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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클락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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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준) 스크랩 `다시 태어나도 우리` 이렇게 슬프게 살까?
태이자 이재운1045 추천 0 조회 283 18.03.07 17:43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세상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다시 말해 내 해마에 기록된 가장 오랜 기억은 1963년 5월 27일치다.

이 날, 아침부터 어머니의 산통이 시작되자 산파가 달려오고, 집안 어른들은 저마다 자기 할 일을 분주하게 했다.

사랑채와 마주보고 있는 안채에 안방, 윗방, 골방, 다용도실이 있는데, 이중 윗방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쓰는 방이었다. 어머니가 산통을 느끼자 깨끗한 볏짚을 바닥에 깔았다. 

왜 요 안깔고 볏짚을 까느냐고 내가 물으니 아이를 낳을 땐 볏짚을 까는 거라고 어머니가 설명했다. 

어머니는 아픈지 얼굴을 찡그리면서 아버지가 깔아준 깨끗한 볏짚(노랗게 빛난 걸로 보아 겉껍질을 벗겨낸 속볏짚이었던 것같다)에 눕고, 산파로 온 동네 어른이 나더러 동생을 데리고 나가 오래오래 놀다 오라고 했다.

1963년 5월이니 나는 5세 8개월, 내 동생은 3년 6개월로 겨우 걸어다닐 수 있는 연령이었다.


내 손을 꼭 잡은 동생을 데리고 동네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지쳐 돌아와 대문을 열고 마당에 섰다. 

동생의 손을 잡고 있던 장면, 내가 서 있던 자리가 기억에 또렷하다. 

안채를 들여다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방에서 무슨 소리가 날까 하여 귀를 기울이는데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틀물레(아이들이 떼를 쓰거나 보챌 때 누워서 사지를 버둥거리는 모습. 부여가 고향인 김종필 씨가 김영삼에게 이 말을 썼다)라는 별명을 가진 내 동생은 아무 말없이 내가 하는대로 잘 따라다니지만 수가 틀리면 나자빠지곤 했다.

그래서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안채를 향해 소리쳐 물었다.

"났슈?"

정확하게 그렇게 물었다. 난 그때 지독한 충청도 사투리를 썼다.

곧 산파가 문을 열고 마루로 나왔다. 누군지 아는 어른일 텐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더 놀다 와. 아직 안 낳았어."

나는 동생을 이끌고 도로 대문을 나와 이리저리 동네를 돌아다녔다. 동네라고 해봐야 그때는 당숙네, 친척이 사는 중뜸이라는 좁은 골목을 상상할 때이지 아랫말이나 윗말은 감히 가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척이니 건너마을이 천리 먼리 먼 나라쯤으로 여길 때다.

그러니 동네 한 바퀴를 돌아봐야 30분 정도면 충분하니 또 집에 가서 귀를 기울여 보고, 또 가보고, 이러면서 오후 5시가 돼서야 마루에 세숫대야가 나와 있었다.

"애기 났슈?" 

또 산파가 나오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고추다. 와서 봐라."

나는 신이 나서 동생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그대로 누워 있고 막 세상에 나온 애기가 잘린 배꼽이 헝겊에 묶인 채 강보에 싸여 있었다. 그렇게 우리집 막내 동생을 처음 보았다. 입술을 꼭 다물고 사지를 벌리고 있었다. 그 암팡진 첫 인상이 55세가 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의 내가 만일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아마도 막내동생에게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너 어디서 왔니?"

하지만 이제는 물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수십 년 뒤 내 딸에게 그렇게 물은 적이 있다.

"너 어디서 왔니?"

"하늘에서 왔지."

그러면서 딸은 되지도 않는 이야기와 그럴 듯한 이야기를 뒤섞어 아무 말이나 해댔다.

한 선배의 딸이 내 딸 동갑인데, 그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아이가 엄마를 부르면서 "에미야!"라고 하여 집안이 한 바탕 뒤집혔다. 그애 아빠가 "너 누구냐?" 물으니 "내가 네 어미다"라고 했단다.

우리집도 그 집 이상가는 에피소드가 있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나는 내가 먼 별이나 딴 세상에서 온 게 아니라 미래에서 온 게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한 적이 있다. 존재하는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몹시 복잡한 꿈을 나는 반복해서 꾸었다. 아마도 세 살 때부터 열두 살 무렵까지 반복해서 꿈을 꾼 듯하다. 설명이 불가능한 꿈이었는데, 최근 평창올림픽에서 드론 쇼를 보다가 '저걸 내가 어려서 꿈으로 보았는데' 싶었다.


하여튼 전생을 기억하는 소년(난 남녀아이를 다 소년이라고 부름)들이 꽤 많다는 보고가 있다. 티벳의 린포체 기록은 찾아가면서 거의 다 살펴보았다. 

특히 티베트에서는 고승들의 환생체를 찾아내는 전통이 있는데, 나는 정치 체제 유지와 관련이 있는 '만들어진 관습'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게 딱 떨어지게 전생을 기억하는 일은 쉽지 않고, 보편적인 원리나 원칙이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중에<다시 태어나도 우리>라는 영화를 보았다(네이버 영화 2500원)

영상이 참 아름답다. 주인공들의 삶은 더 아름답다. 

배우가 한 명도 안나온다. 모두 실존인물 실제인물이다. 다큐멘터리라서 그렇다.


파드마 앙뚜라는 어린 린포체는 자신의 정체성을 놓고 끊임없이 고민한다. 자신의 기억으로는 티베트의 동부인 캄(중국식 지명 康巴)에서 승려로 살다 죽은 사람의 환생인데, 사람들은 도무지 믿어주질 않는다. 더구나 캄은 중국의 사천성에 편입되어 망명 티베트인은 그 땅으로 갈 수 없다.

캄은 고타마 싯다르타 이후의 새 붓다로 알려진 파드마 삼바바가 불교를 중흥시킨 땅이고, 앙뚜가 태어난 라닥은 그 파드마 삼바바가 수행한 곳이다.


달라이 라마가 망명해 사는 인도 북부 라닥에서 태어난 파드마 앙뚜는 캄의 사원에서 제자들이 찾아와 자신을 데려가주기를 소망하지만 티베트와 인도는 중국공산당이 길을 막아 서로 오갈 수 없다.


대본 없이 우연히 찍힌 다큐멘터리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티베트 전통 의술을 찍으려다가 우연히 만난 스토리에서 시작된다. 제작진은 시골의사이자 늙은 승려 우르간을 만나 그를 영상에 담기 시작했는데, 그때 우르간의 상좌로 들어온 다섯 살난 꼬마가 '헛소리'하는 것에 주목하여 이 아이 영상도 찍어두었다. 그렇게 9년간 두 사람의 영상이 찍혔다. 다큐에 미친 감독이 아니고는 이럴 수가 없다. 고맙다.


린포체라고 주장하는 아이, 그 아이를 린포체로 모시는 늙은 승려, 그러나 라닥의 티베트 사원에서는 그를 린포체로 받을 수 없다면서 나가라고 한다. 남의 절, 그것도 검증이 불가능한 조국 티베트 식민지에서 죽은 고승의 린포체이니 어쩔 수가 없다.

이런 과정이 적나라하게 찍혀 있다. 앙뚜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스승인 우르간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중에 이들은 캄에 직접 가기로 결심한다.

이 부분에서는 제작진의 의도가 들어간 듯하다.

결국 이들은 라닥에서 인도 남부로 내려가다가 동쪽으로 네팔을 지나 네팔과 부탄 사이의 인도령 시킴주의 국경도시 라탕에 이른다.


산만 넘으면 티베트 캄이다. 거기에 앙뚜가 살던 사원이 있고, 제자들이 있다. 아름다운 땅으로 보이지만, 캄 지역 사람들은 티베트 독립군이 가장 많이 나온 무서운 땅이다. 달라이 라마를 탈출시킨 사람들도 캄 사람들이다. 지금도 독립운동의 거센 불길이 솟구치는 땅이다. 온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유유히 독립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이다. 


<티베트여, 울지 마라 1>

<티베트여, 울지 마라 2>


그런 땅이라도 고향이라서 가고 싶겠지만, 그곳은 중국군이 길을 막고 있어 더이상 갈 수가 없는 식민지의 땅이다. 산을 넘을 수도 없다. 앙뚜와 캄 사이에는 3000미터 이상의 히말라야 산맥이 저 라닥에서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길은 오직 반야선 밖에 없다. 스스로 반야선을 지어 그 배를 타고 가야만 한다.(분단된 나라에 살며 북녘땅으로는 가지 못하는 내가 남 동정하다니...)


소년은 시킴주의 중국-인도 국경도시의 한 사원에 들어가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히말라야 고산준봉이 보이는, 산 넘어 캄을 그리워하기에 충분히 가깝지만 먼 땅에서 다큐멘터리가 멈추었다.


- 파드마 앙뚜, 그냥 거기서 공부하라. 열심히 수행하면 다 기억이 날 것이다. 닦고 닦다 보면 넌 언젠가 아라한이 될 것이다. 아라한이 되면 붓다께서 반야선 한 척을 보내주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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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03.16 00:46

    첫댓글 정말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

  • 18.03.16 00:46

    아름다운 영화....

  • 작성자 23.12.24 21:14

    파드마 앙뚜 2004년생 G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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