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21 희망의 근원 시 62:5-12; 욘 3:1-5, 10; 고전 7:29-31; 막 1:14-20
5선 국회의원이자, 전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최근 국민의 힘 당으로 당적을 바꿨습니다. 혹자는 그를 보고 그의 꿈은 평생 국회의원이라고 합니다. 국회의원만 된다면 당적은 불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의아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상민 의원과는 달리 민주당 소속으로 도지사, 당 대표, 국무총리 등, 수십 년간 정치를 했는데, 최근 탈당했습니다. 혹자는 예상하기로 보수 대권 주자를 꿈꾸기 때문에 역시 국힘당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한편 국힘당에서 탈당한 김용남 의원의 말도 주목할 만합니다. 윤석열 대선 후보 시절 특보역할을 했는데, 손바닥 왕자와 관련해서 후보자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낙인찍혔다고 합니다. 그는 탈당하면서,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무리 속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국힘에서 민주당으로 어떻게 가겠냐”라고 합니다. 어떤 부분에서 뜻을 같이할 수는 있지만, 당적을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상민, 이낙역은 의외의 선택을 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공공의 이익보다는 사익, 즉 개인적인 성공이 다른 그 무엇보다 우선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군부독재의 멸망은 군의 독점 때문입니다. 검찰 공화국이 되어 가는 현 정부의 멸망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윤석열에게 줄을 잘 서면 승승장구하지만, 그를 비판하면 압수수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기조가 이러할진대, 희망의 근원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우리의 희망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시편 본문의 저자는 말합니다.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기다려라. 내 희망은 그에게서 온다.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이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아마도 모든 신앙인은 하나님께 희망을 둘 것입니다. 다만 겉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힘 앞에 비판보다는 아부와 동조로 어떻게든 눈에 띄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 순간 하나님은 잠시 뒤로 물러나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며,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필요하면 불러내는 도깨비방망이, 알라딘의 요술램프 하나님일 뿐입니다. 정말 하나님께 희망을 둔다면,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머리털 하나까지 세신다는 하나님, 눈동자처럼 지키신다는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 것일까요? 만약 하나님의 간섭이 그렇다면 다른 생각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심판과 공포의 하나님이 되어서 자유는 사라지고, 처참한 노예가 될 뿐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아니라, 묵묵히 지켜보고 계실 것입니다. 어쩌면 누구보다 마음 아파하실 것입니다. 스스로 깨우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 하고 계실 것입니다. 시편 저자는 말합니다. “억압하는 힘을 의지하지 말고, 빼앗아서 무엇을 얻으려는 헛된 희망을 믿지 말며, 제물이 늘어나더라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아라...권세는 주님의 것, 한결같은 사랑도 주님의 것”
고린도 전서 본문에 바울은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쁜 사람은 기쁘지 않은 사람처럼, 무엇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십시오” 조금 의아한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잘나고, 잘살고, 더 많이 벌고 싶고, 부를 자랑하며 살고 있습니다. 명예와 권력을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세상의 모습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세상에,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희망에 근원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족이나, 부, 명예, 권력 등에 희망을 두는 것은, 사라지고 마는 일시적이라는 것입니다. 너무 빳빳한 잣대가 아닌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런 것 같습니다. 바울이라면 모를까, 누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의 이 말은 사라져 버리는 헛된 희망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롯이 하나님께 희망을 두라는 것입니다. 광신도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롯이 하나님께 희망을 두는 거기에서, 생명, 정의, 평화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위로하고, 화해하고, 포옹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가족 간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적과의 화해, 평화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기원이 바로 하나님께 있다는 역설입니다.
복음서 본문은 예수의 공생애 시작의 일성을 기록합니다.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공생애 일성이 회개입니다. 회개의 중요성은 무엇일까요? 회개 없이는 복음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복음과 회개는 동시성인 것 같습니다. 나쁜 길에서 돌아서지 않고는 복음은 무용합니다. 생명살림과 죽임이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평화와 전쟁이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의와 불의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회개와 복음은 동시성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회개와 복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 같습니다. 본문은 예수의 명령이나 권유로 보이지만, 회개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몸에 뵌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부단한 노력에 은혜가 아니고서는 가던 길에서 돌아선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복음도 그렇습니다. 때문에 수많은 사람 가운데 특별히 마가교회가 있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요나서 본문에 니느웨라는 성읍은 둘러보는 데만 사흘 길이 걸리지만, 요나는 하루 만에 회개를 요청하며 지났다고 합니다. 이 말은 직진으로 빠르게, 영혼을 담지 않은 상태로, 마지못해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 누가 주목하겠습니까? 진심을 담아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모두가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인 것입니다. 그 은혜 위에 예수의 한마디가 더해진다면 다음과 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제자들이 된 그들의 행동에 주목합니다.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를 일꾼들과 함께 배에 남겨 두고, 곧 예수를 따라갔다.” 회개와 복음에 즉각 응답할 수 있는 은혜가 올 한해 우리에게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우리 희망의 근원은 어디입니까?
함께 시편 본문을 읽으며 침묵합니다.
시 62:5-12
5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기다려라. 내 희망은 그에게서 온다.
6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이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7 1)내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은 내 견고한 바위이시요, 나의 피난처이시다.
8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이시니, 백성아, 언제든지 그만을 의지하고, 그에게 너희의 속마음을 털어놓아라. (셀라)
9 신분이 낮은 사람도 입김에 지나지 아니하고, 신분이 높은 사람도 속임수에 지나지 아니하니, 그들을 모두 다 저울에 올려놓아도 입김보다 가벼울 것이다.
10 억압하는 힘을 의지하지 말고, 빼앗아서 무엇을 얻으려는 헛된 희망을 믿지 말며, 재물이 늘어나더라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아라.
11 하나님께서 한 마디를 말씀하셨을 때에, 나는 두 가지를 배웠다. '권세는 하나님의 것'이요,
12 '한결같은 사랑도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주님, 주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240121 시 62:5-12; 욘 3:1-5, 10; 고전 7:29-31; 막 1:14-20
시 62:5-12
5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기다려라. 내 희망은 그에게서 온다.
6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이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7 1)내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은 내 견고한 바위이시요, 나의 피난처이시다.
8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이시니, 백성아, 언제든지 그만을 의지하고, 그에게 너희의 속마음을 털어놓아라. (셀라)
9 신분이 낮은 사람도 입김에 지나지 아니하고, 신분이 높은 사람도 속임수에 지나지 아니하니, 그들을 모두 다 저울에 올려놓아도 입김보다 가벼울 것이다.
10 억압하는 힘을 의지하지 말고, 빼앗아서 무엇을 얻으려는 헛된 희망을 믿지 말며, 재물이 늘어나더라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아라.
11 하나님께서 한 마디를 말씀하셨을 때에, 나는 두 가지를 배웠다. '권세는 하나님의 것'이요,
12 '한결같은 사랑도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주님, 주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욘 3:1-5, 10
1 주께서 또다시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2 "너는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이제 내가 너에게 한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3 요나는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곧 길을 떠나 니느웨로 갔다. 니느웨는 둘러보는 데만 사흘길이나 되는 아주 큰 성읍이다.
4 요나는 그 성읍으로 가서 하룻길을 걸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사십 일만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
5 그러자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그들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으로부터 가장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굵은 베 옷을 입었다.
10 하나님께서 그들이 뉘우치는 것, 곧 그들이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는 것을 보시고,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고전 7:29-31
29 2)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아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하고,
30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하고, 기쁜 사람은 기쁘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무엇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31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십시오. 이 세상의 모습은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막 1:14-20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11)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15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16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의 12)동생 안드레가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19 예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는 것을 보시고,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를 일꾼들과 함께 배에 남겨 두고, 곧 예수를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