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
김서정
저녁나절의 서쪽 하늘에 속 손톱 모양의 초승달이 걸려 있다. 보호색을 띤 곤충처럼 희읍스름한 하늘 한 귀퉁이에 꼭 숨어 있다. 먹다 만 덜 익은 수박 같은 희멀건 달이지만 내겐 잊을 수 없는 문신 같은 기억을 남긴 달이다.
어느 여름 저녁 철모르는 처녀 같은 초승달이 내 발등 위에 떨어졌다. 느닷없는 기습에 어슴푸레하던 하늘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했고, 난 망각의 강 저편으로 도망치듯 내달렸다. 정신이 들었을 땐 이미 하늘의 초승달이 왼쪽 발등 위에 내려와 있었다. 서쪽 하늘에 새색시의 눈썹 같은 초승달이 뜨면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공동우물이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아직 열 살도 안 된 작은 소녀가 있다. 허옇게 드러난 발등 위의 뼈를 바라보며 절규하는 엄마도 있다. 새파랗게 질린 마을의 오빠들이 있고, 깜짝 놀라 마구 울어대는 소녀의 친구들이 있다. 소녀는 그들에게 둘러싸여 깊은 잠에라도 빠진 듯 오히려 편안한 얼굴이다. 작은 마을에 오랜만에 택시가 들어오고 벌집이라도 건드린 듯 온 마을이 술렁거린다. 간간이 들려오던 소쩍새의 울음소리도 잦아들고 무논에서 들려오던 개구리의 합창도 더는 들리지 않는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잠에서 깨어난 소녀가 엄마의 등에 업혀 사탕을 먹고 있다. 발등 위의 상처는 아랑곳없이 엄마의 등이 마냥 좋다. 입 안에서 녹아내리는 사탕의 달콤한 향보다 엄마의 등에서 나는 땀 냄새가 더 좋다. 엄마의 땀 냄새는 장미꽃보다 향기로운 향수가 된다. 소녀를 업은 등에 촉촉하게 땀이 채이고 휘어질 듯 허리도 아파오지만 등 뒤로 느껴지는 소녀의 숨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감미로운 음악이 된다. 잠 깨지 않는 소녀 옆에서 밤을 새우며 기도하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에서 좁쌀 같은 소름이 돋는다. 짧은 여름밤이 왜 그리도 길던지, 엄마의 평생에 가장 긴 여름밤이었다. 간절한 기도를 드리던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 등에 업힌 소녀의 무게는 깃털보다 더 가볍다.
초저녁의 어스름이 내리는 어느 여름 저녁, 서쪽 하늘엔 반달보다 더 초라한 초승달이 밤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쯤 나는 더위를 피해 친구들이랑 저녁을 먹은 뒤 어울려 노는 일에 익숙해 있었고, 그날도 여는 날과 다름없이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느티나무 아래를 지나가고 있었다. 조금 뒤에 닥쳐올 초승달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생각조차도 하지 못하고 즐겁기만 했다. 초승달이 밝히지 못하는 어둠처럼 난 한치 앞 나의 운명도 모른 채 노래 부르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알았던들 이미 초승달과의 만남이 예약되어 있었다면 무슨 수로 그 만남을 피할 수 있었으랴.
동네 오빠들이 마을에 있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위에 올라가 까치집을 뜯고 있었다. 연유야 알 수 없지만 까치집을 뜯은 대나무 막대기를 나무 아래로 던졌고 때마침 나무 밑을 지나가던 내 발등에 내리꽂혔다. 발등은 푹 패인 초승달처럼 희미한 그림자를 남긴 채 그해 여름 동안 꼼짝없이 방안에 나를 묶어두고 말았다. 초승달이 발등 위로 떨어졌던 그날 밤이 너무 무서워 한동안 초승달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서늘한 눈매로 냉소하듯 내려다볼 땐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런 날이면 날이 새도록 지독한 악몽에 시달렸고 밤새 흘린 식은땀은 이불을 눅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춘기 소녀 시절엔 행여 친구들이 볼까 부끄러운 마음에 한여름에도 양말을 벗지 않았다. 눈에 잘 띄지도 않으련만 애써 숨기려고 안간힘을 썼다. 빛을 보지 못한 하얀 발은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예뻤지만 발등 위의 초승달 흉터만은 보이기 싫었다. 처음엔 불룩했던 흉터도 세월이 지나면서 납작해졌다. 파도에 휩쓸려서 동글동글 매끈해진 바닷가의 조약돌처럼 흉터도 세월의 파도에 자신의 살을 깎아낸 것일까.
"그래! 네가 내 딸을 살렸구나. 너 아니었으면 큰일이 날 뻔했지." 엄마는 잠자고 있는 내 발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을 하셨다. 머리에 정통으로 맞았다면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불효를 저지를 뻔했으니 발등 위의 흉터는 내 생명을 구한 대가로 얻은 소중한 훈장이었다. 흉터를 쓰다듬는 엄마의 마음을 안 그날 이후, 발등 위의 납작 엎드린 흉터는 더는 부끄러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쳐다보기도 싫던 서쪽 하늘의 초승달도 독부의 미소가 아니라 환하게 웃는 엄마의 자애로운 미소로 보였다.
끔찍했던 그날의 기억을 소중한 추억으로 가슴에 새길 수 있었던 것도 엄마의 지극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곡진한 사랑은 초승달에 대한 나의 기억을 완전히 바꿔 놓았고, 평생을 부끄러워하며 양말 속에 숨겨 놓았을 발등 위의 초승달에 따스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을 선물했다. 무서웠던 하늘의 초승달을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들어가는 소중한 문으로 만들어 주었다.
초승달이 뜨는 날이면 유난히 엄마 생각이 난다. 코끝엔 어느새 엄마의 땀냄새가 나고 두 팔을 벌려 안으면 엄마의 등에 업힌 듯 편안해진다. 눈을 감으면 내 두 팔은 엄마의 긴 목을 감싸는 목도리가 된다. 발등 위의 초승달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계수나무 아래 방아 찧는 토끼는 없다. 허연 뼈도 보이지 않는다. 그곳엔 맑은 물에 비친 하늘처럼 환한 웃음 짓고 있는 엄마가 있다. 가만히 손을 올려 놓으면 아직도 엄마의 체온이 남아 있는 듯 따사로움마저 느껴진다.
초승달은 엄마의 모습을 간직한 한 장의 소중한 사진이다. 잊혀가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는 보물창고다. 오늘도 서쪽 하늘에 가느스름한 초승달이 떴다. 발등의 초승달 흉터에 두 손을 올리고 유년의 방문을 살며시 연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 그리운 먼 기억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하얀 붕대를 감고 엄마의 등에 업힌 작은 소녀가 다정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