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껍데기 하면 우선 나는 한강 근처 마포가 떠오른다.
그리고 이야기는 조금 다르지만 처참하게 죽음을 당한
불쌍한 돼지 생각도 예우 차원에서 짧게 떠오른다.
또한, 다음에 쓰는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지금은 그 자취가 없어졌지만 70~80년대 서울역 근처 파라솔 세우고
좌판에서 돼지 껍데기를 맛나게 볶아 팔 때가 있었다.
80년 초, 시국이 어수선하던 어느날 밤
나는 그 곳에서 껍데기 한 접시와 소주를 단골 아줌마에게 청해 마시고 있었는데
그 날이 바로 야간 시위가 있던 날이었다.
"계엄철폐" 하는 구호와 전두환은 물러가라 물러가라
양희은 씨의 노래등을 부르며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떼의 무리가
역전 다방 쪽에서 내가 앉은 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쉬는 날과 시위가 있는 날이 맞아 떨어지면
기차타고 서울까지 올라와 구경하고 내려가는 나인데
잘 됐다 싶어 아줌마 쪽으로 향해 마시고 있던 나는
자세를 바꿔 양 팔꿈치 좌판에 받쳐 다리 꼬고 고개까지 45도쯤 쳐들어
거나한 상태에서 건방진 자세로 담배까지 어금니 쪽으로 물고
지나치는 시위대를 구경하고 있었다.
뛰어가던 시위대 몇 몇이 뒤돌아 보면서까지 나를 쳐다보고 갔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별 이상한 생각은 하지 못했다.
참고로, 그 당시 내 외모는 이랬다.
깡등하게 쳐 올린 머리 80kg이 넘는 체구에 운동화 청바지
이 정도 였는데 그게 문제였나보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80kg가 넘는 사람이 그렇게 흔친 않을 때였다......
시위대는 주변에 별 피해를 끼치지 않고 '호암아트홀' 쪽으로 몰려들 갔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려고 저 모양 들인지 몰라."
하는 아줌마 말을 듣고 다시 자세를 고쳐앉아 남은 술을 마져 마시기 시작했다.
다 마시고 "아줌마 얼마예요?" 하는데
아줌마의 시선이 내 어깨 뒷 쪽을 향해 동공이 확장돼 있었다.
깜짝 놀란 나는 하마터면 "악" 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나 같은 덩치들만 골라 왔는지 나보다 훨씬 큰 어깨들 십여명이
각목을 들고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 중 몇 명은 이미 내 어깨와 등을 내려치기 시작했고
뒷 쪽 어디에선간 "죽여!" 하는 섬뜩한 소리도 들렸다.
아~ 여기서 이유도 모른체 송장되는 구나..
하는 생각과 이게 말로만 듣던 서울역 주변 폭력밴가?
벼라별 생각들이 두서없이 교차해 지나갔다.
손에 아무것도 없는 나는 다급히 아줌마 쪽에 있던 칼을 집어들고
얼치기 무당 비슷한 춤을 추었다.
정신없이 휘두르는데 누군가의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게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여자 목소리가 군중속에서
"맞어.. 저 새끼가 분명히 잡아갔다니까.."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뭔가 잘못돼 돌아가도 단단히 잘못돼 돌아가는게 분명해 보였다.
그 소릴 듣고 나는 누굴 잡는 사람도 아니고 무엇도 아닌
파주사는 보통 노동자라고 아무리 이야길 해도 많은 말이
오히려 그 들을 더욱 화나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옆엘 보니 포승줄 같은 것을 들고 있는 걸 봐서
두들겨 패 묶으려 하는게 분명해 보였다.
다급한 나는 한 쪽 손으로 칼을 휘두르고 다른 한 손으론
가슴께를 뒤져 신분증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때 누군가가 "엎드려 저 새끼 총 꺼낸다." 하는 기가 막힌 소리가 들렸다.
도망간다 해도 소주까지 마신 내가 붙잡힐게 뻔해
신분증을 던져주고 내 튈 계산에 신분증을 찾은건데 총이라니...
그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웃음이 다 나왔다.
신분증 찾아 무리속에 내 던지고 서부역을 향해 종소리 나도록 튀다 돌아보니
더 이상은 따라오지 않았다.
표 끊고 나오다 거울을 보니 왠 낯선 사람이 낯 익은 손으로
눈 두덩께를 더듬으며 거울속에 있었다.
집에 돌아와 두들겨 맞은 후유증으로 며칠 자리 보존하고 있던 중
정중한 사과의 글과 함께 신분증이 배달되어 왔다..........
그 후 20여년이 흐른 나는 영종도에서 몇 다리 건너뛴
지하철 하도급 공사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식회사 쌍용으로 부터 안전 수칙을 잘 지킨다는 이유로
상장과 부상으로 봉투 하나를 받은 일이 있었다.
봉투를 뜯어보니 삼십만원 정도의 롯데 상품권이 들어있었다.
그 근방에선 상품권을 쓸 데가 없어 그냥 가지고 있다가
한가한 날 그 상품권을 가지고 서울 나들이를 했다.
백화점에 들어가 애들 신발 몇 켤레와 목도리 몇 개를 사니
상품권 금액을 훨씬 초과했다.
백화점을 나와 그냥 내려가기도 뭐해 옛 추억이 깃들어 있는
중앙극장 뒤 먹자골목으로 향했다.
롯데 백화점에서 그곳엘 가려면 지하도 건너 명동을 거쳐 명동성당을 지나쳐야 하는데
그 날이 바로 명동성당에서 시위 집회가 있는 날이었다.
옛날 수와 진 씨가 심장병 어린이 돕기 모금하며 노래부르던 그 쯤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리어카에다 고구마채 튀긴 것을 수북히 쌓아 놓고 장살 하고 계셨다.
그거 한 봉지 사 먹으며 시위 하는거 조금만 구경하고 갈까하며
돈을 치르는데 이 아주머니 말씀이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유 고생 많으시죠? 언제쯤에나 끝날 거 같으세요?"
괜히 엄한 사람만 고생 시킨다며 중얼중얼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잊었던 옛날의 악몽이 떠올라 내 모습을 살펴보니
영락없는 사복 형사 차림이었다.
옛날 보다 더 짧은머리, 가죽 잠바, 청바지, 운동화
서둘러 그 곳을 빠져나오며 벌렁이는 가슴을 쓸어 내려야만 했다.
당시야 총각 때 였지만 지금 만에하나 그런 몰골로 집에 들어가야 한다면?
-금촌동에서 김목수-
붙임글: 위의 내용은 대부분이 사실이나 이야기 전개상 픽션인 부분도 약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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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수] 돼지껍데기와 명동성당..
김목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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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2.2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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