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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넘기 - 유럽 대륙횡단기(38)
* 하이밍 → Landeck 32.9Km
* 란데크 → St. Anton am Arlberg 26.7Km
* 장크트 안톤 → Klösterle 26.3 Km
※ 오스트리아 - 23~25일, 767.8Km ♣ 누계 - 총 109일, 2,969.3Km
G. L. Mallory는 에베레스트 등정을 세 차례나 시도했다.
두 번째 등정에 실패한 뒤 미국을 방문했을 때 맬러리는
뉴욕 타임스와의 기자회견 중에 질문을 받았다.
"왜 에베르스트를 오르는가?"
"산이 거기 있으니까."
그의 유명한 답변은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인간의 노력을
한마디로 집약시키고 있다. 맬러리는 1924년 에베르스트
3차 등정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었다.
'내셔날 지오그래픽' (100주년, 기념호 중에서)
알프스를 넘었다.
3일 동안에 86Km를 걸은 기록이다. 그 중에 알프스는 3일차에 넘은 거다.
역사적으로 알프스 넘기라면 보통 동↔서보다 남↔북의 경우를 말한다. 이유는 알프스가 남북 장벽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기원 전부터 오랜 세월에 알프스의 남쪽은 로마제국이라는 거대한 선진 문명과 북쪽은 게르만이라는 미개한 문명 사이에서 접촉과 충돌이 계속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유럽의 지붕'이라는 알프스는 대륙의 중남부를 동서로 1,200Km에 무려 7개국에 걸쳐 기다랗게 누어 있다. 하므로 예로부터 유럽에서 동서 교류는 용이했어도 남북 교류는 크나큰 걸림돌이었다. 어쩌면 바로 이 점이 정복자 옛로마인들이 - 바다로 진출은 선박을 이용하지만 - 애당초 광대한 내륙에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그 로만 로드를 건설하게 된 심리적인 동기유발인지도 모른다. 유럽에서 그물망 같은 크리스쳔들의 모든 순례길 역시도 당시에 로마인들이 닦아 놓은 소위 '로마길'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물론 이번에 필자의 기나긴 동서횡단 루트의 기본도 예외는 아니다.
19세기 후반에 본격화된 산악 등반 알피니즘(Alpinism)의 발상지도 티롤 알프스, 이 일대와 직전에 지나온 인스브루크도 아우른다. 그러므로 세계적인 등반 역사에서 전설의 등산가들도 바로 이곳에서 잔뼈가 굵어져 히말라야에 도전한 사람들이다. 이유는 알프스의 해발고도가 히말라야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프스 소개에서 모자라는 부분은 말미에서 또다시 부기로 첨부하련다.
하이밍 ~ 란데크 32.9Km
인스브루크에서 일찌감치 나섰기에 하이밍역에 도착하니 좀 이른 시간(9시)이다.
오늘은 란데크(Landeck)까지 갔지만 중간에 임스트(Imst)란 곳이 더 유명하다. 하지만 거기까지 15Km는 어쩐지 부족한 것같아 좀 더 멀리 가보자 했던 거다.
오늘의 출발지는 그냥 하이밍이 아니라 Haiming, in Tirol이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줄여서 보통 하이밍으로 통한다. 서양의 동네 이름은 이렇게 정식과 약식이 비일비재하다. 거긴 사람 이름도 본명보다 애칭에 더 흔하므로.....
하이밍 소개는 사실 어제 했어야지만 안그래도 이야기가 너무 장황했었다.
본 여행기를 정독해 오시는 분들께서는 하이밍은 이미 구면이 아니실지?
인터넷에서 하이밍(Haiming)을 검색하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각각 두세 곳이 있다. 지난 (36)편의 말미에서 '다뉴브강의 지리학'을 소개하면서 이미 거론했던 지명이다.
하이밍은 산골이다. 며칠 전부터 따라 오던 171번 도로변에서 살짝 북쪽으로 들어앉았다.
티롤 지방은 마을마다 대개가 그렇듯이 이곳 역시 관광 레저로, 특히 여름 스포츠가 주 수입원이다. 깊은 두메산골이지만 예사로운 동네가 아니다. 앞뒤로 광범위한 외츠탈(Oetztal) 계곡의 한 모퉁이에 자리잡아 티롤에서도 아웃도어의 센터급이란다.
그러고 보니 앞에서 동네 이름을 굳이 Haiming, in Tirol로 길죽하게 부르는 이유도 '티롤하면 하이밍이다'란 뜻일테다.
특히 앞으로 십리쯤(5Km)에 있는 외츠탈 반호프(Oetztal Banhof)란 마을이 핵심이다.
이 일대는 티롤 중에서도 이름난 스키, 래프팅, 카야크, 번지 점프, 캐뇨닝(Canyoning, 계류타기), 패러글라이딩 등의 명소다. 하지만 필자 같은 유랑객에겐 다만 그림의 떡일 수 밖에....젊은 시절에 패러글라이딩이 하도 멋져 보여서 안달을 했으나 가족들이 끈질기게 말리는 통에 그만 포기를 했기에 더더욱 그렇다.
※ 계류 타기(Canyoning) : 산간 계곡 물에 뛰어들어 급류를 타고 내려가는 스포츠
나중에 스위스의 수도 베른(Bern)에서 실제로 목격했다. 베른의 시내 한복판을 휘돌아 흐르는 아레(Aare)강의 강변은 마치 한여름 해수욕장처럼 수영복 시민들로 붐비는 가운데,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급류에 뛰어내려 줄줄이 떠내려 가고 있었다.
오늘도 인강이다. 171번 도로 역시 인강의 남쪽에서 나란히 지나간다.
평지를 그렇게 10Km쯤 가다보면 길은 북쪽으로 강을 거너서 산길이 되었다가 곧바로 Brennbich란 동네가 나온다. 바로 여기가 오늘 처음에 거론한 임스트(Imst)란 산동네로 들어가는 갈림길이다.
도로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과연 이곳이 허구한 관광객을 유인하는 이유가 분명하다.
우람한 알프스에서 흘러내린듯 골짜기는 겹겹이 깊어서, 숨겨진듯 장엄한 비주얼은 갈 길이 분명한 방랑자의 눈빛을 시리도록 유혹한다. 하지만 불문곡직 냉정하게 직진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임스트는 십리 이상(4.5Km)을 산골로 올라가야 하니 왕복이면 서너 시간이나 걸린다.
두 눈 딱 감고 단호히 포기하고서, 다시 기나긴 산길(20Km)을 뚫고 오늘의 목적지 Landeck까지 일사천리로 내달았다.
오늘 숙소는 장엄한 산 속에서 마치 귀부인처럼 아름다운 란데크성 바로 아래에 자리잡았다. 잠자리〈Greif〉는 알고 보니 호텔, Gasthaus, Landhotel, Gasthof 등 숙박업 체인까지 거느린 종합 기업이란다. 그 중에 저렴한 가스트호프의 도미토리(34€)에 들었다. 경치가 빼어난 동네라서 그런지 방값도 헐값은 아니다.
※ gasthof : 바와 태번(tavern, 퍼브와 연회장을 갖춘 여관)을 거느린 독일 스타일 숙소.
시작은 우연이었다.
가스트호프의 부속 레스토랑 저녁 자리에서 뜬금없이 국적이 서로 다른 여섯 서양인 남정들과 와인으로 술판이 벌어졌다.
실로 오랜 만에 한국말 한 마디 뱉어봤다. 유럽에다 우리 건배사 '위하여'를 퍼트렸다.
각자의 테이블에서 저녁 식사도 끝나고서 누군가 남겨진 와인을 마저 비우다가 그랬을 터이다.
레스토랑 분위기는 처음부터 들떠 있기도 했으나, 말하자면 여기 이상한 놈 하나 있으니 잠깐 와보라 했겠지. 그래서 여섯이 모인 거고 매니저 역시도 신기해서 그런지 서비스 와인을 거듭 제공했던 거다.
서양인들은 여럿일 때 국적이 서로 다르면 일단 영어를 쓴다. 건배사는 다들 아시다시피 '처어스! 치어스!!' 아닌가.
누가 먼저 그랬는지 와인은 맥주로 바뀌고 서로 앞다투어 술을 내겠다 경쟁 아닌 경쟁판에 이르렀다.
건배사란 나라마다 고유의 브랜드 같은 표현을 가진다. 어쩌면 그것도 무시못할 문화 아이콘 아닌가.
그러던 중에 독일 친구가 난데없이 한국 너희는 어떻게 말하냐 묻는다. 망설일 수도 없기에 반사적으로 나온 대답이 우리말로 '위하여~!'라 했다. 사실 서양인들에게 '위하여'라면 까다로운 발음이다. 두어 친구가 자꾸 '위하여. 위하여 ' 서투른 발음으로 연습을 하지만 와인과 맥주는 주거니 받거니 돌고 돌았다.
그런 판에 또다시 난데없이 이번에는 스위스 친구가 '위하여'는 무슨 뜻이냔다. 나머지는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친구였다. 이름 난 관광지라 여행자가 많아도 필자와 같은 보행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라마다 건배사는 각양각색 아닌가.
어쨋거나 그자리에서 튀어나온 필자의 대답이~~
" '위하여'는 엄중한 의미가 있다! 그건 for you, for me, and for us 란 뜻이닷~!!"
즉석에서 하나같이 반응은 그렇게 굉장한 의미냐, 분위기는 갑자기 더욱 우호적으로다 앞다투어 한국말 자율학습(?) 시간으로 변했다. 위하여란 알고 보면 참으로 좋은 말 아닌가.
'네게 지고는 절대로 못 살아' 오나가나 경쟁적이고 조급한 우리에게 '위하여'라면 소통과 배려를 공감하는 참으로 요긴한 덕목이 아니리오?
부디 우리도 지금의 중구난방 재기발랄 건배사가 무엇이든 하나로 통일되어, '한국하면 그거야' 하는 K-건배사가 코스모폴리탄 문화 아이콘으로서 정착되기를 희망해 본다.
머나먼 길에선 목도 타고 배도 못 참도록 고플 때가 많다. 그런 와중에 마을을 만났다면 얼씨구나 구세주 이상이다.
어딘가 마을이 나오겠구나 신호는, 동유럽이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게 바로 버드나무다. 저 앞으로 아득히 버드나무 서너 그루가 서 있다면 틀림없이 멀지 않는 근처에 마을이 있다.
하지만 중부 유럽에 들어와서 버드나무는 좀처럼 눈에 띄질 않는다. 대신 마을의 신호는 하늘빛이다.
어린 시절 한려수도의 바닷가에서 성장했기에 하늘빛에서 바다와의 거리를 예단하는 디엔에이가 있다. 하지만 이곳 티롤은 깊숙한 내륙의 한복판이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어디쯤 마을이 나올까 그런 하늘빛이 관심사였다. 하늘빛으로 바다를 가늠하는 감각, 엉뚱한 비약이지만 유달리 한국인들에겐 관심이 많다는 스페인의 '북쪽길'은 바로 그런 연유로 그닥 궁금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방랑자의 하늘빛 셈법을 구태어 색채학이나 물리적인 논리로 설명이 필요하다면 필자로선 정답이 없다.
딴은 그게 과학이 아니라 어쩌면 서정적인 감흥이기 때문이다.
단지 육감적으로 저 앞으로 하늘이 유달리 환~해지거나 반대로 짙어지면 나름대로 그게 신호인 거다. 사실 문득 그런 낌새가 잡히면 나그네는 잠시 외로움에 빠진다. 과연 자신이 그래진다기 보다 멀리 대상들이 더욱 그래 보인다. 그리고 아득히 앞에 있는 건물이거나 사람이거나 지상에서 우뚝 솟아올라 보이기 일쑤다. 이곳 티롤의 길에선 바로 그런 느낌이 왕왕 있었다. 어제완 달리 잊을 만하면 길가에 마을도 사람도 저 멀리 그렇게 비치곤 했다.
오늘도 어제처럼 쾌청한 날씨에 신명나는 하루기를 바랐지만 중간에 비도 맞고 노면 상태 마저도 산길이 많아서 제법 고전을 했다.
세상 이치란 좋은 일 다음은 판판이 궂은 일이 따라오니 그래서 인생을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던가. 하므로 오늘 같은 비바람 정도야 나그네길 양념으로 치부하고 묵묵히 갈길이나 가야 한다. 모르긴 몰라도 어느 보행자가 바람도 살살 쾌청한 날씨보다 빗속 워킹이 더 환상적이라면 그는 틀림없이 내공이 깊은 고수급인 거다.
란데크~ 장크트 안톤 26.7Km
어느덧 정이 들었던 걸까?
인강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란데크를 나서서 얼마를 가니 유로(流路)가 왼쪽(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강은 다뉴브의 본류는 아니로되 수많은 지류 중에서 최상류에 해당한다.
세르비아의 수메데레보에서 다뉴브를 처음 만났을 때 (12)편은〈다뉴브강에 발씻기〉라 했다. 그때 이후 2,000Km 이상을 줄곧 다뉴브의 줄기를 따라 소강(溯江)해 왔다. 오스트리아의 이곳을 지나고 부터는, 차례로 스위스는 물론 또 그 다음에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까지도 강 위에 다리는 뻔질나게 지났어도 강을 따라 나란히 걸어 본 경우는 전무하다.
대지를 흐르는 물은 하늘에선 바람이다.
길고 긴 인류의 역사는 바람과 강물은 문명과 문화의 모태요 상징이라 증거한다.
이제 강이 멀어졌으니 갖가지 풍정(風情) 또한 달라질 건가.
이곳 란데크는 티롤 지역에서 인스브루크 다음으로 교통의 요충지다.
여기서 철도나 고속도로가 - 남쪽의 인(Inn) 계곡과 아를베르크 대 산괴를 가로질러- 오스트리아의 서쪽 코너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도로나 보행으로 알프스 고개를 넘나드는 출입문이다. 그리고 남쪽은 오리지널 알프스에 해당되어 이탈리아로 연결되고, 2차대전 직전까지 오스트리아의 산악 부대의 근거지였단다.
아침에 출발 때 날씨는 쾌청했다. 그러나 오전 만이었다. 오늘은 날씨도 길도 좀처럼 예상이 안 된다.
야콥스벡(Jakopsweg, '산티아고 가는 길')으로 들어섰다. 노란 화살표를 따라가기 만하면 된다. 급경사 오르막이다. 30분 이상을 숨가쁘게 올라보니 언덕 위에는 평원이다. 티롤의 고원은 무아지경 아름답다. 이런 풍광을 만날 때마다 이내 모자라는 글 재주가 원망스럽다.
그리고 이게 얼마 만인가? 길에서 사람을 만났다. 산 위를 걷는 커플들이 있다. 스위스까지 갈 거란다. 그 중에 한 커플과는 1시간 30분 이상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동행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속도가 물 찬 제비다. 아마 저들은 독일계일 거야,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유유자적 즐기면서 걷지만 간혹 독일인 중에는 저렇게 성큼성큼 사무적인 워킹을 뽐내는(?) 경우가 있지 않던가. 아마 배낭이 가벼워서 그러겠지 벌써부터 스스로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면서, 뒤지지 않기 위해 오랜 만에 속도를 올렸건만 결국 그들은 시야에서 멀어졌다. 여기가 영국의 런던도 아닌 터에 수시로 내리는 비 때문에 판초를 입고 벗고 하다보니 시간차 때문이라 변명을 하자.
오늘 오르막은 무조건 급경사다. 산 속을 혼자 걷는다. 짐승의 발자국만 있고 아무도 없다. 팔뚝에 시계를 열어 보니 고도가 1,300m 근처다.
사실 오늘은 깊은 산길이라서 짧게 10Km 정도만 걷고 일찍 마감이 된다면 밀린 빨래와 일기를 좀 정리해두려 했는데, 아뿔사 혼이 빠졌던지 목표했던 Strengen(11Km)을 그만 지나쳐 버렸다.
이후에 Flirsch(15Km), Schnann(17Km)을 차례로 지나도 숙소가 없다. 그런 와중에 산 위에서 설상가상 소나기까지 쏟아지는데 우박이 양동이로 퍼붓는다. 숙소마다 버젓이 간판은 달아놓고서 문을 닫았으니 휴가철이라 그럴까? 하지만 오스트리아가 남다른 관광국이면 이건 너무 무책임한 경우들 아닌가. 다만 당시는 스마트폰이 없던 때라 필자의 재주로 예약은 오로지 공중전화 부스가 연락처였다.
그냥 앞으로 가자. 어차피 가야 할 길 아니던가.
기사가 또 길어지지만 두 이야기를 더 보태련다.
깊은 산길 도중에 학생들의 래프팅을 구경한 경우와 오늘의 숙소를 정하기 위해서 인포에서 도움을 받은 일이다.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출발과 도착 무렵에 각각 두어 시간 정도는 평지였으나 대부분이 산길로 20Km를 걸었다.
하지만 이곳 산길은 색다르다.
우리라면 잦은 업다운에 꼬불꼬불 변화무쌍하지만 여기는 거의 직선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기를 네댓 시간 만에 드디어 길은 산허리를 크게 빙~돌아간다. 어느덧 차도는 없어지고 비좁은 오솔길이 완전 산 속으로 이어진다. 장관의 알프스 비주얼도 길표시도 사라졌고 인적도 거의 없다. 바람마저 없으니 깊은 산속에선 오직 뜸뜸이 새소리, 나의 옷깃 스치는 소리, 터벅터벅 발자국 소리 밖에 없다.
그러기를 정적의 길을 계속 가는 중에 문득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들어보니 왁자지껄 아이들 소리다. 숲사이로 저 2~300m 아래의 강물에 드문드문 고무보트 몇 척이 떠내려 가고 있다. 아마 여름 방학 중에 학생들이 체험학습으로 래프팅을 즐기는 모양이다.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처음 눈에 잡힌 무리는 선발대인 모양이고 고무보트는 줄줄이 무더기로 내려 오고 있다. 멋지고 부럽다. 하지만 또다시 상상의 날개를 달아본다.
깊은 산속을 가득 차 흐르는 저 강물은, 여름이면 곳곳에서 큰 비를 기다리는 한국의 래프팅 현실에 비하면 부럽기 만하다. 어찌 물놀이 뿐이겠는가 농사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지.
혹시 농사를 지어보셨나요?
특히 알프스의 주변은 빙하가 녹은 강물이라 일년 내내 유출량에 변화가 없다. 물론 며칠 전에 지나온 잘츠부르크의 잘짜흐강도 그래서 부러웠다. 여름이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홍수를 걱정하지만, 강물의 변화에 따른 자연재해란 사실 홍수보단 가뭄이 훨씬 더 무섭다.
인생사 질곡은 물론 이런 자연의 저주 뿐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연이 내리는 재해마저도 어쩐지 사람 탓에 익숙하다.
깊은 산길에서 빠져 나오니 다시 넓직한 차도를 만난다.
사라졌던 인강일까 드넓은 골짜기는 도로 왼편으로 가까이 강물이 가득차서 흘러간다.
도로에 나선지 십리도 못가서(3.6Km) 이내 페트노이 암 알를베르크(Pettneu am Arlberg)란 동네다.
정갈한 마을 한복판을 지나다 보니 인포가 있다. 오늘 숙소를 위해 들어갔다.
20대 중반 대학생 스타일의 여직원은 혼자 있다가 웬 나그네가 들어서니 반가운 모양이다. 친절하고 일단 엄청 미인이다. 잠자는 시늉으로 숙소를 구한다 했더니 순간 난색이다. 과연 방이 있을까요?란 분위기다.
난처할 땐 전가의 보도가 있다. 역시 유럽 전도를 펼쳐보였다. 젊은 여직원은 순간 까무라친다. 지도 전부에다 대륙횡단 루트를, 이스탄불에서 출발부터 포르투갈에 도착까지 노란 형광펜으로 그려져 있다.
나는 보았다. 그녀의 놀랜 눈빛을~~탄성과 함께 아래위로 훑어보기 바쁘니, 짐작엔 과연 그럴까 확인을 하고픈 모양이다.
결론을 내렸는지 거듭거듭 전화를 건다.
참으로 착하시다. 이런 나그네라면 정말로 도와줘야 한다라는 살뜰한 마음씨가 읽혀 진다.
이 장면은 그녀가 숙박업체마다 전화로 직접 예약을 시도하는 노력인 거다. 그러기를 칠팔 차례나 무진 애를 쓰더니 드디어 한 곳을 찾은 모양이다. 바로 그 집이 내일 알프스 고개를 오를 때 도시락 집이다. 실은 인포에서 십리쯤 앞로 있는 Vadiesen 마을이다. 게다가 숙소는 오늘의 목적지 생 안톤(St. Anton)에서 지근거리다.
인포 여직원의 한사코 전화는 때마침 8월초에 휴가철이라 대부분의 숙소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필자는 흘깃 읽었다.
숙소를 찾기 위해 간절한 표정으로 사무실 안을 이리저리 종종거릴 때 그녀의 마음도 몸매도~~
진정으로 '얼굴만 예쁜 여자'가 아니었다.
이번 여행기 중에서 심심하면 미인 이야기를 거론한다. 설마 성인지감수성이라 비난들 하실까?
결단코 숙소를 어렵사리 구해 준 감사한 직원에게 묻지마 아부도 어니다. 그냥 두 눈으로 비친 그대로다. 필자가 직감으로 미녀를 간파하는 내공은 앞에서도 수차례 거론을 해 왔다. 사실 인류학을 좋아하다가 서울의대에서 도강(盜講)으로 사람 몸 공부(형질인류학)를 좀 해본 실력(?)이다.
깊고 깊은 산골의 여행안내센터에서 휴가철에도 자리를 지키는 일개 직원임에도 그녀는 용모도 스타일도 비교불가능한 화용월태(花容月態) 가인(佳人)이었다. 170cm가 살짝 넘을듯 황금분할 완전 팔등신이었다.
부디 싸가지 없는 말버릇이라 탓하시질랑 마시오. 두메산골 촌년 중에도 절세미인은 있습디다~~~
어언 10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고맙고 바지런했던 미인 아기씨마저도 무심한 세월의 풍상 속에서 이젠 제법 늙어가고 있을테니, 그러기에 인생사 모든 인연도 마냥 허망한 수고일지니........
장크트 안톤~클뢰스테를 26.3Km
알프스를 넘은 날이다.
사실 이 고개는 바로 전편에 〈인스브루크 단상〉의 '브렌너 고개 넘기' 부분에서 이미 운을 뗀 바 있다.
알프스를 넘나드는 동~서 고개 이름은 알고 보니 기다란 지명이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장크트 안톤 암 아를베르크(St. Anton am Arlberg) 고개란다. 줄인다면 아를베르크 고개(Arlberg Pass)로 되겠으나 세상은 알프스를 넘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또는 고개를 넘어본 인물들에게 더 관심사일뿐 동서남북 어디론가 방향은 차후의 문제인 모양이다.
중언하면 알프스 고개들은 동↔서보다 남↔북의 경우가 더 알려진 모양이다.
하여간에 오늘은 고개 하나 넘어가는 일지만 어쩐지 흥분이 남다르다.
다음 해에 대륙횡단을 완성했더니 가까운 친구들이 한결같이 물어 왔다.
"며칠 걸리더노?"
"말은 어떻게 했는데?"
"얼마 들었지?"
하지만 진정으로 듣고 싶은 말은 '왜~그랬어?'였다.
하긴 이런 반응들이란 스페인의 순례길('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은 분들도 대개들 유사한 경험을 하시지만,
당시에 큰애는 워싱턴DC에서 직장 생활 초년병이고 둘째는 뉴욕에서 유학 중이었는데, 간혹 아버지와 통화로 주변에서 자연스레 알게 되니 미국인들은 하나같이 놀래는 것이,
"네가 그런 아버지의 딸이었구나! 그래서 네가 그랬구나!"
아버지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인식이 달라져 어리둥절하다는 응원이 기억난다.
대륙의 동서횡단을 감행한 동기야 앞에서도 수차례 고백을 했 왔으나, 사람마다 누구나 본능적인 욕구 몇 가지를 지닌다고 한다.
그것들이 첫째 안정의 욕구 다음은 소속, 경험, 자아실현, 인정(認定), 사랑의 욕구 등이 아닐까?
애당초 워킹을 사랑하기에 발심(發心)한 일이지만 무엇보다 자아실현의 욕구가 강렬했기에 동기부여가 되었을 터이다.
감동스런 일이 있었다.
꼭두새벽부터 주인 아주머니는 숙소에 출근해 아침상도 지극정성으로 채려놓고서 묵직한 보따리 하나를 주고 갔다. 오늘 도중에 점심이란다. 감사하게도 지극히 드문 경우다.
배낭은 더 이상 공간이 없기에 쇼핑백을 들고서 길을 나섰다. 힘들면 나중에 배낭에 매달면 되니까,
이 부분에서 유럽의 보행길 사정에 생소하신 분들을 위해서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그건 대부분 숙소의 오너들은 상주를 하지 않고 예약이 생길 때만 찾아와서 서비스를 해주기 때문이다. 어제는 다소 일찌기 도착했기로 석식 여부를 확인하는 주인에게 역시 대륙횡단 지도를 꺼내 보이면서, 석식은 먼저 필자쪽에서 마을에 나가서 외식을 한 번 해 볼란다고 했다.
순전히 알프스의 턱마루 사람들의 생활상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숙소를 나서서 어제 들어왔던 길을 따라 십리쯤(4.6Km) 가니 장크트 안톤 암 알를베르크(St. Anton am Arlberg, 1,304m)란 기다란 이름의 산동네가 있다. 지명을 풀이하면 '알를베르크주의 생 안톤'이란 뜻이란다. 줄여서 다들 생 안톤으로 불린다.
서양에서 St.란 언어에 따라 성(聖), 대(大)천사, 생, 상크트, 장크트, 세인트 등 갖가지 발음과 번역이 따른다.
생 안톤 마을은 스탄쩌(Stanzer) 계곡 안에 아담하게 들어앉은 목가적인 경치가 한없이 아름다운 두메산골이다.
하지만 크지도 않은 마을에 명품 상가 거리도 있고 보아하니 상당히 럭셔리하다. 겨울 레저와 관광을 중심으로 발달한 전형적인 가촌(街村) 모습이다. 역시 앞서 브렌너 고개처럼 알프스를 넘나들기에 발생한 영취락인 거다.
우리네 대관령의 횡계 마을이나 소백산맥 줄기의 새재(조령) 아래 문경 충주와 동일한 입지조건(立地條件)이다.
또다시 첨부하지만 스페인의 까미노로 인해서 만나게된 도반(道伴)들 중에 '배언덕'님께서는 2년 후엔가 바로 이 동네를 지나갔다고 들었다.
스키 스포츠는 알파인과 노르딕 종목으로 대별되지만 바로 이 마을이 근대 알파인 스키의 탄생지요 요람이다.
이른 아침(9시)에 지나다 보니 심지어 8월 초순 한여름임에도 마을 한복판에는 스키 리프트가 가동되고 있었다. 리프트 탑승 장소는 - 너무나 부럽게도 주민친화적으로다 - 대문을 열고 나서면 곧바로 탈 수 있다. 게다가 저 리프트가 올라가는 언덕 넘어로 실로 어마어마한 넓이의 알프스 산바탈에 만년설에 빙하까지 뒤덮힌 스키장이 있단다. 세계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로 광활한 스키 슬로프가 거대한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단다.
배낭을 멘 채로 저 리프트에 앉기만 하면 세계적인 기념물 하나를 직접 밟아 볼 수가 있으련만 방랑자의 처지는 역시 견물생심 그림의 떡일 뿐이다.
고개를 넘으려면 마을 지나 올라가야 한다.
고개쪽으로 동네 자장자리에 아웃도어 숍이 - 서울의 도봉산이나 청계산 입구에 등산 가게들이 연상되는 - 있길래 반가운 김에 들어갔다. 역시 가게는 온갖 등산용품이 넘쳐도 우리네 동대문 남대문 시장에 아웃도어들을 따라올 수는 없다.
귀국해서 몇몇 길벗들에게 알프스를 넘은 기념으로다 선물로 스카프와 뱃지 등 몇 가지를 고르고, 그 길로 동네 우체국으로 직행해서 오스트리아에서 사용했던 가이드북과 지도 3종까지 서울 집에다 소포를 보냈다.
인포에 들러 야콥스벡을 물어보고, 지금부터 산길을 오른다.
알프스 고개로 올라가는 산길은 우리와 비슷한 등산로다.
긴긴 세월에 여기를 얼마나 많은 인적(人跡)이 얼마나 많은 사연을 안고들 넘나들었을까? 길바닥 흔적엔 수없는 발자국이 어른거리는 듯하다. 그래, 나도 역시 그들 중에 하나란 말이구나.
다만 산길은 계단이라든지 인공 구조물은 전혀 없고 자연 생태 그대로다. 알프스를 넘고 있다는 흥분이 없다면 마치 서울 근교에서 등산을 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깔딱 고개는 아닐지라도 완전 가파르고 멀고 멀다.
넘치도록 무거운 배낭이 문제다.
도중에서 간간이 쉴 때마다 지나온 산 아래를 복습처럼 되돌아보지만 참으로 경이로운 비주얼이다.
다행히 그다지 험하지는 않은 토산(土山)이지만 과연 고개는 언제 나타날라나?
비지땀을 쏟으며 꾸역꾸역 올라간다.
엔 크리스토~!! 부디 예수님 안에서 은총과 열락(悅樂)을 누리자!
고진감래 형극의 가시밭길 다음은 언제나 환희가 따르는 법 아닌가.
고개를 거지반 올랐을까 길가에 넓직한 바위가 나오길래 그만 퍼질고 앉았다.
아침에 주인 아주머니가 싸준 벤또(도시락)를 풀어보다가 또다시 감탄이다.
어제 오후에 체크인 때 인상에서 어쩐지 외롭고 고상한 품위에 모성애까지 물씬 와 닿더니 과연 도시락 레시피도 정성이 가득하다.
정갈하게 싼 샌드위치에 요플레와 요쿠르트가 둘 씩에다 오렌지와 사과가 두툼한 내프킨과 함께 들어 있다.
이른 아침에 출발을 위해 꾸물럭기리고 있을 때 '부디 건강하고 조심해서 잘 가라'는 표정으로, 먼저 숙소를 나서던 아주머니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아무렴 다른 게르만 아지매들도 이런 경우가 있을까?
고개는 오를수록 수목이 줄어들고 관목과 초지로 변하면서 에델바이스인지 이름 모를 산꽃들이 듬성듬성 산비탈을 수놓는다. 고요하던 산속에 문득 바람이 강해진다.
그동안 앞지르는 사람은 없으나 중간 중간에 하산객도 만났다. 다만 그들과는 단순히 눈인사로만 스쳐 지나갔지만, 고개는 천만 다행히 마을이 보이지는 않아도 사람들과는 그리 멀지는 않는 거로구나.
문득문득 알프스를 넘어가고 있자나 생각과 함께 인생사 갖가지 흘러간 사연이 명멸한다. 그렇게 생 안톤을 나선 지 대여섯 시간 만에 아를베르크 고개에 올랐다. 마치 쌍봉 낙타등 같은 산등성이 길가에 안성맞춤 바위에 걸터앉았다
지금까지 맑았던 하늘에 세찬 바람과 함께 웬 비가 뿌린다.
오전에 출발 때 인포의 정보는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맑은 날씨가 계속이라기에 쾌재를 불렀는데, 산 위에 형편은 종잡을 수 없다.
고개 저 아래 생 안톤은 산그늘에 가려서 보일질 않고 계속 내려 가야할 서쪽으로는 마치 거대한 가마솥 안에 포근히 들어앉은 산세(山勢)로 드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다. 아련한 티롤의 고갯마루는 축복인지 시샘인지 비까지 흩날린다.
일찌기 취학 전부터 황혼마다 고향집 마루에 앉아 서쪽 하늘에 노을을 바라보던 꿈돌이가 걷고 걸어서 알프스를 넘은 거다.
2011년 8월 9일 오후 5시 06분에 1,982m 높이다.
문자 그대로 감동적이다.
알프스를 넘었다는 감동은 이내 나홀로 프라드로 바뀌고 감격으로 흥분한다.
지나온 동쪽 하늘과 가야 할 서쪽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칠십 평생 인생살이가 섬광처럼 스친다.
나도 모르게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시작은 눈물이 아니라 곡조도 모르는 스스로 감격의 노래였다. 노래는 이윽고 흑흑거리는 눈물로 변하더니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아니, 대성통곡으로 변한다.
사람은 누구나 경이로운 자연 앞에 맞닥뜨리면 눈물샘을 자극한다. 나 역시 그런 중에 하나인가.
눈물이라면 평소에 스스로 불만이 있었다. 세상살이 언젠가부터 눈물이 메말랐기 때문이다.
그녀석 고2 나이 때 여섯 번째 동생이 사고로 세상을 뜬 이후에 눈물이 그랬다. 그때 하늘이 무너지는 급보를 받고서 서울역으로 내달으면서, 고향으로 내려가던 기차간에서 밤새껏 내내 하염없이 흘려본 이후에 눈물이 없어졌다. 그런 2년 후에도 월남전을 맹호부대로 무사히 다녀온 동생도 밤에 자다가 자연사에, 필자가 서른세 살 때 아버님께서도 여러 동생들을, 뒷바라지를 해야 할 책임을 남겨두고 가셨다.
그러나 알프스의 고개마루턱에서 흩뿌리는 비와 함께 그 눈물이 다시 찾아오누나. 아마 집집마다 대개들 그러실테지만 형제가 많으면 여럿 중에서 중에서 유달리 마음이 가고 정도 잘 통하는 경우가 있더라.
대망의 알프스 넘기란 결국 마음 속 깊고 깊은 심연에 남몰래 숨어 있던 인생사 회한의 눈물이었던 걸까?
오스트리아의 가장 서쪽 코너에 아를베르크 고개는 다뉴브강과 라인강이 갈라지는 분수령이다.
그러니 다뉴브강은 여기서 끝나고 이제부터는 라인강이다.
이 고개부터 국경까지 지역은 특별히 포어아를베르크(Vorarlberg)주에 속한다. 넓게는 티롤주에 포함되지만,
고개는 북쪽으로 레히탈(Lechtal) 알프스의 줄기요 최고봉 발루가(Valluga)산은 우리 백두산 높이와 비슷한 2,810m에 이른다. 남쪽으로는 베르발(Werwall) 산지에 해당해서 고개는 이들 두 산지 사이가 살짝 낮아진 산마루다.
여기서는 보이질 않지만 국경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저 아래 산등성이로 돌아 나가고 아를베르크 터널(14Km)은 철도와 고속도로가 함께 지나간다.
암튼 이 일대는 자전거 라이딩족과 자동차 여행족들의 천국이란다.
☞ 부 기~~
♣ 못다한 알프스 이야기
유럽에서 순례길의 경우는 남~북 길은 '브렌너길'이 유일하지만 동~서 길은 알프스의 위아래로 장대한 두 길이 평행선으로 각각 지나간다.
그들이 알프스의 남쪽에 '크로아티아길(2,900Km)'과 북쪽에 '헝가리길(3,600Km)'이다. 물론 헝가리길은 필자가 따라가는 길이다.
알프스는 대개 7개의 산군(山群)으로 묶어 볼 수가 있다.
( ) 안에 해당 국가는 알프스 산맥이 여러 나라와 국경을 이루는 만큼 특정 국가보다 몇몇 나라와 공유를 한다는 점이다. 특히 티롤 알프스는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독일까지 범위가 넓다.
또한 아래와 같은 구분 외에도 지리적인 위치상으로 동알프스, 남알프스, 북알프스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아래는 동→서로 순서임)
* 율리안 알프스(슬로베니아)
* 티롤 알프스(오스트리아)
* 돌로미테 알프스(이탈리아)
* 바바리안 알프스(독일)
* 마터호른 지구(스위스, 마터호른 4,478m)
* 베르너 오버란트(스위스, 융프라우 4,185m)
* 몽블랑 알프스(프랑스, 몽블랑 4,808m)
♣ 건배사 소개, 오로지 재미난 술자리를 위해서
* 미국(영어권) : 치어스(Cheers, 건배!) 바텀압(bottom up, 원샷!) 토우스트(toast to, 위하여!)
* 프랑스 : 상떼 또는 아보르 상떼(a votre sante, 당신의 건강을 위하여!)
* 스페인 : 살루트(salud, 건배!)
* 이탈리아 : 살루테(salute, 건배!) 혹은 친친!
* 독일 : 프로스트(prost, 위하여!) 또는 prosit Neujahr!!, 새해 건강을 위하여!)
* 터키 : 쉐레페(s'erefe, 명예!)
* 루마니아 : 노로끄(noroc, 행운!)
♣ 오스트리아의 포어아를베르크(Vorarlberg) 주~
먼저 아를베르크 고개(Arlberg Pass)는 티롤주~포어아를베르크주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임.
양쪽은 도보길 외에도 일반 도로가 있고 터널에 의해 고속도로, 철도로 연결됨.
서쪽 국경 도시 펠트키르히(Feldkirch)는 리히테쉬타인과 국경을 이룸.
「포어아를베르크주는 티롤주보다 더 서쪽 코너에 있는 오스트리아 땅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출범으로 편입되었다.
스위스로 편입되기 위한 주민 투표 결과 다수 주민들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연합국 스위스 오스트리아 모두가 반대하여 그리 되었다.'」
☞ 위키백과에 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