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 군에 있을 때 얘기다. 초병이 북에서 날아온 삐라를 주우면 내게 가져왔다. 내용은 차치하고 인쇄가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낙후된 생산력 수준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 가운데는 특별히 제작된 것도 있었다. 특별한 사람의 초상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비닐 코팅을 했다. 우리는 이미 물에 잘 젖지 않는 종이를 만들 수 있던 때였다. 측은한 느낌이 들었다.
6. 25전쟁은 무력에 의한 통일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했다. 전쟁은 민족에 엄청난 희생과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남겼다. 전쟁 이후 남북은 동서냉전구도 속에서 체제경쟁에 돌입했다. 반세기가 지나 체제경쟁은 판가름 났다. 죽의 장막, 철의 장막이 걷어지고, 동서독의 장벽이 무너졌다. 지난 햇볕정책 기간 동안 북한의 철조망도 살짝 열렸다. 북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제 북한 주민도 다 알아버렸다. 미흡하지만 조금 열린 틈을 통해, 남과 북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삐라나 확성기와 같은 것으로 애써 떠들 필요가 없게 되었다.
통일은 필수, 전쟁은 하책
최근 천안함 사건은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매우 취약함을 단적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평화를 위해서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과제였다. 과연 어떻게 통일할 것인가? 우리의 분단이 국내적, 국제적 요인이 결합했듯, 통일도 국내외를 다 고려해야 한다. 한반도는 여럿이 두는 거대한 장기판에 비유할 수 있다.
미국과 우리의 이해와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다. 북한의 존재가 미군 주둔의 명분이 되기도 한다. 중국에게 북한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존재이다. 한국과 미국을 갈라놓기 어렵듯이, 북한과 중국을 갈라놓기 어렵다. 다만, 중국도 북의 핵 보유는 반대한다. 두 나라에게 한반도 분단은 완충지대로서의 전략적 이점이 있다. 일본은 한반도 분단사에 오랜 역사적 연관을 갖고 있다. 이미 임진왜란 때에 명나라에 분할을 제안한 적이 있다. 일본은 대북 대결구도에서 여러 잇속을 챙겼다.
다들 현상유지가 목표이고, 우리의 통일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자협력체제를 활용해 통일에 대한 부정적 요인을 약화시키고 안전과 통일을 보장받는 틀로 삼아야 한다. 결국 주인인 남과 북이 어떻게 주도하느냐가 문제이다.
북한체제가 곧 붕괴할 테니, 조금만 더 압박하면 된다는 주장이 있는데, 과연 그럴까? 미소의 경쟁에서 압박정책이 성공했다고 하는데, 고르바초프 같은 지도자가 없었다면 과연 그렇게 진행되었을까? 동서독의 통일 과정이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었을까? 정권의 붕괴 위기가 발악과 재앙으로 나타나지는 않을까? 북한이 핵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북한 정권을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금강산 피살 사건과 남쪽 자산 동결조치 등은 불순한 동기를 의심케 한다. 남쪽을 향한 개방에 대해 속도조절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명박 정부의 강경기조를 탓하며 그동안 풀었던 빗장을 하나씩 다시 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감 부족일 수 있고, 내부 권력구도차원의 포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은 변화가 불가피하다. 선택수단이 많지 않다. 우리가 최대한 견인하고 개입해야 한다. 관여수단을 많이 확보하고, 주변국에 우리의 연고권을 확증해야 한다.
무책임한 주전론과 사이비 안보론을 넘어서
천안함 사건으로 보복과 응징을 다짐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대통령은 전쟁기념관에서 담화를 발표했다. 그런데 개성에는 우리 사람들이 아직 그대로 있다. 우리 군이 그토록 허망하게 당했다는 것도 믿기 어렵지만, 지금의 대결기조의 귀추도 알기 어렵다. 곧 전쟁이 일어날 것 같더니, 순전히 국내용인 것 같기도 하다. 그나마 차분한 것이 그 동안 햇볕정책의 성과 같기도 하고, 본래 허구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손자병법>에 의하면 전쟁은 하책이다. 상대를 온전히 둔 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라 했다. 그러자면 국방과 외교를 충실히 하고, 안팎의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의 흐름을 다시 옛 냉전시대로 돌이킬 수 없다. 이번 천안함 사건은, 포용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되돌아보고 안팎의 걸림돌을 극복하는 통일정책을 강구한 계기로 기록되어야 한다.
안보논리를 선거에 이용하지 말라는 야당 지도자의 발언이 있었는데, 그동안 독재정권이 정권의 안보를 위해 안보논리를 악용한 전례에 따른 피해의식일 뿐이다. 안보는 중요하고 진정한 안보논리를 내놓는 것이 공당(公黨)의 의무 아닌가. 병사 46명이 죽었는데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무책임한 주전론과 아전인수의 안보론이 설친다. 안보나 안보논리가 특정세력의 전유물일 수 없다. 우리 공동체 모두의 관심사이며 고민거리이다. 세 수 이상을 내다보며, 우리의 통일비전과 안보전략을 제시할 리더십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