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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어린이 기아 문제 연구의 제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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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어린이 성장 발육의 특성과 그 기능적 함의
박 순 영(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연구위원)
1. 연구의 목적
북한 사회는 지난 몇 년간 광범위한 기근을 경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태의 심각성으로 보아 이 기근이 북한 사회에 지대하고도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본고에서는 이러한 기근 사태가 어린이의 성장 발육과 건강 수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나아가 성장 발육기에 심각한 영양 결핍을 경험한 어린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어떤 기능적 장애를
보일 것인지를 현재 수집 가능한 자료에 기반 하여 추론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보다 체계적인 구호 활동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더불어 현재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진행되고 있는 구호 활동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현재 북한 기근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극도로
부족하지만, 필자는 EU/UNICEF/WFP(1998)와 FAO/WFP(1998)
등 국제 기관의 보고서, 우리민족서로돕기 불교운동본부의 보고서(1998), 탈북 소아과 의사 L씨 면담 자료(1999) 등을 종합하여
북한 어린이 성장 발육의 특성을 제한된 범위 내에서나마 분석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분석의 결과를 세계 각국에서 이루어진 어린이 영양 실조 연구의 결과에 비추어 보면 북한 어린이들이 장차
어떠한 기능적 장애를 경험할 지를 대체로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2. 북한 어린이의 성장 발육 상태
지난 1998년 9월 23일부터 10월 16일 까지 약 한달 간에 걸쳐
EU, UNICEF, 그리고 WFP는 북한 당국과 공동으로 북한 어린이의 영양 상태를 전국적인 규모로 조사하여 같은 해 11월에 최초의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북한의 212개 군 지역 중에서 접근이 허용되지 아니한 82개 군을 제외한 130개 군이 조사 대상 지역에 포함되었다. 이 130개 군에는 국가 총 인구의 71%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 대상의 표본추출은 3단계 무작위 추출법으로 이루어 졌다. 1단계에서는 30개 군을 선정하고 2단계에서는
각 군에서 4개의 리(농촌 지역)/동(도시 지역)을 선정한 후에 3단계에서는 120개 리/동에서 각각 30가구를 추출하여 총 3600가구가 최종적으로 조사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표본으로 선정된 가구에서 6개월에서 84개월 사이 아동의 신장과 체중을 측정하였는데
최종적으로 조사에 포함된 아동의 수는 총 1762명에 이른다.
공동 조사단은 북한 어린이 신장과 체중 자료를, WHO의 권고(WHO 1978, 1986)에 따라, 미국의 NCHS(National Center for
Health Statistics)가 미국인을 모집단으로 하여 개발한 성장 준거
곡선(Dibley 등 1987; Hamill 등 1977)에 비교하여 북한 어린이의
영양 상태를 평가하였다(계산에는 Epi Info Version 6.04b, CDC
& WHO 1997 사용). 신장과 체중으로 집단의 영양 상태를 평가하는 지수로는 두 가지가 흔히 쓰이는데 그 하나는 키에 대비한 몸무게(weight-for-height: WH)로서 이는 어린이가 현재 키에 비하여 얼마나 말랐나를 나타내는 것이며 급성 영양실조의 지표이다.
다른 하나는 나이에 대한 키(height-for-age: HA)인데 이는 어린이가 나이에 비해 얼마나 키가 작으냐를 나타내는 것으로 만성적인
영양실조와 일반적인 복지 수준의 저하를 잘
나타내는 지표이다(Waterlow 1972). 대개 WH나 HA의 Z 점수(표준편차점수)가 -2 이하인 상태(준거 집단의 하위 약 2.2%가 여기에 속함)를 중등도의 영양실조로, -3 이하인 상태(준거 집단의 하위 약 0.013%가 여기에 속함)를 심각한 영양실조로 평가하는 것이 관례이다(WHO 1978, 1986). 표1에 영양실조로 평가된 북한 어린이의 백분율이 연령별, 성별로 요약되어 있다.
표1. 북한 어린이 연령별 성별 영양실조율
급성영양실조(%) 만성영양실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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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개월) 남(887) 녀(875) 남 녀 남 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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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 61 83 19.1 16.5 23.0 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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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총 평균 15.6 62.3 |
(출전: EU/UNICEF/WFP(1998) Nutritional Survey of DPRK)
위의 표에 따르면 급성영양실조는 12개월에서 24개월 사이에 가장 빈발하여서 이유시기에 영양 문제가 특히 심각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세계 여러 저개발 국가에서 보고된 영양 결핍 어린이의 성장 발육 특성과도 일치한다(Martorell & Habicht
1986 참조). 이 보고들에 의하면 적절한 이유식의 부족, 비위생적인 인공 영양식 섭취, 그리고 면역력 저하로 인한 감염성 질환에의 이환율 증가 등으로 인해 대개 출생 수개월에서 24개월 사이에
체중 저하가 두드러지게 된다. 탈북 소아과 의사 L씨가 증언한 바로는 현재 북한에서는 모유의 부족으로 젖을 빨리 떼어서 "인공
영양아"가 많은데 인공 영양식으로는 밥이 끓을 때 생기는 "밥물"을 주로 먹인다고 한다. 이런 이유식에는 어린이 성장에 필요한 필수 영양소가 거의 없으리라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탈북 소아과 의사 L씨의 증언(95년에서 98년 사이 년 평균
15%)과 "북한 식량난의 실태(1998)"에서 보고된 높은 북한 영유아
사망률(95년 8월에서 98년 7월 3년간 48.9%, 즉 연평균 약
16.3%)은 이유기의 영양 결핍과 이로 인한 면역력 저하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만성영양실조는 나이와 더불어 심화되어서 6세를 전후하여서는
총 표본의 70% 이상이 준거집단의 -2 표준편차 이하에 속함을 알
수 있다. 이 또한 기존에 보고된 영양 결핍 어린이의 성장 패턴과
유사하다(Martorell & Habicht 1986 참조). 세계 어느 곳에서나 어린이는 거의 비슷한 크기로 태어나지만 성장 환경이 열악하면 상대적으로 양호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에 비해 점차 크기가 작아
지는데 이는 출생 후 수개월 정도에 시작되고 대개 3, 4세 정도에
그 크기 차이가 고정되는 패턴을 보여 준다(Martorell 1989). 결론적으로 요약하면 북한의 어린이는 현재 심각한 급성영양실조를
겪고 있으며 더하여 영양 결핍이 몇 년간 장기화됨에 따라 만성적인 성장 지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요약된다. 달리 말하면 어린이들이 영양 부족을 경험하기 시작한 지가 수년은 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으로 이는 북한의 식량 부족 사태가 대홍수라는 자연재해
몇 년 전에 이미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자신이 관리 감독하던
북한의 탁아소에서 1990년부터 어린이들로 하여금 도시락을 싸
오게 했으며 1993년부터는 간식 배급조차 중단되었다고 하는 L씨의 증언이나 1992년 이전부터 식량 배급의 부분적 중단이 시작되고 있었다는 불교운동본부의 조사 결과도 모두 이런 해석을 지지하고 있다.
표2. 5세 이하 어린이 영양실조율(-2Z 이하) 비교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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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실조지수 낮음 보통 높음 매우 높음 Weight for Height(급성영양실조) 5.0%이하 5.0-9.9
10.0-14.9 15%이상 |
세계 각국의 5세 미만 어린이 영양실조의 정도를 평가하는 표2(Gorstein 등 1994)에 비교하면 북한 어린이가 경험하고 있는 영양 문제의 심각성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북한 어린이는 급성과 만성영양실조에서 모두 "매우 높음"의 범주에 속함을 알 수가 있다. 한 보도에 의하면, 급성영양실조율 15.6%라는 수치로 평가하면 북한은 세계 10대 극빈국 수준이라고 한다(조선일보 인터넷 신문 98년 12월 11일자 보도). 물론 15.6%는 세계에서 최악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는 인도나 방글라데시의 급성영양실조율 18%
보다는 낮은 수치이다. 그러나 북한이 이들 국가와는 달리 사회주의 체제하에 있어서 계층에 따른 식량 부족의 편차가 상대적으로
작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국민적인 수준에서 경험한 기근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점은 EU 등의 공동 조사는 가장 허약한
다수의 어린이가 사망하고 난 이후에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우리민족서로돕기 불교운동본부가 97년 9월부터 98년 9월까지 중국접경지대에서 북한식량난민 1694명을 상대로 면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95년 8월말 대홍수 이후부터 98년 7월말까지 3년간 총
가족 구성원 수에 대한 가족 내 사망자 수로 계산한 7세 미만 어린이 사망률이 48.9%(년 평균 약 16.3%)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탈북 소아과 의사 L씨는 자신이 발급한 사망 진단서 수에 의해 추정한 소아 사망률이 95년에서 98년 사이에 연평균 15%에 이른다고 증언하였다. 이 두 가지 보고는 서로 독립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치가 상당히 일치하여 신뢰성을 높여 주고 있다. 그렇다면 EU 등의 공동 조사가 이루어졌던 1998년 9월에는
이미 최악의 영양실조에 시달리던 어린이들이 대량 사망하고 난
이후라고 볼 수 있으니 북한 어린이들이 경험하였던 영양 결핍의
정도는 위의 수치가 보여주는 것 보다 더 심각하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짧게 덧붙이자면, 표준편차가 제시되지 않아서 통계적 유의성을
검사할 수는 없으나, 대개의 범주에서 북한의 남아가 여아보다 영양실조 빈도가 높음을 알 수가 있으며 이는 급성영양실조의 경우
두드러진다. 이 결과를 통해 북한은 남녀 차별적 배식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경우가 아님을 알 수가 있다.
3. 남북한 어린이 성장 특성 비교
남북한 어린이의 성장 자료를 직접 비교할 수 있으면 그 차이가
보다 선명해지고 일반인이 이해하기도 쉬울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EU/UNICEF/WFP 보고서는 NCHS 성장 준거 곡선에 기반
하여 계산한 Z 점수를 연령과 성별 구분 없이 총 평균으로 제시하고 있으므로 이 수치만 가지고는 북한 어린이의 실제 측정 평균치를 추정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연령별, 성별, 키, 몸무게, Z-score의 평균, 표준편차 등의 자료를 유니세프를 통하여 신청하였으나
북한과의 공동 연구여서 자료를 공유하려면 북한 당국의 허가를
요한다는 이유로 이미 거절을 당했다. 따라서 현재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필자가 가지고 있는 남한 어린이의 자료(박순영 1996)를
가지고 남북한 영양실조율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공동 조사단이
사용한 것과 동일한 컴퓨터 프로그램인 Epi Info Version
6.04b(CDC & WHO 1997)를 이용하여 1970년대 중반에 출생한 서울 아동들을 대상으로 1982년에 측정한 신장과 체중 자료를 가지고 NCHS 성장 준거 곡선에 비교하여 영양실조율과 Z 점수를 계산하였다. 결과를 EU 등의 공동 연구 보고서가 밝힌 북한의 수치와 비교할 수 있도록 표3과 표4에 요약하였다.
표3. 남북 어린이 영양실조율 비교
급성영양실조(%) 만성영양실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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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개월) 남 녀 남 녀 남 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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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60 - 84 241 258 11.7 4.2 76.4 73.4 |
표4. 남북 어린이 평균 Z(표준편차)점수
Weight for Height Height for 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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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개월) 성별 표본크기 평균 표준편차 평균 표준편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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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6-84 남녀 1762 -0.95 -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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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72-84 남 337 -0.31 0.83 -0.52 0.92 |
표3을 보면 남한 어린이의 영양실조율은 북한 어린이와 비교했을
때 매우 낮으며 표2의 분류 체계에 의해서도 영양실조율이 낮은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4를 보면 남한 어린이의 키나 몸무게 모두 미국 어린이의 중하위권에 속함을 알 수 있다. 남북한 어린이에게서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차이는 키의 크기이다. 북한 어린이의 경우 6세를 전후해서 NCHS -2 표준편차 이하에 속하는 아동이 남자 76.4, 여자 73.4% 인데 비해 남한 아동의 경우는 남자 4.7, 여자 3.1%에 불과하다. 표4에 나타난 남한 어린이 키의 평균 Z 점수를 쉽게 해석하면 6세에서 7세 사이에 남한
어린이의 평균 키(대개 100명에서 50등의 키)는 남녀 모두 같은
나이 또래의 미국 어린이 100명중에서 70등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6개월에서 7세 사이의 북한 어린이의 평균키는 같은
나이 대의 미국 어린이 200명에서 200등이니 이로써 남북의 차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위의 수치를 NCHS 성장 준거 곡선에 미루어 계산하면 6세에서 7세 사이의 아동의 경우 북한어린이가 남한 어린이보다 남녀 모두 평균 약 10cm 정도 작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더구나 표3과 표4에 요약된 남한 어린이 성장치는 1982년에 측정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남북한 어린이간의 키 차이가 더 커졌을 것이다.
교육통계연보가 보고한 학생 신체 검사 현황(교육부 1998, 문교부 1983)을 검토해 보면 남한 어린이는 초등 학교 1학년 때(평균
6.7세)의 키에 있어서 1982년과 1997년 사이에 남아는 4.32cm, 여아는 3.71cm의 증가를 경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3과 표4에 요약된 남한 어린이의 신장은 서울에 거주하는 어린이를 표본
추출하여 측정한 것으로 82년 측정 당시 표본집단의 평균치는 같은 연령대의 전국 평균에 비교해 남아 약 2.5cm, 여아 약 1.5cm
정도 크다. 따라서 1998년 EU 등의 북한 어린이 공동조사 당시에는 이 연령대의 남한 어린이는 전국 평균이 표3과 표4에 요약된
어린이 보다 남녀 모두 2cm 정도가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연령대에서 남북한 어린이 간의 키 차이는 앞서 추정한 10cm에 남한 어린이 추정 증가치 2cm을 더하여 약 12cm정도 되리라
볼 수 있다.
1997년에 측정한 남한 어린이의 국민학교 일 학년 때의 평균 신장은 남녀 모두 NCHS 평균치에 근사하다. NCHS 성장 곡선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에 중반까지 수집된 자료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1960년대 이후 30년의
시간 경과에 따른 신장의 증가가 그다지 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6세에서 7세 사이의 남한 어린이의 평균 키는 미국 평균에 상당히 근접해 있으리라 짐작된다. 이에 비하여 같은 민족인 남북한 어린이간에 12cm의 키 차이가 난다는
것은 현재 북한 어린이가 겪고 있는 영양문제의 심각성을 말해 준다.
물론 어린 시절의 키 차이는 환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므로 현재는 북한의 어린이가 경험하고 있는 식량 부족 사태 때문에 남북한의 차이가 크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유전적 소양의 작용으로
그 차이가 줄어 들 수도 있다(Martorell 1984; Marshall & Tanner
1986 참조). 그러나 "따라 잡기(catch-up)" 성장이 어느 정도로 발생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이 후의 성장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Tanner 1986 참조). 따라서 앞으로의 북한 식량
수급 상황의 호전과 일반적인 보건 의료 수준의 향상이 남북한 신체 크기 감소의 관건이라 보인다.
4. 어린이 성장 발육 장애의 기능적 함의
어린이 영양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어린이의 성장 자료에 주목하는 것은 작은 신체 크기 자체가 문제가 되어서라기 보다는 성장 자료가 영양과 의료와 같은 전반적인 복지 수준의 훌륭한 지표가 될 뿐만 아니라 신체 크기가 작아지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 기능적 장애가 수반되기 때문이다(Beaton 1989; Martorell 1989 참조).
우선, 임신 중의 모체 영양 결핍은 저체중아와 미숙아 분만과 직접 관련되며, 이는 높은 신생아 이환율과 사망률로 연결된다(Martorell & Gonzalez-Cossio 1987). 영양 결핍 상태의 어린이는
면역력이 저하되어 감염성 질병에 쉽게 걸릴 뿐만 아니라 사소한
질병도 심하고 길게 앓게 됨으로써 결국 사망률이 상승하게 된다(Chandra 1991). 설사와 같은 감염성 질환에 걸리게 되면 영양 흡수율이 저하되는 상승 작용이 발생하므로 특히 어린이에 있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Chen 1983). 더구나 어린 시절에 성장
장애를 경험한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흉선 기능이 감소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건강 수준이 낮고 수명이 짧은 경향이 있다고도
한다(Clark 등 1989). 탈북 소아과 의사 L씨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은 80년대 말부터 이미 의료 보급 체계가 흔들리기 시작하여 90년대 중반에 식량 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무렵에는 감염성 질환 관리와 예방 접종 체계가 거의 완전히 붕괴되다시피 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전염병이나 여타 감염성 질환이 적절히 관리되지 못하는 사회적 상황에서 심각한 영양실조와 이로 인한 면역력 약화 상태에 있는 북한 어린이가 얼마나 취약할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성장기에 지속적인 또는 반복적인 영양 결핍 상태에 노출된 어린이는 신장과 체중 감소, 골 피질 감소, 성적 성숙 지연, 성장기의
연장 등을 경험하며 성장기가 길어져서 보충한다 해도 이상적 성인 신장에 도달하기는 어렵게 된다. 더불어 심혈관계, 호흡계, 순환계의 기능에 영향을 미쳐 결국 성인이 되었을 때 신체 운동 능력 나아가 노동 능력을 감소시키게 된다(Frisancho 1993 참조). 이러한 신체 운동 능력 감소가 그 자체로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가질지는 이 어린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주로 종사하게 될 노동의
성격에도 달려 있다(신체 크기에 따른 노동 능력과 노동 생산성에
대한 논쟁은 Martorell 1989 참조). 어쨌거나 만성적 영양 부족으로 신체가 작고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성인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될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아니한 사람들에 비해 같은 일을 하는데도 더 전력을 다해야 하여 긴 시간을 노력해야만 하니 삶의 전반적인 질이 저하되리라 볼 수 있다.
만성적 영양 결핍에 노출된 아동은 그렇지 아니한 아동에 비해 사춘기에 늦게 도달한다. 사춘기는 신체 급격 성장기이므로 조숙아와 만숙아의 신장 차이가 극대화되며 만숙아가 적응상의 어려움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정신적, 육체적 성숙은 서로 관련되어 있어서 성숙기가 늦어지는 아동은 나이에 비해 신체적인
성장이 늦을 뿐만 아니라 지능의 발달에 있어서도 동년배 보다 더디다(Tanner 1978 참조). 따라서 학교 교육이 나이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는 현대 사회에서 상대적인 불이익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문제가 북한 사회 내적으로 어느 정도 심각할 지는 북한 내 사회 계층 분화의 수준에 달려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적절한 정보가
없어서 판단하기가 어렵다. 다만 FAO/WFP 공동 조사단 특별 보고서(1998)에 의하면 개인의 식량 접근 공평성이 없으며 협동 농장간, 도농간, 지역간 격차가 있어서 특정 지역과 인구 계층의 식량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더불어 북한의 전반적 사회 위기와 함께 계층간 경제 수준의 차이가 심화되면서 남한의 "이대로"족 같은 것이 북한에도 있다는 증언을 참고하면 계층적 불이익의 발생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또한 대외적으로 보아도 북한 어린이가 다른 이웃 집단의 어린이보다 평균적으로 늦되다는 것이니
사회 전체적인 규모에서도 손실이라 할 수 있다.
영양실조는 지능 저하, 정서 발달 장애, 나아가 학습 능력 저하와도 관련이 되어 있다(Cravioto & Arrieta 1986 참조). 임신 마지막
3개월에서 생후 이년까지가 인간에서 두뇌 급격 성장기인데 이
중에서도 영양 결핍에 가장 취약한 시기는 임신 최종 3개월에서
생후 일년까지이다. 그런데 신체에는 영양 공급의 우선 순위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다행히도 뇌는 신체 각 체계 중에서도 영양 부족과 같은 외적 환경의 악영향으로부터 비교적 잘 보호된 영역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도 이 시기에 지나치게 심각한 영양 결핍을
경험하면 두뇌 중량, 두뇌 크기, 신경 세포 수의 감소를 보이며 이후의 치료에 의해서도 회복 불가능한 생물학적 변화가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Frisancho 1993 참조). 이런 보고는 주로 동물 연구 결과에 의한 것이지만 영양실조로 사망한 어린이의 부검 결과에도 비슷한 변화가 발생했다고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중추신경계의 생물학적 변화가 실제로 얼마나 이 후의 지적 능력의
장애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려지지는
않고 있다.
많은 연구들이 어린 시절의 심각한 영양 결핍의 경험과 성장 후의
지적 능력의 저하간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연구에서는 영양 외적 변수를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확실한 인과관계를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린이가 애초에 영양실조를 발생시켰던 결핍된 환경으로 되돌아갔을 때는 지적 발달에 심각한 장애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중에 발생했던 네덜란드 기근 결과 연구를 통해 극적으로 드러난다. 태내에서나 출생 직후에 기근을 경험했던 징집병들과 그렇지 아니했던 징집병 사이에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어떠한 유의한 차이도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Stein 등 1975). 또한 열악한 사회적 환경과는 상관없이 질병으로 신생아기에 영양실조를 경험한 어린이들은 이 후에 특별한 지적 능력의 저하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Ellis &
Hill 1975; Klein 등 1975; Lloyd-Still 등 1974; Valman 1974 참조).
그러나 네덜란드 기근은 이들이 심각한 기근을 겪기 직전까지 양호한 영양 상태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근이 끝난 후에도 매우
뛰어난 회복의 조건에 있었다는 점에서 세계 기근의 역사에서 독특한 것이다. 불행히도 대개의 기근은 그렇지가 못하다. 오늘날의
기근은 빈곤 때문에 이미 어느 정도의 영양 부족을 경험하고 있던
사회에서 급작스런 식량 부족 사태가 발생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회복 환경도 네덜란드 기근과는 다를 것이 확실하다.
기근을 경험한 어린이들은 대개가 기근 이후에도 만성적 저영양상태에서 성장하게 되는데 이러한 만성적 저영양상태가 어린이의 행동 발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는 급성의 심각한 영양실조의 경우보다도 더 불확실하다. 만성적 저영양상태에 있는 어린이가 지능 수준이 그렇지 않은 어린이 보다 뒤떨어진다는 보고서는 수도 없이 많다(Cravioto & Arrieta 1986 참조). 그러나 이런 보고들은 만성 저영양상태가 그 자체로 지능 발달에 독립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이는 만성적 저영양상태란 대다수가 인지 발달에 우호적이지 아니한 빈곤한 사회적 환경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양실조에 의한
지능 저하의 문제는 생물학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말은 영양이 지능 발달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입증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사회환경적 변수가 설명하는 지능 지수 변이(variablity)의 크기가 영양적 변수가 설명하는 지능 지수의 변이보다는 항상 큰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영양 외적 변수를 다 통제하고 난 이후에도 영양
상태에 따라 변하는지능 지수의 변이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영양이 지능 발달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되어 있다 할 수 있다. 더구나 영양 부족이 신경계의 작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라 할지라도 어린이의 주의 집중력, 학습 의욕, 활동력, 정서 발달 등에 악영향을 미쳐 간접적으로 학습 능력을 저하시킬 가능성은 충분하다(Barrett & Frank 1987; Cravioto & Arrieta 1986 참조).
현재로서는 만성적 저영양이 신경 발달에 장애를 일으키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아동의 학습 경험을 제한하기 때문에 아동이 지적
기능이 저하될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유력하다. 즉 영양 결핍 상태가 학습 능력 자체에 지장을 주기보다는 아동의 주의 집중 능력을
저하시키고, 학습 동기를 약화시키며, 탐구적 활동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인지적 능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배고픈 어린이는 자극에 대한 감수성이 증가하여 신경질적으로 되며, 무기력, 무관심해지고, 어떤 일에 길게 주의 집중을 하지 못한다. 영양실조 어린이의 이러한 행동 특질은 어린이를
돌보는 사람의 태도에도 상응하는 변화를 일으켜 돌보는 이로 하여금 어린이에게 무관심해지게 하여 상호작용의 빈도와 질을 저하시킴으로써 아동 지적 정서적 발달 환경을 더 척박하게 한다(Chavez & Martinez 1984). 이런 상태를 만성적이고 반복적으로
경험한 어린이는 그렇지 아니한 어린이에 비해 학습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것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현재까지는 영양실조와 지능 저하의 인과적 관계에
대한 결정적 증거는 없다. 이는 영양실조가 대개는 그 자체가 지능 발달에 악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적 환경에서 발생하기 때문이고 이러한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아니하는 두뇌
기능의 측정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이 회복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환경의 어떤 특정한 면이 아동 발달에
특히 중요한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는 결국은 북한이 경험한 이 기근 사태 이후에 아동이 발달상에 어느 정도의 장애를 경험할 지 여부는 대부분이 회복 조건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즉, 이미 발생한 기근의 피해는 차지하고라도 현재 성장 지체를 보이는 어린이들이 장기적으로 심각한 발달 장애를 경험하는 사태를 방지하려면 이후에 지속적으로 양호한 회복 환경이 확보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지능 발달의 문제를 비교적 길게 언급한 것은 한 가지 염려되는
점 때문이다. 북한의 기근 사태를 보도하는 신문 기사를 읽다 보면 "한 세대 어린이 전체가 정신적 장애를 겪을 수도", "영구적 인지적 능력의 손상을 돌이 킬 수 없을 것", "평생 정신적 불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돌이킬 수 없는 정신적 후유증", "후에 가서 영양을 잘해 주더라도 지능이 떨어지고 행동에 이상을 초래할 수", "북녘 어린이 전체가 정신적 장애자가 될 지도" 등의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기사들은 때로는 영양실조 사태의 심각성을 들어
북한 정권의 무능과 실패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쓰인 것도 있고,
즉각적인 구호의 손길이 없다면 다수의 북한 어린이에게 영구적인 지적 능력의 장애가 초래될 위험성이 있다는 경고를 들어 신속한 구호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맥락에서 쓰인 것도 있다. 어떤 배경에서 쓰인 말이거나 간에 이런 표현들이 자칫 왜곡된 이미지를 전달할까 염려된다. 이런 글들이 혹시라도 이미 구호의 시기를 놓친 대다수의 북한 어린이가 모두 저능아가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대중에게 이해될까 해서이다. 그들이 장기적으로 육체적, 지적 능력에서 장애를 보일지는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회복 환경의
질에 달려 있다. 따라서 역점을 두어야 할 일은 즉각적인 구호와
더불어 장기적인 지원책을 확보하는 것이다.
성장 지체가 생물학적 기능 장애를 초래하지 않는 경우라 할지라도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이는 대부분의 사회는
이상적인 신체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이상에 도달한 사람은 여러 분야에서 차등적으로 보상받기 때문이다.키는 한 인구
집단 내에서는 전형적인 정규 분포를 보인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에서 이루어진 연구들에 의하면, 키가 그 사회의 평균 보다 큰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사회적으로 상향 이동하며, 직업적으로 성공하는 경향이 있다(Pak 1995 참조).
이러한 키-능력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하는 유전적, 환경적 가설들이 많이 나왔다. 이 가설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논리적 근거와
지지하는 연구 결과들이 있어서 무어라 말하기 어렵지만, 환경의
영향이 중요하다는 증거들이 현재로는 더 강한 듯 하다 (박순영
1996 참조).
그러나 이러한 가설들과는 별도로 키-능력의 관계를 키와 관련된
사회문화적 가치관을 검토함으로써 이해할 수도 있다. 즉, 각 사회에서 관찰되는 키-능력의 관계의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해당 사회의 키와 관련된 사회문화적 가치관이 상대적으로 키가 큰
사람들에게 평균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고된 바에 의하면, 거의 모든 사회에서 그 사회의 정상 범위 안에
있으면서도 평균보다는 큰 키를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한다(Cassidy 1991). 실제로 사회의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들이 결혼, 취직, 승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객관적 능력과는 상관없이 유리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또한 성장기 동안에도 키 작은 아동은 동년배와 또는 성인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불리하다고 한다(Pak 1995 참조).
그런데 사회의 모든 성원들이 그 사회의 이상적인 키에 도달할 기회를 똑같이 가지지는 못한다. 유전적 영향을 제외하고 나면 영양
상태와 같은 환경적 요소가 키의 성장에 결정적으로 중요하지만,
인체의 최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좋은 환경을 사회의 모든 계층이 골고루 누리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상적인 신체상에
관련된 효과가 어떠할지는 북한 사회의 계층 분화의 정도, 신체
크기에 대한 이상, 또는 다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복잡 다난한
북한 사회의 내적 특성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므로 무어라 추정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남한 사회가 키에 대해 갖고 있는 일반적 인식이라 하겠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키가 큰
사람이 여러 분야에서 평균적으로 유리한 대우를 받는지에 대한
체계적 연구 결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일회적
이야기도 무수히 많고 우리 모두가 개인적 경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특히 학위 논문 자료 수집 과정 중에 학생 체위 측정에 종사하는 학교 보건 종사자, 양호교사, 또는 학생 자신들과 직접 면담한 경험이 있으며 여기에서 키가 크고 다리가 긴 것이 청소년들의 자기 이미지에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달은 적이 있다. 아마도
자식의 키를 몇 cm 더 키우려고 긴 시간이 걸리고 고통스러운 성장 호르몬 요법에 막대한 돈을 쓸 용의가 있는 부모들이 많다는
것이 어떤 학문적 연구 결과 보다 키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잘
보여 준다 하겠다.
성장기 동안에 만성적인 장기적인 영양 부족에 노출되면 성인 신장이 감소되고 상체에 비해 하체가 짧아진다. 우려되는 바는 북한의 식량 부족 사태가 더욱 장기화되어 남북한 사람간에 신체적 특징에서 큰 차이가 발생하면, "북한 사람은 키가 작다"거나 "북한
사람은 숏다리다" 등이 북한 사람을 신체적으로 범주화하는 준거로서 작용할 경우에 발생할 부작용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본
패널의 다른 연구자가 자세히 논할 것으로 알고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더 상세한 언급은 생략하기로 한다.
5. 장기적 영향 평가와 대책 마련을 위한 제언
식량 부족이 사회 전반에 균등하게 영양 결핍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영양 결핍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누가, 생의 어떤 기간에, 얼마나 오랫동안, 어느 정도의 결핍을 경험했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일반적 식량 수급 상황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어느 정도의 결핍이 발생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장기적 영향 평가와 대책 수립을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여기에는
연령, 성별, 임신 및 수유 여부, 가족 구성, 거주 지역 등의 변수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작황과 식량 공급 상황에 대한
FAO/WFP 공동 조사단 특별 보고서(1998)에 의하면 협동 농장 단위간, 도농간, 지역간, 민간 시장의 발달 정도에 따라 특정 지역과
인구 계층의 식량문제가 심각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구체적인 정보가 현재로서는 없다. 앞으로 EU/UNICEF/WFP 자료(1998)의
상세 분석 보고서가 나온다면 지역별 차이는 파악이 가능하리라
보이지만 정치적 이유 때문에 상세 분석 결과가 일반에 공개될지는 의문이다. 더불어 새로운 현상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하는 사회
계층 간의 경제적 격차의 심화에 대한 정보도 필요하다. 한 탈북
소아과 의사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의 경제 위기가 심화되면서 통제가 완화된 틈을 타고 많은 돈을 버는 부유층이 있으며 심지어
이들은 이 경제 위기가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기조차 한다고 한다.
이런 증언에서 나타나는 격차가 어느 정도이며 얼마나 지속되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 또한 자료에 대한 직접 접근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탈북자 면담 등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영양 결핍 상태를 파악하는데 성장 측정치(연령별 성별 신장 체중
등)는 그 유용성이 아주 크다. 성장 지체는 대규모 인구 집단이나
지역사회에서 영양 결핍과 건강 수준 평가에 손쉽고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장 측정치로 인구 집단 전체에서 영양 결핍이 현재 어느 정도로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파악하여 식량 지원의 우선 순위를 정할 수 있다. 더불어 식량 지원의 효과를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기근 사태의
장기적 영향을 평가하려면 정기적이고 장기적인 기초에서 자료가 수집되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어떤 기관도 EU/UNICEF/WFP
조사보다 질적으로 우수한 조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EU 등이 정기적으로 조사를 계속 할 수 있을지는 아직은 미지수이다. 따라서 북한 자체에서 만들어진 표준 체위 조사 결과와
같은 통계자료를 확보하면 기근 사태 전후를 비교하는데 유용할
것이다. 더불어 EU/UNICEF/WFP 조사는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노년층, 임산부 등 여타 취약 계층의 영양 상태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자료 수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기근의 장기적 영향은 회복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회복 환경을 평가하려면 앞으로의 작황에서부터, 북한 사회의 거시적 성격, 변화의 방향, 어린이들이 자라나는 미시적 가족 환경의 특성까지를 망라하는 지식이 필요하다. 자료 접근에 대한 제한이 없다고 하여도 회복 환경을 예측하는 것이 극도로
어려울 텐데 하물며 현재와 같은 연구 조건에서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제한된 범주 내에서라도 기초 자료를 마련하고 세계 각국의 기근 연구의 결과를 참고하여 영향 평가와 대책 마련을
위한 조사를 준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이러한 준비가
있어야만 본격적인 연구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빠른 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연구 조사를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에 기반 하여 구호 대책에 대해 몇 가지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집중 지원 대상이 3세 이전의 어린이, 임신과 수유 중의 여성, 노년층, 환자라고 하는 데는 일반적인 의견의 합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영양 결핍에 이 인구 계층이 특히 취약하고 시의 적절한 구호를 받지 못하면 영양실조의 장기적 악영향이 가장 크게 나타날 집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판단에
기반 하여 여러 국제 기관은 탁아소, 유치원, 병원 등 수혜 기관을
중심으로 식량 지원을 실시하였고 결과 특정 인구 계층에 지원이
집중되는 효과를 노렸다(FAO/WFP 1998). 수혜 기관을 통해 어린이에게 직접 음식물을 공급하는 것이 가족을 대상으로 일반 배급을 하는 것 보다 어린이에게 집중적으로 영양 공급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수혜 기관 중심 지원에 더하여 무작위 감시를 실시하기도 하였으나 완전한 무작위 감시는 거의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식량
배분 투명성의 확보는 항상 논란의 여지가 있었으며 국경 없는 의사회 등은 투명성 확보 불가를 이유로 철수하기도 하였다(조선일보 인터넷 신문 98년 10월 1일, 12월 27일자 사설). 실제 식량이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취약 계층이 아니라 당간부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도 여러 번 등장하였다. 직접 장부 조작을 도와준 경험이 있는 소아과 의사L씨의 증언에 의하면 각 기관 수준에서의
착복의 만연으로 탁아소 지원량에서 5%나 어린이들에게 지급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수혜 기관 중심 지원이
취약 계층에게 지원이 집중되게 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겠으나 이 이상대로 실현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위기 상황 속에 있는
북한 사람들에게 비현실적으로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정병호 북한 어린이 기아 문제 연구회 모임 발언 내용).
무작위 감시가 실시도 불가능하고 특별히 효과도 없다면 탈북 소아과 의사 L씨의 제안처럼 차라리 인민반을 통해 직접 가족에게
배급을 하는 것이 어린이 영양 상태 호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FAO/WFP 특별 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북한 사회에서는 가계가 식량 대책의 핵심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국가 식량 배급 체계가 마비된 상태에서 가족이 단위가 되어 텃밭을 가꾸고,
가축을 키우고,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채집하고, 장사 길에
나서고, 해외 친지들에게 송금을 받아 살림을 꾸려 나가는 강인한
자생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운용의 투명성이 의심되는 기관 단위가 아니라 가능하다면 가족의 어머니를 통해 직접 배급을 실시하는 것이 어린이에게 직접 공급되는 양을 늘릴 것으로
보인다. 만약 어린이 직접 섭취율이 증가하는 효과가 없다고 할지라도 지원 식량이 어린이 영양 상태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는 임신, 수유 중의 여성이나 가계 생계에 핵심이 되는
어른들에게 돌아가는 효과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세계
각처에서의 기근 구호 활동의 경험에 의하면 어린이 영양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하여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은 어머니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가족 환경의 특성, 그 중에서도 어머니의 특성은 같은 경제적 빈곤의 수준에서 심각한 어린이 영양실조가 발생할지의 여부나 중증 영양실조를 경험한 어린이가 이후의
발달 과정에서 행동 발달에서의 지체를 경험하는가 여부에 모두
중요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하니(DeLicardie & Cravioto 1974;
Richardson 1974, 1976 참조) 효과적인 어머니 지원책을 수립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EU/UNICEF/WFP 보고서와 탈북 의사와의 면담 결과를 종합한
결과, "북한 식량난의 실태"에서 보고된 높은 사망율은 상당 부분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의료 체계의 붕괴(예방 접종 실시 불가
등)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L씨의 증언에 의하면 기근 사태 이전에 이미 의료
보급 체계의 마비로 전반적인 의료 서비스와 예방 의학 서비스의
수준이 급격히 하락되었다고 한다. 1990년대 초부터는 기본적인
예방 접종조차 제대로 실시할 수 없었으며 항생제의 부족으로 감염성 질환 관리가 불능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의료 체계의 약화에 따라 전염병이나 여타 감염성 질환에 대한 사회적 저항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식량난은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킴으로서 대량 사망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면에서 식량난의 악영향을 최소화하려면 감염성 질환 관리를
위한 의료 구호도 시급히 요청된다. 이 또한 본 패널의 다른 발표자가 상세히 논의할 것이므로 여기서 이만 생략하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장기적인 구호 대책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미 여러 번 지적하였듯이 기근이 어느 정도의 장기적인 악영향을 미칠지는 회복 환경에 달려 있다. 이런 측면에서 식량 생산 제고와 약품 및 의료 물품 생산 체계 확립이 중요하다. 다행히도 이
두 분야는 비교적 정치적 논쟁의 소지가 약하다고 볼 수 있으므로
우리 사회가 쉽게 대북 지원을 결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6. 맺는 말
이 연구는 정확한 자료의 절대적 부족이라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자료 부족 상황이 호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하는
의의는 무엇인가를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북한의 기근 사태가 여러 국제 기관을 통해 알려진 이후에 우리민족서로돕기 불교운동본부가 자체의 대규모 조사를 통해 그 심각성을 보고한 바가 있다. 그러나 "북한식량난의 실태"(1998)라는 책자를 통해 발표된 불교운동연합본부의 조사 결과의 정확성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불신을 표시하였다. 그렇다면 학자들의 연구는 어떻게 다를
것인가? 확실한 자료에 기반 하여 현실을 될 수 있는 한 정확히
분석하는 것이 학자가 추구하는 이상일 것이다. 그러나 분단과 정치적 대립이라는 특수한 상황 아래서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기근의 실태를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이런 기근이 장기적으로 어떤 신체 기능적 결과를
가져올 지에는 관련된 요인들이 너무나 많고 이 요인들 간의 관계
또한 몹시 복잡하다. 실제로 현재 북한처럼 자료에의 접근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경우가 아니라 할 지라도 영양실조와 기능적 장애의 인과적 관계 증명은 매우 어렵고 논란의 여지도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기근의 실태조차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관련된 모든 변수들을 파악하고 측정하여 기근의 장단기적 영향을
학문적 수준을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로 엄밀히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즉,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기근의 정도를 분석하여 북한 어린이들이 성장기의 영양 결핍에 의해 어느 정도의 기능적 장애를 경험하리라는 추정을 내리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그 장애 정도나
의의를 정확히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기근 사태와 같이 신속한 대처를 필요로 하는 문제에 대해 연구자 스스로가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불가능한 학문적
수준을 고집하거나 또는 연구자에게 기능적 장애 가능성을 입증하는 결과를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는데 기여하는 태도일 수도 있다.
학자가 조사 연구에서 어느 정도의 엄밀성을 추구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에는 해당 연구의 목적과 기능이라는 면에서 자신의 작업의 본질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가질 필요성이 있다는 점이 환경
오염의 피해를 연구했던 환경학자들에 의해서 지적되었다(Bailey
1995; Bryant 1995; 한경구 등 1998 참조). 본 연구의 기능과 관련하여 한 가지 주목하여야 할 점은 기근 문제의 심각성을 평가하는
데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 하나는 기근의 실태와 그
결과 북한 주민이 경험하게 될 문제의 종류와 정도를 평가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 심각성의 수준이 남한 사회의 개입을 필요로
할 정도인가를 평가하는 것이다. 전자는 학자들이 밝혀 내어야 할
학문적 연구 주제이지만 후자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태도 결정에 관한 것으로 학문 외적이며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이다. 실제로 구호 활동의 필요성과 수준은 정치적 장에서 결정되므로 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그 학문적 엄밀성이 어느 정도이든지 간에 제2차적인 중요성밖에 가지고 있지 아니하다는 것이 환경 문제를
연구한 학자들의 경험에서 나온 교훈이라 할 것이다.
첫댓글 외교를 통하여 열심히 도와줬건만~~되돌아 오는것은~~호전적인 남북관계에 대한 비관적인 말뿐이니~~ 어디 도와줄맛이 나겠습니까? 죄없는 시민들만 불쌍하지요~ 배에 기름때낀 고위층간부는 고마운지도 모르고 떠들고 있으니~~~ 정말 적반하장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