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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다리'라고도 불리는 주남 돌다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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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종찬 |
| 그해 여름이 유난히 무더우면 그해 겨울 또한 유난히 춥다고 누가 그랬던가. 날씨가 몹시 차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입김이 호호 나온다. 잠시만 걸어도 이내 손발이 시려오고 귀가 따끈거리는 게 턱까지 얼얼하다. 하긴 이만치도 춥지 않고 어찌 이 계절의 이름을 '겨울' 하고 불러줄 수 있겠는가.
과실도 따가운 햇살을 머금고 제대로 익어야 제맛이 나고 그리움도 강물 속처럼 깊어야 강파도에 반짝이는 윤슬처럼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일까. 오늘 바라보는 동읍의 빈 겨울 들판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마르고 텅 비어 있는 것만 같다. 하긴, 모든 것을 비워야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지 않겠는가.
겨울. 그래서 겨울의 겉모습은 그 어느 계절보다 더 쓸쓸하고 더 외로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을 담기 위해 지난 한해 동안 담았던 모든 것을 깡그리 비워 내는 계절, 그 계절이 바로 겨울이 아니겠는가. 그래. 어찌보면 네 계절 중 겨울이야말로 욕심으로 가득찬 사람들에게 진정한 비움을 가르치는 가장 깨끗한 계절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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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남 돌다리는 지금으로부터 약 800여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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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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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돌다리는 창원 동읍 판신마을과 대산면 고등포마을을 이어주던 다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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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종찬 |
| 갑신년을 꼭 하루 남겨둔 12월 30일 오후, 창원 동읍 주남저수지 옆에 있다는 주남 돌다리를 찾아 길을 나선다. 오늘 나서는 여행길은 아주 짧지만 아주 특별한 여행길이다. 왜? 지난 한해 내내 내 마음 속에 쌓았다 무너뜨리고 또 쌓았다 무너뜨린 묵은 돌탑을 치우고 새로운 돌탑을 쌓기 위한, 2004년 마지막 여행이기 때문이다.
주남 돌다리는 주남저수지를 에워싸고 있는 높다란 둑의 끝자락, 주남저수지의 힘줄 같은 주천강(注川江) 사이에 황새의 빼빼 마른 한쪽 다리처럼 외롭게 서 있다. 1996년 3월 11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55호로 지정된 이 돌다리는 다른 이름으로 '주남 새다리'라고도 불린다.
근데 왜 '주남 돌다리'란 멀쩡한 이름을 두고 하필이면 '새다리'라고 불렀을까. 주남저수지에 갖가지 철새 떼가 많이 날아든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을까. 아니다. 이 돌다리는 일제가 주남저수지를 만들기 훨씬 앞에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이곳에 주남저수지가 없을 때는 철새들도 지금처럼 그리 많이 날아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철새가 떼지어 앉아 모이를 쪼고 있는 저 널찍한 들판도 주남저수지를 쌓기 전에는 모두 늪지대였다더구먼." "근데 왜 이 다리를 새다리라고 불렀을까요?" "그때에도 새는 제법 많이 날아들었겠지.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새 때문에 그리 부른 것이 아니라 두 마을을 갈라 놓고 있는 주천강 사이에 있는 다리, 즉 '사이 다리'가 줄어들어 '새다리'로 변한 것 같아." "하긴 경상도 사람들은 할머니를 할매, 할아버지를 할배라고 줄여서 부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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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창살로 막아 놓았지만 요즈음도 사람들이 많이 다닌 흔적이 또렷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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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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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돌다리의 덮개돌은 봉림산(정병산) 꼭대기에서 가져온 돌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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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종찬 |
| 2004년 나의 마지막 여행길에 '바람을 쐬고 싶다'며 함께 나선 이선관(64) 시인의 말에 따르면 주남 돌다리가 놓여져 있는 이곳 주천강의 높다란 둑도 예전에는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고 한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왜냐하면 지금 바라보는 주남돌다리가 주천강의 높다란 둑 아래 포옥 파묻혀 있기 때문이다.
창원시 동읍(東邑)과 대산면을 가르는 주천강(注川江)에 놓여져 있는 이 돌다리는 동읍 판신마을과 대산면 고등포마을을 이어주는 돌다리이다. 안내 자료에 따르면 이 돌다리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800여년 앞 주천강을 사이에 끼고 살았던 두 마을 사람들이 서로의 왕래를 위해 놓은 것이라고 어림 짐작하고 있다.
"이건 전설이긴 하지만… 그때 두 마을 사람들이 이 돌다리를 놓기 위해 동읍 덕산리 봉림산(567m)을 헤집다가 산꼭대기에서 길이 4m가 넘는 자웅석(雌雄石) 두개를 찾았다는구먼. 그 중 돌 하나를 옮겨려고 했는데, 그 돌이 꼼짝을 하지 않았다는 거야.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할 수 없이 두개의 돌을 한꺼번에 옮겨와 이 다리를 놓았다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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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돌다리는 1967년에 내린 큰비 때문에 무너진 다리를 1996년 창원시에서 역사교육장으로 새롭게 복원한 다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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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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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쌍무지개가 뜬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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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종찬 |
|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돌다리는 그때 그 돌다리가 아니다. 이 돌다리는 1967년에 내린 큰비 때문에 무너진 다리를 1996년 창원시에서 역사 교육장으로 새롭게 복원한 다리이다. 그 당시 이 다리는 물에 잠긴 채 다리를 덮었던 널찍한 돌 한개와 기둥돌만 물 위에 삐쭘히 나와 있었다고 한다.
주남 돌다리는 모두 4개의 기둥돌 위에 길이 4m 남짓한 자연석 점판암의 넓적한 돌 4개를 덮었다. 기둥돌 4개 중 가운데 2개의 기둥돌은 마치 돌탑처럼 6층을 쌓았으며 나머지 2개의 기둥돌은 5층을 쌓아 무지개 모양으로 자연스럽게 휘게 했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돌다리와는 사뭇 색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이 돌다리는 다리의 구실을 아예 하지 못하고 있다. 홍수를 막기 위해 주천강 양 쪽에 큰 둑을 쌓아 다리가 그 두개의 높다란 둑 아래 파묻혀 있을 뿐만 아니라 둑 저만치 새로운 콘크리트 다리가 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리의 훼손을 막는다며 다리 양 쪽에 은빛 쇠창살까지 막아 놓아 더욱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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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건너기 위해 놓은 다리지만 지금은 쇠창살로 막아 놓아 건널 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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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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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의 주춧돌은 마치 탑을 쌓아올린 것 같은 모습을 띠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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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종찬 |
| 돌다리를 수갑처럼 채우고 있는 쇠창살 한 귀퉁이에는 그동안 사람들이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큰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겨울 햇살이 내리쬐는 주남 돌다리 위가 거울처럼 빤질빤질 빛이 난다. 요즈음도 쇠창살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이 수없이 드나들고 있다는 증거다.
하긴, 사람이 건너기 위해서 놓아둔 돌다리가 아닌가. 한동안 돌다리를 바라보고 있을 때 철새 한무리가 V자를 그리며 주남저수지를 향해 천천히 날아간다. 그래. 어쩌면 저 철새들은 사람이 놓은 이 조그만 돌다리를 바라보며 콧방귀를 뀌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늘을 몽땅 다리로 삼으며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닌다며.
"멀리서 보니 마치 오작교 같구먼." "오작교는 일년에 꼭 한번 까마귀가 놓지만 건너갈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근데 저 다리는 일년 내내 놓여 있는데도 건너갈 수가 없으니…" "그러니까 더더욱 안쓰럽지. 임진각에 있는 돌아오지 않는 그 다리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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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널 수 없는 다리라서 그런지, 겨울이어서 그런지 다리가 몹시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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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이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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