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아무나 하나
2013. 5. 26. 일
우리 궁궐 지킴이 여주 답사 날이다. 새벽부터 잠을 설친다. 늦을세라 광화문 재발견
사무실에 도착하니 6시20분 출발 한 시간 전이다. 세종대왕 동상으로 가서 사진을 찍고 치적을
읽었다. 임금님을 한 시간 씩이나 독대하다니 성은이 망극하다.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 세종이 계신 영릉에 英陵 도착 했다. 세종전, 훈민문이 보인다. 툴바 님이
나를 보고 묻는다. 전종세, 문민훈이 누구시지요 ? ㅋㅋㅋ ㅎㅎㅎ 현판 글씨는 왼쪽으로 읽는
게 원칙이다. 이심전심 손바닥을 쳤다. 50년 전 박정희 대통령은 광화문도 한글로 썼다.
그는 문화광 이셨다.
세종릉은 문인석과 무인석 사이길이 신작로다. 지금의 백성들이 봉심을奉審 한다. 신작로를
없애자니 어리석은 백성들의 접근성을 막는 일이요 두자니 보존성을 저해할까 두렵다. 능침
공간 현궁에玄宮 소음 공해는 없으신지요. 도끼자루 들고 상소라도 올려야 할까보다.
효종릉에 갔다. 홍살문을 지나 제향공간에 금천이 있다. 남다르니 독특하다. 정자각에서 서서
봐도 능침이 보인다.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되니 편리한 걸까 ? 동강 상하 릉 이니 앞 릉에는
곡장이 없다. 소통은 사랑하는 방법이다. 여행의 절반은 식도락이다. 임금님표 여주 쌀에
울금까지 섞었으니 금상첨화 호사를 누린다. 오늘은 나도 왕격이다. 기밀상궁 들라하라.
여흥 민 씨는 다섯이나 왕비가 되었다. 고종의 비 민 황후 생가 터에 갔다. 8세까지 자라던
집터다. 그 후 서울 감고당에서 자랐고 16세에 고종비가 된다. 6대 조상인 민씨 인현왕후
숙종비도 감고당에서 자랐다. 이 곳에는 각각의 부친인 민치록 민유중 묘역이 있다.
목아 박물관에 들렸다. 전통의 보전은 문화 창조를 포용 한다. 사후 재판소는 명부전을 다르게
불러본 이름이다. 멋지다. 시원하다. 쉽다. 사람은 죽으면 10 명이 재판을 한다. 우선 7일간 씩
7명이 각각 기록을 검토한다. 49제는 제발 잘 부탁한다는 뜻이다. 나머지 세 명은 1년, 3년,
10년 씩 정밀 분석한다. 1심 2심 대법원 삼심제도가 확립된 셈이다. 그러고도 억울하면
헌법재판소에 구조를 받는다. 지장보살이 소장으로 수 백 번 이라도 중생을 구제하신다.
신륵사는 절 이름 현판이 구룡루 뒤 쪽에 걸려있다. 들어가면서 보면 구룡루현판 만 보인다.
이용부의 별명은 용의 아버지 이다. 용생구자설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
고달사지를 끝으로 답사를 마쳤다.
요즈음 나는 대중가요를 부른다. 답사는 아무나 하나 눈이라도 마주쳐야지 만남의 기쁨도
이별의 아픔도 두 사람이 만드는 것 만나고 만나도 느끼지 못하면 모르는 건 마찬가지다.
올 때 마다 느끼고 싶다. 답사는 사랑 이다.
첫댓글 답사 다시 한 번 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읽고 보았습니다.
신륵사의 천지개벽에 황당함이여 .오래전 답사의 추억을 더듬어 보려해도 도무지 기억이 겹쳐지지않아...
자왈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도를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好之者不如樂之者 좋아 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답사는 느끼고 즐기는 것이라는 제 글의 요지 입니다. 감사 합니다.
샘덕분에 다시 여주에 가는느낌 선생님은 역시 선배님이라 보시는 눈도 특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