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도폐기에 대한 분리불안적 태도 / 한복용
사고는 예기치 않게 일어났다. 빌려갔던 자동차를 내게 돌려주기 위해 약속장소로 향하던 선배가 마을 진입로에서 앞 차를 추돌하고 그 충격으로 핸들을 틀면서 공원 가로등을 들이받았다. 연락을 받고 달려간 사고현장은 내 화원에서 가까운 삼거리였다. 검정색 세단과 스타렉스 승합차가 길이 아닌 곳에 처박혀 있었고 가로등은 절반이 꺾여 쓰러진 채로 길옆 화단 조경석에 부딪혀 등이 깨져있었다.
앞 차가 직진과 좌회전을 놓고 멈칫거릴 때, 선배는 속력을 줄이지 않고 달리다 미처 브레이크를 밟지 못했다고 했다. 안전벨트까지 매지 않아 핸들에 부딪친 선배 얼굴은 피투성이였다. 몸도 많이 상했는지 절룩거리며 덜덜 떨고 있었다. 피해차량에는 두 명의 중년남녀가 타고 있었다. 뒤 범퍼가 내려앉았고 트렁크는 심하게 구겨졌다. 승합차는 앞부분이 완전히 무너져 엔진오일이 줄줄 새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피해자들은 사고수습을 서둘러달라고 했다. 경찰이 도착했고 여러 대의 레커차가 경쟁하듯 사이렌을 울리면서 달려왔다. 보험회사에서 연락이 와 사고경위를 물었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답해주었다. 직원은 사고를 낸 장본인이 사고경위를 설명 못하면 곤란한 거 아니냐며 따졌다. 나는 무언가 잘못 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다고 생각했던 게 잘못이었다. 선배는 내 차를 빌리면서 보험가입을 하지 않았다. 또한 사고신고를 하면서 운전자를 나로 둔갑시켰다. 운전만 할 줄 알지, 차나 보험에 대해 알지 못하는 나는 그들의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선배의 잘못된 판단이 일을 크게 만들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벌써 20년쯤 된 일이다. 마라톤동호회 선배가 나의 9인승 승합차를 빌렸으면 했다. 지방대회에 출전해야 하는데 버스를 대절하기에는 참가회원이 얼마 안 된다는 거였다. 기껏해야 한 동네 사는 언니에게나 급할 때만 내줬던 차로, 내 것을 남에게 빌려주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갑자기 주문이 밀려올 경우 꽃시장에 가야 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내가 꺼렸던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자기 것처럼 깨끗이 쓰지 않을 것이고 조심하지도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도 차를 빌려주면서 조심히 다뤄달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보험가입을 당연히 할 줄 알았다. 용도를 다했으면 바로 돌려줄 줄 알았다. 건네줄 날짜도 어기고 뭉그적대다가 서둘러 오면서 낸 사고였다.
피해차량 주인은 병원치료도 거부하고 자동차 수리만 해줬으면 했다. 선배도 병원에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나의 승합차는 같은 상가의 카센터 사장이 끌고 갔다. 차를 매달면서 “배보다 배꼽이 크겠군” 하는데 대뜸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선배는 무면허 운전이나 마찬가지로 벌금이 발생되었다. 보험회사에 허위 신고한 페널티도 부가되었다. 상대방 차량수리비 견적이 상당히 많이 나왔다던데 운전자보험을 들어놓지 않아서 또 낭패였다.
나의 차는 출차한 지 10년이 넘은 차로 그 상태에서 폐차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고쳐서 쓴다 해도 망가진 상태가 심각했다. 그렇더라도 나와 함께 한 시간이 얼마인가. 주변에서는 엔진을 새것으로 교체하라고 했다. 차라리 폐차하라는 사람도 있었다. 나의 처분만을 바라며 퉁퉁 부은 얼굴로 서 있던 선배에게 차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본인 치료나 잘 받으라 하고 돌려보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차량 수리비까지 물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내 마음은 온통 카센터 구석에 쭈그리고 있는 자동차에 가 있었다. 틈나는 대로 그리로 가 차를 살폈다. 영화 ‘터미네이터’ 속 고철을 보는 듯 섬뜩했다. 오랫동안 의지한 차인데도 흉물이 되어버리니 속상한 걸 넘어 방법을 빨리 찾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카센터 사장은 최대한 살려보겠다던 처음 말과 다르게 폐차를 권했다. 나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가 소개한 폐차장에서 기다렸다는 듯 승합차를 끌고 갔다. 이후 나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퇴근해서 창밖 빈 주차장을 내려다보았다. 희로애락을 같이 했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차를 구입할 때 사치를 부린 것은 별도로 오디오를 설치한 것이었다. 운전을 많이 하는 나에게 질 좋은 음악은 필수라고 생각했다. 오디오와 함께 음악 CD도 틈나는 대로 구입하여 운전석 옆자리에 보관함도 만들어 장착했다. 새벽에도 늦은 밤에도 나의 자동차는 주인을 위한 모든 준비가 다 돼 있었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자동차 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이유도 오디오에 있었다. 그래, 오디오! 오디오를 떼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카센터 사장이 그려준 약도대로 폐차장을 향해 자동차를 달렸다. 양주시에서 북쪽으로 40킬로쯤 들어가는 산 중턱에 자리한 폐차장이었다. 사정 이야기를 들은 직원이 승합차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멀리 뒷모습만으로도 알 수 있는 나의 차. 하루를 떨어져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간 나는 금방 후회하고 말았다. 앞 유리 전체가 박살 난 채로 운전석과 조수석이 유리 덩어리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듯, 나는 오디오를 찾을 생각도 못하고 뒤돌아섰다. 그깟 오디오가 뭐라고 먼 길 달려온 내가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 엔진이 바스러진 것을 보면서 아파했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폐차장에서 박살낸 유리로 흉물이 되어버린 자동차는 고물에 가까웠다.
돌아오는 길, 구불구불한 산길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늦은 밤까지 빈 주차장을 내려다보며 내가 마음 아파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 것이라는 것, 그것으로부터 떨어져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해석으로 설명되어야 했다. 용도폐기된 자동차 때문도, 거기 설치한 오디오 때문도 아닌, 나조차 모르는 어떤 것에 얽매여 밤잠을 설친 거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지만, 세상 그 무엇도 온전한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산은 거친 숨을 토하며 나를 멀리멀리 밀어냈다. 산을 빠져나올 무렵, 드디어 머릿속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