정부 검찰총장과 반국가 세력
윤 대통령이 자유총연맹 행사에서 정확히 뭐라고 말했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능하면 전문을 한번 찾아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는 내용이 심각한 두 대목만 소개하겠습니다.
“조직적으로 지속적으로 허위 선동과 조작 그리고 가짜뉴스와 괴담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흔들고 위협하며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또 돈과 출세 때문에 이들과 한편이 되어 반국가적 작태를 일삼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하여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습니다. 북한이 다시 침략해 오면 유엔사와 그 전력이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것을 막기 위한 종전선언 합창이었으며, 우리를 침략하려는 적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는 허황된 가짜 평화 주장이었습니다.”
이번 발언이 ‘대형 사고’인 이유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를 통째로 반국가 세력이라고 지칭했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색깔론으로 민주당을 공격했지만,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 전체를 반국가 세력이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2021년 12월29일 경북도당 선대위 출범식 발언이 대표적입니다.
“좌익 혁명 이념 그리고 북한 주사 이론, 이런 거 배워서 민주화운동 대열에 ‘낑겨서’ 마치 민주화 투사인 것처럼, 지금까지 끼리끼리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온 집단들이 이번 문재인 정권 들어서서 국가와 국민을 약탈하고 있습니다.”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전에는 그래도 ‘민주화운동 대열에 낑겨서 살아온 좌익 세력’을 분리해서 비난했지만, 이번에는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 전체를 반국가 세력이라고 공격한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문 전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이었습니다.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가 반국가 세력이라면 윤 대통령 자신도 그 당시 반국가 세력의 주요 구성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윤 대통령의 반국가 세력 발언에 대해 국민의힘에서는 일단 주워 담으려는 반응이 먼저 나왔습니다.
하태경 의원은 지난 29일 아침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반국가 세력이라는 이 센 발언은 국가 안보에 대한 걱정이지, 지난 정부를 간첩 세력이라고 보는 건 아니라는 걸 명확히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국민의힘 고위 당직자도 기자들과 한 비공개 간담회에서 “어제 대통령의 반국가 세력 발언은 자유총연맹이란 단체가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자고 만든 단체니까, 청중을 고려한 발언이었다고 본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제2연평해전 기념식에 참가한 뒤 기자들이 윤 대통령의 발언에 관해 묻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통령 발언은 정확히 팩트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민주당의 반발을 이해할 수 없다. 종잇조각에 불과한 종전선언 하나로 대한민국의 평화가 온다고 외치면 그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기자들이 ‘야당을 반국가 세력이라고 한 것은 협치와 거리가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김 대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을 적의 손아귀에 놀아나게 하는 그런 세력이 있다면, 그것은 협치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기자들이 다시 ‘반국가 세력이 제1야당이냐’고 묻자, 그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29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승전 21주년 기념행사에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유족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한겨레
박대출 정책위의장도 윤 대통령을 옹호했습니다.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종전선언 노래 부르고 다닌 분들, 이분들을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충신이라고 할까요? 애국자라고 할까요?”라고 빈정댔습니다.
대통령실의 반응은 29일 오후 늦게야 나왔습니다. 기자들이 반국가 세력 발언의 배경에 대한 추가 입장을 물었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경제 안보가 제일 중요하다. 우리 경제에 해가 되면 반경제 세력이다. 안보에 해가 되면 반안보 세력이다. 둘 다면 반국가 세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정부나 특정 세력을 겨냥한 건 아니고, 일반적인 말씀을 하셨다고 생각한다. 국가 이익에 반하는 안보·경제적인 주장이나 세력이 있는 건 분명하지 않나. 또 하나 생각해 볼 대목은 대통령의 메시지라는 게 티피오(TPO·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따라 뉘앙스는 변하기 마련이다. 기자회견 할 때, 국회 연설할 때, 미국 의회 연설할 때, 소르본대 강연할 때, 베트남 학생 만날 때 국정 메시지는 일관되지만, 뉘앙스는 변화를 주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해해달라. 어제는 1954년 직후 반안보 세력으로부터 나라를 구하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만든 조직의 행사였기 때문에, 티피오를 감안해서 듣는 것도 괜찮겠다.”
여러분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저는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대통령의 실수를 주워 담으려다 보니 논리가 배배 꼬이는 것 같습니다. 그냥 깔끔하게 “표현이 지나쳤다”고 사과하면 될 일 아닌가요? 비겁하기 그지없습니다.
김영호, 공공연히 흡수통일 주장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이 반국가 세력이라고 한 말은 윤 대통령의 진심이라고 봐야 합니다. 북한과 통일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인식은 놀라울 정도로 극우적이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은 문제의 발언 다음날인 29일 개각에서 미리 알려진 대로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를 지명했습니다.
김 교수는 유튜브를 통해 공공연하게 김정은 정권 타도와 사실상 흡수통일을 주장해온 극우 뉴라이트 성향 인사입니다. 이런 사람을 통일부 장관에 앉히려는 것은 앞으로 남북 대화를 포기하고 북한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신임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6월29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에 도착해 장관 후보자가 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한겨레
윤 대통령은 지난 3월28일 국무회의에서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통일부는 앞으로 북한 퍼주기는 중단하고, 북한이 핵 개발을 추진하는 상황에서는 단돈 1원도 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하라.”
“북한의 인권, 정치, 경제, 사회적 실상 등을 다양한 루트로 조사해서 국내외에 알리는 것이 안보와 통일의 핵심적 로드맵이다.”
‘단돈 1원’이라는 표현 때문에 파문이 일자, 통일부가 바로 그날 오후 “인도적 지원은 일관되게 추진한다는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진화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앞서 1월27일 통일부 업무보고 때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만약에 북한이 지금 우리 남쪽보다 더 잘산다면 그쪽 중심으로 돼야 될 거고, 남쪽이 훨씬 잘산다면 남쪽의 체제와 시스템 중심으로 통일이 돼야 되는 게 상식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주변국이나 전세계나 우리 국민들이, 또 북한 주민들도 가능한 한 실상을 정확하게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들어도 흡수통일을 의미하는 발언이었습니다. 이때도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1월30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흡수통일은 절대로 아니다”라고 극구 해명하는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유튜브로 배우는 정치와 세상
윤 대통령의 인식은 왜 점점 더 태극기 부대를 닮아가는 것일까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째, 철학의 빈곤입니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이념 성향이 별로 뚜렷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뒤늦게 통일·외교·안보에 대해 편향된 지식을 습득하면서 극우 성향으로 급속히 바뀌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이게 다수설입니다.
둘째, 극우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보는 것 같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발언 내용과 논리가 극우 유튜버들의 그것과 너무나 닮았다는 것이 근거입니다.
어쨌든 윤 대통령의 이러한 극우 성향과 인식은 앞으로 두고두고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며 커다란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최근 윤석열 정부에 몸담은 인사들의 터무니없는 극우 발언이 잇따르는 것도 그런 조짐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보상은 부정의’라고 주장한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 ‘문재인 전 대통령은 간첩’이라고 한 박인환 경찰제도발전위원장, ‘군인 마스크를 벗게 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군인을 (코로나19) 생체실험 대상으로 사용하라고 지시한 셈’이라고 한 김채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내정자 등이 당당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들을 왜 발탁하고 교체하지 않는 것일까요? 혹시 윤 대통령 자신도 이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그건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