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년 동안 반려견 찡이와 매 선거 때마다 함께 투표장으로 갔다. 신원확인 후 찡이를 번쩍 안고 기표소로 들어갈 때면 매번 뒤통수에서 참관인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어, 어, 저기, 개는, 개는...끄응.”
개와 함께 기표소에 들어가는 게 못마땅한데 그렇다고 딱히 막을 근거도 없으니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신음소리를 낼밖에.
그렇게 당당하게 기표소에 들어갔지만 정작 투표용지 앞에서 늘 망설였다. 지금까지 동물복지에 관한 공약을 낸 후보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반려인으로 유기동물과 함께 청와대로 입성하겠다는 혁명적인 후보가 등장했다. 문재인 후보는 직접 인터넷으로 사료와 물품을 구입하는 반려인이다.
유기묘 출신인 고양이 찡찡이가 쥐를 잡아온다는 얘기를 들려주는 대통령 후보에 반려인들은 격하게 공감했다.
“우리 집 고양이는 살아있는 쥐도 잡아와 집안을 초토화시켜요.” 라는 수다를 함께 떨 수 있는 대통령 후보를 만났으니 이거야말로 신천지다.
반려인들은 문 후보 반려동물(문 후보가 아니고!)의 신상을 털기 시작했다. 내 일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문 후보의 고양이 찡찡이는 최초로 신상 털린 고양이가 됐고, 상대적으로 덜 노출된 마루와 쯔쯔 등의 정보를 풀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덕분에 찡찡이는 올해 반려인이 모이는 송년회에서 최고로 흥하는 소재였다.
내가 아는 많은 반려인은 동물보호법 강화를 공약한 문 후보를 지지했다. 선거 때의 공약이 공약(空約)이 될 수 있음을 알지만 최초로 동물복지문제에 관심을 보인 것만도 고마웠다.
이런 흐름을 읽었을까. 선거 막바지에 반갑게도 박근혜 후보 캠프도 동물보호단체가 보낸 질의서에 답변을 냈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띠었다.
‘드디어 우리가 무서운가봐. 만세!’
반려인과 동물보호단체가 정치인들에게 위협적인 유권자 집단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다.
외국처럼 대통령의 반려동물인 퍼스트도그, 퍼스트캣의 일상이 미디어의 관심이 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정치인들 눈에 투명인간으로 보였을 동물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 존재증명이 된 것 같아 기뻤다.
대선이 겹친 송년회가 늘 그렇듯 ‘미리투표’가 횡행했다. 반려인이 모인 자리는 문 후보 몰표라 재미없었다.
대전의 젊은 번역가들과의 자리도 전부 문 후보 지지자들이어서 이번 선거는 세대 간 투표대결임을 실감했다.
외국서 부재자 투표를 마친 친구들은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인 나라는 창피하다고 했다.
그런데 가족모임에서 이 흐름이 깨졌다. 강남에 사는 언니와 형부는 부자증세를 걱정해 박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자신의 이해관계와 맞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찡이를 생각해서 언니가 그러면 안 되지.’ 라며 설득하려는 찰나 술기운으로 순발력이 떨어진 나를 제치고 엄마가 나섰다.
“평생 대우만 받고 살아온 사람이 서민을 어찌 알아.” 엄마의 일갈에 착한 큰딸내외는 문 후보에게 투표하겠다고 엄마와 약속했다.
누구나 자신의 이해관계와 맞는 후보에게 투표한다. 그런데 누구는 투표권 없는 동물의 이해관계를 대신해 투표한다.
안락사 된 유기견을 대신해서 한 표, 길에서 죽어간 길고양이를 대신해서 한 표, 구제역 때 생매장된 가축을 대신해서 한 표!
처음으로 동물들을 대신해서 투표할 수 있었던 2012년의 대선이 오래 기억될 것 같다.
------------------------------------------ 이번 주의 한겨레 칼럼입니다. 원문은 이곳에...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66588.html
마감일에 맞춰 월요일에 본 원고를 넘겼고 대선 관련 내용이라 수요일 개표 결과를 보고 수정 원고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틀 동안 어떻게 수정을 할까 즐겁게 고민했습니다. 주변의 분위기로도, 이런저런 정보를 통해서도 문재인 후보의 선승이 점쳐졌으니까요.
첫 반려인 대통령의 당선을 멋지게 축하해야지, 그랬는데... 그냥 마지막 문장 하나 고쳐서 송고했습니다.
이제는 뒤늦게 나온 새누리당의 동물복지공약이 어떻게 지켜지는지 지켜볼 일이 남았네요.
저도 꽤 오래 멘붕상태였는데 이제 추스려야지요. 12시쯤 약속이 있어서 일찍 투표한다는 언니 따라 간 투표장 풍경입니다.
이것도 한 10분 정도 기다려서 겨우 기표소 앞으로 간 것이었습니다.
이 정도의 투표율이면 우린 정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으니 받아들여야죠.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은 그리 쉽게 오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렇죠, 그렇게 좋은 세상이 쉽게 오지 않겠죠. 다만 멀어지지 않기만을 바랄뿐.
엄마와 함께 투표장으로 가던 오후 5시 저희 동네 골목의 모습입니다. 지팡이에 의지해 할머니가 두 분이나 앞서 가시네요. 이분들은 이분들대로 지키고 싶은 자신들의 시절이 있으신 거겠죠.
아쉽지만 냥품달(고양이를 품은 달(moon)) 멍품달(강아지를 품은 달(moon)) 님을 보냅니다. 처음으로 동물들을 위해 투표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__)
청와대에서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대통령 부부를 기다렸는데.... |
출처: 동물과 사람이 더불어, 동물행성 원문보기 글쓴이: 더불어밥
첫댓글 너무너무 아쉽지만~~~~다음을 기약하며~~~~
.....여전히 현실같지 않아서 ....
딱히 애국심이랄것도 없고 노대통령님 그렇게 가신후에야 그런분을 다시 얻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일ㅇ라는 것도 겨우 깨친 위인이데.....정말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저 첩첩이 쌓여진 비리부패가 다 덮힐 것이고 앞으로 더 골때리는 수치스러운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명백한 전망앞에 속이 타들어가서....
다니는 중에 사람들 쳐다보지 않으려 눈을 허공에, 땅에 박고 다닙니다..................
이렇게 후진적인 사람들이 국민의 반이라니....
차라리 쥐박씨같은 인사를 또 뽑았다면 그저 참 우매한 사람들이 또 속는구나 했을텐데....
군사독재 그리고 부젇부패의 골수들+찌끄래기들이 똘똘 뭉쳐진 그런 인사에 표를 던지다니.....
극단적인 증오와 우울밖에 남지 않습니다..............
부산토박이인 저는 영남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정말 죄송스럽고 화딱질나서 잠들지 않는한 울화통이 치밀어 종종 홧병날것 같아요 강남부자들은 기득권을 지키기위해서 그렇다치고 노인들은 치매라 치는데 대구 경북등 영남 충청 등등의 젊은 지식인들 그리고 가난한 서민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조두당을 지지하는지 알수가 없어요 가난한 사람 더 살기 힘들어지고 생명존중은 더 땅에 떨어질텐데 참으로 이해불가네요 그리고 개한민국이 아무리 후진국이어도 어찌 독재자를 추종하며 그것도 부족해 그딸까지 대통령으로 뽑아준답니까? 기형의 나라인 개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너무 부끄럽네요ㅜ ㅜ
울 고운 님들.. 넘 넘 우울해 하지 마시고 정부가 어떻게 하나 보시고. .. 다음 선거 날엔 동물들을 사랑 해서 애쓰는 좋은 대통령 뽑아 보자구요.
정말 넘 넘 아쉽고 허탈 하시겠지만 다음엔 꼭 뜻을 이루기 위해 애쓰자구요. 에휴..
저도 찡누이처럼 친친이랑 커플로 기표소까지 한번 같이 들어가서 투표를 시도해볼것을요~ ㅠㅠ
친친이가 기표소 뒷문 밖에서 언니야만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을것을 생각해서 이런저런 상념에 젖을 시간도
없이 쌩하니 기표하고 후다닥 나온 기억의 추억만이.........
우리집 식구들은 그래도 뜻이 하나로 모아졌었지만 저희 할머니 기제사를 지내는날이 마침 세번째 토론이 있던 일요일!
모인 식구들의 대다수의 의견에 실망감이 역력하였더라죠~~ 그래요 서울 강남권 식구들 이해해드려야죠~~
그런데 경기도 서민이 더 많은 우리가족들인데 왜 이런 결과가?
친친이 키우던 시절 몇번이고 경험한 지나가는 노인분들에게 무자고짜 개새끼를 집안에서 묶어놓고 기를 것이지
왜 데리고 나와서 옷까지 입혀서 돌아다니고 지랄이냐는 매번 똑같은 패턴의 언어폭력에 느껴야 했던
억울함이 떠올라 다시 울컥하네요~~
연장자라는 그 이유 하나가 크나큰 권력으로 느껴지시는 겐지요~~
토마스 프랭크 저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이책을 좀 읽어 보려 하는데 화기가 아직
가시지 않아 조금의 텀을 좀 두어 보려구요~~ 그래도 작금의 시대가 유신이 아니라는게 얼마나 행복한가요?
또다시 투표라도 할수 있는 희망쯤은 품고 살수 있으니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