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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시칠리아 팔레르모 마시모 대극장 실황 / 112분>
길 샤함 & 베를린 필하모니커 & 클라우디오 아바도 / 2002 유러피언 콘서트 실황
=== 프로덕션 노트 ===
유로피언 콘서트 2002, 팔레르모
베토벤 : 에그몬트 서곡
브람스 : 바이올린협주곡 D장조 Op.77
드보르자크 :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 Op.95
2002년 베를린 필하모니 유로피언 콘서트 실황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베를린필의 마지막 공연
베를린 필의 유로피안 콘서트는1882년 5월 1일 창립기념일을 기념하여 매해 열리는 정기 연주회이다. 연주 장소는 역사,문화적으로 특별한 의의를 갖는 도시 중에서 해마다 바꿔가며 선정하는데, 2002년 연주회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주도(州都) 팔레르모의 마시모 극장(Teatro Massimo, 팔레르모 대극장)에서 열렸다.
이 연주는 이탈리아 출신의 명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베를린 필과 12년간의 음악감독으로서는 마지막으로 가진 연주이기도 하다. 1990년 베를린 필에 입성하여 상임지휘자가 된 아바도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30년에 걸쳐 닦아놓은 악단의 명성을 이어가야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고 이끌어 갈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는 독단적인 운영보다 민주적 합의를 통한 '음악 만들기'를 중시하는 지휘자였다.
아바도는 자신의 저서 '베를린의 음악(Musik uber Berlin)'에서 이렇게 말했다. "음악을 만드는 일에 있어서 필수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과 자유로운 표현, 철저한 탐구는 내가 베를린 필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데 하나의 원칙이나 지침으로 삼을 수 있었다." 또한, 그는 본래 매우 예민할 수밖에 없는 악단에 70명 가량의 새로운 연주자들을 영입해서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는 부담도 안고 있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바도는 확고한 스타일과 독특한 음색을 창출하여 카라얀의 악단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성공했으며 베를린 필의 위대한 전통을 깨뜨리지 않고 지속시킬 수 있었다. 그의 뛰어난 능력은 예술적 신념과 색다른 스타일의 '음악 만들기', 그리고 독창적인 프로그램 편성과 심리기술 등 그가 지니고 있는 큰 역량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음악 애호가들과 언론의 반응도 찬사로 가득했다..
=== 작품 해설 === <출처 : 2009년 11월 23일 네이버캐스트 / 월간 라 뮤지카 편집장 김효진 글>
명곡 명연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77
베토벤, 멘델스존의 곡과 더불어 3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 불려진다
1879년 1월 1일 친구 요아힘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1870년대는 브람스에게 매우 생산적인 시기였다. [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 [교향곡 1번]과 [2번] 같은 대작들이 이 10년의 기간 동안 작곡되었기 때문이다. 1878년의 여름, 오스트리아의 휴양지 푀르트샤흐(Poertschach)에서 그의 오랜 친구이자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이 연주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떠올리고 있었다.
장엄한 양식을 가진 바이올린 협주곡을 구상하다
처음부터 브람스가 요아힘의 연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1877년 여름 바덴바덴에서 파블로 데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 1844~1908)가 연주하는 막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의 초연 현장에 있던 브람스는 이 스페인 출신의 비르투오조에게 완전히 넋이 나갔다. 물론 그는 브루흐의 협주곡에 대해서는 그다지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독주자의 화려한 바이올린 연주에는 감탄을 표시했다. 브람스는 결국 장엄한 양식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브람스가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모델로 생각했던 것은 베토벤의 협주곡이었지만, 조반니 비오티의 [바이올린 협주곡 22번]에서 첫 번째 씨앗을 발견했다. 브람스가 이 협주곡을 작곡하던 바로 그 해에도 요아힘과 함께 비오티의 협주곡을 연주했고 클라라 슈만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것은 비오티의 [협주곡 22번]입니다. 대단히 독창적인 상상력이 인상적이었고 요아힘의 연주도 끝내줬죠. 어떻게 이처럼 훌륭한 작품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군요.”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과 의견을 주고받은 작곡과정
브람스가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는 과정에서 요아힘의 역할은,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과장된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브람스와 요아힘이 교환한 편지를 보면, 이 두 사람은 활발하게 의견을 주고 받았다. 그러나 브람스가 요아힘의 기술적인 조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요아힘은 너무 어려운 기교적인 부분을 수정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결국 완성된 판본은 브람스의 굳은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아힘의 역할은 비록 한정된 부분이지만, 분명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탄생에 하나의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요아힘은 브람스가 바이올린 협주곡을 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나의 오랜 친구인 당신이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 얼마나 마음이 설레였는지. 더군다나 4악장의 협주곡이라니……. 독주 부분을 세심하게 보고 있는데 몇 군데는 손을 좀 봐야할 것 같더군요. 물론 총보가 아닌 파트보만을 보고서 판단하기는 좀 어렵지만 말입니다. 이 협주곡은 대단히 독창적인 것 같습니다. 실제 연주할 때의 효과가 어떨지는 지금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이 삼일 내로 함께 만나서 여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습니다.”
1878년 10월 23일, 브람스는 요아힘에게 “지금 아다지오와 스케르초 부분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라는 편지를 보낸다. 한 달 후에는 “원래 계획했던 2개의 중간 악장을 빼버리기로 결심했고 대신 아다지오를 넣었어요. 이렇게 하는 것이 전체적인 구성에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독주자도 난색을 표한 어려운 기교의 걸작
요아힘의 손에 완성본이 전해진 것은 1878년 12월 12일이었고, 초연까지는 보름이 조금 넘게 남아 있었지만 리허설이 예정되어 있던 25일까지는 열 이틀 밖에 시간이 없었다. 여전히 요아힘은 클라라 슈만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독주 부분이 너무 어렵다고 투덜거렸다. 초연 장소도 계속 표류중이었다. 프라하나 부다페스트가 물망에 오르다가 베를린과 빈으로 그러다 결국 라이프치히로 결정되었다. 1879년 1월 1일, 브람스가 지휘하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요제프 요아힘의 협연으로 초연되었다. 사라사테 같은 연주자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지만, 20세기 초반 에밀 소레와 앙리 마르토 그리고 브로니수아프 후베르만, 아돌프 부슈, 프리츠 크라이슬러같은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브람스 연주를 통해 자신들의 명성을 높였다. 현재 이 곡은 베토벤, 멘델스존의 작품과 함께 3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 불려지는 걸작이 되었다.
1악장 - 알레그로 논 트로포
부드러운 세 박자, 그리고 첫 주제의 3화음 등이 인상적이며, 두 개의 주제적 동기가 지닌 리듬의 특성은 매우 흥미롭다. 다섯 개의 4분 음표 음형이 반복되면서 조성된 부드럽고 서정적인 동기는 제1바이올린에 의해 펼쳐지며, 다섯 박자 음형의 동일반복은 기초가 되는 세 박자의 갈등 구조는 묘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으뜸음과 딸림음에서 지속되는 페달 포인트 위로 독주자는 46마디의 ‘기교적인 어려움’를 풀어야 한다.
2악장 - 아다지오
매력적인 오보에의 활약이 돋보이는 이 악장은 고독하고 쓸쓸한 정경을 제시한다. 유달리 아름다운 아다지오 악장에 대해 브람스 자신은 그다지 만족하지 않은 것 같다.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섬세한 대위법을 감상할 수 있다.
3악장 - 알레그로 지오코소, 마 논 트로포 비바체 - 포코 피우 프레스토
여섯 부분으로 된 론도는 독주 악기가 주제를 더블스톱으로 연주함으로써 시작된다. 헝가리의 짚시 스타일의 이 악장은 첼로의 셋잇단음표로 시작되는 코다가 파도처럼 긴장감을 높여나간다. 다만 브람스가 지시했듯이 ‘마 논 트로포 비바체’(그러나 너무 활기차지는 않게)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저음현의 피치카토에 이어 독주 바이올린은 8분음의 휴지부를 두면서 마무리 된다.
추천 음반
조화로운 아름다움의 연주 2장과 짜릿한 맛의 연주 2장을 골랐다.
조지 셸이 지휘하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다비드 오이스트라흐(EMI)의 음반은 조화로운 앙상블이 인상적이다.
키릴 콘드라신이 필하모니아를 지휘하고 레오니드 코간이 협연한 음반은 장엄한 스타일이 기억에 남는다.
프리츠 라이너가 지휘하는 시카고 심포니와 협연한 야샤 하이페츠의 음반(RCA)은 상당히 빠른 템포로 박진감 넘치는 연주를 들려준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빈필을 지휘하고 기돈 크레머가 협연한 음반(DG)은 전체적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짜릿한 맛을 주고 있다.
=== 작품 해설 === <2010년 4월 7일 네이버캐스트 / 황진규 글>
드보르작 교향곡 제9번 e단조 op.95
흑인, 인디언의 음악적 요소와 보헤미안의 감성이 절묘하게 융합된 작품
1893년에 작곡, 같은 해 12월 뉴욕필에 의해 카네기홀에서 초연
1891년은 드보르자크의 생애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해였다. 그는 이 해에 프라하 음악원의 작곡과 교수에 임명되었으며, 그 뒤 얼마 되지도 않아 미국에서 음악원 원장 자리를 제의받았던 것이다. 작곡과 교수 월급의 세 배가 넘는 거액의 급료는 물론이고 4개월에 걸친 휴가와 연주회를 한 해에 10회 지휘할 수 있다는 조건까지 덧붙여서. 음악가라면 누구라도 뿌리치기 힘들 이런 조건을 내세워 드보르자크를 유혹한 사람은 자넷 서버(Jeanette Thurber)라는 여성이었다. 열렬한 음악 애호가이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던 그녀는 부유한 사업가와 결혼한 뒤, 당시만 해도 척박하기 그지없었던 미국의 음악계를 개혁할 젊은 음악가들을 양성할 목적으로 뉴욕에 음악원을 설립했다. 그리고 그 원장 자리를 맡을 적임자로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까지 명성이 퍼져 있었던 드보르자크를 낙점했던 것이다.
사실 드보르자크가 이 자리를 덥석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조국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는 프라하 음악원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웠던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후한 조건 덕에 생활도 풍족해지고 창작 및 연주 활동의 자유도 보장된다는 판단에 결국 제의를 수락하게 되었다. 이 수락에는 미국의 기차와 방대한 철도 시스템을 눈으로 직접 보고자 했던 욕심도 큰 역할을 했으리라고 덧붙이는 사람도 있다(드보르자크는 자타가 공인하는 철도 마니아이기도 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작곡한 망향의 노래
드보르자크가 가족과 함께 뉴욕을 향해 출발한 것은 1892년 9월 15일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열렬한 환영 속에 뉴욕에 도착한 9월 27일부터, 이른바 그의 ‘미국 시기’가 펼쳐진다. 원래 2년 예정이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1895년 4월까지 연장된 이 시기는, [현악 사중주 F장조 ‘아메리카’]와 [현악 오중주 E플랫장조], [첼로 협주곡](체코 귀국 후에 완성되었다) 등의 대작이 나온 풍요로운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신세계 교향곡]은 이 시기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1893년 1월 10일에 착수되어 5월 24일에 완성된 이 교향곡은, 같은 해 12월 15일에 카네기 홀에서 공연되었다. 초연은 작곡가의 생애 최고라 할 수 있을 만큼 대성공이었으며, 이듬해에 유럽에서 악보가 출판될 때는 드보르자크와 절친한 사이였던 브람스가 교정을 도와주기도 했다.
드보르자크는 “미국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교향곡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인디언이나 흑인 음악을 차용했다는 것은 무의미한 소문일 뿐이며, 나는 다만 미국의 민요 정신을 넣어 작곡했을 뿐”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사실 선율이나 음계에서 인디언 음악이나 흑인 영가의 영향이 전혀 엿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드보르자크가 ‘신세계로부터’라는 제목을 붙일 때 염두에 두었던 것은 오히려 미국의 광활한 자연과 대도시의 활기에 대한 주관적인 인상이었다(특히 1악장과 4악장에 이런 인상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1악장 - 아다지오-알레그로 몰토
e단조 4/8박자 서주는 첼로 선율로 조용히 시작한 뒤 점차 악상이 고조돼 알레그로 주부로 넘어간다. 주부에서는 호른이 당김음을 사용한 1주제(상승했다가 곧바로 하강하는 단순한 선율이다)를 제시하고, g단조의 2주제는 목관악기로 부드럽게 제시된다. 코데타(‘작은 코다’라는 뜻으로, 코다가 아닌 곡 중간에서 코다처럼 종결감을 주는 악구)는 플루트가 제시하는 G장조 선율이 주축을 이루며, 발전부는 이 코데타의 선율을 활용한 뒤 1주제로 나아간다. 재현부는 제시부와 동일한 순서로 진행된다(g단조 주제를 경과구 주제로, G장조 선율을 2주제로 보기도 한다).
2악장 - 라르고
D플랫장조 4/4박자. 짧은 서주에 이어 잉글리시 호른이 유명한 주제를 노래한다. 이 주제는 ‘Going Home’이라는 제목의 노래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초연 당시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이 선율을 듣고 많은 여성이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중간부는 c샤프단조로, 클라리넷이 사랑스런 선율을 연주한다. 1악장의 1주제와 코데타 주제, 2악장 1부 주제가 한데 어울려 클라이맥스를 이룬 뒤 3부에서는 1부 주제가 자유로운 형태로 반복된다.
3악장 - 스케르초, 몰토 비바체
e단조, 3/4박자. 짧고 활기찬 서주에 이어 목관이 탐색하는 느낌의 주제를 제시한다. 1악장 2주제를 소재로 한 경과구를 지나 등장하는 트리오에서는 목관을 주축으로 해 밝고 낙천적인 주제를 연주한다. 이어 스케르초 섹션으로 되돌아가 코다로 이어지며, 코다에서는 1악장 1주제가 호른으로 연주되고 클라이맥스에서는 코데타 주제가 트럼펫으로 울려 퍼진다. 강렬한 총주와 함께 끝난다.
4악장 - 알레그로 콘 포코
e단조 4/4박자. 소나타 형식. 저음현이 연주하는 육중한 서주(영화 [죠스]에서 상어가 등장할 때 나오는 선율과 비슷하다)에 이어 1주제가 힘차게 연주된다. 이 주제의 앞쪽 절반은 응원전 같은 데서도 자주 들을 수 있다. 이어 클라리넷이 2주제를 아름답게 연주하며, 3악장 스케르초 주제도 등장한다. 발전부는 1주제 및 1악장 1주제, 2악장의 주요주제, 3악장 스케르초 주제 등이 어우러져 화려하게 전개되며, 재현부 다음의 코다에서도 각 악장의 주요 주제가 골고루 회상된다. 여운을 남기는 관악기의 긴 화음으로 곡이 마무리된다.
체코적이면서 동시에 미국적인, 교향악 예술의 걸작
이 곡은 작곡된 뒤 지금까지 인기를 잃은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는 이방인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음악적 이디엄으로 여겨지고 있다. 2년 전에 로린 마젤이 뉴욕 필하모닉을 이끌고 평양에서 연주회를 열었을 때 프로그램에 이 곡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비록 다분히 국제적(달리 말하자면 절충적)이고 보편적인 성격 때문에 드보르자크의 음악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인지 의문이 제기되는 경우가 간혹 있기는 해도(이런 의견에 어느 정도 공감하며, 그 이유 때문에 작곡가의 교향곡 가운데서는 8번을 더 좋아한다.) 형식과 내용 어느 쪽으로 보더라도 교향곡의 역사를 통틀어 대단한 걸작임은 부인할 수 없다.
시대가 다르고 유럽인과 아시아인의 관점이 다를 수 있지만, 또 ‘신세계’라는 명칭에, 그리고 그러한 명칭이 생겨난 역사적 연원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을 떠나 듣는다 해도 이 곡의 아름다움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 시대에는 오로지 자신의 마음속에서만 신세계를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스위스의 희곡작가 막스 프리쉬가 [만리장성]이라는 희곡에서 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한 말이다. 이 교향곡이, 어쩌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신세계’를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추천음반
아무래도 이 곡에 대해서는 체코 지휘자들의 발언권이 강할 수밖에 없는데, 그 가운데서도 세부에 대한 철저한 통제력과 특히 바이올린 파트를 빼어나게 다루는 솜씨가 돋보이는 바츨라프 노이만 / 체코 필하모닉의 1993년 녹음([신세계]의 초연 100주년 기념 음악회 실황)은 단연 압권이다.
체코 출신이 아닌 지휘자도 훌륭한 연주를 남긴 경우가 많아 이스트반 케르테스 / 런던 심포니의 1966년 녹음(Decca)은 억양과 리듬감이 뚜렷한 가운데 매우 격심한 대비를 보여주는 연주이며,
아바도 / 베를린 필의 1997년 실황 녹음(DG)은 강렬함과 섬세한 세부 묘사가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리듬감도 뛰어나다.
최근 녹음 가운데서는 금관이 놀랄 만큼 정교하고도 호쾌한 연주를 들려주며 각 성부의 균형감 역시 뛰어난 마린 앨솝 / 볼티모어 심포니의 2007년 녹음(Naxos)이 단연 주목할 만하다.
글 황진규
음악칼럼니스트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 코리아>에서 기자로 일했다. <객석>, <스트라드>, <인터내셔널 피아노>, <라 무지카> 등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말러, 브루크너, 쇼스타코비치, 닐센의 음악을 가장 좋아하며, 지휘자 가운데서는 귄터 반트를 특히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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