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고학생부군신위>
추석한가위 대보름 출근하는 아내를 대신해 혼자 차례음식을 준비해보기로 하였다
물론 아내의 도움 없이는 애초에 불가능한일이지만 필요하면 그때그때 도움을 받기로 하고 시작을 하였다
장보기:
10일전부터 경동시장, 이마트, 슈퍼, 재래시장등 약 7회 왕복
재료준비:
차례음식 고기 외 양념 등 60여 가지
만들기;
이틀 전부터 하루 10시간×2일=20시간
반찬:
차례음식 외 홍어, 갈비, 보쌈, 꽃게, 전복, 황태구이, 잡채 등
추석날 아침 차례상을 물리고 노모에게 ‘밤 하나치기도 쉽지 않은데 엄마는
아버지 돌아가시고 그 많은 음식을 어찌 혼자 준비를 다 하셨소,
이제야 한 달 전부터 물건을 사다놓은 이유를 알겠습니다’ 하며 이런저런 넋두리를 하니 옆에 있던 아내가 ‘왜 엄마한테 징징거려요’ 하며 타박을 준다
엄마 말이 ‘이제는 하소연해야 들어줄 사람도 없고 더 늙으면 올 사람도 차리는 사람도 힘 빠져서 못한다,
그러니 그도 저도 네 복이다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해라 어미도 그렇게 살았다’ 하신다
아내에게 지금 엄마랑 ‘징징게임’ 을 하는 중이라 했다
엄마가 웃으며 '징징거리는게 아니라 사람 사는게 다 그렇다’ 하시며 제사비용에 보태라며 한사코 쌈지 돈을 상위에 놓아 두신다
아내에게 ‘엄마하고 징징 게임을 해서 내가 이겼다’ 했다
아침부터 주거니 받거니 돌아보면 서글프고 앞을 보면 고달픈 어미의 인생사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제사도 음식도 다 줄여라, 정성만 다해라’하신다
아내는 ‘식구들 모이면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마음은 뿌듯 합니다’ 한다
엄마가 웃으신다
잠시 후 누이랑 여동생의 식구들이 바리바리 선물을 들고 찾아와 반가움을 나눈다
서둘러 한상 거나하게 차려먹고 다들 둘러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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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일상을 차려준단다 ‘62세진갑생일’ 조금 당황스럽지만 조카들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 앉았다
제법 묵직한 은빛왕관이 씌워진 케익 위에 촛불이 켜지고 조카들의 축가와 공연이 펼쳐졌다
여기저기서 ‘축하해요 삼촌! 축하해요 오라버니!’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영화속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여동생은 어디서 배워왔는지 어깨춤을 추며 흥을 돋구었고 ‘자 다음은 언니도’ 하며 며칠 후 생일을 맞는 누이에게 은빛왕관을 씌워주었다,
또다시 박수를 치고 생일 축가를 합창했다,
순간 나는 주연에서 조연으로 바뀌었다
축가가 끝나갈 무렵 조카가 큰소리로 ‘다음은 우리 막내고모’하며 여동생의 머리위에 왕관을 씌워주며 박수를 쳤다
다시 조연에서 엑스트라가 되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디저트를 준비 하던 아내도 달려와 '나도 나도'하며 왕관을 쓰고 싶다 한다, 이제 방청객이 되어 물개 박수를 친다
그렇게 웃고 또 웃다 웃음이 눈물로 바뀔 무렵 통 큰 누이가 일어나 엄마에게 한 뭉치 용돈을 드리며 은빛왕관을 씌워드리자 엄마가 일어나 덩실덩실 춤추며 좋아라하신다,
오늘은 모두가 각본 없는 드라마속의 주인공이 되었다
저녁에 갈때는 남은 음식들은 마다하는 저마다의 손에 들려 보내고는 아내와 둘이서 나란히 누웠다
아내에게 ‘연이틀 20시간을 서있었더니 이젠 발바닥이 아파 서있지도 못하겠다, 앞도 안보인다, 간도 맛도 모르겠다 팔도 아파 꼼짝도 못하겠다’ 칭얼거리니
아내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느낌 아니까’ 한다
‘어찌 내 마음을 아시오’ 물으니 ‘내가 그랬으니까’ 한다
돌아보면 아내가 입술 부르트고 치아가 흔들거린다 하소연 할 때마다 모르쇠로 일관했던 지난30년 세월이 생각난다
이제야 내가 직접해보고 나니 그 마음
오죽했겠나 싶다
더욱이 아내와 내가 맞벌이하는 동안 혼자 고생한 제수씨의 노고와 남동생의 고충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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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제사 때마다 엄마도 누이들도 한 결 같이 간단하게 준비하라지만 하다보면 더 주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요
아픈 나를 살리고 뒷바라지해준
가족들에게 좋은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은 나의 작은정성이요 바램이기도하다
아내에게 ‘모지 이 느낌’ 하며 ‘힘들어도 누가 제일 기분이 좋을까’ 물으면
여전히 자기가 제일 기분 좋다 마음이 뿌듯하다 한다,
앞으로도 자기가 알아서 할 테니 나보고 조금만 도와 달라한다
‘내가 없으면 당신도 엄마처럼 한 달 전부터 준비해야 할 텐데 그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다’ 했다
아내는 잠시 누웠다 ‘다녀올께요’ 하며 밤늦게 출근길에 나섰다,
나도 ‘올 추석에는 백년 만에 제일 밝은 달이 뜬다던데’ 하며 차창 밖을 두리번거렸지만 찾지 못하고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달은 이미 내 마음속에 들어차 있었다
다음날 밤새숙직을 하고 온 아내가 한숨자고 나서는 반강제로 목욕을 시켜준다 애교를 떨며 강짜를 부린다,
하는 수없이 ‘뜻대로 하소서’하며
온몸을 맡기었다 아내는
‘혼자 준비하느라 애썼어요’ 하며
엄살떠는 나에게 종일 식사에서 디저트, 안마까지 풀코스 케어를 해주었다
아들과의 간이식후 나를 애기 다루듯 한다, 무얼 했는지 종일 몸에서 기분
좋은 향기가 가시질 않는다
티브 앞에는 어제 생일날 쓰던 은색 왕관이 빤짝이며 놓여있었다, 귓가에는 축하해주던 가족들의 축가소리가 아직도 들려 오는거 같았다
언젠가 나없을 그날을 위해 복사기위에 제사때 써놓은 지방문을 올려놓으니 드르럭 드르럭 하며 복사지안에서 ‘현고학생부군신위 월성이씨신위 김녕김씨신위’하며 조상님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생긴 글자들의 이모구비가 수려하고 여유로운걸 보니 조상님들도 올 한해 잘 드신 모양이다 나도 기분이 좋다
돌아오는 아버지 제사 때는 무엇을 할까?
식구들이 가고 난 자리 벌써 그리움이 싹튼다,
좋은 음식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할때 완성이 된다 가족은 그런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