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쓴 이유는 마지막에 있다. 정말 긴 문장이니, 아니다 싶으면 일찍 나가는 것이 좋을 듯....^.^ 참고로 이 글의 저작권(?)은 그로밋에게 있음....
대체역사에 대해 관심있으십니까? 이거 아무리 들어도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도에 대해서 관심있으십니까?"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린다. 왜 이런 말로 시작하는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난 저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아직 개봉도 안하고 보지도 않은 영화에 대해서 홍보도 하고자 한다. 물론 재미없고 엉성할 수 있지만 대체역사를 다루었다는 그런 시도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아주 크다고 생각된다.
우선 대체역사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대체역사라 하는 것은 역사의 한 시점을 분기점으로 해서 왓-이프(what-if, 만약 그랬더라면 하는 가정)를 통해 기존의 역사와는 다른 상상의 세계를 펼치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때 만약 그랬더라면 세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이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사실 대체역사의 이론적 배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가 있을 수 있으며, 그것도 상황에 따라 달라진 수많은 우주가 서로 평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은 공유하되 공간이 달라질 수 있는 평행 우주 이론이 있는 한, 우리는 수많은 우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과거이든 미래이든 어느 시점에서 시간을 분기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 의미를 잘 파악해 보면, 타임머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시간이 흘러간 뒤나 과거에서 다시 돌아오면 변해진 세상을 만나야 한다. 이는 또다른 우리가 존재한 여러 곳 중의 하나가 되는 것이지 전에 있던 그 모습 그대로가 아닌 것이다.(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가 안되면 열심히 생각해 보아야 할 듯....... ^.^)
대체역사 소설이라는 장르가 탄생하기 이전에도 대체역사라는 개념은 이미 나타나 있었다. 1907년 에세이를 썼던 G.M. 트레이빌리언은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쟁에서 이겼다고 가정을 해봄으로써 역사의 한 사건에 대한 외삽법(미지의 가치를 변수로 넣어 추정하는)을 시도했다.
최초의 대체역사소설이라 할 만한 것이 등장한 것은 1939년 어느 잡지에 연재되던 L 스프라그 드 캠프의 『어둠이 오지 않았더라면』부터로 생각된다. 6세기경의 시간여행자가 로마제국의 멸망을 막고 암흑시대라 일컫는 중세가 시작되는 것을 막는다는 얘기다. 캠프는 그 다음해에 『만약의 바퀴』라는 작품도 발표했는데, 10세기경 바이킹에 의해 식민지화된 미국을 그려낸 것이다.
대체역사소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재는 전쟁이나 전투와 같은 결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사건들이다.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일 뿐 아니라, 그로 인해 다른 역사가 쉽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대체역사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과거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의 분기적 사건이 바뀌면 어떻게 바뀌었을까하는 상상만으로도 그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역사 소설에 대한 몇가지 예를 들면, 워드 무어의 『브링 더 주빌레』(1953년)는 남북전쟁에서 남부군이 이겼을 경우의 이야기이고, 휴고상을 수상하기도 한 필립 K. 딕의 『고성의 사나이』(1962년)는 독일군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다는 가정 아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브래드 리너위버의 『얼음의 달』(1968년), 영화화된 로버트 해리스의 작품 『파더랜드』(1992년) 등도 모두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하고 있다.
물론 좀더 과거로 돌아가도 상관없다. 키이스 로버트의 『파반느』(1968년)에서는 종교개혁이 실패하고, 산업혁명도 압제적인 카톨릭 교회에 의해 분쇄된다. 생명의 진화 자체까지 거슬러 올라가 건드려 보는 작가도 있다. 해리 터틀더브의 『이종』(1988년)은 호모에렉투스가 현재까지 북아메리카에 살아남았다면 노예로서 살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해본다. 랜달 개릿의 『다아시 경의 모험』에서는 12세기에 헨리 2세가 창건한 영불제국이 800년이 지난 20세기에도 여전히 폴란드와 치열한 각축을 벌이는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국내에도 대체역사소설이 몇 권 나와 있다. 우리나라가 1945년 독립되지 못하고 1980년대 당시 현재까지도 일본의 식민지 상태라면 어떻게 됐을 것인가?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에서는 평범한 무역회사 직원이었던 주인공이 민족의식에 눈을 뜨면서 현실을 인식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안병도의 『일본정벌기』는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지 않고 살아 있었다고 가정하고 그의 일본정벌기가 펼쳐진다. 그 외에 고원정의 『횃불』에도 역시 대원군과 김좌근의 대립을 보여주면서, 대한제국이 일본을 격퇴하고 1900년까지 수년간 일본을 지배하는 대체역사가 등장한다. 또한 '국민 작가'로 불리는 이문열 역시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라는 대체역사소설을 썼다. 고종이 국민들을 모아 놓고 봉기를 촉구하는 연설을 한 뒤 자결을 하고, 일본과 무려 20년이 넘는 치열한 전쟁 끝에 결국 승리를 쟁취하며,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이 남북으로 분단된다는 내용이다. 이문열 작품치고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그의 실험정신만은 평가해야 할 부분이다.
여기서 몇 가지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은 소설이 있다. 우선 고원정의『횃불』은 1994년에 월 1권씩 4년간 발간하겠다고 한 『대한제국의 일본 침략사』라는 소설과 같다. 11권까지 나오고 절판되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소설의 흐름상 아주 중요한 부분에서 제대로 된 결론을 못내려서 절필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로부터 4년후 다시 나온 『횃불』은 이전과 초중반부는 같지만 방향을 약간 달리하고 있다. 그래서 그 느낌 또한 조금 다른데 이 소설에 대해서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 발상자체의 신선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마디 제대로 된 사과도 없이 또 어영부영 글이 중단된 것으로 볼 때, 작가로서는 아주 실망하게 되었다. 어쨌든 아주 아까운 이야기 구조를 하나 버린 셈이다. 특히, 반일감정을 많이 가지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만약 우리가 일본을 정복했을 때, 일본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면 묘한 느낌이 들 것으로 보인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다 있는 차이나 타운이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아마 우리는 일본이라는 역사를 세상에서 없애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또 하나의 소설이 바로 복거일씨의 장편 소설인 『碑銘을 찾아서』이다. 작가 복거일씨는 소설가의 일반적인 등용 절차인 신춘 문예 입상이나 문학지의 추천을 받지 않고 이 책을 출판함으로써 등단한 최초의 순수 문학가라는 평을 듣는다. 다만 아쉬운 것은 최근의 그의 행보가 소설가보다는 어설픈 자유주의 사상가 흉내를 내면서 영어 공용화론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소설에서 중요하게 보는 역사적 시점은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의 저격으로 사망하지 않고, 가벼운 부상만을 입는다는 설정이다. 사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근현대의 역사 인물로서, 만일 그가 암살되지 않았다면 일본은 극단적인 군국주의로 나가지 않고 상대적으로 온건한 방향으로 역사가 진행되었을 것이라는 평이 일반적이다. 이 말은 그가 있었다면 이른바 아시아 공영권의 실현이 아주 순조롭게 이루어져 태평양 전쟁도 없었을 것이고, 패망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과 같다.(그래서 그를 지폐에 그려넣었는가?) 식민주의자이기는 한데, 온건한 식민주의자라고나 할까? 소설은 이런 가정을 바탕으로 일본의 민족 말살 정책이 철저하게 이루어져 한국민들은 식민지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조선어와 조선 역사, 조선 이름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1980년대가 그 배경이다. 이 무렵에 우연히 한국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민족 정체성 찾기에 나서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잇다. 그는 결국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었고,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명맥만이 남아 있는 상해 임시 정부를 찾아가는 것으로 소설이 마무리된다. 좀 어설프게 끝나는 것이 아쉽지만 여전히 그의 소설에는 잔상을 많이 남기는 재주가 있었다.
그가 더욱 관심을 받게되었던 이유는 그 당시 시대상을 묘하게 빗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관한 글을 잠시 언급해 본다.
일본의 어제와 한국의 오늘을 중첩시키기
복거일은 대략 2차 대전 종전 이전의 일본 제국과 현재의 한국의 모습을 합성함으로써 가상적인 제국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러한 공상의 바탕이 되는 것은 다음 두 가지 가정이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체제의 연속성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가정과 만일 일본이 군국주의적 체제를 계속 유지했다면 그 모습은 1960~80년대 한국의 군부 정치 상황과 유사한 양상을 보였으리라는 가정이 그것이다. "한국 군부 독재의 모델은 일본 군국주의이다"라는 인식은 복거일에게서 과거 일본과 현재 한국의 모습을 중첩시키는 기법을 통해서 표현되고 있다. 예컨데 소설 속에서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18년 동안 장기 집권한 도우조우 히데끼 정권의 부정적인 유산들이 일본의 사회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얘기된다. 물론 도우조우는 실제로 2차 대전 당시 일본 군국주의 내각의 수상이었지만, 복거일이 도우조우라는 인물로 박정희를 암시하고 있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집권 기간을 18년으로 잡은 점, 도우조우를 소화 유신 체제의 수반으로 만든 점이 이를 잘 말해준다.
또 다른 사례로 주인공이 근무하고 있는 한도우 경금속에는 군 장성 출신 임원들이 있다. 하세가와 감사(그는 관동군 사단장 출신 예비역 육군 중장으로서 전역한 후 감사로 들어온 사람이다), 이시까와 전무(그 역시 사단장 출신 예비역 육군 중장) 등이 그들이다. 이시까와 전무가 직장을 옮겨가는 얘기가 특히 재미있다. "마침 그의 육사 동기생이 새로 세무청장이 되자 사뽀로 양조에서 사장급 대우를 약속하고 부사장으로 모셔간 것이다. 세무청이 생사 여탈권을 쥔 양조업체로서는 있을 만한 일이었다." 그렇게 낯설지 않은 얘기들이다. 이는 한국의 군부정권이 전역한 군 장성들에게 각종 기관의 요직을 보장해주던 관행을 암시하고 있다.
-'김태환, 신판 해설' 중에서
작가나 소설에 관한 느낌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내 생각도 비슷한 듯 해서 저런 글을 남기게 되었다.
근데 세기가 바뀌면서 우리나라도 드디어 대체역사를 영화속으로 끌고 들어왔다. 그 영화가 바로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2009 lost memories"이다. 이 영화의 주된 극 흐름은 소설 『비명을 찾아서』에서 가져왔다. 다만 극의 흐름상 현대적인 요소와 액션을 위주로 만든 듯하다. 원래 이 영화의 개봉일이 이번 주였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최근에 마무리 작업이 덜 되었는지 아님 다른 문제가 있었는지 내년 2월로 미루어버렸다. 그래서 참다 못해 나답지 못하게 보지도 않은 영화를 가지고 이렇게 법석을 떨고 있다. 아마도 그만큼 아쉽다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니 영화 사이트와 이 영화 감독에 대한 글이 있어 싣는 것으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비록 인용한 글이지만 나 답지 않은 장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공식사이트
Cine21에 실렸던 기사임.
<2009로스트메모리즈> - 빼앗긴 기억, 나는 누구인가
▒감독이 되기까지
이시명 감독은 일명 한양대 필름 르네상스를 주도한 영화학도 중 하나였다. 정지우, 김용균, 김영준 등 88학번 동기들은 모두 70∼80편에 달하는 작품을 만들었고, 애니메이션, 액션, 코미디 등 장르도 전례없이 다양했다. 그중에는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일상에 법칙처럼 적용되는 해프닝을 다룬 코미디 <말이 씨가 되면>도 있었다. 80년대 학생 작품으로는 드물게 대중성과 감각을 갖췄다고 평가받은 이 작품으로, 이시명 감독은 상도 타고 후배들 사이에 스타가 됐다. 중학교 때 비디오카메라로 도둑 잡는 액션영화를 찍은 이래, 이시명 감독은 재학 시절 거의 모든 장르 영화를 직접 만들었다. 하고 싶은 영화, 할 수 있는 영화를 찾고, 착실히 공부하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장길수 감독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의 연출부로 시작, 강우석 감독의 <마누라 죽이기> <투캅스2>의 조연출을 거쳤고, 98년 <여고괴담>의 연출 의뢰를 받았다. 그러나 공포물을 보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그에겐 무리였다. 이시명 감독이 꿈꾸던 프로젝트는 단군과 고주몽을 이어주는 해모수의 설화와 시간 여행을 다룬 SF물이었지만, IMF가 닥치고 영화판에 돈이 마르면서, 그 기획들이 현실이 될 길은 요원해졌다. 그러던 중 김익상 프로듀서로부터 시간여행에 관한 대체 역사물 아이템을 건네받았다. 운명처럼, 그가 준비해온 두 이야기를 한데 버무려놓은 듯한 영화였다. 그렇게 시작된 <2009 로스트 메모리즈>는 가시화되기까지, 투자사가 삼부엔터테인먼트에서 튜브엔터테인먼트로, 프로듀서가 김익상씨에서 김윤영씨로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3년 가까이 지연된 이 프로젝트에 대해 소문도 많았지만, 그 사이 이시명 감독은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3개국 헌팅과 프로덕션 디자인 작업을 꼼꼼히 진행했다. 튼실한 드라마는 기본이고, 그 위에 볼거리를 얹겠다며, 연출의 정석을 이야기하는 이시명 감독 앞에, 신인으로서 50억원짜리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부담이 크지 않느냐 는 우려는 무색해진다.
▒어떤 영화를 만들것인가
이시명 감독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늘 바뀐다고 한다. 앨런 파커, 우디 앨런, 스탠리 큐브릭, 오우삼, 틴토 브라스 등 그가 좋아하는 감독 명단을 보면, 도무지 어떤 영화를 만들려는지 그 취향을 종잡을 수가 없다. 꼭 하고 싶은 일이 해모수 설화를 <엑스칼리버> 분위기로 영화화하는 것이라니, 역사물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것도 같지만 그런 것만도 아니라고 한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도 조선독립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가정, 그 소재보다는 지금 다루고 싶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집어넣을 공간이 있다 는 사실에 이끌렸다.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 홀린 듯이 봤던 오우삼의 영화들, 그런 정서를 담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조선계 일본인 경찰 사카모토는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절친한 일본인 친구 사이고와 대립해야 하고, 다른 역사 속에서 연인 사이였던 오혜린을 알아보지 못하는 비운의 인물. 그를 통해 우정과 사랑, 운명과 역사를 이야기하려 한다. 2009년이라는 가까운 미래에 벌어지는 이야기인 만큼 SF적인 요소가 있지만, 비주얼에만 힘을 쏟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미술의 컨셉은 3∼4년 정도 앞선 디자인에, 밤신과 비내리는 낮신이 주를 이뤄 전반적인 톤을 어둡게 잡았다. 현재 양수리 제1스튜디오에 후레이센진의 테러가 벌어질 이토 회관의 세트를 짓고 있으며, 테스트 촬영과 인서트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특수효과 촬영을 포함하면 100회를 훌쩍 넘길, 머나먼 여정을 이제 막 떠난 것이다.