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미운 2019년도 대학교수선정 사자성어 ‘任重途遠(임중도원)’/서예인들의 2019년도 사자성어 ‘급심경단(汲深綆短)’
올해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사자성어는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의 임중도원(任重道遠)입니다.
그런데 왜 그 사자성어가 얄밉냐구요?
요즘 저는 “얄미운...” 시리즈로 ‘지갑분실사건’과 ‘안경분실사건’을 상재했습니다.
그런데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는 물질도, 소유물도 아닌데 우째 얄미울까요?
저는 매년 서예들의 사자성어를 연말이면 정했습니다. 2018년도 사자성어는 수불석필(手不釋筆)이었지요. 즉 “손에서 붓을 놓지 말자”.
2019년도에는 무얼로 정할까 고심하다 예의 任重道遠(임중도원)으로 정했지요.
논어 태백(泰伯)편 7장에 나오는 “曾子曰 士 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증자왈 사불가이불홍의 임중이도원>이라. 증자가 말하기를, 선비는 마음이 넓고 뜻이 굳세야 할 것이니 그 책임은 무겁고 길은 멀기 때문이다”
나이 칠십에 앞으로 살 날도 많게 남지 않았는데 웬 할 일이 그렇게 많은지, 어깨 짐은 태산 같고 갈 길은 머니 이런 심정 나뿐이겠는가,
모든 서예인이 다 한결같겠거니 하여 정했는데,,,,,
그런데 오늘 뉴스시간에 교수들이 뽑은 2019년 사자성어가 “任重道遠(임중도원)”이라고 발표하네요.
교수신문 발표에 의하면 지난 5일부터 14일까지 전국 대학교수 87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결과 341명(38.8%)이 임중도원을 꼽았다고 24일 밝혔습니다.
전호근 경희대 교수는 “한반도 평화 구상(構想)과 여러 국내 정책이 뜻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난제가 아직 많이 남아 있으므로 굳센 의지로 잘 해결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선택했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는데 거국적으로 딱 맞는다 싶으니 이의 없습니다만 내가 서예인의 사자성어로 정 한 것을 똑 같은 문장으로 공교롭게 정하니 얄밉다 이겁니다.
교수들이 선정한 2위 고사성어는 ‘밀운불우(密雲不雨)’였습니다. ‘구름만 끼어 있고 비는 내리지 않는다’는 뜻이죠.
임중도원은 日暮途遠(일모도원)과 비슷하거나 같은 의미의 사자성어입니다
얼마 전 검찰에서 나온 말이라 하지요.
청와대 비선실세니 문고리 삼인방이니 ‘최순실게이트’니 하는 엄청난 희대의 사건들을 대하다 보니 검찰 입장에서 당연한 말이겠지만 춘추시대의 오자서(伍子胥)의 고사에서 온 말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오자서는 초(楚)나라 사람으로 아버지 오사(伍奢)와 형 오상(伍常)이 소부 비무기(費無忌)의 참언(讒言)때문에 초평왕(楚平王)에게 죽습니다.
이에 오자서는 오(吳)로 도망가 복수의 화신이 되는데,
마침내 오나라 행인(行人)이 된 오자서는 오왕 합려를 설득해 초나라를 공격합니다.
초를 공격하여 비록 수도는 함락되었지만, 원수인 평왕(平王)은 이미 죽고 없었습니다.
오자서는 복수의 행보를 멈추지 않고 평왕의 무덤을 파헤칩니다.
그리고 시신을 꺼내 300번 채찍질을 가하니 친구 신포서(申包胥)가 오자서의 행동을 지나친 행동을 지적하면서,
“그래도 일찍이 평왕(平王)의 신하였던 그대가 지금처럼 시신까지 욕되게 하는 것은 천리(天理)에 지나친 어긋난 일이다”고 말하자,
이 말을 들은 오자서(伍子胥)가 한 말이 바로 “吾, 日暮途遠, 故倒行而逆施之-해는 저물고 갈 길은 머니 도리에 어긋난 일이지만 할 수밖에 없었다.” 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기(史記)의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후대에 많은 비판을 받은 복수의 사례이지요.
오자서의 도행역시(倒行逆施)는 유교적 가치관에서 그 당위성이 인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쨋거나 오자서의 日暮途遠(일모도원)은 할일은 많은데 시간은 없고 그래서 임무는 막중한데 시간에 쫒긴다는 뜻으로 요즘 최순실이 저지른 청와대 막장드라마를 정리하게에 힘겨운 것은 사실일 것 같습니다.
차라리 임중도원(任重道遠)이라 푸념했으면 더 어울릴 말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2019년의 사자서어를 비슷한 의미를 지녔지만 표현이 전혀 다른 급심경단[汲深綆短]으로 정했습니다. 이 말은 장자(莊子) 제18 지락(至樂)편에 나옵니다.
“길을 물은 깊은데 두레박줄이 짧다”
임무는 무거운데 힘이 부친다는 뜻의 임중도원과 비슷한 뜻이지요.
두레박줄이 짧으면 그걸로는 깊은 곳의 물을 길을 수 없습니다.
능력이 모자라면 일을 감당(堪當)할 수 없다는 뜻으로 비유한 급심경단[汲深綆短]!
능력이 부친다는 표현으로는 편장막급(鞭長莫及)이란 말이 있는데 채찍이 길어도 말의 배에까지는 미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공자의 제자 안연이 제나라로 갈 무렵 스승 공자를 뵈었습니다.
공자가 걱정스러운 낯빛을 보이자. 자공이 묻습니다.
“감히 묻자 옵는데, 안회가 제나라로 가는데 어찌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십니
까?”하자
“좋은 질문이구나. 예전에 관자(管子)의 말에 ”주머니가 작으면 큰 물건을 제대로 담을 수 없고 두레박줄이 짧으면 물을 길을 수 없다(褚小者不可以懷大, 綆短者不可以汲深) 하였는데,
이 말은 대개 천명(天命)은 정하여지고 사물의 모든 형체는 각각 알맞은 바가 있어 덜 수도 더 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나는 안회가 제왕(齊王)을 만나 요순의 성왕의 도를 말 하고 더하여 수인씨(燧人氏)나 신농씨(神農氏)를 말 한다면 제나라 왕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아 자신에게서 부족함을 발견한 결과 혹 수치심에 안회를 장차 죽이려 하지 않을까 하여 걱정하는 것이니라“고 대답한 고사다.
물론 이 말은 장자에 나오는 여러 우화의 한 토막이요 공자를 언급한 다른 아무 전거에 없는 기록으로 믿을만한 기록은 아니지만 급심경단 이란 말 넉자만큼은 자신의 부족함, 즉 하는 일에 비하여 능력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매우 효과적인 표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서예인들의 2019년 사자성어 급심경단[汲深綆短],
비록 길을 우물은 깊고 드레박 줄은 짧아도 길어야 할 물은 길어야지 그만 둘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