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평생 고마워하는 사람들
수냐/ 이선자
사람이 받은 축복 중에 만남의 복이 제일 크다고 한다.
부모와 자식과 형제의 인연을 천 륜 이라고 한다면,
이웃과의 만남, 친구와의 만남, 동료와의 만남도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칠순을 넘어서고 보니, 자주 옛날 동료들 생각이 난다.
1970년 9월, 처음 독일에 와서 언어가 서툰 나를 붙들고 단어 하나라도
가르쳐 줄려고 사전을 찾아가며 또박또박 발음하며 애쓰던 ’ 에르나 할머니’는
그당시에 60대였고, 수간호사로서 3년이란 긴 세월 동안 어머니 같이 믿고
의지하던 분이라 나의 처음 외국생활이 덜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또 음악을 사랑하여 일주일에 꼭 2 번씩 필하모니 콘서트(concert)나 오페라 공연에
나를 데리고 갔다.
어떤때는 다음날 근무를 핑계 대며 가기 싫다고 하면,
당신이 벌써 내 아침근무를 오후 근무로 바꿔놓았다고 해서 어이가 없는 때도 있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결혼한다고 베를린에서 서독으로 떠나올 때,
“너의 엄마가 여기 안 계시니 내가 대신 네가 당장 필요한 혼수를 해 줄게. “라며
이불과 식탁보(6인 용, 8인 용, 12인 용) 타월 12장, 6인용 포크와 나이프, 숟가락 등,
이곳 독일 전통대로 신부가 장만해야 할 필요한 물품들을 결혼식 선물로 주셨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한 지 올해 들어 햇수로 48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때 에르나 할머니한테 받은 이불보도 식탁보도 가끔 손님이 올 때만 쓰고,
아끼기 때문에 아직도 새것 같이 깨끗하다.
1973년 12월에 나는 베를린을 떠나 왔고, 그 후 한 번도 재회하지 못한 채
1980년에 에르나 할머니는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부고 소식도 친구인 카렌이 편지로 알려줘서 늦게 알았다.
유언에 따라 유골은 화장해서 이름 모를 나무 밑에 뿌렸다고 했다.
우리가 서로 전화로 마지막 안부를 주고받은 때가 79년 12월 말이었다.
송구영신 잘하시고 우리 집에 꼭 한 번 오시라는 나의 간청에,
걸음이 부자연스러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니 친구인 '카렌’과 함께와도
좋으냐는 물음에 “그럼요! 우리 집에는 객실도 있으니 같이 오세요. “라고..
하늘이 파랗게 맑은 날엔 하늘을 보며 에르나 할머니를 생각하고,
오늘처럼 비가 소록소록 내리는 날도, 그 옛날 내게 많은 사랑과 도움을 준
고마웠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수냐의 뜨락에 피는 꽃들입니다.
6월이 오니 온갖 꽃들과 특히 장미꽃이 제철을 만난듯 합니다.
올 해의 봄이 늦어서 작약도 늦게 피었는데,그만 엊그제 내린 폭우로 낙화해 버렸네요.
작약과 백장미는 뒷마당에 있는 꽃들입니다.
이 장미나무도 폭우로 많은 피해가 있었습니다.
울 가에 재스민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후에 보니 재스민이 만개하여 향내가 진동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저의 집 정원의 꽃이고요,
아래서 부터는 산행길에서 만난 들양귀비꽃입니다.
어찌나 색깔이 짙은지 발길을 멈추게 하더군요.
첫댓글 낯선 이국 땅에서 정착하기 까지
엄마를 대신할 만한 분의 도움을 받으셨군요.
재스민 향기가 뜨락에 가득하고
온갖 빛깔 장미꽃이 만발하네
수줍은 꽃들도 앞다투어 피어나니
낙원이 이 보다 더 아름다울손가
긴세월동안 어머니 같이 대해주고 또 믿고 의지한분 당시를 생각하면
평생 잊지못할 고마운 분입니다.
정원의 꽃들도 아름답고 들 양귀비 도 붉게 타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