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양양[襄(오를 양), 陽(해양)]은 한자의 뜻에서 나타나듯이 [해가 떠 오른다] 는 뜻을 가지고 있는 해돋는 고장이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서 양양의 낙산사를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은 것과 낙산사에서의 일출을 감명깊게 그린 대목에서도 일출의 고장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양양이란 본래 중국 호북성 한수연안에 있는 지명으로서 아름다운 자연과 지리적 환경이 양양과 유사하고 사람들의 품성 또한 자연의 섭리에 感慕(감모)하는 氣槪(기개)가 잠재하여 士大夫(사대부)의 문헌이 찬란하고 풍습이 선미하다 하여 다른 고을보다 더 훌륭함으로 양양이라 명칭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며, 이곳 현산(峴山), 한수(漢水), 무산(巫山), 록문(鹿文), 태평루(太平樓)등의 명칭도 중국 양양의 명칭에 연유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양양군은 고구려의 익현현(翼峴縣) 또는 이문현(伊文縣)이었던 것을 신라에서는 익령현(翼嶺縣)이라 하였다. 고려는 현종(顯宗) 때 현령(縣令)을, 1211년(고종 8)에 양주방어사(襄州防禦使)를, 1257년(고종 44)에는 강등시켜 덕령감무(德寧監務)를, 1260년(원종 원년)에 다시 승격 양주지사(襄州知事)를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1397년(태조 6)에 태조의 외향(外鄕)이라는 이유로 부(府)로 승격시켰고, 1413년(태종 13)에 도호부(都護府)가 되었으며, 1416년(태종 16) 양양(襄陽)으로 개명하였다가 1895년(고종 32) 군(郡)으로 고쳤다. 그때 강릉부(江陵府)에 속하였다가 이듬해(건양 원년) 13도제(道制) 실시로 강원도 양양군이 되고, 1919년 간성군(杆城郡)이 폐지됨에 따라 토성면(土城面)과 죽왕면(竹旺面)이 편입되었다. |
1939년 속초면(束草面)이 읍으로 승격되고, 1945년 8·15광복과 더불어 국토가 분단되자 현남면(縣南面)·현북면(縣北面) 및 서면(西面)의 일부가 강릉군에 편입되었다. 1954년 11월 수복지구 임시 조치법 시행에 따라 현남면을 명주군(溟州郡)에 남기고, 현북면·서면을 본군에 복귀시켰다. 1963년 1월 속초읍이 시(市)로 승격되어 독립하자, 토성면·죽왕면은 고성군(高城郡)에 이관되고, 현남면이 명주군으로부터 본군에 환원되었다.
1972년 1월 권금성 비룡폭포 피골이 속초시에,1973년에 서면의 명개리(明開里)가 홍천군(洪川郡) 내면(內面)에, 손양면(巽陽面) 상왕도리(上旺道里) 일부가 양양면 월리(月里)에 편입되었다. 1979년 5월 양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3년 2월 강현면 상복리 일부가 속초시에 소속되었다. 1989년 1월에는 손양면 가평리와 송현리 일부가 양양읍 송암리로 편입되었다.
2007년 1월 현재 양양읍과 서면·손양면·현북면·현남면·강현면의 1읍 5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 일출의 고장 양양에서는 매년 6월 중 군민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민속놀이·문화제·체육대회 등이 펼쳐지는 현산문화제(峴山文化祭)가 열린다. 이 밖에 해맞이축제·송이축제·연어축제도 매년 펼쳐집니다. 또한, 패다리 놓기, 탁장사 놀이, 귀애놓기 놀이, 상복골 농요, 양양복골 지게가리 싸움, 양양잔교농악 등 다양한 민속놀이 및 체육대회가 있습니다. ※ 양양에서는 마을 유래에 따라 다음과 같은 마을 제사를 행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