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솔, 합가? 분가?
흩어진 식구나 친족이 한데 모여 사는 걸 합가 또는 합솔이라 한다. 흔히는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가 따로 살다가 합치는 걸 말하는데, 편리한 점도 불편한 점도 있게 마련이다. 예전엔 자식 키우는 게 노후보험 드는 효과가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시대는 변해 현재는 어림도 없는 세태가 되었다. 남의 집에서 성장해 들어온 며느리가 그걸 달가워할 리가 있겠는가. 남의 집 딸인 며느리, 남의 집 아들인 사위는 함께 살아도 어딘가 벽이 있게 마련이다. 각자 경제력이 있는 바에야 핏줄이 다른 사람의 영향 아래 들어가길 좋아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성세대들은 옛적에 대한 향수가 있게 마련이다.
내 장모님은 며느리를 잘 맞아 함께 살 생각을 하셨던 모양이었다. 어느 교장선생님 딸을 며느리로 맞았는데, 공손하고 예의 바르긴 했지만 무얼 창조적으로 풀어나가질 못했다. 그래서 위자료를 주고 물러나게 했다. 두 번째는 茶道 모임에 다니다가 젊은 처자와 눈이 맞아 아예 집으로 맞아들였다. 집에 茶道室을 만들어 함께 다도를 즐기다가 며느리로 삼았지만 살림을 할 줄 몰랐다. 그래서 이것도 내보내고 말았다. 세 번째는 蘭을 가꾸는 여성이었는데,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아 내보냈다. 네 번째는 장인어른과 의대 동창의 딸인데 이를테면 돌싱이었다. 첫 결혼엔 실패했지만 여러 인생경험이 있어서였던지 얼마간은 며느리로서 시어머니를 잘 모시고 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장모님은 아들과 며느리를 남겨두고 내 집 옆으로 이사와 손자를 데리고 둘이 사셨다.
폭넓은 사교생활을 하시면서 손주며느리 감을 찾으시던데, 아마도 손주며느리와 함께 살고자 하셨던 모양이었다. 허나 간택하여 손주에게 보이면 번번이 싫다는 거였다. 그러다가 손주가 직접 간택한 여성과 결혼하게 되었는데, 그건 함께 군대생활 한 병사의 동생이었다. 결국 인연은 따로 있었던 거다.
신혼생활 중에 장모님은 당신이 입던 옷을 손주며느리에게 주면서 좀 줄여서 입으라고 했던 모양이었다. 그건 명품이었을 테니 꽤 비싼 옷이었을 거다. 그러나 그때마다 손주며느리는 자기 남편에게 불평을 늘어놨던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왜 그런 걸 자꾸 자기에게 입으라고 하시느냐고. 결국 장모님은 손주에게 살림을 따로 내주고 노블 카운티로 들어가셔서 거기서 생을 마치셨다.
나는 교통이 좋은 잠실에 집을 마련했다. 롯데월드가 신축 중이었으므로 중심상권임을 예상하고 여차하면 사무실도 낼 생각으로 꽤 큰 집을 마련했다. 사무실이 아니면 싱글직장인들을 들여 용돈을 조달할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싱가포르에 나가있던 큰딸 부부와 손주 둘이 파견근무를 마치고 들어오더니 내 집으로 들어와 산다는 거였다. 그래서 받아들여 함께 살고 있다.
나는 인간이 카인의 후예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시샘, 시기, 질투가 본성에 깔려있다고 본다. 작은딸이 옆에 살고 있는데, 하루는 이렇게 말하더라. “아빠, 아빠네 집은 세가 잘 나가는 위치와 구조인데, 세를 놓고 쾌적한 곳으로 이사하시는 게 좋지 않나요?” 그것도 맞는 말이다. 허나 그러면 제 언니는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유치원생이었던 손주가 고삼이 되도록 함께 살고 있지만, 큰딸은 작은딸에게 어쩐지 주눅이 들어있는 것 같다.
큰딸은 맞벌이다. 그래서 아침부터 바삐 움직인다. 내가 밥상 다 차려놓으면 밥만 퍼들고 대든다. 아내는 그걸 좋아하는 눈치다. 설거지? 아내가 해야겠지만 안쓰러워서 내가 다 한다. 딸네는 토요일이면 차 몰고 휑~ 허니 교외로 나갔다 돌아온다. 물론 어름물을 챙기고 취사도구를 챙기고 주부식을 챙기느라, 돌아와서는 정리하느라 부산하다. 그래도 젊었을 때 즐겁게 살라고 응원조차 한다. 이런 땐 우리 두 부부 조용히 앉아 나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애들 때문에 부산하고 귀찮긴 하지만, 그런 모습도 안 보면 우린 둘이 무얼 해?”
함께 사는 딸네 때문에 외로움도 달래고 즐거울 일도 있지만 그들의 감정에 휘둘리는 게 싫기도 하다. 사실 이젠 좋고 나쁜 곡선 없이 평안한 생활이고 싶은데 그들의 역동을 바라보면서 함께 웃고 함께 서운해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내가 외출했다 돌아오면 때론 이런 이야기도 한다. “미쳤다고 손주들을 봐줘?, 미쳤다고 자식들과 같이 살아?” 그러면 나는 그런다. “그건 정답이 없는 거야, 아들이 됐든 딸이 됐든 각자 상황이 다른 거니까.”
삶의 방 선남선녀들이시여! 편하신 대로, 최고 편하신 대로 임하시라~
첫댓글 이런 저런 말씀하시지만 같이 사시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단란함이 느껴져서 좋습니다.
선배님 즐거운 저녁시간 되세요...
좋아한다기보다 그렇게 되데요.
싱가폴 갈때 잠실 장미아파트를 세 놓고 갔는데
귀국해서 그리 들어가면 되련만 그냥 쉽게 내집에 쳐들어오고
그집에선 세 빼먹고, 그렇게 되더니 굳어졌어요.
석촌님 말씀이 참으로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모두 다 본인의 생각대로 옳은 방향으로 살다보면 이미 알찬 삶 완성된 삶을 살 수 있을 듯 보이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
네에 형편대로 하는거죠.
손자들 삼형제 초등학생 일때
너무 힘들어 하는 며느리 조금 풀어 주자며
아들네 다섯식구 우리집으로 들어와서 두해조금 넘게 살아 봤습니다~~
아이들은 좋다고 하는데 제 아내가 힘들었지요~~~ ㅎ
여자들이 사실 어려워요.
저는 딸이니까 좀 편한거 같고요.
저희 때까지 결혼 후에도 시부모님 모시고
사는 것이 이상치 않았지만, 그래서인지
우리 세대인 부모입장에서는 대체적으로
자기 딸이 시집생활하는 것을 절대 찬성하지
않지요..
그런데 며느리를 어머님이 결정해주시고,
헤어지게 했다 하는 것 또한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맞아요. 남의 부모를 왜 모시느냐는 생각인거죠.
남성들 전성시대가 갔어요.
저의 장모님은 좀 심하셨어요.
아들에게는 꼼짝 못했고요.
남들은 이해 못할겁니다.
돈으로 사람을 조종하셨다고 할까요?
식솔(食率 집안에 딸린 식구), 가솔(家率 집안에 딸린 식구)이란 단어는 들어보았지만
합솔(合率 흩어져 살던 집안 식구나 친척이 한집에서 같이 삶)은 처음 들어보는 단어입니다.
한 혈육이 시종일관 오붓하게 살고있으니 그런건 차안에 부재한거지요.
남솔이란 단어도 있습니다.
남솔(濫率):
고을의 수령이 부임할 때 제한된 수 이상으로 가족을 거느림.
이순신 장군께서 부임지에 식솔들을 많이 데려와서 남솔죄를 범했다고 구설수에 오르신적도 있었습니다.
@자하 당시엔 남솔도 있고 濫費도 있었죠.
부임지에 갈때 官妓를 많이 데려가지 말라는 지시도 있었고요.
자하님은 역사교사였나요?~~ㅎ
@석촌 아뇨~
그냥
무지렁한
아낙입니다^^
@자하 그런가요?
그럼 요즘 무지렁한 나하고 맞네요 뭐.ㅎ
그런데 무지렁이라면 소설 금병매에 나오는 무대와 무송이 떠오르는데
여성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죠.
세상사 다 순리대로 살아가는게 맞다
생각 합니다.손주 돌봐야 할 상황이면
그래야하고 자식과 같이 살아야 하면
살아야 하고 틀리고 맞고는
형편껏 정도껏 살아야 하겠죠.
제남편은 아들들 결혼하면 6개월이나
1년쯤 같이 살다가 살림을 내 주었으면
하더군요.같이 살면서 시부모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시댁풍습이 어떤지.
며느리들은 성격이 어떤지 알고
정 도 들고 하고싶다는걸
제가 반대 했어요.
잠깐 같이 살다가 더 어긋나면
어떡할거냐구요.
그리고 저도 이제는 편히 살고 싶구요.
시부모님 혼자 사시던 시숙님 모두
저세상으로 보내드리고 군대 보낸
기간 외에 꼭 붙어 있던 아들 둘 보내니
지금은 다른세상 같이 좋습니다~ㅎ
저도 지이나여사 생각과 같아요.
남의 핏줄 교육시키려 하면 안돼요.
스스로 배우는건 좋지만요.
요즘 젊은이들은 달라도 너무 많이 달라요.
그러면 지금은 두 내외가 밀월중이라는 얘기죠?
다음에 만나면 자랑좀 해요.
꽁아는
30여년
시부모님 밑에서
飼育당하며
복종하면서
살았었으나
꽁 태생이
줏대가 강하여
날카로움을
뭉떵하게 갈아
삭히느라
꽁몸뚱
깡다구
뼈다구
뿐뿐뿐
살 붙을 새가 없었었었던..
맏며느리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끝까지 마치고 나니
꽁 살덩이
뭉떵~멍텅~ 붙더이다
잘 참아냈지 뭘.
명문가에 시집가면 그리 된다네요.
배우 문희도 장기영 댁에 시집가서 외출도 못했다던가?
ㅎㅎ
꽁아님의 자유투사 낭만여왕
기질이 그랬다구요?
살 붙을새가 없었다니~
반듯한 글씨도~~?
애쓰셨습니다
지금부터는 맘껏 잘 살아봐요~^^♡
요즘 혼자 있어 보니 세상 편하고 또 편한걸 괜히 아들 나간다고 울며불며 그 애를 쓰다니 원 미쳤지 ㅎㅎ 학교 다닌다고 손주도 안오고 나혼자 드나드니 천국입니다 두렵네요 언제 이 평화를 반환하라 할까봐요
이젠 편안하게 지내고싶지만
뗄레야 뗄수도 없고
붙들어맬래야 붙들어맬수도 없고~
그런데 궁하면 하느님 찾듯 찾아오니, 인생이 그런거지요.
자식이 애물단지라고
같이 살다 보면 뭐든 해주고 싶어 나서게 되지만,
그럼 내 몸이 고단해지고 힘들어질 것이 뻔하거든요.
그리고 분명히 부딪치는 것도 생기겠죠.
아이들도 제 살림이 아니면 돕기는 하겠지만 방관하게 되고
그럼 또 부모는 서운하고. 늙은 부모는 힘이 빠지고.
집집마다 다 형편이 다르니 정답은 없지만,
자녀가 성인이 되면 분가 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아요
맞아요, 집집마다 사정이야 다 다르겠지만
저마다 애끓이면서 사는거 같아요.
그런데 요즘엔 결혼도 마다하고 출산도 마다한다니, 그러면 또 무슨 의미?
늘 삶을 관조하시듯 석촌님은
별일 없으실듯 했는데
보통사람들 처럼
자녀들과의 희노애락은
다른 색깔일 뿐 다 거치셨네요
내리사랑~
필요하다면 내어주고 살아야지요
우리는 먼저 떠나가니
뒤에 남겨져 살 자식들 뿌리는
키워주고 가야하니~^^
맞아요, 그게 정답입니다.
하지만 자식이 홀로 설만하면 떼어버리기도 해야지요.
그래야 독립심 창의력도 생기니까요.
한계 없는 사랑이나 관심도 문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