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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第十人供養功德과 初發心功德
佛子야 復置此喩하고
假使復有第二人이 於一念中에
能作前人과 及無數世界所有衆生의
無數劫中供養之事호대 念念如是하야
以無量種供養之具로
供養無量諸佛如來와
及無量世界所有衆生호대 經無量劫하며
其第三人과 乃至第十人도 皆亦如是하야
於一念中에 能作前人의
所有供養호대 念念如是하야
以無邊無等不可數不可稱不可思不可量不可說不可說不可說
供養之具로
供養無邊乃至不可說不可說諸佛과
及爾許世界所有衆生호대
經無邊乃至不可說不可說劫하고
至佛滅後에 各爲起塔호대
其塔高廣과 乃至住劫도 亦復如是하면
佛子야
此前功德을 比菩薩初發心功德컨댄
百分에 不及一이며
千分에 不及一이며
百千分에 不及一이며
乃至優波尼沙陀分에 亦不及一이니라
何以故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不齊限하야
但爲供養爾所佛故로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爲供養盡法界虛空界不可說不可說十方無量去來現在所有諸佛故로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불자여, 이 비유 또한 그만두고,
가령 둘째 사람이 한생각 동안에,
앞의 사람과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이
무수한 겁 동안에 공양하던 일을 능히 지으며,
생각생각마다 이와 같이 한량없는
갖가지의 공양거리로써,
한량없는 부처님 여래와
한량없는 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공양하며
한량없는 겁을 지내었고,
셋째 사람도 내지 열째 사람도
모두 이와 같이 하여
한생각 동안에 앞의 사람이 공양하던 일을 능히 지으며,
생각생각마다 이와 같이 하여
끝없고, 같을 이 없고, 셀 수 없고,
일컬을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고,
요량할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부처님과
그러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에게 공양하기를
끝없고 내지 말할 수 없는 겁을 지나도록 하였으며,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는 각각 탑을 조성하는데
그 탑이 높고 크며 내지 여러 겁 동안 머무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았느니라.
불자여,
이 사람들의 공덕으로
보살이 처음 발심한 공덕에 비교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백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내지 우파니샤타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다만 저러한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데 제한한 것이 아니요,
온 법계 허공계의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시방에 계시는
한량없는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한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느니라."
佛子야
復置此喩하고, 다시 이비유는 그만두고,
假使復, 다시 어떤, 有第二人이, 두 번째 사람이 於一念中에
能作前人과, 능히 앞의 사람이 지은
及無數世界所有衆生의 無數劫中供養之事호대,
무수겁 중에 공양한 일로 하되
念念如是하야, 염념에 이와 같이해서
以無量種供養之具로, 한량없는 가지의 공양 구로써,
供養無量諸佛如來와, 무량 제불여래와
及無量世界所有衆生호대, 무량세계 중생에게 공양 올리되,
經無量劫하며, 한량없는 겁을 지내며
其第三人과 乃至第十人도 皆亦如是하야,
다 또한 이와 같이 해서, 於一念中에
能作前人의, 능히 앞의 사람의 所有供養을 짓되,
앞의 사람이 한 공양을 다 하고, 내가 또 하는 것이지요.
念念如是하야, 이와 같이 해서,
以無邊ㆍ無等ㆍ不可數ㆍ不可稱ㆍ
不可思ㆍ不可量ㆍ不可說ㆍ不可說不可說.
그러니까 처음에 不可說은 하나의 단위이고, 그 다음에 두 번째
不可說不可說은 이것도 또 하나의 숫자 단위입니다.
供養之具로, 이러한 공양 구로써,
供養無邊 乃至不可說不可說諸佛과
及爾許世界所有衆生호대, 그러한 세계에 있는 중생에게 공양 올리되,
經無邊 乃至不可說不可說劫을 지내고,
至佛滅後에,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에
各爲起塔호대, 각각 탑을 세워서
其塔高廣과, 그 탑이 높고 넓음과
乃至住劫도, 머무는 겁도
亦復如是하면, 또한 이와 같이 한다면,
佛子야
此前功德을, 이 앞의 공덕을
比菩薩初發心功德컨댄, 보살 초발심 공덕에 비교한다면,
百分에 不及一이며ㆍ千分에 不及一이며ㆍ百千分에 不及一이며
乃至優波尼沙陀分에 亦不及一이니라.
그렇습니다. 여기 앞의 공양의 양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첫째 단위가 여기는 無邊입니다.
無邊ㆍ無等ㆍ不可數ㆍ不可稱ㆍ不可思ㆍ不可量ㆍ不可說ㆍ
不可說不可說. 이것이 전부 인도에서 숫자를 세는 단위인데,
뭐 일ㆍ십ㆍ백ㆍ천ㆍ만, 이런 식으로 나가는 것인데요.
여기는 처음부터無邊입니다.
처음이 無邊이니까 그 다음에야 오죽하겠습니까?
何以故오? 왜 그러냐?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不齊限하야, 제한을 해서
但爲供養爾所佛故로, 다만 그러한 바의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한 고로,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것이 아니다.= 不
爲供養盡法界虛空界 不可說ㆍ不可說十方無量
去來現在所有諸佛故로,
과거ㆍ미래ㆍ현재 所有제불께 공양하기 위한 고로,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했느니라.
그렇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공양의 양도 많지만,
그 정도가지고 공양하려고 내가 발심한 것이 아니다.
천배ㆍ만 배 더 많이 공양하기 위해서 발심한 것이다. 그런 말입니다.
*
제십인공양공덕(第十人供養功德)과 초발심공덕(初發心功德):
열 번째 사람까지 공양하는 비유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부치비유(復置此喩)하고: 다시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사부유제이인(假使復有第二人)이: 어떤 두 번째 사람이
어일념중( 於一念中)에 : 일념중에
능작전인(能作前人)과 : 능히 앞에 사람이 지은
급무수세계소유중생(及無數世界所有衆生)의: 무수세계 소유 중생의
무수겁중공양지사(無數劫中供養之事)호대: 무수겁중에 공양한 일로 하되
염념여시(念念如是)하야 : 염념에 이와 같이 해서
이무량종공양지구(以無量種供養之具)로 : 한량없는 가지의 공양구로써
공양무량제불여래(供養無量諸佛如來)와 : 무량제불여래와
급무량세계소유중생(及無量世界所有衆生)호대:
무량세계 소유 중생에게 공양올리되
경무량겁(經無量劫)하며 : 한량없는 겁을 지내며
기제삼인(其第三人)과 : 또 그 제 3인과
내지제십인(乃至第十人)도 : 내지 제 십인도
개역여시(皆亦如是)하야 : 다 또한 이와 같이 해서
어일념중(於一念中)에 : 일념중에
능작전인(能作前人)의: 능히 앞에 사람의
소유공양(所有供養)호대: 소유공양을 짓되.
앞의 사람이 한 공양을 다 하고 또 내가 공양하는 것이다.
염념여시(念念如是)하야: 이와 같이 해서
이무변무등불가수불가칭불가사불가량불가설불가설불가설공양지구
(以無邊無等不可數不可稱不可思不可量不可說不可說不可說供養之具)로:
무변,무등, 불가수, 불가칭, 불가사, 불가량, 불가설, 불가설불가설의
공양구로써. ‘불가설’도 하나의 단위고 ‘불가설불가설’도 하나의 단위다.
공양무변내지불가설불가설제불(供養無邊乃至不可說不可說諸佛)과:
무변 내지 불가설불가설 제불과
급이허세계소유중생(及爾許世界所有衆生)호대:
그러한 세계에 있는 중생에게 공양을 올리되
경무변내지불가설불가설겁(經無邊乃至不可說不可說劫)하고:
무변내지 불가설불가설겁을 지내고
*
지불멸후(至佛滅後)에: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에
각위기탑(各爲起塔)호대 : 각각 탑을 세워서
기탑고광(其塔高廣)과 : 그 탑이 높고 넓은 것과
내지주겁(乃至住劫)도 : 내지 머무는 겁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면 : 또한 다시 이와 같이 한다면
불자(佛子)야
차전공덕(此前功德)을 : 이 앞의 공덕을
차보살초발심공덕(比菩薩初發心功德)컨댄:
보살초발심 공덕과 비교한다면
백분(百分)에
불급일(不及一)이며
천분(千分)에
불급일(不及一)이며
백천분(百千分)에
불급일(不及一)이며
내지우파니사타분(乃至優波尼沙陀分)에: 내지 우파니사타분에도
역불급일( 亦不及一)이니라: 불급일이니라.
앞의 공양의 양이 얼마나 많은가? 그 첫번째 단위가 무변이었다.
다음에 무등, 불가수, 불가칭, 불가사, 불가설, 불가설불가설
이런 것이 인도에서 일십백천만처럼 숫자를 세는 단위인데
여기는 처음부터 무변이라고 했다.
첫 단위가 무변이니 그 다음이야 오죽하겠는가?
*
하이고(何以故)오 : 왜 그러냐
불자(佛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부제한(不齊限)하야 : 제한을 해서
단위공양이소불고(但爲供養爾所佛故)로 :
다만 그러한 바의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한고로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
아뇩다라삼보리심을 발한 것이 아니다.
위공양진법계허공계불가설불가설시방무량거래현재소유제불고
(爲供養盡法界虛空界不可說不可說十方無量去來現在所有諸佛故)로:
진겁계 허공계 불가설불가설 시방무량 과거 미래 현재 소유제불께
공양하기 위한 고로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했나니라. 앞에서 소개한 공양의 양도 많지만 그 정도를 공양하려고 내가 발심한 것이 아니다.
천 배 만 배 더 많이 공양하기 위해서 발심한 것이다.
15. 發心의 知力
發是心已에
能知前際一切諸佛의 始成正覺과 及般涅槃하며
能信後際一切諸佛의 所有善根하며
能知現在一切諸佛의 所有智慧하니라
" 이런 마음을 내고는
앞세상의 모든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시는 것과
열반에 드시는 것을 능히 알며,
뒷세상의 모든 부처님이 가지실 선근을 능히 믿으며,
현재의 모든 부처님이 가지신 지혜를 능히 아느니라."
發是心已에, 이러한 마음을 발한 뒤에,
能知 前際一切諸佛의 始成正覺과,
능히 안다. 무슨 말입니까?
앞에서 일체 모든 부처님이 비로소 정각을 이룬 것과,
及, 그리고 般涅槃하며, 열반에 든 것을 능히 알며,
能信 後際, 그 뒤에
一切諸佛의 所有善根을 모두 능히 믿으며,= 能信.
여기 能知, 能信, 또 그 다음에 能知.
能知現在一切諸佛의 所有智慧를 능히 아는 것이니라.
발심을 하면 그렇다 말입니다.
이 보리심을 발한 뒤에는 이와 같이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선근과 정각과 열반과 지혜를
전부 다 안다. 그래 발심이, 한 마음내면 그와 같이 중요한 것입니다.
화엄경이 양이 참 많고 아득해요. 아득하지만 한자ㆍ한자, 한줄ㆍ한줄
안 빠뜨리고, 어떤 때는 조금 지루하기도하고, 어떤 때는 교훈도 많고
눈이 번쩍 뜨이는 내용도 있고,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 만 4년이 지났습니다.
만 4년이 지나서 아직도 4분의 1 다 못했습니다.
이 한 권이 끝나야 4분의 1이 끝나는데,
아무튼 이렇게 우리가 한 생각 일으키니까 이 정도까지 왔잖아요.
이거요? 지금 만 4년 동안 강원 생활해도 이 정도 공부 못합니다.
이 양이 보통 많은 것이 아닙니다.
4년 동안공부해도 이 정도 양이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처럼 이렇게 알뜰하게 안 합니다. 아주 건성으로,
수박 겉핥기로 그냥, 좀 창피한 이야기지만 1년 365일 중에
공부한 날이 100일이 채 안 됩니다. 법정 수업일 수도 없습니다.
100일이 채 안된다니까요.
그러니까 이 뭡니까? 자리가 따뜻할 겨를이 없습니다.
미지근하다가 식어버리고ㆍ미지근하다 식어버리고,
따뜻하고 나서 식으면 그 온기가 한참 가는데,
미지근하다가 식어버리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나무를 비벼서 불을 낸다.
계속 끊임없이 비비면 거기서 연기가 나잖아요.
연기가 나도 계속 쉬지 않고 비벼야지, 좀 쉬어버리면
그 동안 비벼서 따뜻하게 해놓은 것이 다 식어버려요.
그럼 불은 꼴도 못 보는 겁니다. 우리가 어릴 때 “화경”이라 해서
돋보기인데요. 돋보기, 그것이 초점만 잘 맞추면,
그것을 움직이지 않고 2ㆍ3분쯤 햇빛 좋을 때 딱~ 하면
솜에서 불이 펄ㆍ펄ㆍ펄 납니다.
그런데 성질 조급한 아이들은 자꾸 움직입니다.
‘여기해 볼까?ㆍ거기해 볼까?’ 왔다 갔다 자꾸 움직여요.
그러면 하루 종일 해도 불 꼴은 못 봐요. 그런데 느긋하게 딱~~ 집중을
하면 금방 불이 일어나는 것을 본다고요. 공부라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매사에 다 그렇지요. 매사에...
그래서 부지런히 하라.
부처님이 열반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 이야기가
쉬지 말고 부지런히 해태하지 말라ㆍ해태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공부한 양이요? 이렇게 알뜰히 했는데도
이 정도, 벌써 만 4년 됐습니다. 2010년 3월부터 했더라고요.
2010년 3월부터 했으니까 상당하잖아요. 딱 만 4년이네요.
딱 만 4년! 한 달도 우리 안 쉬었지요? 이것은 화엄경공부이고,
그 전에 법화경하고, 임제록하고 2년 했잖아요.
법화경은 1년이 좀 넘고, 임제록은 9개월인가 10개월인가
그렇게 되고, 그것도 합하면 그것이 2년이 되는 겁니다.
만 2년이 넘어요. 법화경부터 지금까지 공부 쭉~~ 해온 분들이
있는데, 지금 만 6년을 한 겁니다. 공부가 상당히 됐을 것 아닙니까?
그와 같이 모든 것은 “꾸준히 하기에 달린 것이다.” 그렇습니다.
비교 하는 이야기는 그쯤에서 끝났고,
發心의 知力이라. 그 다음에
廣大心의 功德이라. 그랬습니다.
*
발심(發心)의 지력(知力): 마음은 삼세(三世) 부처님의 지혜를 모두 안다
*
초발심이(發是心已)에: 이러한 마음을 발한 뒤에
능지전제일체제불(能知前際一切諸佛)의:
능히 안다, 앞에서 일체 모든 부처님이 비로소
시성정각(始成正覺)과 : 정각을 이룬 것과
급반열반(及般涅槃)하며: 그리고 열반에 든 것을 능히 알며
능신후제일체제불(能信後際一切諸佛)의 : 그 뒤에 일체 제불의
소유선근(所有善根)하며 : 소유선근을 능히 믿으며
능지현재일체제불(能知現在一切諸佛)의 : 현재 일체 제불의
소유지혜(所有智慧)하니라:
소유지혜를 능히 아는 것이니라. 발심을 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보리심을 발한 뒤에는 이와같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선근과 정각과 열반과 지혜를
전부 다 안다. 한마음을 내는 발심이 그와 같이 중요하다.
우리가 화엄경을 공부하고 있다. 어느 때는 조금 지루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교훈도 많고 어느 때는 눈이 번쩍 뜨이는 내용들도 많다.
화엄경은 그 양이 많고 아득하지만 한자한자 한줄한줄 안 빠뜨리고
공부해온 지가 현재 만 4년이 지났다.
이 한 권이 끝나야 4분의 1이 끝나는데 아직 4분의 1을 다 못했다.
그래도 화엄경을 공부하겠다고 하는 한생각을 일으켜서
이 정도까지 온 것이다.
스님들이 강원생활을 4년동안 해도 이 정도 공부를 못한다.
이것이 보통 많은 양이 아니다. 강원에서는 화엄경을 우리처럼 이렇게
알뜰하게 공부하지 않는다. 수박 겉핥기로 공부할 뿐이다.
창피한 일이지만 일년 365일 중에 공부하는 날이 100일이 채 안된다.
법정수업일수도 없다.
그러니까 그 공부자리가 따뜻할 겨를이 없다. 미지근하다가 식어버린다.
따뜻하고 나서 식으면 그 온기가 한참이라도 가는데
미지근하다가 식으면 금방 식는다.
나무를 비벼서 불을 내려면 계속해서 비벼야 한다.
연기가 나도 계속 쉬지 않고 비벼야 불이 제대로 인다.
연기가 난다고 곧바로 쉬어버리면
그 동안 비벼서 뜨뜻하게 해 놓은 열기도 다 식어버린다.
그러면 불은 꼴도 못 보는 것이다.
어릴 때 화경이라고 해서 돋보기를 가지고 놀았다. 햇빛이 좋을 때
초점만 잘 맞추면 한 2, 3분쯤 지나면 솜에서 불이 폴폴 난다.
성질이 조급한 아이들은 자꾸 움직여서
‘여기서 해볼까 .저기서 해볼까’ 하고 왔다 갔다 하다가
하루종일 불꼴을 못본다. 느긋하게 집중을 하면
불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공부도 그런 것이다. 매사가 마찬가지다.
그래서 부처님이 열반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부한 이야기가
‘쉬지 말고 부지런히 하라’는 말씀, ‘해태하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우리가 2010년 3월달부터 화엄경을 공부해서 딱 만 4년이 되었다.
한 달도 쉬지 않고 알뜰히 공부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또 그전에 문수경전연구회에서는
2년간 법화경과 임제록을 공부했다.
그 2년을 합하면 지금까지 여기서 꾸준히 공부해온 분들은 6년을 공부한 것이다. 그 공부가 상당히 됐을 것이다. 꾸준히 하기에 달린 것이다.
첫댓글 제십인공양공덕(第十人供養功德)과 초발심공덕(初發心功德): 열 번째 사람까지 공양하는 비유
발심(發心)의 지력(知力): 마음은 삼세(三世) 부처님의 지혜를 모두 안다_()_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