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 박민규 '갑을 고시원 체류기' 현대사회의 그늘을 말하다
민병식
박민규(1968 ~ ) 작가는 경남 울산 출생으로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였고 2003년 소설집 ‘지구영웅전설’로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하였고, 같은 해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펜클럽’으로 제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그 외 작품으로는 ‘카스테라’, ‘핑퐁’, ‘누런 강 배 한 척’, ‘아침의 문’ 등이 있으며 신동엽창작상, 제이효석문학상, 황순원 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이 있다.
작품은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나’가 십여 년 전 자신이 머물렀던 학교 근처 고시원 공간을 회고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1991년 봄, 삼촌의 과실로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를 맞아 집은 사라지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부모님은 시골로, 형은 막노동판으로, 삼류대학생인인 ‘나’는 친구 집을 전전하다가 형에게 돈을 얻어 월 9만원에 식사까지 제공하는 학교 근처 ‘갑을 고시원’의 가장 싼 값의 방을 얻는다.
첫날 밤 잠이 오지 않던 ‘나’는 워크맨(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을 찾아 이어폰이 없어서 최대한 소리를 낮춰서,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최저 볼륨으로 음악을 듣는데 옆 방 남자의 분노에 찬 항의를 듣는다. 고시원은 얇은 베니어 판으로 나뉜 칸 칸마다 사람들이 들어차 있다. 볼펜 소리와 코를 훌쩍이는 소리도 생생히 들린다. 결국 그 속에서 ‘나’는 발꿈치를 들고 걷고 코는 조용히 눌러서 짰으며 소리 없이 가스를 배출하였으며 상체와 하체를 동시에 움직일 수 없기에 움직임 자체가 없어졌고 다리를 뻗을 수 없으니 늘 어딘가가 뭉쳐 있는 느낌이 들었으며 나무처럼 딱딱해진 몸은 오래된 붙박이 가구처럼 느껴졌다.
고시원 생활을 통해 ‘나’는 인간은 혼자이기도 하고 세상은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동시에 갑자기 어른이 된 기분에 젖는다. 고시 공부를 하는 옆방 ’김 검사‘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귀를 참아가며 지내야 하는 나의 노력은 슬프면서도 우습다. 그것은 삶의 비애가 드리워진 웃음이다. 2년 6개월의 고시원 생활 이후 나는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한다. 운이 좋아서 또 간신히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를 이룬 나는 작은 임대아파트에 들어가면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생각에 운다. 그리고 이 거대한 밀실 속에서 혹시 실패를 겪거나 쓰러지더라도 또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그 모두가 돌아와 잠들 수 있도록 그 특이한 이름의 고시원이 아직도 그곳에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고시원은 1980년대에 생겨나기 시작해서 돈 없는 고시 준비생들이 싼 가격으로 공부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고시텔로 진화를 이루어 가난한 청년은 물론, 노동자, 소외 노인 등 사회 적 취약계층이 살고있는 주거 형태이다. 작품에 나오는 갑을 고시원도 진정한 고시생은 한 명 밖에 되지 않는다.
갑을 고시원은 작품의 시대뿐만 아니라 현재의 경제적 약자들의 고립과 비애를 압축한 상징적 공간이다. 소설은 1990년대부터 시작하여 IMF 시기를 통과하고 이제 겨우 사회에 안착한 힘겨운 한 청춘의 삶을 노래한다. 체류기란 다른 나라에서 일정기간 동안 머물러 있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적은 기록한 것을 말한다. 고시원 체류기란 그만큼 대한민국의 주류가 아닌 소외 계층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체 경제적 위기와 이로 인한 사회적 약자들의 빈곤은 일시적인 것이 아닌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현재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고시원에서 살고 싶어서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업 실패, 실직, 원하지 않는 범죄(사기)의 희생,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중산층의 붕괴는 가속화 된다. 국제통화기금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난 1997년의 국가 부도 사태를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그 때 경제 우등생이었던 한국의 신화는 무너지고 한 순간에 빚더미 삼류국가로 전락했었던 시절, 수많은 가장 들이 직장을 잃고 생활고에 시달린 사람 들이 목숨을 끊는 사례가 빈번했었다. 지금은 어떤가. 고시원 쪽 방에도 몸을 누일 수 있는 쪽 방도 없는 사람들이 많다. 심심치 않게 뉴스 기사로 떠오르는 가족의 자살, 아무런 잘못도 없이 부모의 선택에 의해 목숨을 잃은 아이들, 오로지 돈이 그사람의 신분을 좌우하는 물질만능주의의 세상에서 우리가 필요한 곳이 어디이고 실천해야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각자가 생각해야한다. 함께사는 세상을 외치며 말만 번드레하게 하는 겉으로 보여지는 포장이 아닌 말없이 행동하는 양심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