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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느림보 산악회를 따라 다닌지도 어언 두달이 지났는가 보다.
찌릿 찌릿한 명산의 지기를 한껏 받아서 인지 눈까리만 마주 치면 하이에나처럼 으르릉 거리던
우리 집꾸석 분위기도 산악회를 따라 다니기 전에는 생각지도 몬한 야간 숙제 몇 번 실시한 덕분이랄까?
호전의 기미가 보이면서 난생 처음으로 식탁 위에 자그만 도시락 꾸러미 하나가 눈에 띈다.
꼭두새벽에 일어 나기 귀찮다고 물론 어제 저녁에 준비해 둔 것이긴 하지만 나로선 감지덕지할 뿐이다.
혼자 차지 하고 드러 누운 퀸 싸이즈 침대가 몹시도 비좁아 보이는 마눌님 행여 잠이나 설칠까
조심스레 현관문을 밀치고 나오는 순간 난 이미 탐욕과 분노로 이글거리는 속세를 벗어 나 선계의 문턱에
그 발끝을 드리 댄 것이다.
소백산 인근에 고향땅을 둔 내가 이제껏 딱 한번 그러니깐 중학교를 다닐 적에 풍기 희방사로 가을 소풍을
다녀 온 것이 고작이다.
우리 학창 시절만 해도 경상도 북부지구에서 서울로 가는 교통 수단은 청량리까지 무려 12시간이나 걸리는
완행열차 (통일호)를 타고, 풍기에서 소백산맥을 관통하는 죽령 직선터널(4.5km)을 지나고 이어서 죽령과 치악에
있는 공포의 따배기 (또아리) 터널을 지나는 열차길이 유일하다.
열차는 산간지대에서 구배가 심할 경우에는 진행이 불가능하므로 위에서 내려다 보는 평면도 개념으로 본다면
완전히 360도 원을 그리는 루푸형 선로를 만들게 되는데 죽령과 치악에 있는 터널이 바로 이런 따배기 터널이다.
통풍과 환기가 제대로 이루어 지질 않아서 열차가 갑작스레 터널로 진입을 하면 뿌연 연기와 함께 매케한 냄새가
어린 마음을 몹시도 주눅들게 하던 아름다운 추억이 몹시도 새롭다.
유럽의 고지대 산간지역에선 치차식 열차를 운행하는데 치차식 열차란 말 그대로 궤도와 열차 바퀴가
톱니 형태로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에 미끌어 짐이 없이 급한 구배를 올라 가게 되는 것을 말한다.
단양을 지나며 중앙 고속도로 상에서 소백산맥을 관통하는 국내 최장 죽령터널(4.6km)을 통과하기 바쁘게
풍기 I.C.에서 느림보 버스가 잠시 가쁜 숨을 진정시키곤 이어 풍기 읍내를 통과하여 오늘의 산행 시작점인
소백산 비로사 매표소를 향한다.
오늘은 새로이 우리 느림보 산악회를 찾아 오신 회원님들이 너무도 많다.
여느 산을 좋아 하시는 분들처럼 밝은 인상과 선한 품성들이 한껏 느껴지시는 분들이다.
대물이나 하나 건질까 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사방을 승냥이처럼 매섭게 두리번 거리는 내 모습이
행여나 단체 사진에서는 나오지 말아야 할텐데 여직도 걱정스럽다.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니 좌측으로 비로사 일주문이 보인다.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에 이어 비로사란 사찰명은 아마도 비로자나불에서 그 유래가 이루어진 듯 하다.
불가에서 비로자나불은 법신불이라고 하여 법 즉 진리 자체를 형상화한 부처님을 말한다.
복날 철창에 갇힌 똥개처럼 긴 혀를 빼 물고, 연신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비로봉이 눈 앞에 보이는 지점에
당도하니 시원한 숲그늘 밑에 강 대장님을 비롯한 여러 느림보님들이 막 점심상을 벌리고 있다.
오늘은 처음으로 호랑이님과 점심 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는데 짜장! 오늘의 사달은 여기서 부터 벌어 지게 된다.
호랑이님이 가져 오신 밥과 반찬은 누가 봐도 사또상 정도가 틀림없어 보여, 보는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탄성을 지르자 옆에 계시던 강 대장님 말씀이 지난 번에 본 점심 도시락엔 글쎄 반찬으로 하트 문양이
오롯히 만들어 져 있었다지 멉니껴?
저룬 연세에 집에서 사또 아니 황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비책은 멀까? 하고 생각해 볼 필요도 엄따.
의외로 간단히 정답이 나온다.
관상학에서는 귀가 잘 생긴 거지는 나올 수가 있어도 관상의 대들보인 코 잘 생긴 거지는 결코 엄따고 한다.
글구 남자는 코 큰 분이, 여자는 입 큰 분이 구렇고 구렇다고 하는 말은 사람이 어머니 자궁 속에서 수태되어
처음으로 인간의 모양새를 만들어 질 적에 코가 크게 나오면 그시기도 당연히 큼지막하게, 입이 많이 벌어 지면
자연스레 그시...
라는 말은 학술적으론 근거가 없는 말이라고들 하지만
보는 이들의 시선을 압도하는 호랑이님의 우람하신 복코와 사모님의 정성스런 도시락 반찬과의 상관 관계는
나처럼 집꾸석에서 하인 노릇만 하는 인간 군상들의 영원한 노스텔쟈라 아니 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쪽 팔려서 아무도 모르게 등산 가방에 손을 쑤셔 넣곤 슬며시 내 뻰또를 꺼내는 순간 흐미!
웬일이래요?
도시락 위에 너무도 구엽게 생긴 자그만 카드 한장이 분홍빛 테이프에 묶여 있지 멉니껴?
역시나 하는 마음으로 황급히 카드를 펼쳐 보니 우리 예팬네께서 글씨 결혼 이후엔 처음으로 편지를 썻드라구요.
"넌 내 꺼야."
한참을 망설이다 집에 들어 가서 마자 디질 때 디지드래도 현대 문명의 이기를 사용키로 결정하곤
저도 핸펀 문자를 날렸습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비로봉 정상에서 국망봉으로 이어 지는 선계의 가든 파티 철쭉 향연은 필설로는 감당키 어렵습니다.
온 몸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소백산 산바람은 일분이 채 안되어 오줌이 설 설 나올 정도이더군요.
약 먹은 삥아리처럼 축 처진 몰골로 비로봉 정상 한쪽 구퉁이에서 배실 배실 거리고 있노라니
갑자기 강 대장님이 손을 이끄신다.
비로봉 정상석으로 다가 가셔선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박을려고 정말 개떼처럼 몰려 드는 사람들을 향해
이 분은 난생 처음으로 이곳 소백산 정상을 오르신 인간 승리의 표상이라시며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하시곤
멀떼처럼 멀건한 모습으로 정상석 옆에 선 제 사진을 찍어 주시더만요.
콧잔등이 찡하고 눈이 벌개 져서 등산모를 깊이 눌러 쓰곤 철쭉 군락 속으로 황급히 몸을 숨겨 버렸습니다.
소백산의 조망은 남들이 말하는 백두 대간의 웅장한 지맥이 과연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나는 압권이었습니다.
옆에서 호랑이님과 함께 촬영에 열중이시던 곰순님께선 엄청 비싸 보이는 카메라를 제 손에 안기면서
카메라 뷰 파인더를 통해서 정상과 그 뒤의 코발트색 하늘과 함께 한점 흰구름의 조화를 보라시곤
멀리 내려다 보이는 풍기 땅을 손짓 하며 조선땅 제일의 혈처가 이곳 풍기라시면서 천문 지리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전수해 주신다.
정감록이나 남 사고의 격암유록, 도선 스님의 도선비기,그리고 이 중환의 택리지를 비롯한 여러 문헌에서
거론되는 십승지란 곳이 있다.
말 그대로 풀이를 하면 싸우면 필승을 한다는 열곳의 지명을 말하는데 그 열곳 중 다섯곳 이상이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맞 닿는 이 일대 즉 풍기를 비롯하여 영월 봉화 단양 안동 예천 등 등인데 그 중 어떤 문헌에서도
가장 일순위로 등장하는 곳이 바로 이곳 풍기란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세태로 본다면 별 의미가 없는 논리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십승지란 곳이 밀려 드는 외적에 대항해서 싸우는 곳이 아니라 들어 가는 입구는 무척이나 좁아서 쉽게 찾기가
어렵고 들어 가면 넓직하고 풍요로운 땅이 펼쳐져 있어 일년 농사를 지으면 삼년을 먹고 살 수가 있다는
삼재불입지지를 말한다.
삼재 즉 전란,그리고 병마와 기근이 들어 오지 못하는 피난처를 의미한다.
도피 사상이랄 수가 있는데, 경북 울진에서 영양 남씨로 태어 난 격암 남 사고는 천문과 지리에 통달하였으나
평생을 미관 말직에서 하급관리로 녹을 먹으며 엄청이나 박복하였던 탓에 부모의 은덕을 입고자 아버님 묘소를
여러 번에 걸쳐 이장을 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남의 힘 즉 타력에 의존케 되면서 아래와 같은
유명한 일화를 낳는다.
천하를 정신없이 헤매이다 비룡이 승천을 하는 조선 제일의 혈처에서 아버님 묘소를 아홉번 째로 이장을 하며
자연스레 열번의 장례를 치루는 현장을 지나던 한 술객이
구천십장을 하는 남 사고야 비룡승천 좋아 마라 고사괘수가 아니더냐?
비룡 승천이 아니라 말아 비틀어 죽은 뱀이 나무에 걸려 있는 형국이란 것이다.
돌아 보니 이미 술객은 보이질 않고 정신을 차려 다시 지형을 돌아다 보니 고사괘수가 틀림없어 사람의 운은
인력으로 어찌 할 수가 없다는 점을 깨닫곤 평범한 묘자리에 아버님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생거 진천 사거 용인이라고 살아 선 진천 땅이 제일이라고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리들 같은 쫌생이들
눈으로 볼 적엔 진천 땅에서 만석지기로 사는 넘 보단 압구정이나 뒷구정동에 째맨한 빌딩 하나 갖고 있는 넘이
헐 낫지 않겠습니껴?
격암 남 사고 선생처럼 옛말에 열가지 재주 가진 넘의 집꾸석엔 한끼 땟꺼리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예팬네가 늘상 하는 지긋 지긋한 잔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당신은 돈 한푼 변변히 벌어 들이는 재주는 어딜 가고 허구헌 날 주둥이로 하는 일만은 천하 제일이라고 한다.
빌어 먹을...
글구 자기 혼자서 씨부렁 거리는 말을 산중에서 수도하며 익힌 염력으로 들어 보면 더 더욱 가관이다.
밤중에 그넘은 온데 간데 엄꼬 주둥이만 드리 댄... 히 히.
국망봉에서 어의곡으로 하산 하는 길은 습한 음지길이어서 바위들이 온통 이끼들로 덮혀 있어 인디애나 죤스에
나오는 신비스러움이 느껴지는 곳이다.
참이나 취나물도 뜯고 더덕은 그 진한 향내만 여러 번을 맡았다.
아쉬운 뒷풀이와 계곡에서의 알탕 얘기는 잠시 접고 오늘 산행기는 아무래도 이쯤해서
마무리를 해야만 할 것 같다.
같이 하산하시던 느림보님 한 분이 넘어 지시면서 약간의 찰과상을 입었다.
함께 손을 부여 잡고 험한 계곡길을 참으로 오래도록 걷고 또 걸었는데 성치 않으신 몸으로 한마디 푸념도 없이
다른 분들이 기다리는 폐를 끼치기 싫으시다 시며 힘겨운 걸음을 하시는 그 분의 인격과 놀라운 자제력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핸펀이 불통 지역이라 먼저, 급히 하산을 하신 호랑이님 연락을 받은 강 대장님과 아리수 대장님께서 멀리서
느림보 하고 부르는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두 분이 보이는 계곡을 건너는 징검다리에 당도하여서야 나도 몰래 한숨이 나오며 그제서야
힘겹게 버팅기던 다리의 힘이 풀려 버린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심한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난 여직도 그 분의 빠른 쾌차를 간절히 빌고 또 빌을 따름이다.
부디 건강하신 모습으로 다시 한번 더 느림보에서 뵙기를 간절히 기원 드립니다.
탄천변에서 돌삐 드립니다.
첨언 : 어의곡 계곡은 핸펀이 불통 지역이기도 하거니와 다치신 분을 부축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가 보다.
느림보 버스에 탑승을 하고서야 보니 마음 한구석 찜찜해 했던 마눌님의 답신 문자가 들어 와 있었다.
심호흡을 여러 번을 하고서야 갠신히 핸펀을 열었다.
"문찌방에 저엇 찡기는 소리 좀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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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돌삐님
글 잘 읽었습니다, 항상 재미있는 글로 저희 느림보들을 기쁘게
........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치신 분을 모시고 오느라고 수고 하셨고요,,.
근데..."문찌방에 저엇 찡기는 소리" 는 어떻게 들릴가요
진짜 호랑이 얼굴을 다시 한번 감상 해보시라요.
얼마나 잘생기고 복코인지를
나같은건 어림 서푼어치도 없는디
얼마나 넉살 좋은 야그만 하시는지.
소백산 정상에서..정상석 앞에서




..
..


증명사진 찍는게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딩때 소풍온게 고작이라면 40평생 처음인데
잘 생긴 소백산 표지석 앞에서 떡 하니..한장 증명사진은 찍으셔야...
그날 제가 좀 심하게 주위를 물리친건 사실입니다.
저 그렇게 교양없는 여자는 아닌데..
그자리에서 얌전하게 처분만 기다리다간 해가 질것같아서..좀 오버했습니다.
그렇다고 산나리가 저런 여자구나..하심 아니 됩니다.
그건 순전히 돌삐님 정상사진 남겨 드릴려는 충정어린 행동이었슴다.
그나저나...집에서는 늘 그렇게 사십니까
돌삐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갈 길은 먼데 ... 정말 난감 했었지요~
돌삐님 계셔서 든든한 그 날이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점심을 먹듯
산행을 하고나면 당연히 기다려지는 돌삐님 산행기가 있어
화요일이 기다려지고...
개근상도 기다려지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