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다니는 둘째 아이가 상한 음식을 잘못 먹어 병원에서 몇 시간 체류하며 검사를 받은 후 기숙사로 돌아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1주일 후 병원으로부터 청구서가 날아왔는데, 치료비가 8천 2백불에 의사가 보낸 별도의 청구서가 1,300불이었습니다. 우리 돈으로 무려 천만원에 달하는 금액이었죠. 보험회사 측에 알려서 지불 수속을 한 다음에도 약 1,200불은 부모가 내야하는 몫으로 남았습니다. 미국의 의료비가 하늘을 찌를 듯이 인상되고 있다는 것을 그동안 경험해온 저로서는 이 청구서가 그다지 놀라운 것은 아니었지만, 한미 양국의 의료비를 비교하는 제 평소의 버릇 때문에 그때도 며칠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의료비가 이렇게 터무니없이 올라가는 원인에 대해서 병원 측은 의사 고발 전문변호사들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변호사들은 병원을 비난하고 있지만, 끊임없이 인상되는 의료보험료를 지불하느라 허리가 휘어지는 쪽은 서민들과 회사원들의 의료비를 부담해야하는 기업주들이지요. 미국의 의료계를 주시하고 있는 일부 비평가들은 병원과 제약회사가 환자를 돈으로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예방의학이 쇠퇴하고 의료수가가 급격히 인상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오늘의 경제난을 일으키고 있는 원인들 중의 또 하나가 터무니없이 인상된 원유값이라고 합니다. 여성 최초로 연방 하원 의장에 선출된 펠로시 의원은 원유 값이 폭등하는 원인을 다음과 같이 잘라 말합니다. “석유 업자(Oil Man)가 백악관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데, 기름 값이 어떻게 내려가겠습니까?” 펠로시 의장의 독설을 알아듣기 쉽게 해석하자면 고유가는 원유가 갑자기 고갈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 아니라 미국의 석유재벌과 사우디를 포함한 중동의 산유국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의 결과라는 이야깁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고유가 덕택에 기름 소비량이 줄어서 지구 온난화가 그만큼 늦춰지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요, 최근까지도 그는 지구온난화에 관련된 모든 정상회담과 국제회의를 보이콧 해왔고 지구가 온난화되고 있다는 주장도 과학적 근거가 약하다고 거듭 주장해왔었거든요. 이같이 도처에 “바가지 상혼”이 만연되어가는 미국사회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예전에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으나, 현재의 미국이 과연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몇 년 전에 작고한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공산주의는 실패하도록 운명지어졌던 유토피아”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지요. 공산치하의 폴란드에서 어두운 시절을 경험했던 장본인의 말인지라 그 의미가 예사롭지 않게 들리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더없이 황폐해져만 가는 북한을 눈앞에 떠오르게 하는 예리한 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만약에 급격히 쇠퇴해가는 오늘의 미국사회를 살았다면 뭐라고 말했을지 궁금합니다. “자본주의는 부패하도록 운명지어진 환상의 도시”라고 하지는 않았을까요? 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자주 개탄하지만, 자본가와 노동자의 소득격차가 크면 클수록 더욱 역동적으로 활성화 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묘한 속성입니다. 그런데 더욱 더 기묘한 것은 오늘의 많은 근로자들도 내일이면 큰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부익부” 현상에 매우 관대해진다는 점이죠. 이것을 마치 가슴 속에 누구나 복권을 한 장씩 품고서 내일이면 나도 당첨자가 되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환상의 나라에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도 있을까요?
그러나 돌아보면 지난 반세기를 거치는 동안에, 근로자들의 복지향상을 위해서 인상될 수밖에 없었던 노동단가, 급등하는 의료비, 은퇴복지연금 등을 위해서 기업주들이 부담해야하는 부분이 늘어났기 때문에 기업 이윤도 점차 `감소하게 되어,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점차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소득격차가 줄어들게 되어 각 국가의 경제를 독립적인 생태계로 삼아 운영되어오던 원초적 자본주의가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죠. 생존을 위해 하나의 유기체가 다른 유기체로 진화하듯 자본주의도 그와 유사한 과정을 거치게 되었는데 그것이 소위 ”자본주의의 구조조정 (Restructuring of Capitalism)” 또는 “자본주의의 세계화 (Globalized Capitalism)”입니다. 미국과 같이 고도로 산업화된 국가의 대자본이 자국 내의 값비싼 노동자들을 떠나 제3세계의 잘 훈련된 저가의 노동자들과 손잡은 것을 일컫는 말인데, 이로 인한 파장이 우리 서민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원초적 자본주의”는 인위적인 통제를 최소화하여 스스로의 자율능력에 의존하게 하는 경제개념이라는 점에서 아프리카의 “세랭게티” 초원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세계의 자연 질서에 가장 근접해 있던 체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서민들의 사회복지에 대한 요구, 국민이 뽑는 지도자들을 통해서 가해지는 여러 가지 제약과 통제 등으로 “약자는 강자의 먹이”라는 대 자연의 섭리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자본주의 본래의 활력이 크게 약화되었지요. 그런데 이제 “세계화”라는 구조조정을 통해서 자본주의는 다시 국가 단위의 통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게 벗어나게 되고 기업들은 더 큰 규모로 자본을 축적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원초적 자본주의로의 회귀현상이 일어나 빈부의 격차는 다시 벌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어떤 이들은 아직도 원초적 자본주의가 각 개인이 생존을 위해서 필사적으로 경쟁하는 가운데 최상의 발전을 유지하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경제원리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아직도 원초적 자본주의를 이미 실패해서 무너진 공산주의라는 최악의 경제이념과 즐겨 비교함으로써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흑백논리의 틀에 가두어버리곤 하지요. 물론 원초적 자본주의가 채택했다는 적자생존의 섭리는 대자연 안에서는 생태계를 끊임없이 생명으로 채워주고 유지시켜주는 자연계의 신성한 법칙입니다. 그러나 대자연으로부터 추방당한 탕자와도 같은 인간들의 경제세계에는 그렇게 존엄한 법칙을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되겠지요. 세랭게티 초원에 사는 사자는 하루에 사슴 반 마리만 먹어도 배가 불러서 식욕이 없어지지만, 인간 사자들은 매일 사슴 수 백 마리를 먹어도 그 배가 차지 않아 먹이를 더 찾아다니며 자연 질서를 파괴하니까요. 이 인간 사자들이 대자연의 순리라고 주장하는 약육강식의 경제 논리를 아이러니컬하게도 세계 제일의 부자로 일컬어져온 빌 게이츠 씨는 맹렬히 비난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이들에게 더 많은 통제를 가하고 보다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죠. 미국 내의 거부들과 “지금은 가난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부자가 되리라”는 환상 속에 살고 있는 일부 서민들을 대변하는 어느 정당이 “작은 정부”를 만들자고 주창하는 이유도 알고 보면 바로 정부의 힘을 약화시켜 간섭을 줄이고 상대적으로 거부들이 마음껏 뛰노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각 나라의 경제권 안에서 비교적 독립적인 형태로 운영되던 국가단위의 자본주의가 세계적인 단일체로 통합되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띠게 일어난 변화는 한국이나 미국과 같이 잘 개발된 산업국가의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경제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갔기 때문에 실업률이 높아져 나이 쉰도 되기 전에 직장에서 물러나는 일이 흔하고 대학을 나와도 취직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 필연적인 결과일 수밖에요. 또 하나의 변화로서 해외의 값싼 노동력 덕택에 기업이윤은 급격히 증가하여 대기업의 사주들은 더 큰 부자가 되어, 이제는 최고급 스포츠카로 알려진 “페라리”가 품귀 현상이 일어나 한 대를 사려면 2년을 기다려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화 되어가는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선진국 서민들의 구매력이 약해져 자국 내 소비시장의 규모가 줄어들면서, 대기업들은 중국, 인도, 멕시코, 브라질, 동부유럽 등의 거대한 소비 인구의 늘어난 소득과 구매력을 상대로 저가 상품 개발 경쟁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비근한 예로, 삼성과 LG의 휴대폰이 디자인과 성능 면에서 세계 정상급이라는 것은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지만 세계 시장의 점유율에서 노키아에 크게 밀리게 되었는데, 그것은 두 회사가 세계적으로 바뀌어가는 시장의 큰 그림을 신속히 예견하지 못하고 저가상품 개발에 한 발 늦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의 국내 시장경제에 대해서 빌 게이츠 씨가 2008년 봄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미국이라는 시장은 현재 전 세계 시장의 21%의 규모를 가지고 있지만 앞으로 계속 줄어들어 결국 미국의 인구에 비례하는 세계 평균 수준으로 하락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현재 규모의 3~4분의 1이하로 미국의 서민경제가 쇠락할 것이라는 말인데, 자본주의의 구조조정으로 미국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악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 예견이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상당히 신빙성 있게 들립니다. 최소한 표면상으로나마 서민들 편에 서있던 미국 정부와 의회가 이제는 대 자본을 움직이는 거부들의 편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일들이 요즈음에는 자주 일어납니다. 빌 게이츠 씨는 2007년에 자기 소득의 17%를 세금으로 냈는데, 그의 비서는 그 작은 소득의 35%나 세금으로 냈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다시 한 번 모순투성이의 조세법에 분개하여 그것을 2008년 봄에 언론을 통해 항의한 적이 있었지요. 자기 재산의 거의 전부를 사회로 환원하겠다고 약속했고 현재 그것을 아프리카의 극빈자들을 중심으로 실천에 옮겨가고 있는 그가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부자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서민들은 더 가난해지고 있는데, 조세법은 부자들의 세금을 나날이 줄여가는 역방향으로 개정되고 있으니, 건강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의문을 제기하겠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부시 대통령은 “상속세를 폐지”하자는 운동에도 기수 역할을 해 왔는데, 빌 게이츠 씨는 그러한 움직임에도 제동을 걸고있어요. 그런데 대부분의 거부들은 이런 상황에서 세금을 더 적게 내겠다고 떼를 쓰고 있고 정치인들이 그것을 넌지시 두둔하고 있으니 참 가슴 답답할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끔 일부 인사들이 문제의 근원을 파악하지 못한 나머지 우리의 경제체제를 “천민자본주의”라고 조롱하며 자국민을 비하하곤 하는데요, 그분들은 먼저 한반도에는 천민이 살지 않는다는 사실부터 분명히 아셔야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 어디에 “귀족형 자본주의”가 있겠습니까? 원천적 자본주의가 “적자생존이라는 자연 질서”를 인간의 경제활동에 원색적으로 적용하는 것 자체에 천박함이 들어있는 것이지, 그것이 우리 국민성, 우리 민족성과는 직접 연관이 없는 일이거든요. 미국에서 바뀌어가는 것은 경제개념 뿐만이 아닙니다. 새 체제하에서 대기업들은 필연적으로 다국적 기업이 되기 때문에, 내 나라, 내 민족, 우리나라 등의 국가개념은 그만큼 옅어지고 내 자본이 투자되어 있는 곳, 내 공장의 근로자들이 사는 곳, 내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이 있는 곳이 기업주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곳이 되었습니다. 국경선은 군사적인 의미를 빼고 나면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려져 가지요. 물론 서민들은 자신들의 소득이 왜 이렇게 줄어들었으며 서민경제가 왜 이렇게 어려워졌는지 잘 이해하지는 못하면서도, 그들의 나라 사랑은 예전이나 다름없이 뜨겁다는 점이 오히려 특이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자본주의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는 그 정점에 금융계 업체들이 자리 잡고 있으나, 이 업체들의 고객 중에는 서민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서민들이 고통을 느끼면 이들도 그 영향을 직접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주택 융자의 절반가량을 장악하고 있던 대표적인 두 업체가 도산 위기에 처하게 되어 미국 정부의 관리하에 들어가게 됐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총 대출 규모가 무려 5조 달라 가량 된다는 이 두 업체에서 파급되는 위기가 과연 무사히 관리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죠. 그러나 자본주의의 구조조정으로 갑자기 축소되어가는 서민 소득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더라면, 최근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경제에 큰 타격을 준 “서브 프라임 모게지” 부도 사태도 예견이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같은 관점에서 예견이 가능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현재 시시각각 미국 경제의 목을 죄어오는 신용카드의 대규모 부도사태라고 합니다. 이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는 길을 인류가 찾을 수만 있다면 그건 홍해를 가르는 또 하나의 기적으로 기억될 지도 모를 일이지요. “미국 경제는 이제 회생할 기회를 거의 다 놓친 것 같다”는 일부 경제 석학들의 우려가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오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 어쩌면 우리는 당분간 생활양식, 사고방식도 새롭게 바꾸고 더불어 사는 지혜를 함께 모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곧 대륙에 상륙하리라고 예보되었던 허리케인이 갑자기 바다 쪽으로 그 방향을 바꾸어 빠져 나가듯, 다가오고 있는 경제 돌풍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사그라지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나라도 여러 가지 면에서 미국과 유사한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지만, 다가오는 고난을 우리 민족은 그 뛰어난 지혜와 끈질긴 생명력으로 무사히 이겨 나가게 될 것입니다. http://blog.naver.com/joh_duksung
[출처] 자본주의 구조조정과 미국경제|작성자 조박사 |
출처: 초록화원 원문보기 글쓴이: 해와달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먹이 사슬 부분에서 또 한번 웃기내요 ㅋㅋ 지금이 자본주의 모순의 한계점 인가요?? 인류는 어찌할 것인가 ㅋ 제발 지나친 노파심이었음 하지만... 글 읽을 때마다 두렵다 ㅋㅋ 난 머냐고 ㅋㅋ
자본주의의 모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하네요. 가끔은... 예전의 귀족정이 있었던게 원시 자본주의의 궁극이 귀족정으로 간게 아닐까 상상합니다. 거기서 권력 집결의 정점이 왕정이고, 그 권력이 중력붕괴를 일으켜 현대 민주정으로 간게 아닐까 합니다.
좋은 글이네요..많은 시사점을 주는것 같습니다.
감사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점점 무섭고도 혼란스러운 시대가 찾아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 지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분분한 분석들을 토대로, 우리의 대응방안은 무엇이 되어야하는지 논의해야할것입니다. 허나, 참된 논의조차도 부족한 현실정에서 단비같은 분석입니다.
예리한 분석이시군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함니다, 그누구에게서도 배울수 없었던 중진국들이 점차가난해질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배웠슴니다,안개가 걷히는 듯함니다,
그래서 결론이, 예견이 뭐죠? 결론은 앞에 있나요 아니면 뒤에 있나요?
결론은 대개 뒤에 있고 예견도 뒤에.. 앞으로 경제 위기는 더욱 심화 될 거구요, 미국은 더구나 신용위기까지 걱정되는 상황이니 투자는 삼가하시고 지켜보아야 한다는 거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