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부터 이 난에 글을 쓸려하면 알 수 없는 부담감이 몰려 온다.
처음 미국에 올 때 이 카페를 들렸을 때는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에 서로가 정보를 공유하고 진실한 충고를 해 주며 좋은 정보를 주곤 했는 데 누가 먼저 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날 부터 오고 가는 말이 험악 해 지고 좋은 맘 순수한 충고를 악플로 도배를 하는 일로 가득 해 져 버렸다.
미국은
아니 사람 사는 곳은 다 마찬 가지이다.
많은 직업이 있고 사람 수 만큼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그러니 서로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맞으면 아프고 슬프면 눈물이 나고 단것을 먹으면 입이 단것은 다 똑 같을 것이다.
그러니깐 인간의 기본은 다 똑 같다는 것이다.
이 카페를 찾는 사람은 생각컨데 결코 돈이 많거나 미국에 삶의 터전이 단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언가 부족하고 마음이 초조하기에 이 곳을 방문하고 오래 미국에 살아 온 사람에겐 아무것도 아닌 걸 질문을 하고 했던 질문 또 하고 하는 것 이다.
처음 미국을 올 때 내가 그런 마음 이였고 사람은 다 느끼는 의미는 같기 때문에 이건 분명한 사실 일 것이다.
그리고 우린 자기 아집속에 살고 있다.
내가 미국에 와 장거리 트럭을 할 때 그것이 전부이고 그것이 최고인 줄 알았다.
한 두 달 미대륙을 돌아 다니다 오면 몇몇 로컬을 하는 한국 트럭커들이 내게 말을 하 곤 했다.
뭐하러 집 떠나 그리 고생을 하느냐고.
그냥 로컬을 해도 그 정도 돈을 벌고 잘 살수 있는데...
그래도 난 내 아집에 빠져 싫다고 했다.
그런데 차도 노후 되고 애들도 결혼을 해 집을 떠나 아무도 없는 곳에 집사람만 있고 해서 마음을 돌려 먹었다.
그래서 로컬로 일을 변경 하였다.
로컬로 전환을 하고 보니 지금은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처음엔 그렇지 않았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도 사람 사는 건 똑 같았다.
장기간의 미국 경기 침체로 인하여 일은 많지 않고 트럭을 할려는 사람은 많고 하니 회사에서도 오래 돤 사람 부터 일을 주고 신참은 맨 나중 이였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사나흘 일을 하면 꼭 쉬게 하였다.
쉬는 건 좋지만 미국 생활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기본적으로 들어가야 될 돈이 있어야 하는 데 일을 못 하니 돈에 쪼들리는 것이 당연 했다.
그나마 통장에 몇 푼 있던 돈 다 쓰고 나면 그때 부터는 신경이 날카로워 진다.
돈이 부부 싸움을 유발 시키고 마음을 마르게 한다.
누가 미국에 오자고 했냐 한국서 그 많은 돈 어쨌냐 너 잘 났나 로 부터 시작하여 이렇게는 못 살 것 같으면 서로 따로 갈 길을 가자 하는 극단적 표현까지 서슴없이 내 뱉으며 자주 부부가 싸우게 된다.
집사람은 신랑이 일을 많이 못 해 돈에 쪼들리니 투잡을 뛰게 된다.
아침 일찍부터 밤 늦도록 일을 하고 돌아 오면 신랑은 컴에 앉아 있고 티비만 보고 있으니 울화가 치민다.
또 싸움이 시작 된다.
이것이 미국 생활의 일부분 일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깐.
그런데 반년이 지나고 나니 대우가 달라 진다.
일도 많이 주고 대우를 해 주기 시작 하는 것이다.
지금은 집사람 이런다.
우리 트럭 일 하기를 참 잘 했다 그치!
집사람은 지금 시애틀 공항에 다니고 있다.
베네피 다 되고 나 까지 혜택을 보고 있다.
그런데 그 공항 직원 들이 신랑이 트럭을 한다고 하니 모두가 굿잡 이라고 하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려 부러워 한다고 한다.
미국 사람들은 직업의 귀천이 없기에 트럭일을 상당히 고소득 잡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집사람은 좋은가 보다.
나도 미국인 회사에서 그런대로 대우를 받고 지낸다.
처음 엘에이에 와 트럭일을 하는 한인들을 만났을 때 받았 던 그 차원하고는 다르다.
돈을 좀 가지고 왔다고 어께 힘주고 사업을 하다가 다 털어 먹고 밀려 밀려 그들이 말하는 막장 일이라 생각하며 하는 트럭 일하고는 다르다는 것이다.
아니 생각의 차이 일 수도 있다.
난 처음 부터 트럭일을 하겠다고 한국서 마음을 굳히고 왔고 지금도 트럭일에 대하여 자부를 갖고 있다.
그래서 슬리퍼 찍찍 끌고 반바지에 복장 엉망으로 절대 안 다닌다.
항상 깨끗한 옷에 구두를 신고 만약을 대비해 차 안에 작업복을 따로 갖고 다닌다.
내가 다니는 성당에 돈 많고 골프치며 트럭 일 하는 나를 쳐다 보지도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돈 많다고 모텔하는 사람 몇 몇 뱅크차압 당하고 졸지에 거지가 돤 사람 있다.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이 지금은 그런다.
내가 제일 부럽다고.
그냥 차 속 안 썩히면 고정 벌이 되고 아무런 걱정 없지 않느냐고.
그 말의 의미는 속을 보일 수는 없지만 많이 힘들다는 표현이다.
장사하는 사람들 많이 힘들어 한다.
차라리 사업체 팔리기나 하면 남이 집 월급쟁이나 하고 싶다는 소리 요새는 수도 없이 듣는다.
이제는 예전의 미국이 아니기에 이민에 대한 생각을 신중히 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아마도 힘든 생활의 연속이다 보니 어느날 부터 이 카페도 악플로 가득 차는 것 같다.
그래서 좋은 사람들 하나 둘 떠나가고 점점 이 공간이 상막해 지는 것 같다.
나도 내 자신을 느낀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경험담을 많이 알려 줄 까 하고 고민을 하고 의욕을 앞 세워 글을 쓰고 했건만 하나 둘 악플이 달리고 자기 만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처럼 남을 무시하는 글을 보며 내가 뭐 아쉬워 알지도 못 하는 인간들에게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까지 글 쓸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에 글 쓰는 것을 자제 했다.
난 트럭일로 미국 생활을 시작 했기에 트럭 일 밖에 모른다.
한인들이 하는 많은 사업체...
그 분야에서 뛰는 사람이 제일 잘 안다.
그리고 당해 본 사람만이 확실하게 그 일에 대하여 잘 안다.
우리 서로 조금씩 이해하고 내가 아니면 아니다 하는 마음 버리고 자기 분야에 대하여 전문적 지식이 있으면 베푸는 마음으로 공유하고 알려 주었으면 한다.
서로 얼굴을 보고 있다면 과연 막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이나 되겠는가?
안 보인다고 막말을 하는 사람처럼 비겁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것 미국을 오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사소한 것도 귀하게 여겨지는 정보일 수도 있다.
모두 조금씩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 지성인 처럼 행동 했으면 한다.
시애틀의 비오는 일요일 !
마음을 열어 봤습니다.
저도 형제 초정으로 왔습니다. 전 제가 알지도 못 했는데 동생이 초정을 했더군요. 그래서 미국에 대한 미련도 기대도 없이 제 생활에 충실하다 왔기에 생활에 누스는 없었습니다. 이민 올려고 하는 분들 이민 기대에 생활에 지장이 많다는 소리 듣습니다. 시간이 될때까지 생활에 열심히 하세요. 전 11년 걸린 것 같은 데 제가 4번 뒤로 연기를 해 15년 만에 왔습니다. 헌데 늦게 오니 별로 좋은 게 없네요. 모든게 어렵구요. 특히 언어를 습득 하는 게 영 느리네요. 늘 미국 사람하고 생활 하는데도요.
산다님 정말 멋진 글입니다. 사다님글을 죽 읽어 본 사람은 이제 함무로 악플은 달지 못할것 같네요...새로 시작하신 로컬일이 잘되신다고 하니 반갑습니다. 저도 내년에는 미국 들어갈 것 같은데 나중에 시애틀이나 포틀랜드 같은데서 살고 싶습니다. 시간 나시면 시애틀근교에 등산해보시면 좋지않을 까요? 시애틀등산 동우회에서 올린 사진보니 겨울에 그림같은 눈덮인 산을 트레킹하는 한국분들 무지기로 많은 것같은데요....
예 저도 몇 번 산에 따라 다녔 습니다. 마운틴 레이니언 도 올라 가 보았구요. 너무 좋지요. 시애틀 경치!
잘 읽었습니다. 이제 곧 40대 중반(내년이면 45세)에 들어서는지라 오래동안 일을 하고싶고 교육문제도 있어서 미국이민 준비 중입니다. 좌우지간 고맙습니다.
감사히 잘읽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